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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호/아라포럼/천선자/우리시의 음보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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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부관리자
댓글 0건 조회 766회 작성일 19-07-08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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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호/아라포럼/천선자/우리시의 음보를 찾아서


우리시의 음보를 찾아서


발제자:천선자



  자료 수집을 위해 도서관, 서점을 돌아 종로의 서적골목으로 간다. 늘어서 있던 서점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식당이나 다른 상가 일색이다. 골목이 낯설어 뱅뱅 돌다가 구멍가게만 한 서점으로 들어가 음보 관련 책을 찾아본다. 하지만 찾을 수가 없다. 동대문 헌책방까지 돌아서 겨우 책 몇 권을 사들고 해질 무렵 집으로 돌아오면서 생각한다.
  요즈음 컴퓨터가 대세라 종이책보다는 인터넷 정보를 선호하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덩달아 문득 시가 걱정이 된다. 쏟아져 나오는 시집은 모두 피리 부는 소년을 따라 가버렸나. 아니면 독자들이 피리 부는 소년을 따라 가버렸나. 이러다가 시라는 장르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 음보 관련 책은 어디로 가서 찾나, 소리 치고 목메어 불러 봐도 돌아오는 것은 ‘허공에 지워질 이름이여’ ‘내가 부르다가 죽을 이름이여’ 메아리만 귓바퀴를 돌린다.
  우선 정형시의 원천이라고 알려진 상대시가를 살펴보면서 우리시의 음보를 추적해 보기로 한다.


空無渡河공무도하/公竟渡河공경도하/墮河而死타하이사/當奈公何당내공하


―「공후인箜篌引」


「해동역사海東繹史」에 기록되어 있고, 「고금주」에 전하는 이 노래의 유래는 다음과 같다.  물에 빠진 남편을 구하려다가 구하지 못하고 결국 아내도 물에 빠진다는 이야기이며, 곽리자고霍里子高 의 아내 려옥麗玉이 지은 것이다.
  상대시가는 「공후인」, 「황조가」, 「구지가」 등을 비롯한 기원 전후의 작품들이고, 3, 4세기 원삼국시대의 시가작품까지 확대하여 상대시가라 지칭하기도 한다. 대체로 우리 시가의 발생 단계에서부터 향가의 생성 이전까지의 초창기 시가를 총칭하는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정의 역시 객관성을 지닌다고 하기 어렵고, 명칭 또한 연구 자료에 따라서 ‘상대시가上代詩歌’, 상대가요 ‘上代歌謠’, ‘고대시가 古代詩歌’ 등 다양하다.

  상대시가의 복합성은 한국시가가 안고 있는 특수한 역사적 국면을 반영한 결과이다. 문헌에 따르면 우리 조상들은 특히 노래와 춤을 좋아하였다고 한다. 노래와 춤이 생활이고 일상 행위여서 봄에 씨 뿌리고, 가을걷이하고 나면, 어른아이 할 것 없이 마을사람이 모두 모여 노래하고, 춤을 추며 하늘에 제사를 지낸다. 한 번 축제를 열면 백일 동안 이어지고, 이것을 본 청나라 사람은 이렇게 오랫동안 노래와 춤을 추는 이상한 민족은 처음 봤다고 했다. 우리 민족은 흥이 많은 민족이었고, 이것이 또한 지금까지 내려오는   우리 시가의 모습이고, 동시에 이러한 형태로 나타나는 운율의 기본 구조인 음보의 모습이기도 하다. 고구려의 고분벽화에 그려진 모습을 보면 노래하는 모습과 춤을 추고 반주하는 화려한 악대를 많이 볼 수 있는 것도 그것을 증명해 준다.
  우리글로 표기되어 전하는 유일한 백제 노래는 「정읍사」가 남아있고, 신라의 노래로는 향찰로 기록되어 전해진 몇 편이 있다. 그 중 한 편은 길쌈 노래로서 노동요인 「회소곡」이다. 정형시라고 하면 대표적인 것이 시조라 할 수 있고, 이 시조는 한국문학의 전통 장르 가운데 현재까지 내려오는 유일한 장르이다.
  정형시에 많이 쓰던 3음보 특징은 하나의 행을 완결하지 못하여 다음으로 이어져야 하지만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데 적당하고, 4음보는 호흡이 안정적이고 흐름이 느리고 유장하여 논리적인 생각을 전개하기 좋으며 간접적인 정서 표출에 좋은 방법이다.
  시조는 평시조平時調, 엇시조時調, 사설시조辭說時調, 연시조連時調가 있고, 평시조의 형식은 초장, 중장, 종장의 3장으로 이루어졌으며 총 자수 45자 내외로 된 정형시이다.
  평시조平時調는 시조의 기본형으로서 그 형태가 가장 먼저 이루어졌고, 양반계층에서 성행했던 시조이고, 구의 구분에는 3가지가 있는데, 1장을 4구씩 가르는 12구설, 1장은 2구씩 가르는 6구설, 초장, 중장은 2구씩, 종장으로 4구로 가르는 8구설 등이 있다. 12구설에 따른 자수(음수)는 3·4·3(4)·4, 3·4·(4)·4, 3·5·4·3으로 1장을 15자 내외, 1수를 45자 내외로 가른다.


