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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호/아라포럼/정령/시 속에 리듬을, 리듬 속에 가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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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부관리자
댓글 0건 조회 884회 작성일 19-07-07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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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호/아라포럼/정령/시 속에 리듬을, 리듬 속에 가사를


시 속에 리듬을, 리듬 속에 가사를


발제자:정령



  이번 호 부터는 《아라문학》에서 시의 정형성이나 율격, 음보에 대하여 전격적으로 조사하기로 하였다. 이에 틀을 제대로 갖춘 3행시나 4행시를 써보자는 취지에서 그 첫 번째로 시의 정형성을 중심으로 조사하였다.
  사람들은 노래를 들으면 박자에 맞추어 춤을 추기도 하고  흥얼거리며 따라 부르기도 한다. 설령 모르는 노래일지라도 리듬에 몸을 맡기고 몸이 하는 대로 따라가며 머리를 흔들고 손뼉을 치며 박자를 맞추기도 하고 리듬에 맞추어 우울해 해지기도 하고 기뻐하기도 하며, 울고 웃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노래들이 리듬을 가지고 감정을 제대로 전달하려면 가사가 있어야 하고 가사는 말의 기능이 제대로 전달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한다.
  그러한 기능적인 부분들이 글을 쓸 때 어떠한 틀에 맞추어 리듬을 갖게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정형적인 틀을 가진 것들이 무엇인지 우리가 알고 있는 정형시의 정형적인 틀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한다.
  우선 시의 정형적인 틀을 가진 대표적인 시가 시조라고는 하나 시조의 정형적인 틀을 말하기 전에, 시의 구성을 시창작론에서 살펴보았다.


  시의 구성이란 소설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뚜렷하고 변별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소설은 이야기, 즉 사건의 순차적 전개가 골격을 이루고 있으므로 당연히 그 줄거리 역시 연속성과 진전의 논리를 갖기 마련이며, 이 때 우리는 사건이 시간적 연속성에 따라 진전되는 논리를 구성이라고 부른다. 이에 비해서 서정시는 일반적으로 이야기를 담고 있지 않는 까닭에 소설과 같은 의미의 구성을 갖추고 있지 않으나, 시 역시 인간의 사고표현의 하나이므로 그 나름의
어떤 논리를 갖게 되는데, 이때 우리는 이처럼 시의 내용-혹은 진술이 전개되는 질서 혹은 논리를 편의상 구성이라 부르고자한다. 또한 인간의 의사전개에 있어서 가장 단순하고 원초적인 형태의 논리로는 잘 알려진 삼단구성이 있다. 이는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가 그의『詩學』에서 완결된 문학작품(비극)이란 ‘시작’과 ‘중간’과 ‘결말’의 세 토막을 지녀야 하며, 이들은 상호 균형 있게 배분되어야 한다고 말했던 것에서 비롯되었다. 다시 말해 모든 논리적인 언어표현은 결국 서론, 본론, 결론의 형식을 지닌다는 인식의 첫 발견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오늘날 여러 가지 변용이 있기는 하나 대체로 변증법(테제, 안티테제, 진테제의 형식), 3단 논법(대전제, 소전제, 결론의 형식), 소크라테스의 대화법 등은 모두 그 원리에 있어서 3단구성에 속한다.
  3단형식이 발전하면 4단 혹은 5단구성이 성립될 수 있으며, 시의 내용이 길고 복잡해지면 희곡이나 소설에서 ‘도입, 갈등, 위기, 절정, 파국’으로 명명된 소위 5단구성이 서사문학과 극문학의 완성된 형식으로 여기지만 시에서도 시상의 전개나 이미지의 발전이 다섯 단계로 발전하지 말라는 법은 없으나 전체적으로 시의 구성은 3단(서론, 본론, 결론) 혹은 4단(기, 승, 전, 결)구성을 가리킨다고 본다.
  우리 전통시가에서 3단구성과 4단구성의 예로 시조와 향가를 들 수 있다.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이처럼 시가 일정한 형식에 맞춰 구성되어져 있는 것이 시의 정형성이라고 한다. 특히 시조가 갖추고 있는 3단구성의 방법은 시가 드러내는 정형적인 틀에 가장 가깝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시도하고 있는 3행시나 4행시는 시조에 가까운 시의 형식을 갖춘 것인지 생각해보아야할 문제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3행시를 쓰면서 시조의 초장 중장 종장의 규칙을 따르기보다는 옛날의 시가처럼 부르기 쉬운 노랫말을 자유롭게 지으려 한 것이 아닐까 하여 정형시에 가까운 시조에 관하여 좀 더 깊이 자료를 통하여 알아보기로 하였다.


