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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호/신작시/이재성/나도 나타샤를 그리워 한다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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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부관리자
댓글 0건 조회 685회 작성일 19-07-07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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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호/신작시/이재성/나도 나타샤를 그리워 한다 외 1편


나도 나타샤를 그리워 한다 외 1편


이재성



1987년산 조니 워커 블루 한 병 들고
 눈 내리는 갑판 위에 나는 누굴 기다리나


 이러한 날 모든 조업 제켜두고
 마시지 않으면 깨어날 수 없는 백색 세상


 서로의 체온 의지할 길 없어
 선수 아래 앵커박스에 잠드는 이국의 선원들


 조타를 놓고 파도의 롤링에 맞춰
 삐걱삐걱거리는 목조침대에서 일어나


 바다 한복판에도 지금 눈이 내리고
 가난한 나라는 그의 죄가 아니다


 두 손 모아 경건한 기도를 올린다
 펑펑 내리는 함박꽃송이가 바다에 닿기 전에


 나도 백석처럼 나타샤를 그리워할 수 있을까
 흰 당나귀울음 들리지 않아도
 눈앞에서 부서지는 파도소리


 하늘에서 흰 나타샤가 오고 있으니
 바다에선 죄와 벌 없이
 순수한 기다림만 가득하다






바다의 침묵



해가 지고 밤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기관 엔진 박동 수, 하나 둘 세어본다
700W 집어등 불빛, 감은 눈꺼풀 뜨자 별 천지
온몸의 감각 동원해 14도 수온 찾아 며칠을 헤맸다
드디어 만난다, 무색투명 지느러미 가진 은청빛 물고기를
지금 바다는 꽁치들의 천국, 그들의 언어를 해석하기엔
낡아버린 단어들 물거품처럼 머릿속을 뒤집어 놓는다, 아직
살려달라는 비명으로 들리기에 방한모로 두 귀 막는다
뻐끔대는 대가리가 그물과 그물 코 사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시뻘건 핏물 흘리는 눈동자에 절은 수염을 가진 눈부처 보인다
해수면 뛰쳐나와서라도 숨 쉬고픈 열망, 꽁치들의 마지막 유언이 들린다
아래턱이 위턱보다 긴 날선 꽁치 앞에 두고 바다는 변한다
천국이던 바다 순식간 전쟁터로 바뀐다, 고무장갑 위 붉은 피가 튄다
조업시간 지나 해 떠도 눈감지 못하는 선원들에게 지금 바다는 지옥이다
절망이란 이름 지옥의 문턱, 바다사람이 쓴 경구를 읽는다
척삭동물문 경골어류강 동갈치목 꽁치과 셀 수 없는 꽁치들
계속해서 청색 점 박힌 투명 비늘이 눈물에 들러붙는다
바다의 침묵 앞에 무수히 많은 꽁치들이 계속 말을 걸어오지만
인도네시아 선원 라이유의 가슴 속 기도만이 유일하게 빛난다
숨 쉴 틈 없이 뻐끔대는 꽁치들의 입술이 온 데크에 떠다닌다
그들의 묵언 담긴 어상자를 급속냉동창고에 얼린다
순간 조용한 진눈깨비 바다에 날린다





*이재성 2011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 『누군가 스물다섯 살의 바다를 묻는다면』. 2012년 제6회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 무크 《고래와 문학》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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