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작품(전체)
19호/산문/신경순/동치미
페이지 정보

본문
19호/산문/신경순/동치미
동치미
신경순
출근하면 퇴근 때까지 소식이 없는 남편이 어느 날 떨리는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시어머니의 간에 돌이 생겨 떼어내는 수술을 해야 한다는 내용의 전화였다. 큰 병원에서 수술하고 싶다는 시어머니의 바람에 따라 남편은 기꺼이 휴가를 내고 우리가 사는 경기도 분당에 위치한 대학병원의 응급실로 모시고 갔다. 대학병원은 대기자가 많아서 응급실로 접수해야 그나마 수술을 빨리 할 수 있다는 정도는 이전부터 알고 있던 터였다.
모든 기다림은 지루함을 동반한다. 그렇더라도 막연하게 기다리자면 초조하지는 않다. 초조함이 없는 기다림은 지루하더라도 때가 되면 해소가 된다. 그러나 초조하게 기다리는 입장에서는 갖은 잡념이 머리를 어지럽히느라 정신을 놓기도 하지만 시간은 시계바늘이 고장 난 것처럼 왜 이렇게 더디게 움직이는지 수술실 앞에서 결과를 기다리는 체험을 해본 이들은 공감할 것이다. 보호자 대기실에서 5시간을 기다린 끝에 의사와 간호사들이 수술실에서 나왔다. 그 중 주치의로 보이는 이가 우리 앞에 서더니 수술은 잘 되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간단한 말만 던지고는 바삐 자리를 떠났다. 어쨌든 이튿날부터 면회가 되어 시어머님을 보러 갔다. 중환자실은 소독약 냄새와 함께 위독한 환자들이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시어머님이 보이지 않았다. 다시 주위를 살펴보고 나는 내 눈을 의심하였다. 작고 초라한 볼품없는 할머니 한 분이 누워 있었는데 그 분이 시어머니라니… 키가 작은 시어머니는 수술을 한 직후라서 그런지 살이 많이 빠지고 더 왜소해 보였다. 며느리에게 늘 당당하고 화가 나면 며느리에게 욕을 퍼붓는 호랑이 같은 시어머니였는데…….
시어머니에 대한 나의 기억은 좋은 것이 별로 없다. 남편이 알면 서운해 할 일인지는 몰라도 남편보다 돈을 잘 버는 시동생 덕에 아랫동서에 대한 시어머니의 사랑은 극진하여도 맏며느리인 내게는 늘 차갑게 대하셨다. 결과적으로 보면 빠듯한 살림을 핑계로 넉넉히 용돈을 드리지 못한 내 탓이기도 하겠지만 시어머니의 편애는 늘 서운한 일로 마음속 한 편에 자리 잡고 있었다.
시어머니는 내 남편이 장남이라 그런지 몰라도 결혼해서 분가하여 살고 있는데도 늘 아프면 남편을 오라고 하였다. 시아버지와의 사별 후 혼자서 아들 둘을 키운 시어머니를 외면하지 못하는 남편은 늘 시어머니에게 끌려 다녔다. 우리 아이들이 태어날 때도 남편은 시어머니 집에 있었고 나 혼자 병원에서 아이를 낳아야만 했다. 그때 서럽고 섭섭했던 마음들이 지금도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다. 오랜 세월동안 시어머니의 그런 태도에 정보다는 미움이 자리했고 내 마음속엔 시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감정이 없어져 버렸다. 사실 오늘 병실을 찾은 것도 어떻게 보면 며느리로서의 최소한의 예의를 차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병실에는 죽음과도 같은 고요한 적막이 깔려있었다. 나는 시어머니에게 의례적으로 다가갔다. 시어머니는 가느다래 눈을 뜨고는 힘없이 손을 내밀었다. 나는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내민 손을 잡았다.
중환자실에 계셨던 시어머니는 회복이 어느 정도 되자 일반 병실로 옮겨졌다. 간병인이 환자를 돌보기로 하고 병원 밥을 싫어하는 시어머니를 위해 나는 매일 밥을 지어 가져다 드렸다. 내가 밥을 해서 가지고 가도 시어머님은 입맛이 없는지 식사를 통하지 못하셨다. 평소에도 자기가 한 음식이 제일 맛있고 남이 한 음식을 잘 먹지 않았던 시어머니였다. 그래도 환자가 식사를 못하니 걱정이 되는 것은 어쩔수 없는 인지상정인가?
어느 날 옆집 언니가 동치미를 한 그릇 가지고 왔다. 먹어보니 맛있었다. 평소에 동치미를 좋아하던 시어머님이 생각나서 동치미를 싸 가지고 가서 드렸더니 시어머니가 이 동치미를 반찬으로 밥을 조금씩 드셨다.
