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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호/아라세계/신연수/새 발굴 강화주유가江華周遊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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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부관리자
댓글 0건 조회 769회 작성일 19-07-08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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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호/아라세계/신연수/새 발굴 강화주유가江華周遊歌


새 발굴 강화주유가江華周遊歌


신연수



  강화江華를 소재로 한 문학작품은 많다. 강화는 고려시대 몽고침입 시 두 번이나 도읍지 역할을 했는가 하면 병자란 때는 강화도로 피난한 많은 사람들이 항복 후 치욕을 피해 목숨을 버리기도 했다. 또 조선시대 하곡 정제두에서 비롯된 양명학의 근원지로 이시원, 이건창 등 꼿꼿한 선비들을 많이 배출했기 때문에 강화와 관련된 많은 글들이 전해온다. 하지만 강화를 유람하고 그 산천경개 등을 기록한 여행기는 많지 않은데 그 중 널리 알려진 것이 1906년 화남華南 고재형(高在亨: 1846~1916)의 『심도기행沁都紀行』이다.


고려왕이 무슨 일로 도읍을 옮겨왔나.(麗王何事昔移都)
연경궁과 강안전이 모두 다 허무하네.(延慶康安摠虛無)
땅에 묻힌 큰 종을 누가 감히 꺼내겠나.(埋地洪鍾誰敢發)
하늘 가득 우레 소리가 곧바로 몰아친다는네.(滿天雷雨卽時驅)


                ―『심도기행』 중 「고려궁지高麗宮址」


『심도기행』은 고재형이 1906년 봄 자신이 태어난 강화 두두미 마을에서 출발해 당시 강화군 17개면 100여 마을을 빠짐없이 둘러 본 후 지은 256수의 7언 절구를 수록한 한문 기행시문집이다. 심도란 강화의 별칭이다.
  기행이란 자기 삶의 공간과 멀리 떨어진 낯선 곳을 구경하는 것인데 『심도기행』은 저자인 고재형이 태어나고 자라서 생활하는 고향을 돌아보고 썼다는데 의미가 있다. 고재형은 대대로 강화군 인정면 두두미 마을(현재 강화군 불은면 두운리)에 터를 잡고 살아온 강화 토박이로, 지금도 두두미 마을에는 그의 생가가 남아 있다.
  고재형의 문집인 『화남집華南集』에 실려 있는 『심도기행』은 발간되지 못하고 필사본으로 전해 온다. 현재 『화남집』은 2종이 전해 오는데, 2종 다 내용에서는 큰 차이가 없고 다만 그 중 하나에는 1909년 겨울 구창서具彰書가 쓴 발문이 있을 뿐이다.
  강화역사문화연구소가 2005년 강독회를 하면서 알려지기 시작한 『심도기행』은 2008년 12월 인천대학교 인천학연구원이 저자의 종손인 고승국씨 소장본을 바탕으로 역주본을 펴냄으로써 일반인에게도 널리 알려졌다. 현재는 110년 전 고재형이 걸었던 일명 「화남길」을 따라 걷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심도기행』으로부터 40년 후인 1948년경 강화를 노래한 「강화주유가江華周遊歌」가 새롭게 발굴돼 여기에 소개하고자 한다. 이 책은 서지학자인 안춘근(1926~1993)이 소장하던 것으로, 표지에는 그의 친필 제자題字와 구입일자가 쓰여 있다.
「강화주유가」는 가로 19.5cm, 세로 25.2cm 크기의 필사본으로 총 7쪽으로 되어 있다. 첫 장에 ‘오성梧城 유지영劉智榮’, ‘육당선생六堂先生의 「세계일주가世界一周歌」를 본떠”라고 기록되어 있어 유지영이 육당 최남선의 「세계일주가」를 보고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정확한 저작연대는 알 수 없지만 해방공간에 많이 사용되던 미농지에 붓글씨로 쓴 점이나  「환영 국제연합조선위원단歡迎 國際聯合朝鮮委員會」등이 실려 있는 점 등에 비춰 볼 때 적어도 1948년 이전에 집필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작자 유지영에 대해서는 더 이상 알려진 것이 없다.
  또 이 책에는 「강화주유가」와 함께 「마니산답사기 초摩尼山踏査記 抄」, 「강화탄생江華誕生에 접接하여」 등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강화주유가」 전문은 다음과 같다.


