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작품(전체)
19호/신작시/김병심/물때에 돌아온 꽃 외 1편
페이지 정보

본문
19호/신작시/김병심/물때에 돌아온 꽃 외 1편
물때에 돌아온 꽃 외 1편
김병심
나는 반딧불이가 되어 제주바다를 날고 있다
졸면서 별이 되고
등대불이 되면서도 날고 있다
날아다니면서 물속에서 키우던 물풀의 이름이며
양수 속에서 듣던 어머니의 언어를 기억해 본다
기억의 조각난 파편들,
태생에 좀이 슬어 여전히 서울사람의 시늉을 한다
쉰내 나도록 연습하던 뭍의 언어로
서울 기슭에서 살아보려고 태양 한복판에서
떨어뜨리던 어머니의 말씨
섬것, 말이나 키우던 고향에서 생겨난 것들
섬것은 손가락 끝에나 걸리던 서울살이니까, 나는
꿈속에선
여전히 복수에 물이 차올라 잠기던 어머니의 무덤 위를 날고 있다
어머니의 어머니가 잠든 묘지 위를 날고 있다
돌아가 숨이 멎을 곳 위에서 모어가 표류하는걸 보고만 있다
상처투성이의 모어가 비뚤어진 입속에서
마씸
고르라
도르라
말꼬리에 붙어 전류가 흐르고
빛이 되어 몸에 불이 번지면
수면 위로만 겉돌던, 나는
불덩이가 되어 떨어진, 나는
어머니의 무덤 사이를 날고 있다
칼선다리 위에서 춤을 추고 있다
서울말을 하고 청회색 가면을 쓰고 있던, 나는
아무래도
소금기 묻은 피는 씻을 수 없겠다
몸속의 나침판이 가리키는 섬을 향해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숨이 붉다
몸이 칼인 여자가 되려면
뭍에 살고 싶은 꿈은 향랑각시에게나 주는거라
글보다 바다를 먼저 배워버린
쉰소리는 연습을 해도 지느러미 대신 두 다리로 걷는
육지것이 될 수 없는 거라
수진궁터 같은 바다 속에서
열손가락 깍지를 끼던 논개처럼 살아야
땅 숨도 쉴 수 있는 거라
뇌선을 꽉 물어 녹아버린 이
물 힘으로 몸을 푸는 여자가 되려면
서천꽃밭을 찾아내던 족쉐눈과 비창을 지닌 몸이란 걸 잊어선 안 되는 거라
사람을 살리는 칼잡이는 바다 속에서 여자가 되는 거라
끝까지 남아있는 숨으로 바다를 이고 가는 거라
욕심 부리는 순간 물거품이 되어버리는 거라
뭍의 여자가 좋아보여도
바다가 허락한 여자로 사는 거라
칼은 버리지 말고 벼려야 잘 든다
녹이 피면 칼도 여자도 물거품인거라
바다가 숨을 살리지만 숨이 무덤인 걸 잊지 마라
시름을 잊게 해주는 바다만 믿고 사는 거라
불덩이 몸은 칼잡이를 만날 때 검이 되고
검은 바다를 만날 때 숨이 짠거다
*김병심1997년 《자유문학》으로 등단. 시집 『더이상 처녀는 없다』,『울내에게』,『바람곶,고향』,『신,탐라순력도』, 『근친주의, 나비학파』, 『울기 좋은 방』, 『몬스터 싸롱』. 산문집 『돌아와요, 당신이니까』. 동화집 『바다별, 이어도』, 『배또롱 공주』.
- 이전글19호/신작시/태동철/심해에 솟은 담석 외 1편 19.07.07
- 다음글19호/신작시/강경애/거미 외 1편 19.07.07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