  시조는 우리 민족이 만들어낸 정형시다. 시조가 정형시라는 사실은 누구나 아는 일이지만 어째서 정형시인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말한 이가 없어서 막연하게 정형시, 정형시 하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정형시는 일단 소리에 의해 리듬이 구체화되며 여기서 소리란 고저·장단·강약을 의미하는데 이것들이 일정 기준의 틀 안에 규칙화됨으로 인해 리듬을 느끼게 되는 시가 바로 정형시라고 한다.


  시조가 정형시라면 일단 소리에 의한 리듬이 규칙화 되어야 하고 리듬은 음보율에 맞추어 한 장은 4음보로 되어 있고 3장 6구로 되어야 한다고 한다.


  또한 노래로 불리어져 이것을 듣고 쉽게 노랫말이 접근할 수 있게 하는 정서세계가 고시조였다고 한다면 눈으로 읽고 문자화된 의식을 따져서 감상해야만 하는 정서세계가 현대시조라 하겠다. 이것이 대충 현대시조를 쓰고 있는 시인들의 생각이고, 또 그렇게 해야만 고시조와 다르고 시로서의 시조답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라면서 시조는 정형시라는 측면을 놓치면 안 되고, 정형시인 바에는 소리에 의한 리듬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현대시조가 구비전승을 하기 위해 기억과 재현의 장치를 애써 갖출 필요는 없다하더라도 들어서 리듬을 느끼는 한편 듣는 순간에 이해가 가능해지는 작품세계여야만 할 것이라면서 이유는 이것이 정형시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살펴보았듯이 시조는 정형시라는 측면을 놓치면 안 되고, 정형시인 바에는 소리에 의한 리듬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시가 노래로 불리울 수 있으려면 어느 정도는 일정한 구성을 가지고 일정한 규칙에 의하여 문자화된 이것을 듣고 쉽게 접근하여 노랫말이 나올 수 있어야 가능하다고 할 것이다. 잘 불리울 수 있는 리듬감을 가진 노랫말이 나오려면 우리는 모두 정형성을 가진 시를 지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시조를 우리시의 정형적인 틀을 갖춘 시라고 본다고 할 때 정형성은 무엇인지 더 깊이 알아야할 필요성을 가지게 된다. 다음은 시가 가져야 할 노래로서의 율격과 읽는 시로서의 시적 정형성은 어떠한 것인지 알아보았다.
 
  정형성은 근대 초기의 다양한 시 형식미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당대의 중요한 형식 개념으로 등장한 시사적 의미가 큰 개념이다. 이는 시 형식에 대한 다양한 이해와 의식을 보여주는 것으로, 당대의 근대시에 대한 미적 의식을 확인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정형성은 근대 초기 전통시가의 定型과는 구별되는 整形의 의미로, 또는 定形과 같은 새로운 시형의 개념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이 때 격조는 이러한 정형성을 실현하는 구체적인 율격과 형식으로서, 당대의 시적 규정성과도 관련된다고 할 수 있다. 전통 장르에 대한 기존의 경험과 새로운 율문 형식의 등장이 근대 초기의 복잡한 시적 양식을 형성해 나갈 때, 근대문학 초기의 시인과 독자들의 혼란은 오히려 새로운 모색과 가능성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근대 초기의 다양한 양식적 실험이 근대 초기의 복잡한 상황에서 이루어진 양식의 충돌로 본다면, 그것은 새로운 문학을 위한 가능성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근대시 초기의 정형성과 격조에 대한 논의는 근대시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과 형태미적 추구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시의 격조와 정형성은 시를 노래로 만들거나 리듬을 넣어 노래로 부르기가 쉬울 것이다. 그러나 근현대시는 시적 감상이나 서정성을 자유롭게 받아들여 노래로 부르는 가사보다는 읽는 문장으로서의 시적 감상을 택하여 왔다. 그러나 우리는 다시 본래의 시의 가치를 리듬과 최초의 우리시의 원형에 가깝도록 정형성을 지닌 시를 지으려고 시가 가진 본질과 그 나름대로의 가장 원초적인 틀을 가진 것들을 다시금 알아보려고 한다. 그것은 왜냐하면 근대시 초기의 정형성과 격조에 대한 논의는 근대시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과 형태미적 추구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새롭게 3단구성의 시조를 통하여 시적 정형성을 찾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기도 하거니와 우리가 시를 노래로 만들 때 좀 더 가깝게 쉬운 방법으로 지을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따라서 시조에 대한 자료를 좀 더 살펴보기로 하였다. 왜냐하면 시조가 가지는 3장의 논리는 그 특수성 때문에 다른 어느 나라에서도 보기드믄 시의 형식을 민족문학의 근본이며 고유한 시 형식을 나타내기 때문이라는 논리적인 설명을 다음 자료에서 살펴보고 시조가 가진 운율적 표현을 예로 함께 들어 살펴 보았다.  


