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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호/신작특선/황영선/등꽃에 들다 외 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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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부관리자
댓글 0건 조회 592회 작성일 19-07-08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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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호/신작특선/황영선/등꽃에 들다 외 4편


등꽃에 들다 외 4편


황영선



운문사 담벼락 아래
시절을 피운 등꽃들이 처음 당신을 맞을 때처럼
설레이고 있어요
얼핏 얼핏 보이는 물결같은 당신의 속내가 궁금해
등꽃이 되길 원했지요
상냥한 당신의 뺨 위로 후두둑 떨어지는 빗방울을 기억하고
뭔지도 모를 비밀을 알아내려
심장의 알레그로에 귀를 기울이고 새로운 나를 만나요
이 투명한 공기 속에서 초롱초롱한 당신을 내 안으로 들이고서야
혼자서는 피울 수 없다는 걸 알았지요
당신이 내게 취하고
내가 당신에게 취하여 돌아가던 길을 멈추고
등꽃에 들라던 사람과 운문사 담벼락 아래 서서
온갖 나의 물음에 답하여준 당신을 즐거이 피워 올립니다
그 사람을 사랑해도 좋다는 등꽃의 전언을 듣습니다





방향



어떤 곳을 향해 달려 왔는지
딱 여기다 싶을 때
그 곳, 방향을 놓지 않은
새들의 날개 위에 당신의 옛 기억을
얹어 놓을 때
당신은 그 곳에서 그 어떤 곳도
향하지 않았지요
그 어떤 고독에도 그치질 않은
바람이 되었지요
십년보다 더 먼 당신은 늘 한 곳에
머물러 있겠지만
나는 때로 내가 걸어온 길의 길이를
알고 싶을 때가 있었지요
총총한 여름 밤의 별자리와
줄곧 내리는 안개비의 행적까지
이제 슬슬 밝은 풍경 쪽으로 향하는
235미리 킬힐의 방향을 나는 점점
믿고 싶어졌지요





몸의 숲이 지다



그리도 단단했던 당신의 숲이
작은 철제 침대 위에 힘없이 위대하십니다
그 옛날 쩡쩡하던 숲에 드시라고
앙앙 큰 울음을 울어봐도 침묵의 눈동자엔
껌벅껌벅 힘없는 메아리만 돌아 옵니다
맨 처음 창창한 숲이던 때를 기억하시나요
움푹 패인 눈언저리에
빛 잃은 잎이 지고 있습니다
마음 같아선 당장 노인요양병원 302호
철제 침대 위에 쾅쾅 푸은 나무를 심고 싶습니다
시절 간 데 없는 당신의 깡마른 육체에게 자꾸만 어이어이 하고 푸른 숲을 묻습니다
말 배우는 아이처럼 서러운 대답만
뱉어 내시는 아버지 내 아버지





안부를 묻는다



아득한 듯
아득하지 않은 나를 들여다 본다
그리움도 아픔도 세월도 그냥 왔다 갔구나
곱게 저무는 것이 제 할 일인 양
소리없이 지는 꽃잎을 바라보며
세월 앞에 자꾸만 외로워지는
나를 다독인다
더는 단단할 수 없는 몸의 반응을
기꺼이 대견하다고 쓸어주면서
잔물결 같은 사람 하나 만나
마음 누이고 싶은 봄밤이라고 흐드러진 꽃 보며
흔들린 나에게 꽃 같은
안부를 묻는다





여자를 펼치다



마법에 걸린 여자는 꿈을 꾸어요
갇혀 있던 성 밖으로 붉은 꽃잎
다리를 놓아요
문득 꽃으로든 향기로든 피우고 싶어요
무심이 쌓여가는 여자는 지금
어떤 살내음 가까운 곳에
훌훌 들고 싶어요
아찔할 만큼 몸 속에 동굴을 내고
한동안의 겨울을 갖게 하고 싶어요
아직 깃털 무성하게 날고 싶은 여자는
달을 품는 꿈을 꾸어요
꽃보다 진한 몸을 열고 달거리 끝난 여자는
우물 같이 깊은 아이를 낳아요
나긋나긋한 꽃잎 개켜 내 속에
넣어 주시던 어머니
내 첫 꽃물에 눈물 동동 띄우셨지요
내리 딸 셋을 낳고도 몰랐던 눈물
예순의 방에서 받습니다





<시작메모>


툭,


찰나에 떨어지는 꽃이거나
마음에 없이 던지는 말이거나
오래 응고 되지 않아 따뜻한 마음 건드리는
짧고 뭉툭한 이 한마디로
나의 봄날은
시 몇 편 짓는 일이다





*황영선 2009년 《문학시대》로 등단. 시집 『살아 있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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