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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호/신작시/하병연/달리는 거리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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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부관리자
댓글 0건 조회 778회 작성일 19-07-03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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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호/신작시/하병연/달리는 거리 외 1편


달리는 거리 외 1편


하병연



  불빛 속으로 달려가고 있어요. 하늘은 맑고요. 꽃은 피었어요. 바람은 불어 엉덩이를 때려요. 때리면 때릴수록 쏟아져 나오는 불빛들. 달려가고 있어요. 달려가고 있다니까요. 달리는 거리는 달리는 거리. 파닥이는 날개에서 꽃잎 떨어져 내려요.


  달리고 달리다가 모퉁이를 돌 때 쯤 나를 데려가세요. 나도 달리고 싶어요. 일상의 엉덩이에 채찍을 가하고 달리고 달리고 싶은 걸요. 한 달음 너머로 또 한 달음 떼고 싶어요. 어이, 거기, 달리는 거리. 달아나는 거리. 같이 좀 달려요. 꽃도 벌써 온 몸 진저리쳐 떨어져 내리는 데 나도 심장을 쿵쿵거리며 앞으로 달려 나가야죠.


  달리고 달리는 거리. 달리고 달아나는 거리. 멈출 수 없는 당신과 나의 거리. 헐떡거리는 구멍에서 세찬 소낙비가 내려요. 언제나 젖은 것들끼리는 서로 달라붙어 있어요. 그러다가 꽃이 피어요. 착착 피어요. 탁탁 피어요. 피어요. 피어. 당신과 나의 팽창과 축소의 맨 몸 위에


  어이, 거기, 달리는 거리, 달아나는 거리, 같이 좀 달려요.





화태도*에 가서



봄 햇살 속에 시린 몸을 데우는 당산나무를 보고 있습니다
수천년 하늘 아래 큰 몸을 둘렀던 금줄도 없습니다
봄바람이 해변 끝에서 따뜻한 등이 되어 불어오니 이보다 반가운 손님도 드물겠습니다


작다란 이파리는 아직 피지 않았습니다


여보세요, 거기 안에 계시는 곳은 꽃 피었나요?


매화꽃이며 도화꽃 피었다면
나도 당신 속으로 들어가 한 백년동안만 흰 나비로 살아도 될런지요
흰 날개를 접었다 펼치면 아름다운 꽃이 피었다 지겠지요
아무래도 떨어지는 꽃잎을 당신처럼 받아 안으려면 작은 연못 하나는 파야겠어요
그 둘레는 작고 큰 돌멩이들로 마침맞게 쌓아올려야겠어요
우리가 꽃 피우며 노닐 자리는 이미 보아두었습니다만
누구에게 들킬까하는 작은 염려가 일어나기도 합니다


그러하여 여쭙나니
아무도 모르게, 아무도 들리지 않게, 조용히 은밀히 여쭙나니


여보세요, 거기 안에 계시는 분, 꽃 피었나요?


   * 화태도 : 전남 여수 돌산도 근처에 있는 섬.





*하병연 2003년 〈농민신문〉 신춘문예 당선. 시집 『희생』, 『매화에서 매실로』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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