초장: 이 몸이 죽어 가서 무엇이 될고 하니
        3자 -1구 4자,     3자 -2구  4자
중장: 봉래산 제일봉에 낙락장송 되어 있어
        3자 -3구 4자,     4자 -4구  4자
종장: 백설이 만건곤 할 제 독야청청 하리라
        3자 -5구 5자,     4자 -6구 3자


―평시조平時調: 1 
 
  위 시조는 1452년 12세의 어린 나이로 즉위한 단종이 재위 3년 만에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폐위당한 비극을 다루었다. 조선 왕조사 5백년을 통하여 가장 참혹한 사건이다. 이 중심인물들이 사육신이고, 그 중 성삼문은 충청도 홍주 노은동(현재 충남 홍성군 홍북면 노은리) 외가에서 출생하였고, 조선 제일의 충성스러운 신하이며 집현전 학사 출신이다. 단종의 복위를 계획하다가 발각되어 한강 군기창 앞에서 처형을 당한 인물이다. 위 시조는 그가 죽음 앞에서도 영원히 ‘독야청청’하겠다는 다짐이요, 충절의 구체적 표현이다. 초장 3·4·3(4)·4 이고, 중장 3 ·4·3(4)·4 이며, 종장이 3·5·4·3으로 이루어진 고시조이다.


초장: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①                  ②
중장: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
        ③                  ④
종장: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⑤                  ⑥


―평시조(平時調)2 


  초장의 첫째 구인 ①의 “태산이 높다 하되”는 다시 그 아래에 “태산이”와 “높다 하되”로 더 작게 분석될 수 있는 2개의 기본단위로서 우리가 보통 “음보”라고 하는 단위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3장 6구”라고 할 때 “6구”가 지시하는 형식 규정은 ‘시조의 6구로 이루어는 규칙성과 ‘1구는 2개의 기본단위로 이루어는 규칙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형식 규정이라고 할 수 있다.
  평시조平時調·1에서는 3장, 6구, 45자 내외 규칙을 가진 3음보를 가진 정형시이고, 평시조平時調·2에서는 종장에 9자로 되어 있지만, 약간 변용된 형식, 그러니까 구의 개면으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어절에 해당하는 ‘사람이’를 지칭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엇시조는 평시조平時調보다 초, 중장 가운데 어느 한 장이 길어진 것을 말한다. 사설시조는 조선후기에 나왔으며, 평시조의 기본형식인 초, 중, 종장의 형식을 유지하면서 평시조平時調와는 다르게 형식의 파격을 통해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 그리고 사설시조辭說時調는 초, 중장이 제한 없이 길며, 종장도 길어진 시조, 내용 면에서 솔직함, 대단함, 해학성이 특징이며, 일상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주로 다루었다. 표면 면에서는 실생활 소재로 비유하고 상징을 통해 감정을 솔직하게 그려내는 점이다. 연시조聯詩調는 두 개 이상의 평시조가 하나의 제목으로 엮어져 있는 시조, 즉 두 수 이상의 시조, 각 수의 운율은 평시조에 준하고, 평시조를 연속적으로 늘어놓은 것인데 최초의 연시조로 맹사성, 이황, 이이의 시가 여기에 속한다.
  음의 장단을 운율의 기초로 하는 고전 운문에서는 2음절 이상으로 된 장음절과 단음절의 묶음을 음보라고 하고, 단음절은 약음절, 장음절은 강음절이라고 한다. 요즈음의 3행시나 4행시에서 나타나는 특이한 점은 정형시의 구조를 조금 변용하고 음보나 율격도 정형시보다는 좀 더 자유롭게 쓴다는 것이다. 율격律格은 고저, 장단, 강약을 규칙적으로 반복함으로써 리듬이 형성되는 것이다.