평소에 눈치가 빠른 시어머님이 “네가 담았니?” 하고 물으셔서 얼떨결에 “네” 하고 대답하였다. “동치미가 내 입맛에 맞으니 앞으로는 다른 반찬은 필요 없고 이것만 가지고 오라”고 하였다. 남의 집에서 조금 얻은 건데 내가 담았다고 해 버리는 바람에 걱정이 태산이 되었다. 나는 집으로 와서 옆집 언니와 의논을 하였다. 언니는 동치미 담는 법을 가르쳐줄 테니 한 통 담아서 시어머니에게 가져다 드리라고 하였다. 언니가 가르쳐준 대로 동치미를 담으면서 내가 그토록 미워하던 시어머니를 위해 동치미를 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나 자신이 의아하기도 하였지만 그동안 한 번도 풀지 못한 미움이 아직은 남아 있었다. 중요한 건 시어머니를 빨리 낫게 해야겠다는 생각만은 그럼에도 간절했다.
이틀이 지나고 동치미 뚜껑을 열어보니 달콤하고 시원스런 냄새가 났다. 김치통에 옮겨 담고 새로 산 김치냉장고에 넣었다. 혹시 까다로운 시어머님이 맛이 다르다고 할까 봐 걱정을 하면서 새로 만든 동치미를 병원으로 가지고 갔다. 정성은 모든 걸 변화시키나 보다. 내가 담은 동치미 맛을 본 시어머님은 이번 동치미가 더 시원하고 맛있다고 하니 다행이었다.
시어머니는 기분이 좋은지 우리 며느리 덕분에 내가 회복이 빨리 되겠다면서 처음으로 칭찬을 하였다. 평소에는 잔소리만 하고 나무라기만 하던 시어머님이 아프더니 마음이 변했는지 칭찬을 다하다니……. 나는 시어머니의 말을 건성으로 받아들이면서 그릇들을 챙기고 있었는데 그때 시어머니가 내 손을 살포시 잡았다. 시어머니의 갑작스런 동작에 난 빼지도 못하고 어설프게 손을 잡혀 엉거주춤 있었다. 시어머님이 “나에게 잘해줘서 고맙다. 그동안 섭섭한 일 있으면 풀어라” 하고 손에 힘을 주는 것이었다. 손을 잡힌 나는 아무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갑자기 만감이 교차했다. 이 결혼을 얼마나 후회를 했는데……. 친정엄마가 홀시어머니 모시기 힘들다고 결혼을 반대할 때 시집을 가지 말아야 했었는데……. 결혼을 하고 후회를 수천 번도 더 했던 터라 오늘 시어머니가 내게 화해의 손을 내민 건 정말 뜻밖이었다. 일부러 몸을 구부정하게 하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감추면서 시어머니에게 들킬까봐 화장실 다녀오겠다고 말하고는 얼른 밖으로 나왔다. 화장실에서 얼굴을 다시 매무시하고 병실에 들어가니 시어머니는 내가 운 걸 아는지 모르는지 다시 나의 손을 잡고 “동치미가 맛있어서 내가 밥을 먹으니 기분이 좋다”고 다시 한 번 더 칭찬을 하셨다. 나는 시어머니 손을 잡으면서 “얼른 일어나실 수 있으니 식사를 많이 하시라”고 말하고 시어머니 등뒤로 가서 안마를 해드렸다. 시어머니의 손이 다시 등뒤로 와서 내 손을 잡았다. 둘 사이에는 침묵이 흘렸지만, 병실의 온풍기처럼 따뜻한 기운이 맴돌았다. 나는 수건을 적셔 와서 시어머님의 손을 닦아드렸다. 한평생 고생한 훈장으로 시어머니의 손이 울퉁불퉁 핏줄이 겉으로 드러나 있었다.
시어머니는 40대에 남편과 사별하고 아들 둘 키운다고 여자의 삶보다는 한 집안의 가장으로 자리하고 있었음을 손을 보고 느꼈다. 나는 결혼생활 16년이 흘렸는데도 시어머니의 손을 처음으로 자세하게 보았다. 명절날 화투를 쳐도 아들이 잘하면 머리가 좋아서 잘한다고 말을 하고 며느리가 잘하면 은근히 싫어하는 시어머니……. 그래서 늘 남으로 생각했는데 오늘은 시어머니와 진짜 가족이 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시어머니의 얼굴에는 푹 파인 주름이 마음대로 뻗어있었고 머리에는 검은 머리가 새치처럼 듬성듬성 보였다. 시어머님이 퇴원을 하고 나면 염색을 해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 사이의 화해를 축하라도 하듯 병실의 창문 사이로 따뜻한 햇살이 두 사람을 비추고 있었다.
*신경순 2011년 《신춘문예사》 수필로 등단.
- 이전글19호/아라세계/신연수/새 발굴 강화주유가江華周遊歌 19.07.08
- 다음글19호/산문/김인자/북한강 금대리 19.07.08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