  제물포濟物浦 배 떠난 지 세시간만에 닿으니 심도沁都라는 옛 도읍지都邑地라. 수數 많은 포대砲臺들이 그대로 있고 겹 성城이 둘러 있네. 강화江華 주위周圍로 동북東北엔 한강漢江물이 경계境界를 짓고 서남西南엔 황해수黃海水가 둘러 있는데 동락東洛이 오류대청오천두모천五流大淸鰲川頭毛川 빗 맑은 오대천五大川이 흐르고 있네.
  한강수漢江水 깊게 흘러 두 갈래 되니 연미정燕尾亭 월곶진月串津이 그 새에 섰고, 포구浦口엔 백로횡강白露橫江 해가 저무니 한가閑暇한 어선漁船들이 감돌아드네. 동서東西가 사십리四十里라 넓지 못하나 남북南北이 칠십여리七十餘里 뻗치어 있네. 고려산高麗山 마니산摩尼山 화구, 진강, 별립산火口, 鎭江, 別立山 드높은 오대산五大山이 장엄莊嚴도 하다. 모심는 농부農夫님네 격양가擊壤歌소리 알뜰한 산山과 물에 사무쳐 있고 담고개 남편南便 언덕 붉은 옛집은 삼충신三忠臣 제사祭祀라는 표충단表忠壇일세. 이곳서 서편西便으로 십리十里 못 가서 옛 도성都城 천여가구千餘家口 강도읍江都邑일세. 절반도 더 된다는 헐린 집터는 고금古今의 흥망사興亡事를 말하고 있네. 견자산見子山 넘어로 서용구물까지 질펀한 넓은 들은 고려궁高麗宮 터전 지금은 자취조차 찾을 길 없고 거치른 잡초雜草들만 우거져 있네. 문관文官들 과거科擧보든 진무학 전각鎭撫學 殿閣 아직도 그 모양이 그대로 있고 무관武官들 조련操練하던 연무장鍊武場터는 우거진 수풀 속에 묻혀 있다네. 서천西天도 서역西域에서 이승異僧 한 분이 손에다 오색五色 연蓮꽃 가지고 와서 사면四面에 뿌렸다는 전설傳說뿐 만이 나그네 바쁜 길을 멈추게 하네. 춘초春草는 천재만재千載萬載 다시 푸르나 가신 임 오시기는 바이없는데 조산평造山坪 지켜 섰는 늙은 고목枯木엔 철없는 왜가리만 섧게도 우네. 충렬사忠烈士 선원공仙源公의 퇴락退落한 비각碑閣 역력歷歷히 옛적 일을 말하고 섰고 무거운 입 다문 채 달린 거종巨鍾은 에밀레 소리 쫓아 찾을길 없네. 거기서 수리數里 길을 서西로 가면 이곳은 일층 높은 적석사積石寺이고 낙조봉落照峰 위에 올라 멀리 황해黃海에 저무는 지는 해를 볼 수 있다네. 수많은 궁궐宮闕들은 병자란丙子亂 통에 충천한 불 속에서 터만 남았고 영성타 흑용궁黑龍宮만 홀로 남아서 폐허廢墟된 내수동內需洞을 지키고 있네. 고려산高麗山 상봉上峰 위엔 청황적백흑靑黃赤白黑 오색五色의 연화蓮花들이 피었던 지당이금池塘伊今엔 태반太半이나 자취도 없고 청백靑白의 두 사찰만 남아 있을 뿐 청청려靑靑梠에 몸을 끌고 그대로 걸어 옥녀봉玉女峰 그늘에서 발을 누이고 조그만 나룻배에 몸을 실으니 어느 덧 다 건넜네 인화포寅火浦 나루. 한가閑暇한 어부漁夫들의 노래 들으며 우거진 송백석로松柏石路 보문사普門寺 찾아 부처님 타고 왔던 돌배 보고는 놀라지 않는 손이 없다고 하네. 첫새벽 목탁木鐸소리 정신 새롭고 늦은 밤 불경佛經소리 곤한 잠드네. 산채山菜에 맛드린지 어느덧 수일數日 또다시 회정廻程하세 강화江華 본도本島로 제2의 개성開成이란 명칭名稱을 듣는 이곳의 상업가商業街도 볼만도 하고 넓으나 넓은 시장물화市場物貨가 산적山積 장마다 거래객去來客이 인파(人波)가 다항茶項 대웅전大雄殿 큰 지붕이 한 조각 바위 이곳이 아니고는 못 볼 것이고 그 밑에 이름 높은 약수藥水 마시면 못낳던 옥동자玉童子도 낳을수 있다네. 