살어리 살어리 랏다
청산靑山에 살어리 랏다
멀위랑   래랑 먹고
청산靑山에 살어리 랏다
얄리 얄리 얄라성 얄라리 얄라


우러라 우러라 새여
자고니러 시름한 새여
널라와 시름한 나도
자고 니러 우니로라
자고 니러 우니로라
얄리 얄리 얄라성 얄라리 얄라


―고려가요 「청산별곡」의 일부


  위의 예로 청산별곡은 3·3·2조의 음수율을 보인다. 우리말은 체언이나 용언 뒤에 어미가 붙어 한 어절이 대개 3음절이나 4음절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주로 3·4음보의 율격이 많은데, 3음보는 우리의 미의식과 연결된 고유의 리듬이고 4음보는 중국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시조에 주로 쓰였다.
  대표적인 3음보 율격을 가지고 쓰인 고려가요 등을 봐도 알 수 있듯 3음보의 율격을 가진 시들을 대체로 서민계층의 그것을 표현하는데 쓰였다. 고전시가에 쓰이던 이러한 3음보, 4음보의 음보율은 현대시에도 다양하게 변용되어 쓰이게 된다.
  그리고 우리 시의 운율을 구성하는 것으로는 크게 ‘음수율’과 음보율‘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먼저 음수율이란 글자수가 규칙적으로 배열되면서 형성되는 리듬이다. 이는 고려 속요, 경기체가景幾體歌, 고려중기에 발생하여 조선 초기까지 성행했던 시가時調, 가사歌辭, 민요民謠 등의 고전시가나 현대시의 운율 연구에서 지배적 체언과 용언에 조사나 어미가 붙어서 한 어절이 대개 3·3조 3·4조 4·4조, 3·3·2조 3·3·3조 3·3·4조로 나뉜다.
  또 개화기 이후 일본에서 도입되었다는 7·5조 역시 7은 3·4, 5는 2·3등으로 가를 수 있기 때문에 전통 음수율은 변형에 지나지 않아 한국 현대시에서 정착될 수 있었다. 이러한 음수율은 특히 정형시에 잘 나타나 있다.


이 몸이 죽고죽어 일백번 고쳐죽어
백골이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이시랴


―정몽주 「단심가」


  단심가는 3·4조 율격을 형성하고 있다. 청산별곡 고려 속요 3·3·2조, 그러나 이런 음절 계산으로 장르의 특징이나 미적 가치를 충분히 분석할 수 없다.
  우리 고유의 시가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음절수에 의한 리듬이다. 이러한 율격은 음절수와 더불어 어떤 형태의 운율적 자질이 규칙화된 리듬으로 고저율과 강약률 장단율으로 세분화 된다.
  시의 운율은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만족시키는 동일한 과정을 되풀이 한다. 하나의 운율은 그 자체로서는 뚜렷한 의식의 대상이 되기에는 미약하지만, 그것이 계속해서 되풀이 될 때에는 그 축적된 힘으로 상당히 큰 심리적 효과를 빚어낸다. 독자에게 짝 맞춤 조화감의 효과를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짝 맞춤이란 반복, 혹은 대칭으로 두 번 이상 되풀이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속성이고, 조화감은 질서의식, 즉 심리적 기대가 충족되었을 때 얻어지는 안정감을 말한다. 사대부 계층이 즐겨 쓰던 4음보는 인위적, 객관적, 장중한 느낌이 들고, 낭송하기에 적합하여서 충절을 노래하거나 힘을 과시하거나 자연을 노래하는 시조에 많이 나타난다. 이와는 반대로 서민계층에서 즐겨 쓰던 3음보는 자연적, 서정적, 풍자, 경쾌한 느낌이 들며, 일상적인 소제, 주관적인 감정을 표현하여 노래로 발전한 것임을 알 수가 있다.
  농경사회의 일상이라는 것은 일이었고, 놀이와 노래도 일 자체였기 때문에 호미 씻기와 농악, 만두레(품앗이)와 두레삼(논농사)으로서 모심기부터 시작해서 타작할 때까지 하며, 밭농사일 경우에는 씨뿌리기에서부터 김매고 수확할 때까지 이어진다. 하루 일이 끝나면 동네 사람들이 넓은 마당에 모여 농악의 반주로 노래를 부르고, 춤도 추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우리의 세시풍속, 토테미즘, 우리의 토속적 민속성과 어우러진 일에서 자연스럽게 운율을 찾을 수 있다.
  서민계층으로 내려오면서 일과 놀이가 하나가 되고, 운율적인 요소가 포함된 근, 현대의 시에서 음보와 운율이 잘 나타나는 시는 대표적으로 김소월 시와 미당 시에서 볼 수 있고, 토속적 민속성은 김소월, 백석 시에서 볼 수 있다. 한국 근대시에서 김소월 시의 핵심은 리듬과 음율에 있고, 또한 모국어에 대한 천부적 자질을 바탕으로 형성된 시적 리듬과 음율이다. 김소월 시의 리듬은 과거와 현재, 안과 밖이라는 이분법적 제 계기들이 교차하는 중심 지점으로 볼 수 있다. 민요조 역시 그와 같은 맥락에서 시행된 무의식적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는 새로운 리듬으로 당시 조선인 독자 대중을 충격하거나 계몽하기보다 그들에게 가장 익숙한 리듬 위에 새로운 리듬을 세우려고 했을 것이다.
「산유화」의 3음보 리듬 혹은 3·4/3·3/4·4조 리듬의 분할 구성은 그 결과로 나온 것이 틀림없다. 결국 소월은 한국문화의 자연 혹은 토속문화를 재현하거나 거리로 회귀한 것이 아니라, 토속문화 속으로 들어갔다가 토속문화를 통째로 들고 근대 쪽으로 나아갔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산에서 우는 작은 새요
꽃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산에는 꽃 지네
꽃이 지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지네


