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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호/신작시/김선숙/허공이라는 말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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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김선숙
허공이라는 말
허공이라는 말에는 휘파람새가 살고 있다
척박하고 메마른 고원을 넘어오는 소리
깊은 골짜기를 스쳐오는 바람소리
언덕 위를 휘돌아 가는 바람울음소리
나뭇가지들이 부딪치며 속삭이는 소리
해거름 넘어가는 노을소리
허공이라는 말에는 하늘과 구름이 있다
새털구름, 양떼구름, 먹구름, 비구름, 소나기구름
쪽빛 하늘, 에머랄드빛 하늘, 흐린 하늘, 맑은 하늘
맑음, 밝음, 어두움, 상실, 분노, 아픔, 환희, 상처, 그리움, 눈물
허공이라는 말에는
네가 있고, 내가 있고, 우리가 있다
서로 등 기대고 설 수 있는
뒤돌아서서 크게 이름 부를 수 있는
텅 빈 듯 가득 찬 말
허. 공
석류를 좋아해
석류를 좋아해
페르시아산도 아닌 캘리포니아산도 아닌
뒷마당 토종 석류
오월이면 뒷마당엔 석류꽃이 피었지
봄 햇살 맞은 초록이 환하게 웃었지
푸른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렸었지
가지가 휘어져 뒷집을 넘나들었지
까르르 웃음소리 담장 너머 활짝 피었지
한 해 건너 한 해
줄줄이 딸들이 태어났지
누군가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숫꽃이 핀다고 투덜거렸지
석류꽃은 붉어야 한다고
가을 햇살에 석류가 익어갔지
톡, 톡 터질 것 같은 붉은 열매 활짝 벌리고
기다리면 오는 것이 있고
기다려도 오지 않는 것이 있다 하네
식탁 위에 놓인 캘리포니아산 석류 한 알
뒷마당 고목이 되어 버린 석류나무엔
엄마의 미소처럼 환한
석류를 좋아해
단 한 알의 석류가 열린다네
나도 한 알
엄마표 석류가 되어야 한다네
김선숙 2013년 계간《 시와소금》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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