망월望月벌 넓은 벌판 살진 옥토沃土엔 자라는 곡초穀草들이 기름이 젓고 강화江華서 일년一年동안 짓는 농곡農穀은 3년三年을 먹고서도 오히려 남네. 전도全島의 농가부업農家副業 하도 많지만 유명有名타 칠십만족七十萬足 초혜草鞋가 나고 세계世界에 잘 팔리는 강화江華 화문석花紋席 1년 중 생산고生産高가 10만엔十萬円 거액巨額. 높이가 33척三十三尺 된다는 석불石佛 조선朝鮮서 둘째라고 자랑하는데 이곳에 복福을 빌러 모이는 진객珍客 하루에 몇 백명百名인가 수數를 모르네. 한심타 그 반면反面엔 적빈자赤貧者 많아 전 인구 4할四割이나 더 된다 하네. 안남미安南米 만주율滿洲栗이 인천을 걸어 1년에 수입고收入高가 십오만 여석十五萬 餘石 서도면西島面 자철광석磁鐵鑛石 유명도 하고 화도면華道面 화강석花崗石도 무진장無盡藏일세. 부업副業의 발상지發祥地인 하점면河岾面에서 짜내는 직물織物만이 연年 20만필二十萬疋 족답기足踏機 5천여대五千麗台 집마다 있어. 반포斑布라 필루비라 인견人絹과 본목本木 저마다 길쌈에는 뽐내는 명수名手. 믿었다 우리 앞길 축복祝福이로세. 극동방極東方 단목檀木 아래 나신 임금님. 제천단祭天檀 모으섰네 마니산摩尼山 위에. 24계단二十四階段으로 쌓으신 제단祭壇 이태조李太祖 아홉 층層을 증축增築 하셨네. 길찾는 산새들은 요란히 울고 둘리인 저녁 연기煙氣 자욱한 영산靈山 정족산鼎足山 남문南門 너머 산길로 드니 전등사傳燈寺 전각殿閣들이 손짓을 하네. 봄철엔 남부여대男負女戴 골골이 퍼져 행상行商의 장사진長蛇陣을 삼천리三千里에 펴 아동兒童들까지라도 모를리 없는 강화江華의 비단장사 누가 모르리. 첨성단添星檀 서른세 층層 운유雲宥에 솟아 이 강산江山 이 겨레를 수호守護해 있고 끼치신 어진 성덕聖德영구永久하리니 이 나라 다시 살길 기약하리라. 옥등玉燈에 켜 있는 불 휘황輝煌해 있고 산사山寺의 만종성晩鍾聲이 흐르고 있네. 회색灰色빛 장삼長衫 입은 자비慈悲한 노승老僧 피곤疲困한 나그네를 반가이 맞네. 5만주五萬株 감나무에 열리는 것만 끔찍타 16만관十六萬貫딸 수 있다니 이곳서 무핵공시無核孔柿 해외수출海外輸出이 외화外貨를 끌어 오는 한목을 보네. 반만년半萬年 오랜 성적聖蹟 엄연嚴然히 남아 시조始祖적 끼친 유업遺業 다시 새론데 왜적倭賊의 미운 꼴은 언제 면하리. 집없는 나그네 마음 상傷할뿐 단군檀君의 세 아드님 쌓은 삼랑성三郞城 아직도 그 솜씨가 그대로 있고 불여귀不如歸 슬피우는 대조루大潮樓 멀리 원포遠浦에 돌아가는 뱃불도 다정, 남南으로 양도면良道面의 진강산鎭江山 찾아 효종孝宗께 사랑 받던 충성忠誠된 이마벌대총異馬伐大驄 옛 자취에 조표弔表하고는 걸어라. 성지聖地 찾아 마니산摩尼山 정수사淨水寺 못 본 명찰名札 옆에 두고 그대로 가는 맘도 섭섭타마는 저문해 산그림자 걸음 급하니 두어라 이 다음날 또다시 찾다.


작자作者의 말/습작習作 노-트 구고舊稿에서 추려 쓴 것인 만큼 글의 맛이 떫은 점이 있음을 눌러 보시라.





*신연수 시인. 인천문협 회원, 근대서지학회 회원. 법률신문사 이사 겸 총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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