―「산유화」 전문


  김소월 시에서 나타나는 민족, 민중, 민간의 민속성을 수용한 전통의 인식거점은 역사의식을 수반할 뿐 아니라 민족의 신화성을 포괄하고 있다. 신화의 종류는 건국신화(단군신화, 박혁거세신화, 수로왕신화, 주몽신화), 전승방식에 따라서 구전신화, 문헌신화, 구전신화는 입으로 구전되어 오는 신화, 문헌신화는 ‘삼국사기’, ‘삼국유사’, ‘제왕운기’, ‘고려사’ 등 다수가 있다.
  전통은 특정한 공동체의 문화가 한 질서체계를 동시에 가지는 것이며, 시간성과 초시간성을 동시에 감각할 수 있는 의식의 연속체계이다. 이때 연속성은 민족의 추상적인 원형을 구체적으로 재현시키고, 미래까지 계승시키고 복원시키는 데 그 의미가 있다. 전통적 세계관은 서민적, 민중적 토속문화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고, 또한 우리 시에서 나타나는 음율과 음보를 찾을 수 있다.


正月대보름날 달마지,
달마지 달마즁을, 가쟈고!
새라새옷은 가라닙고도
가슴엔 묵은설움 그대로,
달마지 달마즁을, 가쟈고!
달마중가자고 니웃집들!
山우헤水面에 달소슬 때!
도라들가자고, 니웃집들!
모작별삼성이 떠러질 때!
달마지 달마중을 가자고!
다니든옛동무 무덤가에
正月대보름날 달마지!


―「달마지」 전문


아버지는 댓잎이요
어너미는 연잎이요
댓잎연잎 죽었지만
이내형제 어이살고
우리형제 죽거들랑
앞산에다 묻지말고
고개고개 넘어넘어
가지밭에 묻으소서
가지두개 열거들랑
우리형제 난줄아오


  위의 민요는 단순 2마디 4·4조의 음율을 가지고 있으며, 그 내용은 양친을 여윈 고아 형제의 눈물겨운 장면을 그리고 있다. 삶과 죽음의 법칙은 자연의 질서 위에 있는 것으로, 인간의 능력으로는 거스를 수 없는 것이다. 탄생과 혈육에 대한 의미는 ‘연잎/댓잎/가지/앞산/뒷산/고개’로 상징화되어 있고, 특히 나란히 열린 가지는 두 어린 소녀 소년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하다. 삶과 생명의 상징인 열매가 떨어지듯 죽어간 남매의 생명에 대한 안타까움을 짧은 음율로 형상화함으로써 소박한 사람들의 정서와 슬픔이 바탕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접동
접동
아우래비 접동


진두강 가람 가에 살던 누나는
진두강 앞 마을에
와서 웁니다.


―「접동새」 앞부분.


박넝쿨이 에헤이요 벋을 적만 같아선
온세상을 얼사쿠나 다 뒤덮는 것 같더니
하드니만 에헤이요 에헤야
초가집 삼간을 못 덮었네, 에에이요 못 덮었네.


