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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호/특집/오늘의시인/박완호/압록 애인 외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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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호/특집/오늘의시인/박완호/압록 애인 외2편
압록 애인 외 2편
박완호
너를 어떻게 불러야 할까.
압록 강가 저만치
백양나무 줄기 같은 다리를
가지런히 오그리고 앉아 너는
무슨 노래를 부르는 중이었나.
물살이 몸을 뒤척일 적마다
네 귀에만 가 닿았으면 하고
남 몰래 띄워 보낸 나의
뜨거운 속말들.
너의 등 뒤로 가지런히 늘어선
백양나무들 그림자 하얗게 흔들어가며
날더러 또 뭐라 손짓을 하지만
우리는 서로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
너는 나를 부르지 못하고
나는 너를 부를 수 없는 지금,
압록의 물낯만 저리게 반짝이는데
홀로라도 나는
그 순간의 너를 애타게 찾으며
또 하나의 그리움을
운명으로 끌어안으려 한다.
압록 강가에서 마주친
나의 눈부신 사람아.
(2015. 가을. 《시인수첩》)
진천鎭川
커피숍 아르바이트 첫날
흰 와이셔츠가 없어서
친구 아버지 걸 얻어 입는 일.
스물한 살,
처음 입어본 와이셔츠는
교회 장로였던
친구 아버지의 마음씨처럼
하얗게도 늙었었지.
가난은 또,
전역한 다음 날
애인 만나러 가는 길
입을 게 없어서
할아버지 걸 빌려 입는 일.
서너 겹으로 접힌 허리춤을 가리려
여든 살 노인네의
흰 남방을 겉으로 내놓는 것.
웃는 애인의 눈에서 찔끔,
물기가 새어나게 하는
나도 덩달아 질끈,
눈을 감아버리고 마는.
(2016. 4월. 월간웹진 《공·시·사》)
아내의 발
꿈에서만이라도 꽃길을 걷고 싶은 걸까?
잠든 아내의 발이 꽃무늬 쪽으로 옮아간다.
딴 데 눈 돌릴 틈 없는
가난과 남모르는 속앓이가 키워냈을
발가락의 굳은살들.
지금껏 내가 준 것은 먹먹한 돌길뿐이었나.
꽃무늬 쪽 이불을 끌어다 깔아주고는
슬며시 아내의 발을 만져가며
수화처럼 건네는 나의 속말을
그녀는 듣지 못하고
꿈에서도 돌길을 밟는지 아픈 숨소리를 낸다.
잠든 아내의 발에 손을 대고 나는
그녀가 저도 모르게 내 앞에 깔아 논
모난 돌길 위에 모르는 척 맨발을 얹는다.
서로 꽃길을 주마하던 다짐 대신
한 발짝 내딛기도 힘든 돌길을
모르게 맺힌 물집이 굳은살이 되도록
따로따로,
아파하며 걸어온 게 우리 지난날이라니.
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와 버린 두 목숨이
바닥에 함부로 나뒹굴려는
낯선 갈림길,
혼자서는 한 발짝도 뗄 수 없는
꽃길도 아닌 벼랑길을 따라
아내의 발이 자꾸만
눈길 밖으로 달아나려 한다.
(2016. 9월.《현대시학》)
<신작시>
낮달인지, 저녁달인지
송정암* 머리 위에 생뚱맞은 물음 하나가 떠올랐다.
혜범 스님은 모르는 척 자꾸 엉뚱한 데만 쳐다보았다.
*강원도 원주에 있는 작은 절.
가만히 있으라는 말,
가만히 있으라는 말,
다 내가 해 줄게, 앞에 달린, 넌 그냥 가만히 있어,* 라는 말과는 얼마나 다른가요?
또 사월이 왔나요? 아직 사월이라고요? 거긴 파랑새가 날아다니나요? 알록달록한 허밍을 불어가며 나비들이 공중을 쏘다니나요?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 바람이 나뭇잎들을 쉴 새 없이 건드리나요?
여긴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걸요. 친구들의 말소리도 더는 들리지 않아요. 우리가 언제 이곳을 꿈꾸기라도 했나요? 우린 언제까지 이렇게 있어야 하나요?
가만히 있으라는, 그것 말고 다른 말을 들려줄 수는 없나요? 촛불 켜든 땅꼬마 같은, 들판의 꽃들도 손발가락 쉬지 않고 꼼지락거리며 피어나는 걸요.
*남진의 노래 「둥지」에서.
