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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호/신작시/송시월/몽유도원도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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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호/신작시/송시월/몽유도원도 외 1편
몽유도원도 외 1편
송시월
강풍타임머신을 타고 간다 중원의 안양 은허박물관, 최초로 일식을 예측한 남자 그 모양을 갑골문자로 만들어 새긴 석판을 한 손에 들고 한 손으로 밤하늘의 별자리를 가리키고 있는, 그 검은 눈빛동굴로 들어간다
생레미 정신병원 병실에다 검은 하늘을 끌어내려 놓고 고흐가 귀를 자른다 나는 고흐와 함께 불안 초조 외로움 이런 것들을 피로 반죽하여 비틀어 만든 새로운 귀를 하늘에다 총총총 심어놓고 은하의 파도소리를 듣는다 파도의 조수 따라 퇴화하거나 진화한 귀들이 소용돌이치며 별이 된다
별이 빛나는 밤 갈멜산 기도원, 엘리아는 구름 타고 승천 중이고 계유정사를 빠져나온 안평대군이 곽희와 안견의 붓끝에서 태어난 꿈속의 몽유도원도를 찾아가는 먼―먼 여행길, 물안개 속 하늘동굴로 들어간다
백일몽에서 깨어난 안개 주의보 속의 오후
발이 사라지다
검은 비옷을 걸친 저녁이 사방에서 몰려든다
철벅철벅
어제도 비가 오고 오늘도 내일도 그리고 모레도 늦가을 비가 온다
일기예보를 안 먹었는데도
내 안에 우산이 있다
어머니란 우산을 펴 든다
우왕좌왕 7시차 놓치고 막차까지 한 시간
땅 밑으로 길이 스며들어 발이 사라져가는 저녁
비틀었다 흩으려 놓다 토막을 내도
점점 더 검게 살이 오른 빗소리
젖은 별들이 떨어져 하수구로 흘러 들어간다
내 안에서 꾸르륵거리는 불안이 어둠을 찍어 형광 빛에다
“내일도 모레도 비”라고 손가락 글씨를 쓴다
간이역 낡은 벤치가 우울우물 저녁 김밥에 목이 메인다
고명처럼 말아진 용평금단 길 리베페라스 팬션 옆
캠프파이어불길 하늘에 닿아 별이 되지 못하고
싸이프러스 나무에서 반짝거리다가
입안에서 으깨진다
젖은 이 별, 이별을 노래해야 하나
이 밤의 비는 언제쯤 내게 금진옥액金津玉液이 될까
*송시월 1997년 《시문학》 으로 등단. 시집 『12 시간의 성장』, 『B자 낙인』. 제1회 푸른시학상 수상. 계간 《시향》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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