복숭아꽃이 에헤이요 피일 적만 같아선
봄동산을 얼사쿠나 도맡아 놀 것 같더니
하드니만 에헤이요 에헤야
나비 한 마리도 못 붙잡데, 에헤이요 못 붙잡데.


박넝쿨이 에헤이요 벋을 적만 같아선
가을 올 줄을 얼사쿠나 아는 이가 적드니
얼사쿠나 에헤이요 하룻밤 서리에, 에헤요
잎도 줄기도 노그라붙고 둥근 박만 달렸네.


  김소월 시의 특징은 앞의 두 작품에서도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전래된 설화에 민요적 율격으로 ㅓㅗㅕ색을 가한 ‘접동새’라든지, 4·4조 타령으로 흥겨운 가락을 뽑아 올린 ‘박넝쿨 타령’은 한국인의 심정 속에 내재해 있는 민족혼을 공감하게 한다.
  음절수는 가변적으로 쓰이지만, 음보수는 고정적으로 쓰이는 특징을 보이고 있고, 고전시가에서도 나타나는 방식이다. 음보는 운문의 최소 운율을 측정하는 단위이며, 음절이 모인 것이고, 또는 행을 이루는 단위이며, 소리에 보폭이다. 시를 읽을 때 쉬는 공간이며, 즉, 대개 어절로 표상된 시간적 단위로 정의된다.

  한시의 보격은 그 시의 운율을 분석할 때 나타나는 우세한 음보의 형태 수에 따라 결정된다. 우리말은 중국의 사성과 같은 소리의 높낮이 구분이 없고, 소리의 강약도 미비하기 때문에 음의 고저나 강약에 따른 운율이 실현되기는 힘들다. 또한 장단에 대해서도 우리가 신경을 써서 말을 하지는 않는다.
  이처럼 고저율, 강약율, 장단율이 모두 적용되지 않는 한국시의 율격은 음수율이라는 것이 일반화 되어 있는 통념으로, 음수율이란 음절의 수를 규칙적으로 배열해 운율을   만들어내는 율격의 한 종류이다.
  그래서 50년대 말부터 ‘음절’ 수에 대한 리듬인 음수율보다 박자 개념에 의한 리듬인 음보율로 한시의 율격을 분석해야 한다는 주장이 끊임없이 나온다. 임보 선생님께서 아라포럼 강의 중 음보와 운율, 그리고 정형시의 틀이 깨진 이유 중 하나로 자유시가 등장을 예로 들었다.


  우리나라는 향가로부터 정형시가 출발하였고, 정형시는 5언절구니, 7언절구니 이렇게 정해진 틀이 있고, 서양의 전통적인 정형시도 14행시다 3·3·4·4라 해서 14행으로 정형된 틀을 지니고 있어요. 소네트, 소곡(小曲) 14행시라고 번역, 13세기 이탈리아의 민요에서 파생, 단테나, 페트라리카의 의하여 완성하였고, 르네상스 시대에 유럽 전역으로 퍼졌다. 그리고 영국 형식의 소네트는 4·4·4·2행으로 되며 이것을 세익스피어 형식이라고 부른다. 우리의 정형시 시조도 틀이 있었고, 평시조가 3장 6구 12조, 초장, 중장, 종장, 거기에 맞도록 써야만 시가 됐단 말이죠. 시가 과거 정형시일 때 시와 시 아닌 글의 한계가 아주 분명했지만, 현대 시는 모호한 시가 대부분이지요. 초현실주의의 자동기술법이나 러시아 형식주의 문학의 낯설게 하기나 김춘수의 무의미 시 등은 잠재의식 속에 있는 즉 그러니까 무의식 속의 있는 것, 그 동안 문화 이분법적인 구조로 어느 한쪽이 좋고 어느 한쪽이 나쁘다 하고 규정을 해놨는데, 요게 잘못됐단 말이죠, 그러니까 전통적인 것은 뭔가 잘못됐다, 전통적인 것을 뒤엎어야 한다는 방향으로 세상의 질서를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는 풍조가 바뀐 것 같아요.


