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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호/산문/김인자/북한강 금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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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부관리자
댓글 0건 조회 677회 작성일 19-07-08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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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호/산문/김인자/북한강 금대리


북한강 금대리


김인자



  집을 나선지 두어 시간, 고개를 넘자 눈발이 앞을 가로 막는다. 갈 길은 멀고 해는 짧으니 이 정도 눈발로 주춤 거릴 수는 없는 일이다. 남한강을 거슬러 북한강을 따라 가는데 ‘금대리’라는 이정표가 오른쪽 옆구리에 따라 붙는다. 눈발은 금세 성난 짐승처럼 거세져 시야를 가리고 바람은 달리는 차를 사납게 흔들어댄다. 짜릿한 불안이 안개처럼 온몸으로 스멀거린다. 이를 어쩌나, 뭔가 익숙한 듯싶은데 잘못 든 길이다.
  도도히 흐르는 강물 속 외로운 섬 하나, 나무의 뿌리가 일제히 바닥을 지향하고 있는 저 차디찬 강의 상류에 태아처럼 등을 구부리고 자리를 잡은 조그만 섬, 삭풍에 휘둘려 울다가 웃다가 다시 꼿꼿이 제 자리를 찾는 마른 갈대처럼, 살든 죽든 함께 가자며 강으로 몸을 던진 두 연인의 혼이 뿌리를 내려 섬이 되었다는 전설을 떠올리던 그때, 거역할 수 없는 풍경 한 컷이 내 멱살을 잡고 다리를 꺾는다. 하지만 다행히 눈발이 가늘어져 계속갈 수 있겠구나 싶을 때 또 다시 거짓말처럼 길을 막는 폭설. 새소리였는지, 바람소리였는지 강 하류 쪽에서 어떤 기척이 느껴졌던 것 같기도 하다. 잠시 눈雪을 뿌려서라도 행자들의 눈眼을 가려 줄 테니 어서 강 쪽으로 몸을 던져 건너오라고. 아주 깊고 먼 저곳에서 오래 기다렸을 한 사람, 여긴 금대리이고 금대리에 왔으니 자기만 생각하라는 듯,


  90년대 초, 농번기에 부모님 일 도우러 시골집에 갔다가 경운기 사고로 하체를 잃은 한 남자가 살던 북한강과 인연을 맺던 때가 있었다. 그는 소설을 썼다. 모 잡지에 소속되어 있던 나는 그의 라이프 스토리를 싣기 위해 취재차 초행길에 혼자 차를 몰아 그가 산다는 금대리를 찾아갔다. 그러니까 나는 인터뷰어였고 그는 인터뷰이였다. 오가는 동안 차 안에서 나는 시대의 가객 정태춘의 ‘북한강에서’를 멈추지 않고 들었다. “강물 속으론 강물이 흐르고 내 맘 속애 내가 서로 부딪히며 흘러가고 강가에는 안개가 안개가 가득 흘러가오.” 강가에는 안개가 안개가 흘러간다는 노랫말처럼 그곳은 언제나 꿈결처럼 안개가 흘렀다.
  몸에서 그 무엇보다 중요하달 수 있는 두 다리를 잃고 세상에 등 떠밀려 섬이 된 소설 같은 그의 삶을 위무해주는 일, 그가 꿈꾸는 문학이라면 그의 고독과 고립을 당당히 세상으로 끌어내 줄 것만 같은 기대감, 한 사람에 대한 헌신은 그때까지 내가 가져보지 못한 깊은 신뢰와 용기를 필요로 했다.
  유배생활이나 다름없는 그를 만나러 가는 길은 복사꽃이 피는 봄이거나 단풍이 붉은 가을이었다. 그를 지향하는 맘 때문이었을까. 북한강이 얼마나 유혹적인지 그것은 그냥 강이 아니었다. 어쩌면 나는 그보다 강을 더 사랑했는지도 모른다.
  겨울이 되면 바람이 매서워 휠체어 외출이 어렵다며 강이 풀리면 오라는 편지를 보내오면 나는 달려가는 그리움을 누르며 꼼짝없이 봄을 기다려야만 했다. 그 긴 기다림은 쓰고 아렸지만 설명 불가한달콤함이기도 했다. 
  어느 날, 그의 신작 단편을 읽을 때였다. 절정일 때 뛰어내린다는 동백꽃을 생에 비유하며 불운한 예감을 주던 그가 세상을 버렸다는 기별을 받았을 때 나는 그 아름다운 북한강과 금대리를 함께 버렸다. 그리고 그것은 깊은 배신감과 더불어 전생처럼 아득히 잊혀졌다.


  세월이 흘러 나 하필이면 폭설 퍼붓는 날. 잘못 든 길이 금대리라니, 운명이 존재한다면 이렇게 무의식중에 와 닿고야 마는 지금 이것이 아닐까. 강풍과 눈으로 옷과 카메라가 젖어 더 이상 섬을 바라볼 수 없어 네비게이션을 무시하고 달려 도착한 곳은 남이섬이다. 어디서 어떻게 달려도 그가 그랬듯이 나 또한 섬일 수밖에 없구나, 독백하고 있을 때 그대가 어두운 길에 나 무사히 귀가하라고 그 지독한 폭설을 멈추어 주었다는 거 왜 모를까.


  "기억할 게요. 눈보라 속에서 카메라셔터를 누를 때 내 눈 앞에서 한참을 지저귀다 간 작은 새 한 마리, 미안해요. 그리고 고마워요. 사는 일이 힘들어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그대가 나의 고단한 어깨를 툭 치면서까지 그날을 떠올리게 하고 위로해 주어서.“





*김인자 <경인일보 >신춘문예 당선.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여행산문집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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