  예로부터 많은 시인과 학자들이 시(시조)의 본질을 해명하고 나름대로 정의하고 있으나 “시의 정의의 역사는 오류의 역사”라고 한 T·S 엘리어트의 말과 같이 완전한 정의가 되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신문학 이후 최남선은 민족문학의 관점에서 「時調는 朝鮮文學의 精華며 朝鮮文學의 本流」요, 「조선인의 손으로 人類의 韻律界에 提出한 一詩形」이라 하여 시조가 민족문학의 근본이며 고유한 시 형식임을 밝힘과 동시에 「시조가 시의 형식으로서 인류정상의 운율적 표현의 방법」이라고 정의하여 시조가 본질적으로 운율에 의하여 창작되는 문학이라고 하였는데 이는 「詩는 美의 韻律的 創造」라고 한 포우Poe의 정의와 그 견해를 같이하고 있다고 학자는 밝힌바 있다.
  특히 향가의 형식을 빌려 설명하자면, 향가는 4구체, 8구체, 10구체가 있다. 이는 현대시로 말하면 행을 말한다. 즉, 4줄이냐, 8줄이냐, 10줄이냐 하는 것이다. 4구체는 서동요, 풍요, 도솔가, 헌화가가 있고, 8구체에는 모죽지랑가, 처용가가 있다. 나머지는 모두 다 10구체이다. 내용은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다양하며, 4구체는 고대가요나 혹은 주술적 시가 형태를 이루었다고 볼 수 있고, 8구체는 점점 정형성을 띠는 모습이다. 그리고 10구체는 후에 가사 등으로 변모하거나 시조의 종장 첫 구가 세음절로 되는 것과 같은 형식을 띠기도 한다.
  따라서 정형시의 대표로는 시조를 꼽을 수 있다. 시조는 3장 6구 45자 내외의 형식을 갖추고 3·4조 (±1자 정도)의 운율로 종장의 첫 음보는 3음절로 되어있으며, 기본적인 4음보의 운율을 갖추고 있다. 여기서 음보란, 사전적 의미로는 음보音步【명사】시가를 읽을 때, 한 호흡 단위로 느껴지는 운율 단위를 말하며 예-동창이/밝았느냐/노고지리/우지진다는 4음보의 운율이다. 
  시조는 초장·중장·종장이 한 수를 이루며, 각 장은 4음보로, 1음보는 3~4의 기본 음절로 구성되어 있다. 시조의 형식은 자수율과 운율 등을 중심으로 구분할 수 있으나, 실제적으로는 장과 구, 음수율 등에서 논란의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시조의 3장은 원래 음악적 단위로부터 개념지은 것으로서, 내용상으로 3단 구조인가, 아니면 4단 구조인가에 대한 의견이 대립하고 있다. 3단 구조는 서론, 본론, 결론에 이르는 의미 단위가 모여 3장의 형식을 이루고 있다는 것으로, 이것은 3이라는 숫자와 관련성이 깊은 우리 민족의 논리적 구조체계에 그 원리를 두고 있다.
  4단 구조는 시조가 중국의 漢詩라는 외래적 요인에 의해 발생한 것으로 보는 견해로서, 한시의 기승전결의 구조를 시조에 대입시키고자 한 것이다. 즉 시조의 종장 첫 구가 전환적인 의미를 띠고 있다고 하여, 이를 轉의 의미구조로써 파악하고 있음이다.
  그러나 앞 절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종장의 첫 음보가 의미의 전환으로 사용되기보다 정서를 환기시키는 역할로 주로 쓰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낱말이 아니라 換介詞로서 감탄과 영탄의 구실을 하고 있다.
그러나 정형시로서의 시조는 아직도 그 정형의 기준을 어디에 두어야 할 지 학자들 간의 의견이 분분한 현실이다. 시조는 비교적 간단한 시가 형식을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짧은 형식 안에서 여러 가지 제약이 가해지고 있는 독특한 형태를 띠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제약 안에서 자수율의 변화를 허용하는 등 융통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시조를 整形詩, 혹은 非定型的 定型詩라거나 定型的 非定型詩라고 일컫는 것도 이러한 의미에서이다.