  라고 말씀 하셨듯이 전통적인 것에도 있지만 잘못된 것은 버리고 좋은 것은 더 발전시켜서 전통과 같이 가는 미래가 우리 시의 전통을 살리면 자연히 운율도 살아난다. 한시의 보격은 그 시의 운율을 분석할 때 나타나는 우세한 음보의 형태 수에 따라 결정된다. 우리말은 중국의 사성과 같은 소리의 높낮이 구분이 없고, 소리의 강약도 미비하기 때문에 음의 고저나 강약에 따른 운율이 실현되기는 힘들다. 또한 장단에 대해서도 우리가 신경을 써서 말을 하지는 않는다.
  이처럼 고저율, 강약율, 장단율이 모두 적용되지 않는 한국시의 율격은 음수율이라는 것이 일반화 되어 있는 통념으로, 음수율이란 음절의 수를 규칙적으로 배열해 운율을 만들어 내는 율격의 한 종류이다. 그러나 우리시의 이러한 음수율은 그 음절 배열의 규칙성이 엄격하지 않고 느슨해서 많은 가변성을 지니고 있다.
  현대시에서 우리의 리듬 연구는 음수율에서 음보율로 바뀌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 시에 적용되는 음보율은 영시의 강약율과 다르며 오히려 장단율에 가까운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는 우리 음운의 특수 자질, 운율적 자질로서 ‘초분절음’이라고 한다.
  음운의 운율적 자질에는 오음의 길이와 같은 음장을 비롯하여, 소리의 높낮이를 나타내는 고저악센트, 강약악센트가 있다. 그러나 우리 음운의 특수 자질상의 특성 때문에 음수율보다 음보율이 더 중시되고 있다고 한다.
  음보율이란 결과적으로 음보의 수에 의해서 결정되는 리듬을 뜻한다. 즉 통사적 휴지에 의해 구분된 율격 단위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시가에서도 3음절 내지 4음절이 리듬의 기본 단위가 된 것이다. 그러므로 음보는 대개 어절로 단위화 된 시간적 단위인 것이다. 음보는 운문의 최소 운율을 측정하는 단위이며, 음절이 모인 것이고, 또는 행을 이루는 단위이며, 소리의 보폭이다.  시를 읽을 때 쉬는 공간이며, 즉, 대개 어절로 표상된 시간적 단위로 정의할 수 있다.
  현대시에서 음보가 없어진 이유는 서구와 일본 문화의 영향으로 시작된 자유시에서 찾을 수 있고, 또 하나는 전통문화와의 단절이 큰 요인이기도 하다. 거의 모든 시인들이 외래문화에 젖어 우리의 전통문화를 무시하고 시를 쓸 때도 우리의 전통문화를 연구하고 우리의 토속문화를 시에 접목한 대표적인 시인인 김소월, 전에는 「진달래 꽃」을 읽을 때 쉽고 편안한 시구나, 라고 그저 단순하게 생각을 했는데, 이번에 우리시의 음보를 찾아서를 공부한 다음부터는 김소월 시인은 대단한 시인이구나,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것, 우리의 전통문화, 토속문화, 민족성, 민속성에 대해서 공부하고 연구를 하여 시에 우리의 정서를 담았구나. 지금까지는 시는 독백형식의 문학이니까 내가 생각하는 방식대로 쓰면 시구나, 라는 못난 생각에 젖어 있던 얼굴이 뜨거워진다.
  정체불분명한 자유시가 성행하는 요즈음 한시나 고전시가처럼 정형시를 쓰는 것은 무리가 있지만, 그래도 우리의 고유한 문화와 민족성, 토속성, 그리고 정형시의 좋은 점을 계승발전 시키면서 시를 쓴다면 현대시에서도 우리민족의 혼과 문화, 우리의 정서가 담긴 정형시, 그러니까 음보가 강, 약의 보폭으로 시의 행마다 힘차게 걸어가면 운율이 자연스럽게 살아나서 우리의 소중한 문화를 계승, 발전시키는 것이 되고, 또한 우리 것이 세계적인 것이 되는 것이라고 믿어마지 않는다.    





 1)한국의 옛시조, 이상보 엮음, 범우사. 

2)한국방송통신대학교출반부, 고전시가론. 

3)우리의 세시풍속과 전래놀이, 이광렬, 지음

4)김소월 시의 리듬 연구, 장철환,

5)정명교, 「한국 현대시에서 서정성의 확대가 일어나기까지, 한국시학회 학술대회 발표문, 2006, 12쪽

6)김소월, 백석 시의 민속성, 조연향, 푸른사상,

7)김소월시전집, 342쪽.

8)임동권, 민요와 향토, 한국민요 연구, 이우출판사, 1978, 263쪽 재인용.

9)김소월 시집, 범우사.

10)한국 현대시의 정체성을 생각하며, 임보, 아라포럼, 제16회





*천선자 2010년 《리토피아》로 등단. 시집 『도시의 원숭이』, 『파놉티콘』. 리토피아문학상 수상. 전국계간지작품상 수상. 막비시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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