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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호/권두칼럼/백인덕/큰 질문, 엇비슷한 작은 대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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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호/권두칼럼/백인덕/큰 질문, 엇비슷한 작은 대답
큰 질문, 엇비슷한 작은 대답
백인덕
지난해와 비교했을 때, 올해 정유년 4/4분기는 상대적으로 차분하고 무언가 희망이 조짐이라도 보이는 듯 조심스럽게 일렁이고 있다. 얼마 남지 않은 연말까지, 아니 그 사이에 수많은 사건사고들이 일어날 것이고, 그 원인과 책임을 놓고 설전과 비난이 숱하게 쏟아질 것이다. 인구가 5천만이나 되고 그 보다도 밀도가 심각한 수준으로 높은 나라에서, 다른 말로 하면 현대화되고 선진 기술화된 나라에서 사건사고가 일어나지 않고 그저 평화롭기만을 바란다면 그것이야말로 ‘연목구어緣木求魚’일 것이다. 밀도가 높을수록, 그것이 복잡한 체계system에 더 많이 의존할수록 인명이나 재산과 관련된 사건사고의 발생빈도는 높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작년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차분하고, 보다 근본적인 문제에 집중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정치적으로 보자면, ‘적폐청산’이라는 구호 아래 과거의 잘못을 오늘의 문제로 재소환하여 단죄하자는 것인데, 단순히 단죄하는 차원에서 끝날 게 아니라 그로부터 교훈을 찾아내 하나의 예방책이라 든든하게 마련했으면 하는 것이 개인적인 바람이다. 정치적 논객도 아니고, 사회비평가도 아닌 개인이 거창한 문제들을 휘어잡을 수도 없거니와 매체의 특성을 무시하고 끊임없이 정치 우선주의를 내세우는 것도 정도는 아닐 것이다. 다만 염려되는 부분이 있어 이번 호에 의문을 제기하고자 한다.
문학부문에서 가장 문제가 되었던 것은 아무래도 전 정부의 ‘블랙리스트 사건’일 것이다. 아무리 고쳐 생각해도 치졸하기 짝이 없고, 모든 변화 발전에 역행하는 우스꽝스러운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그 때문에 직, 간접으로 피해를 입은 당사자들에겐 좀 죄송스러운 표현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런 편향적인 시각과 태도를 단번에 바로잡겠다는 문화예술분야 최고 수장(현실적으로는 ‘문화부장관’이겠지만)의 방침과 실천 의지는 그 자체로 고무적이고 결연하게 지지해야 마땅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태도가 단순히 과거로의 회귀라는 결과만 산출하고 만다면 그것 또한 새로운 재앙의 전초가 되고 말 것이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 그것이 몇몇 유수한 출판사와 문예지에 과도하게 지원과 평가가 집중되었던 과거를 쉽사리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다양성을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독자와의 소통에 적잖이 방해물이 되었던 것을 다 차지하고 문학 외적인 방법으로 권위와 영향력을 되살려 놓으려는 시도여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 《아라문학》은 뜻을 모은 몇몇이 함께 만들어가는 작은 잡지다. 재정적인 자립도나 원고의 다양성, 질적인 면에서도 어디 내놓고 자랑할 만큼 충분히 성숙했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특정한 당파성이나 계파성에 기대지 않는다. 항상 열려있고 문학을 소개하고 함께 ‘교감’하는 매체로서 그 자리에 머물기를 기뻐한다. 세밑에 갖는 그 누구나의 바람처럼 내년에는 더 알차게 좋은 모습으로 독자들께 다가가고 싶다. 또한 내년에는 더 많은 관심과 지원을 기대해본다. 늘 함께할 때 더 큰 힘이 발휘되기 마련이니까.
*백인덕 1991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끝을 찾아서』, 『한밤의 못질』, 『오래된 약』, 『나는 내 삶을 사랑하는가』, 『단단斷斷함에 대하여』, 『짐작의 우주』.저서 『사이버 시대의 시적 상상력』 등. 본지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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