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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호/신작시/최복선/발묵법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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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호/신작시/최복선/발묵법 외 1편
발묵법 외 1편
최복선
휘어가는 엄지발가락을
신발이 읽고 있다
오래전 아버지 신발이 그랬듯
내 발에 발묵 중이다
어둡고 습한 곳에서
뻐근하게 뻗어 오는 가골을
살집이 터 가는 줄도 모르고
온몸으로 받아
제 평수를 늘리고 있는 것이다
발의 대지가
몇 평으로 늘어날지
아무도 모를 일이지만
무지 외반증이라는 유전자에
귀을 기울이다 보면
묵언의 습득으로
발의 외침을 귀 담아 들을 것이다
아버지 그림자를 그대로 찍어 놓은
절묘한 변주
나는, 문 밖에서도
아버지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길고양이
어두운 밤 일수록 달처럼 둥그러지는 눈동자
넌 처음부터 어긋난 출생이었지
낮선 이의 발자국 소리나 자동차 경적을 삼키고도 모자란
담대함이란
몇 번의 발파 작업,
그것으로 땅 속 깊은 것마저 사라진 후였을까
지워지는 골목을 바라보며
윤기 흐르던 털은 거칠어졌고
콘크리트 벽이 높아질수록 발바닥은 무뎌졌으니
안테나를 길게 세우고 어둠을 즐기는 매력도 있다만
벌건 대낮에도 주차장을 어슬렁거리거나
분리 수거통을 엎어 놓은 걸 보면
사랑과 미움이 교차되는 존재일 수밖에 없는
길 위의 방랑자
온갖 쓰레기를 먹고도 종속되는 법이 없는 자존심은
이 세상이 사람만의 것이라고 정한 인간에게
마른 나무 부러지는 소리만큼이나 건조하게 전하는
낮은 언어일 것이다
꼬리나 옆 표정만으로도 알 수 있는 나는
슈퍼마켓 가는 길이 그리 달갑지 않다
비린내 묻은 야생의 바람이 창문을 때릴 때마다
아기 울음소리
저, 구애의 울음소리
*최복선 2007년 《모던포엠》으로 등단. 여수화요문학회, 여수물꽃시낭송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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