  시조의 이러한 미묘한 형식은 시초부터 정해진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 동안 점진적으로 형성되어온 것으로 여겨진다.
시의 정형적 구성은 1단 구성으로서 시상의 전개가 의미적으로 한 단락에서 끝나기 때문에 시작, 중간, 결말 따위를 구분해 낼 수 없고 반면, 2단구성은 시상의 전개가 두 토막으로 된 구성이며 첫 토막에서 시상은 얻고 두 번째 토막에서 이를 마무리 짓는 형식을 취한다. 때로 그것은 소위 ‘미괄식’혹은 ‘두괄식’구성을 가리키는 말이 될 수도 있으며, 3단구성은 가장 전형적이며 시상의 전개가 시작, 중간, 결말의 단순하고 완결된 형식을 취한다. 그리고 4단구성은 기승전결의 형식을 갖는 교과서적 구성이다. 각 구성마다 시작과 끝을 되풀이하거나 결말에 해당하는 부분을 도입부에 반복으로 대치시키는 경우와 같이 변이가 있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또 다른 견해로는 시조의 형식을 두고 오늘날 대부분의 학자들이 시조를 말할 때 ‘3장 6구三章六句’ ‘3장 8구八句’ ‘3장 12구十二句’ 등 구句에 대한 견해를 달리하고 있으나, 장章은 한결같이 3장이라고 하니 시조가 3장으로 구성되었다 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또 3장이라고 하는 대신, 3행行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지만 이것은 별로 문제가 안 된다. 그러므로 시조의 장은 초장初章ㆍ중장中章ㆍ종장終章의 3장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 특징이요, 이는 엇시조에서나 사설시조에서도 다를 바가 없다.
  시조의 구에 대한 개념 규정은 여러 가지이지만 ‘3장 6구설’과 ‘3장 12구설’이 가장 지배적이다. 시조와 자유시와의 구분이 날로 불가능할 정도로 비정형화非定型化되어 가는 경향을 미연에 방지한다거나 외형율로서의 리듬을 고려하여 자유시와 색다른 면을 더욱 부각되게 하려면 3장 6구로서의 느슨함보다는 3장 12구로 정형성을 팽팽히 매어 시조의 고유성을 확보해 나갈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이 시조형식의 3장 12구체가 지니는 자수는 초ㆍ중ㆍ종장 각 15자 내외로 잡아서 한 수가 소요하는 자수는 45자 내외가 되는 셈이다. 각 구의 자수가 약간씩 넘나드는 것은 무방하나 종장 처리에서만은 종장 제1구의 3자를 어기지 않는 것이 정도正道이며, 종장 제2구는 5자 이상을 확보할 때 시조의 율격이 살아난다고 한다.
따라서 정형시定型詩란 가장 쉽게 말해서 뜻 그대로 ‘일정한 틀이 있는 시’이며, 우리의 시조나 중국의 한시漢詩, 일본의 단가短歌, 그리고 서구의 소네트Sonnet 같은 것들이 모두 이 정형시에 속한다.
  여기서 그럼 정형시는 어떠한 틀에 의하여 제약을 받는지 살펴볼까한다.
  동양의 정형시에서는 일반적으로 음수율·음위율·압운·음성률(음의 고저 장단) 등의 틀에 의하여 제약을 받고, 서구의 정형시인 소네트는 시행 속의 음절 수와 시행 수의 틀에 의하여 제약을 받는다고 한다. 우리의 대표적 정형시인 ‘시조’ 하면 우리는 송강 정철·고산 윤선도나 황진이나 박효관·안민영 등을 떠올리는데 여기서는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의 시조를 살펴보기로 한다.