<시론>
끝끝내, 나는, 시인이다
시론이라고 특별히 내세울 만한 것은 없지만, 소박하게나마 마음에 품고 있는 시에 관한 나만의 생각을 포함시킬 수 있다면 그것을 나의 시론이라고 불러도 좋으리라. 하지만 그것 또한 이런저런 자리에서 두어 번 언급한 바가 있으니, 여기서는 똑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대신 짧게나마 다른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1. 시를 쓰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무작정 시에 매달리기 시작한 십대 후반, 나는 내가 쓰려는 시가 ‘내 안의 흔들림’을 새기는 일이라는 기특한 생각을 마음속에 품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십대로 접어들 무렵 어쩔 수 없이 ‘시란 무엇인가?’ 하는 고민에 빠져들어야 했다. 그 시절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나 또한 대학에 들어가면서부터 시 쓰기와 더불어 이 모순된 현실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하는 문제로 인해 적잖은 마음고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이다. 함께 문학에 뜻을 두었던 벗들이 앞 다투어 시를 포기하고, 보다 시급한 가치의 실현을 위해 몸을 던질 때, 나는 겁 많고 모자라는 스스로를 원망하면서도 마지막 순간까지 시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내게 있어 시는 일찍 세상을 떠난 엄마를 만나는 하나뿐인 길이었으며, 시를 쓰지 않고서는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나 자신을 절실하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런 내게 있어 ‘시는 무엇인가?’ 하는 질문은 문학 자체가 지니는 의미를 따지기에 앞서, ‘나에게 시는 무엇인가?’ 하는 지극히 실존적이면서도 졸렬한 물음일 수밖에 없었다. ‘내 안의 흔들림’에 대한 시적 자각은 모성의 상실로 인한 내 ‘상처’의 뿌리를 발견하는 데서 첫발을 내딛고 있었다.
처음 시를 쓰기 시작한 때부터, 나는 세계의 중심에 흔들림이 있음을 보았고, 그 흔들림과 내 안의 흔들림이 만나 이루는 화음을 꿈꾸었다. 그리고 온 몸의 더듬이를 곧추 세워 두 흔들림이 만드는 팽팽함을 느끼려 했다. 그러나 나는 너무 느리고, 태만하였으며, 갈수록 내 더듬이는 무디어졌다.
그러다 문득,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상상해 보라. 흔들림이 사라진, 고통스런 평안만이 가득한 세계를,
나는 이제 새롭게 출발할 것이다. 저 흔들림의 뿌리를 찾기 위하여,
― 첫 시집의 「자서」 부분
2. 다뤄온 몇몇 주제들
시집을 낼 때마다 매번 탁월한 기획력을 선보이는 어떤 시인들만큼 지혜롭지 못한 나로서는, 내 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무엇인가를 꾸준히 시로 써오면서 그것들이 쌓일 때마다 책으로 묶어내는 길을 걸어왔다. 지금까지 펴낸 다섯 권의 시집에 실린 시들은 내가 그 동안 지속적으로 매달려온 몇 개의 커다란 주제 의식을 지니는데, 대략 ‘개인사적 상처를 다룬 시’ ‘자연생명과의 교감을 노래한 시’ ‘사랑과 그리움을 노래한 시’ ‘주변 및 현실 문제를 다룬 시’ ‘시 또는 언어에 대한 성찰을 담은 시’ 등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세상 모든 일이 그러하듯 그것들 또한 칼로 잘라낸 것처럼 분명한 경계를 지녔다고는 할 수 없으며, 시집에 따라 수록된 작품 수 등에서 상대적인 차이를 보이지만, 전체적 볼 때는 서로 엇비슷한 무게를 지닌다고 해도 괜찮을 것이다.
내게 있어 시의 출발점은 언제나 ‘나’일 테지만, ‘나’는 가깝고 먼 곳에 존재하는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 가운데 점점 ‘나’의 자리를 넓혀간다. ‘나’의 시선을 끌어당기는 ‘누군가’는 나와 마찬가지로 자기만의 상처를 지닌 수많은 존재들이다.
새끼 염소가 죽었다.
난 지 사흘만에 나선 첫 산책길
아카시아 향기에 취해 길을 잃었을까
누구의 귀에도 가 닿지 못한
울음 한 조각 물고
똥통에 빠져 죽은
염소의 검은 등을 밟고
수의라도 덮어 주려는 듯
구더기들 하얗게 몰려든다.
목덜미 털이 벗겨지도록
종일 새끼를 찾던 어미는
모르는 척 허겁지겁 밥그릇을 바닥까지 핥는다.
물기 젖은 염소의 눈길 가 닿는
사발 속 허공
어미 염소의 허기가
세상의 저녁을 흔든다.
―졸시, 「염소 울음이 세상을 흔든다」
어린 새끼를 잃고 나서도 “모르는 척 허겁지겁 밥그릇을 바닥까지 핥는” 어미 염소의 허기는 절망 가득한 세상 한가운데 넋을 잃고 서 있는 우리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며느리와 아들을 먼저 떠나보내야만 했던 할머니가, 둘을 합쳐도 백 살밖에는 안될 만큼 짧았던 생애를 뒤로 하고 간 엄마와 아빠, 그이들을 찾다 기진맥진한 모습으로 잠든 어린 동생들과 그를 바라보는 까까머리 오빠의 젖은 눈망울이 또한 그 속에 들어 있다. 나의 ‘바깥’에 존재하는 ‘아픈 존재’들은 결국 나 자신의 다른 모습이기도 한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나’와 수많은 ‘너’는 그렇게 하나의 끈으로 이어진 존재들이라고 할 수 있다.
