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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호/신작시/권월자/화장지 외 1편

화장지 외 1편

권월자

경계선
금 한가운데 소복 입고 서 있다

명품 바이올린의 앞판
오물을 씻어내는 휴지
가문비나무

숲에서 날아온 새
전깃줄에 앉아 바라본다
굴뚝 잿빛 연기
속살이 가루가 되는 시간
콧물 닦아주는 친구 하나쯤 있으면 안되겠나

휴지는
얼굴을 간질이던 바람을 느끼고
숲의 서늘한 공기를 기억하는 한
나무다

 
버리고 떠나는 사람들
버려지기 두려운

펜

전자펜이 걷는다
쑥부쟁이가 스치는 바람에 고개 숙이듯
작은 발로 그림을 그린다
왔던 길을 지우고는 다시  
얼음판의 발레리나를 꿈꾼다 

만년필이 섰다
대롱에 담긴 잉크, 코발트블루
혈관을 타고 내려온 한 방울 싸인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듯이
응축된 힘을 모은다

등을 곧게 펴고 시선을 들어
마음으로 쓰는 나의 역사

*권월자 2015년 《리토피아》로 등단. 막바시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