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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호/신작시/임백령/색을 바꾸기로 했단다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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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호/신작시/임백령/색을 바꾸기로 했단다 외 1편
색을 바꾸기로 했단다 외 1편
임백령
좋아하는 색을 바꾸기로 했단다.
노란 과일의 껍질을 열면
얌전한 네가 눈을 뜨고 거기 앉아 있을 것
같아서 가슴이 쿵쿵거려 손을 못 대고
민들레 개나리 씀바귀 양지꽃 색을 내밀면
수없이 접어 만드는 노란 리본처럼
가슴에 영영 박혀 들 것 같아서
갈 수밖에 없구나 다른 빛의 세계로
색을 바꾸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닌 것
슬픔의 고통보다 슬픔을 접는 것이 힘들듯
네 꿈의 배가 갈앉은 바다의 푸른 빛깔도
검정도 하양도 분홍도 택할 수가 없으니
네게 물어볼 수 있다면 좋으련만
길이 없어 어릴 적 네 그림공책을 열어 보기로 한다.
무지갯빛 온갖 그림들 떠올라 눈부시다가도
순간 색을 잃는 텅 빈 하늘 공허한 눈빛 남기고
너는 무슨 빛깔로 다시 태어났니?
몸속엔 여전히 따뜻한 피가 흐르는지
여린 아가의 눈빛을 들여다보고 싶구나
꿈에라도 너를 품는 늙은 태몽을 주지 않으련?
금구金溝
금구에 가면
갇힌 땅속에서 흘러나온 물길에
비쳐 오는 사금처럼 우리의 희망도
반짝일 수 있을까
젊은 시절 친구 집 그곳에서
잠들지 않는 말들 무성하던 밤
바깥세상이 어둡고 절망적이라
더욱 부유해지는 신념과 투지처럼
은행나무 잘리고 물길 끊겨 가도
여전히 하늘을 나는 왜가리 떼들
늙어 온 나무가 고목의 둥지로 받아 내리고
무딘 부리 그리며 튀어 오르는 피라미들
물속에서 오래된 재주를 번뜩이고 있을까
아직도 고스란히 남은 옛 마을 하나
마실 나온 노파들이 동청에 모여
묵은 터전 사람들 지켜 내는 정담으로
고샅길 잡초를 뽑아 올리며
밀려오는 외곽의 파도를 잠재우고 있을까
모든 것 놓치고 꿈을 잃은 사람
돌아오면 풀숲에 숨기고 묻어 둔 것 하나
내주는 나들이 무욕의 삶의 길을
정말 얻을 수 있을까 금구에 가면
금구에 가면
*임백령 2016년 《월간문학》으로 등단. 시집 『거대한 트리』, 『광화문-촛불집회기념시집(공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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