3. ‘성性’의 조화 ―아름다운 세계의 필요조건 중 하나
내가 겪은 최초의 불행은 ‘모성이 지워진 세계’와의 마주침이었지만, 시인으로서의 나는 본능적으로 ‘모성의 상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대신 ‘여성성’과 남성성‘의 조화와 균형이 무너진 상태로 변화시켜 인식한다. 내가 꿈꾸는 아름다운 세계는 잃어버린 모성을 회복하는 데서 머물지 않고, 성적인 조화로 가득한 세계를 마주하는 지점까지 나아가는 것이다. 어떻게 들리지 모르지만, 성적 상상력을 추하거나 불편하지 않은 모습으로 형상화하는 것은 내게 주어진 또 하나의 숙제이다.
산과 산이
서로 좋아라 끌안고
내(川)를 흘려
체액을 나누는
기막힌 합방
속
새 새끼가
난다.
― 졸시,「山, 山」전문
환한 봄밤이었다 막차를 놓치고 찾아든 여인숙, 판자대기꽃무늬벽지로 엉성하게 나뉜 옆방과
천장에 난 조그만 구멍으로 반반씩 나눠가진 형광등 불빛이 이쪽저쪽을 오락가락할 때, 나는
김수영을 읽거나 만나려면 조금 더 기다려야 했던 백석을 꿈꾸며 되지도 않는 시를 끄적거리다가
갑자기 불이 꺼지고 시팔, 속으로 투덜대며 원고지를 접고는 이내 곯아떨어졌을 텐데, 잠결에 들려온
옆방 여자가 내는 소리가 달밤의 목련꽃처럼 피어나는 걸 숨죽여 듣다가 그만 붉게 달아오른 꽃잎 하나를 흘리고야 말았지
아침 수돗가에서 마주친 여자는 낯붉히며 세숫대야를 내 쪽으로 슬며시 밀어주는데 나는 괜히
간밤 그녀가 흘려보낸 소리들이 내 방에 와선 탱탱하게 부풀었던 걸 들키기라도 한 듯 덩달아 붉어져서는
내 쪽에 있던 비누를 가만히 그녀 쪽으로 놓아주었다
― 졸시, 「목련여인숙」 전문
4. 내게 던지는 끝없는 질문 - 나는 시인인가?
나는 내게 묻는다. 나는 시인인가? 어제 물었던 그대로, 오늘 또 내게 묻는다. 나는 시인인가? 오랫동안 스스로에게 던져온 이 물음을 나는 언제까지 지속할 수 있을까? 시를 쓰는 일은 어쩌면 ‘신기루처럼 눈앞에 떠올랐다 사라지는 해협海峽을 건너기 위한’ 도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징검다리가 놓일 때마다 바다의 건너편은 점점 더 멀어질 것이다(두 번째 시집 ‘자서’에서). 그럴수록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가며, 다가가려 할수록 멀어져만 가는 해협을 건너기 위해 계속 쓰고 또 써야만 할 것이다.
시에 관한 한 나는, 무모하리만치 비타협적이다. 한마디로 맹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나는 나의 ‘맹함’을 사랑한다. 그것을 버리는 순간, 어쩌면 나는 이미 시인이 아닐지도 모른다.
시인이라면 누구나 아랫도리 하나쯤 더 지니고 산다. 나도 제 멋대로 발끈발끈하는 녀석 하나 더 갖고 있다. 애인과 사랑을 나누려 할 때는 기척 없어 날 무안하게 하더니, 돌멩이에 짓눌려 있던 상반신을 가까스로 일으켜 세우는 키 작은 풀들, 모란시장 한구석 파리 날리는 가판대에 앉아 사람들의 발길을 애타게 끌어당기는 늙은 여자, 혹은 영혼을 저당 잡힌 허깨비들과 맞닥뜨리는 순간 대가리 빳빳하게 세우는 놈. 너 오래 살아라. 아랫도리가 죽은 시인은 이미 시인이 아니다.
― 졸시, 「시인의 아랫도리」 전문
‘아랫도리’라는 표현이 다소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이 시를 통해 나는 내가 꿈꾸는 시인의 덕목을 소박하게나마 표현해 보았다. ‘아랫도리’가 죽지 않은 시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싸워 나가는 것. 그것이 내게 주어진 커다란 과제일 것이다.
아는가? 새의 영혼과 맞닿은 시인의 정신은 이 순간에도 손닿지 않는 ‘너머’의 문지방을 넘나들고 있음을. 시인의 生이란, 어딘가에 숨겨져 있을 비밀의 문장을 찾아 나서는 끝없는 순례라는 것을(「길들에게, 나는」).
시인의 한 마디는
단말마,
그가 선 자리는
어디라도 벼랑이다.
―졸시, 「시인」 전문
고비 아닌 때가 없지만,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나는, 시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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