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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호/특집 오늘의시인/이상호/동해행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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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부관리자
댓글 0건 조회 684회 작성일 19-07-08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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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호/특집 오늘의시인/이상호/동해행 외 1편


동해행 외 1편


이상호



날마다 죄를 하나씩 보태면서 아이들은
조금씩 눈이 밝은 어른이 되어갑니다.
눈이 밝은 어른들은
이제 무엇이든 환히 들여다보며
어두운 밤도 어둡지 않게 걸어갑니다.
그들이 지나간 뒤편으로는
또 한 장의 두꺼운 어둠이 내려 쌓이고
뒤따라오던 제 새끼들은
한낮에도 길을 잃는 것이 보입니다.
이런 날에는
까까머리 여남은 살 적 봄날에
흐린 눈 비비며 처음 보았던
묵호 앞바다,
그 비릿한 냄새가 그리워
나는 마음에 징을 울리며
동해로 떠나갑니다.
밤마다 내 안에서 길게 울부짖는
짐승도 함께 데리고 갑니다.





휘발성



  1.
  중국 여행길에 중국명주라는 술 한 병을 사왔다. 혼자 마시기 아까워 아끼고 아끼다가 어느 날 드디어 개봉하려는데 술병이 너무 가볍다. 귀에 가까이 대고 살살 흔들어보자 거의 빈 병이라는 느낌. 이리저리 병을 돌려가며 자세히 살펴보니 보일 듯 말 듯 실금이 갔다. 남은 술을 따르니 겨우 작은 잔 하나도 다 못 채운다. 그동안 실금 사이로 살금살금 알코올이 달아났던 것이다.
 
2.
자궁을 빠져나오느라 내 몸에도 실금이 생겼는지
실금 사이로 조금씩 증발하는 알코올처럼
슬금슬금 빠져나가는
목숨
휘발성이 너무 강해
보이지 않고 냄새도 나지 않는,
미리 따라볼 수도 없고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가 없어 더 궁금한





<신작시>


눈부처 외 2편



눈에 넣어도 안 아프다는 말
뻥튀기 같아 믿지 않았는데…


어느 날 손자의 눈동자에서 나를 보았다.


녀석은 천연덕스레 장난감 놀이를 할 뿐

눈이 아프지는 않은 모양인데…


가끔 껌뻑거리며 할아비를 넣었다 뺐다 하였다
나도 자연스레 녀석의 눈 속에 들어갔다 나왔다
덩달아 놀아났다


한참


망할 놈의 세상을 까맣게 잊어버린 채
오랜만에 시간이 내 편인 것만 같아서
애기처럼 잇몸을 드러내고 깔깔 웃었다.





이명



어치인가 귀뚜리인가
내 귀에 들어앉아 울음인지 노래인지 틀어대니
가을의 깊이가 맑은 수심처럼 훤히 들여다보인다.


여름새들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고
귀 밖에서 들려오던 노래 소리도 희미해
창 닫고 귀 닫고 점점 안으로 돌아든다.


교회당 종소리는 소음으로 몰려 멎은 지 오래
돌아보면 돌이킬 수 없는 것들만 줄줄이 줄 서
눈물이 그렁그렁 앞길을 겹겹이 겹쳐 놓는다.


여름새들이 물고 날던 불꽃은 언제 시들었는지
서리 묻은 달빛 소리만 귀속에 쨍쨍 빛나는
이명의 저녁나절


붉은 태양의 거리에서 돌아와
식구들과 따뜻한 저녁을 든다.
새 없이 새소리만 낭자한 시간





잘 모르겠네



1.
호랑이 우리에 붙은 이름표에
고양이과라고 적혀 있다
(고양이 핏줄이란다).


마을로 내려간 고양이는 그냥 고양이
산을 지킨 고양이는 호랑이가 되었지.


마을 사람에게 안겨 아양 떨며 먹이를 얻은 고양이
산에 남아 크고 힘세진 호랑이가 부러울까 아닐까?


2.
해당화나무에 붙은 이름표에
장미과라고 적혀 있다
(뿌리는 장미란다).


마을에서 자라는 장미는 그냥 장미
바다를 만난 장미는 해당화 되었네.
 
마을에서 고이고이 길러져 그냥 그대로 요염한 장미는
바닷가로 나가서 온화해진 해당화가 부러울까 아닐까?





<시론>


시랍시고


도시마다 만연하는 도시시
말을 남발하여 노래답지 않은
시를 괴롭히는 시를 시라고 하면
시는 너무 슬퍼 눈물도 나오지 않겠다.
시를 갖고 장난치는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
시를 죽여 장례식장으로 보내는 시인과 한통속인
사람의 마음도 마음이기는 하지만 그 마음 나도 몰라
시인 줄 알고 따라가다 시가 아니라는 비감만 철철 넘쳐
사시사철 주구장천 난폭하게 시에 발만 걸고 정 주지 않는 시
그것도 시랍시고 버젓이 내어 거는 사람의 마음도 이해해야 한다고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다짐하다가 밤만 꼴딱 새고 눈이 붉어져
눈에서 피가 흐르는 아침이다.
그래도 해 뜨고 달 지는
무심한 일월이여!
시 가지고 놀다
시를 지우는
꼴이 되는
시가지의
거룩한
밤이여
가라
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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