청량산淸凉山 육육봉六六峰을 아는 이 나와 백구
백구야 헌사하랴 못 믿을슨 도화桃花로다
도화야 떠나지 마라 어주자漁舟子 알까 하노라


  퇴계 이황의 시조인 이 ‘청량산 육육봉을’에서 ‘청량산 육육봉’은 내 고향 경북 봉화에 있는 도립공원인 ‘청량산 열두 봉우리’이며, ‘헌사하랴’는 ‘야단스러우랴’, ‘못 믿을슨’은 ‘못 믿을 것은’, ‘어주자’는 ‘낚싯배를 타고 고기잡이하는 사람, 즉 어부’를 뜻하는 줄은 다 알테고, 다만 여기서 좀 눈여겨볼 것은 퇴계가 복사꽃 때문에 청량산 육육봉이 세상에 알려질까 두려워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곡은 어드매오 화암花岩에 춘만春晩커다
벽파碧波에 꽃을 띄워 야외野外로 보내노라
사람이 승지勝地를 모르니 알게 한들 어떠리


  율곡 이이의 ‘고산구곡가’ 중의 제 2곡인 이 ‘이곡은 어드매오’에서 ‘이곡’은 황해도 해주에 있는 ‘고산高山의 화암 ㅡ꽃과 바위가 어우러져 있는 한 곡曲ㅡ’을 가리키고 있으며, ‘춘만커다’는 ‘봄이 저물도다’, ‘벽파’는 ‘푸른 물결’, ‘승지’는 ‘경치가 빼어난 곳’을 뜻하는 줄도 이미 알고 있을 텐데, 여기서 눈여겨볼 것은 율곡은 퇴계와는 달리 ‘벽파에 꽃을 띄워 바깥 세상으로 보내어 의도적으로 알게 하면 어떻겠느냐?’고 노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쌍벽을 이루던 두 분 대유학자가 비슷한 상황에서 노래한 시조가 서로 다른 인생관과 세계관이랄까 우주관에 따라 어떻게 달리 표현되었는가를 살펴보는 것도 좋은 시 공부가 되겠기에 두 시조를 선택했던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공부할 것은 시조가 지니고 있는 정형, 즉 틀이다. 우리의 시조는 ㅡ 학자에 따라 견해가 조금씩 다르지만 ㅡ 음수율, 또는 음보율을 기본적으로 밟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만 복습하는 의미에서 한 번 더 살펴본다.


(초장) 3·4·3(4)·4
(중장) 3·4·3(4)·4
(종장) 3·5·4·3


  이처럼 우리의 시조는 45자 내외로 한 수를 이루고 있다. 여기서 한 자가 늘어도 줄어도 안 된다는 부분이 바로 종장 첫째 구의 3, 즉 종장 첫구는 꼭 세 자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고시조에서 종장 첫 구가 네 자로 되어 있는 시조도 보이지만 그런데 요즘에는 이 정형시로서의 시조도 현대적 감각을 위한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다고 한다.


  자료에서 살펴보듯이 다른  향가나 고려가요나 가사보다 시의 정형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이 시조임에는 틀림이 없다. 시조의 정형적인 틀을 잘 알고 이해해야 우리는 정형시를 잘 쓸 수가 있고, 무엇보다 리듬감 있고 듣기에도 쉽고 편한 정형적인 시를 지을 수가 있는 것이다. 시조가 가지는 이러한 특수한 형식은 이외의 여러 자료에서도 거의 비슷하게 시조를 예로 많이 들었고, 우리가 쓰려고 하는 정형시의 기본은 시조가 가장 잘 맞는다고 하였다.
  보통은 3단구성이지만 4단구성에 대한 매력적인 단위는 노래로 만들어졌을 때 특히, 그 운율이나 곡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구비전승을 해온 시조도 있지만 옛 성현들의 구수한 노랫가락은 일을 했을 때 불렀던 노동가요부터, 양반들의 음주가무의 문화에서도 속속들이 전해져 오고 있다. 또 아낙네들의 닫힌 마음을 표현하는 데에도 시조는 우리생활 속으로 들어와 지금까지도 불리고 있는 것이다.
  다음은 시의 정형성이 갖추어진 시와 시조를 예로 들어 읊으면서 우리가 정형적인 시의 틀을 되살려 시적인 정형성을 어떻게 잘 계승할지 생각해 보기로 한다.


어제도/하로밤/나그네 집에//가마귀/가왁가왁/울며 새었소.//오늘은/또 몇 십리/어디로 갈까.//


― 김소월 시 「길」 일부


님이여, 당신은 백 번이나 단련한 금결입니다.
뽕나무 뿌리가 산호가 되도록 천국의 사랑을 받읍소서.
님이여, 사랑이여, 아침 볕의 첫걸음이여.


― 한용운 시 「찬송」 전문


담머리 넘어드는 달빛은 은은하고
한두 개 소리 없이 나려지는 오동꽃을
가랴다 발을 멈추고 다시 돌아보노라.


