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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호/신작시/이형심/허공의 진술법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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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호/신작시/이형심/허공의 진술법 외 1편
허공의 진술법 외 1편
―넝쿨장미에 대한
이형심
열정을 풀었다 세웠다 하늘에 닿으려는 몸짓으로
붉은 혀끝에 흙먼지 묻은 채
꽃 몸살 기억을 웃음으로 바꾼다
심장을 드러낸 몸을 풀어 오르며
쏟아지는 달빛 그늘의 기억을 불러낸다
스스럼없이 내어준 담장의 등줄기를 타고
가파른 계곡을 미끄러져 내린다
밤낮 없이 펼치는 공연
붉고 화려하게 자신의 계절을 뜨겁게 장식한다
골목길을 내려오다가
어느새 지붕으로 날아오르는 날렵함으로
슬쩍 담을 넘어 눈인사를 한다
마치 축포처럼 터트리는 소용들이 치는 허공에
겹겹의 잎들이 동심원을 그리면
사람들의 시선은 아무 저항 없이 빠져든다
어느 은하수에서 와 꽃으로 피었는지
꽃의 입술에 봉인해 놓은 말들
누가 허공의 저 문을 열 수 있을까
직립의 방향
휑하니 바람 길에
물비늘 같은 시간의 줄기들이
남아있는 온기를 쏟아 놓는다
음지에서 하늘 수위까지 번지는 피톤치드 향기가
몸을 둥글게 말아 올린다
바람의 간지러움으로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편백나무 숲은
삐죽삐죽한 느낌표로
중심에서 뿌리까지 직립의 방향이다
키 낮은 식물들이 자취를 감춘 공간에
햇빛을 들이고 바람을 들인다
직립의 방향이 강한 듯 고요하다
햇살이 분주하게 길을 내는 동안
나무들이 새들을 날려 보내고
바람은 깃털 울음을 낳는다
갸름한 햇살이 걸린 인적 드문 산허리에
허공의 길이 늘어난다
*이형심 2012년 《문학세계》로 등단. 여수 문인협회 회원, 여수 화요문학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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