― 이병기 시 「오동꽃」 전문


눈을 가만 감으면 굽이 잦은 풀밭길이,  
개울물 돌돌돌 길섶으로 흘러가고,
백양숲 사랍을 가린 초집들도 보이구요.
 
어질고 고운 그들 멧남세도 캐어 오리. 
집집 끼니마다 봄을 씹는 마을.
감았던 그 눈을 뜨면 마음 도로 애젓하오.


 ― 김상옥 시 「사향」 전문


껍데기는 가라./사월도 알맹이만 남고/껍데기는 가라.//껍데기는 가라./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껍데기는 가라.//껍데기는 가라./한라에서 백두까지/향그러운 흙 가슴만 남고/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 신동엽 시 「껍데기는 가라」 전문


잠 이루지 못하는 밤 고향집 마늘밭에 눈은 쌓이리.
잠 이루지 못하는 밤 고향집 추녀 밑 달빛은 쌓이리.
발목을 벗고 물을 건너는 먼 마을
고향집 마당귀 바람은 잠을 자리.


― 박용래 시 「겨울 밤」 전문


지름길 묻길래 대답했지요./물 한 모금 달라기 샘물 떠 주고/그리고 인사하기 웃고 받았죠./평양성에 해 안 뜬대두/난 모르오.//웃은 죄밖에.
 ― 김동환 시 「웃은 죄」 전문


남들은 자유를 사랑한다지마는, 나는 복종을 좋아해요.
자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당신에게는 복종만 하고 싶어요.
복종하고 싶은 데 복종하는 것은 아름다운 자유보다 더 달콤합니다. 그것이 나의 행복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나더러 다른 사람을 복종하라면, 그것만은 복종할 수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을 복종하려면 당신에게 복종할 수가 없는 까닭입니다.


― 한용운 시 「복종」 전문 


그 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면은/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한강 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 날이/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 주기만 할 양이면./나는 밤 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올리오리다./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기뻐서 죽사오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 심훈 시 「그날이 오면」 전문


이고 진 저 늙은이 짐 벗어 나를 주오
나는 젊었으니 돌인들 무거울까
늙기도 서러웁거든 짐조차 지실까


― 작자 미상 시조 「이고 진 저 늙은이」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져 백 년까지 누리리라.


― 이방원 시조 「하여가」


이 몸이 죽어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 있으랴.


― 정몽주 시조 「단심가」


  인용한 시와 시조를 읊어보면 시조의 운율적 흐름을 잘 활용하여 시를 지었을 때는, 시가 막힘없이 잘 읽혀지는 노랫가락으로 흥얼거릴 수도 있고 박자나 리듬이 살아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또 시조의 맛깔나는 운율은 그냥 읊어도 시가를 부르는 것처럼 리듬이 따라 온다. 우리는 정형적인 틀을 가진 것들이 향가나 가사 고려가요 뿐 만 아니라 시조도 있음을 알았고, 특히 우리 고유의 민족문학으로서의 탄탄한 자리매김을 한 시조의 정형적인 틀, 종장 첫 구의 3음절을 지키지 않더라도 3행시로서의 정형적인 틀을 가진 시의 음율을 따른다면 시조의 기본적인 정형시의 리듬을 시 속에 담아 본격적인 시 정신을 전승할 수 있으리라 짐작해 본다.  특히 시를 쓰는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지켜내는 정형적인 시의 근본을 살리면 앞으로 우리의 시조정신을 잘 계승하고 보전할 수 있다고 여겨진다. 아울러 정형적인 시의 기본을 따라가다 보면 더 많은 자료가 확보되고 더 많은 독자들이 우리 시의 정형적인 틀을 지켜낼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이 조사를 여기에서 마무리한다.


<참고문헌>
[시창작론] 오세영 장부일 공저, 한국방송대학출판부
[현대시조의 정형성 연구]  林鍾贊, 시조학논총
[한국어문학연구학회] 이진,  1999
[현대시조의 창작기법] 이광녕, 국학자료원
[향가의 미학] 신재홍, 집문당
[국문학 개론] 김기동, 태학사



 1)시창작론,  P,143~145 

2)현대시조의 정형성연구, 임종찬, P,185, P,188

3)현대시조의 정형성연구, 임종찬, P,193 

4)근대 초기 시의 ‘격조’와 ‘정형성’연구, 박승희, P,4  

5) 김철진, 시창작 강의 제6강 詩의 分類. 





*정령 2014년 《리토피아》로 등단. 시집 『연꽃홍수』, 『크크라는 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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