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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호/시집속의시/이외현/자연, 사람, 사물의 상호작용, 또는 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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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부관리자
댓글 0건 조회 686회 작성일 19-07-03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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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호/시집속의시/이외현/자연, 사람, 사물의 상호작용, 또는 전이


자연, 사람, 사물의 상호작용, 또는 전이
   ―김영미 시집  『물들다』


이외현



  삶은 자연, 사람, 사물의 상호작용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자연’의 사전적 의미는 ‘사람의 힘이 더해지지 아니하고 세상에 스스로 존재하거나 우주에 저절로 이루어지는 모든 존재나 상태’라고 하였지만, 필자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자연과 사람과 사물이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 상호작용을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의 사전적 의미는 ‘생각을 하고 언어를 사용하며, 도구를 만들어 쓰고 사회를 이루어 사는 동물’ 이다. 신영복 선생은 ‘사람’의 준말이 ‘삶’이라고 하였다. 또한 ‘사물’의 뜻을 살펴보면 ‘물질세계에 존재하는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대상을 통틀어 이르는 말’ 이다. 시를 통하여 자연, 사람, 사물의 상호작용이나 전이를 불러일으키는 김영미 시인의 삶이 묻어나는 『물들다』 시집을 따라가 본다.


햇빛이 나무를 품어 나무는 한 쪽이 환해졌다


나무는 그늘을 품어 그늘 한 쪽이 서늘해졌다


그늘은 나를 품어 나의 몸엔 그들의 문신이 새겨졌다


나는 의자에 나를 새겨 의자가 내 모습으로 얼룩졌다


제 몸을 다 내 주며 기울어져가다


이윽고 자신을 다 지우고 하나가 되며


낮은 곳을 흥건히 적셔가는 부드러운 동질감


사랑한다는 것은


나의 모든 것을 내어주고 너의 모든 것을 품어가는 일


하나가 하나에 기대어 천천히 물들어가는 오후


오후는 아침을 아침은 어제 저녁을


말없이 고요히 다 받아들이고


하루가 되는 것이다
                                        -「물들다」 전문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명제를 굳이 빌려오지 않더라고 인간이 과연 혼자 살아 갈수 있을까? 자연 또한,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고 홀로 삶을 유지할 수 있을까?
  김영미 시인의 시 「물들다」를 읽으면서 자연과 사람과 사물의 상호작용에 대해 생각을 해보았다. 이 시에서 ‘물들다’는 것은 “하나가 하나에 기대어” 어떤 시너지 효과나 새로운 창조물의 탄생보다는 “나의 모든 것을 내어주고 너의 모든 것을 품어가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이타주의적인 ‘사랑’과 ‘내어줌’이다.
  다양한 요인들로 인해 다수의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고, 이 지구상에 내 편이 한 명도 없다는 고립무원孤立無援의 고독이 밀려올 때, 혼자라는 깊고 헤어나기 힘든 아득한 공포의 수렁에 빠진다. 절벽처럼 높이 쌓아 올린 외로움의 파도가 나를 삼키려 할 때 ‘물들다’라는 시집을 잠언처럼 펼쳐 ‘햇빛’, ‘나무’, ‘그늘’, ‘의자’와 같은 자연과 사물이 묵묵하게 내 곁을 지키며 품어주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고 감사하자. “오후는 아침을 아침은 어제 저녁을 말없이 고요히 다 받아들이고 하루가” 되는 것처럼 겸허히 현실을 받아들이고 주어진 하루, 하루를 소중하게 물들여 갔으면 한다.


아직 여기에 오지 않은 것들은 조용하다.


비의 전언이 먼저 와 건달처럼
걸쩍대며 달라붙는 야비하고 습한 기운
후미진 구석까지 들추어내는 징후의 냄새
몸을 다 가린 새벽
건장한 우레와 번개가 몇 번 지나가고


어젯밤에 울어대던 고양이가
아침에는 하수구 가까이에 누워 있었다
길의 좌표를 잘못 읽었거나 읽혔거나
길 위엔 삶을 가득 채웠던 살과 뼈가
비에 젖은 채 물에 떠가고 있다


당신과 나의 전생에도 이런
모진 바람이 가끔씩 불었을 것이다
하수구에 몸을 박은 고양이처럼
문득 자신의 몸을 버리고
하늘을 오르는 영혼을 보았을지도 모른다


오늘 밤에 부는 바람의 말은
미처 귀 기울여 듣지 못했던
우리들의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는 고양이처럼 밤새
울어야할지도 모른다
부쩍 키가 커진 원추리가
우리를 볼 수 있을 때까지 우리도
하늘에 이는 바람의 눈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어제는 늙었으나 오늘이 어제보다
새롭지 않다는 것에 우리는 아파해야 한다
바람이 지나간 뒤에
바람이 오기 전 보다 더 절실하게
더 아파해야 한다


바람은 또 예고 없이 불어올 것이므로
                                                      ―「태풍전야」 전문


  전 세계가 이상기온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예상을 빗나간 폭우, 태풍, 해일, 지진 등 자연재해가 사람들이 일구어놓은 터전을 하루아침에 휩쓸어 버린다. 부산에도 며칠 전, 기상청 예보보다 훨씬 많은 양의 폭우가 쏟아져 배수구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물이 계속 역류하여 큰 피해가 났다고 한다. 자연, 사람, 사물이 서로에게 내어주고 물드는 관계가 무너지고 예측불허의 부조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앞으로 점점 더 심해 질것이라는 예상이다. 폭풍전야라고 했던가? “아직 여기에 오지 않은 것들은 조용하다.” 하지만, 사람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엄청난 일이 일어날 것 이라는 두려움은 사람들을 떨게 한다. ‘비의 전언’이 ‘습한 기운’과 ‘징후의 냄새’를 뿌리는 사이 “건장한 우레와 번개가 몇 번 지나가고” 밤새 위험을 알리며 울어대던 고양이가 하수구 근처에서 발견되었다. 오늘 아침 출근길에 로드 킬을 당한 검은 고양이를 보았다. 그 고양이는 새벽에 “길의 좌표를 잘못 읽었”는지 “길 위엔 삶을 가득 채웠던 살과 뼈가” 길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어쩌면 우리는 고양이처럼 밤새 울어야할지도 모른다” 미국에서는 시속 300㎞에 육박하는 카테고리 5등급인 허리케인 ‘어마’가 온다고 하여 플로리다 주민 650만명이 피난길에 올랐다. ‘어마’는 어마어마한 위력으로 플로리다를 향해 가다가 다행히 진로를 변경하여 매스컴에서 예상했던 재해보다는 덜하지만 정전이 되고 크레인과 건물이 무너지는 등 많은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이제 우리는 언제라도 불시에 닥쳐올 자연재앙의, 최악의 시나리오를 예상하며 살아가야 한다.  “바람은 또 예고 없이 불어올 것이므로.”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적막 사이로
묵은 침묵을 깨듯 시린 바람이 스쳐간다
무릎을 꿇어 눈을 맞추려했으나
목비의 이마는 무릎 꿇은 발끝에 걸려
제 키를 다 높이고도 한 뼘을 넘지 못한다


                   ―「무연고 묘지에서」 부분
 
  지난한 삶을 살다가 간, 이름을 알 수 없는 사람의 묘가 숲 속에 방치되어 있다. 벌초나 성묘를 위해 찾아오는 가족이나 연고가 없이 무덤에는 잡풀이 무성하게 자라고 봉분이 허물어져 있다. 누구의 관심에서도 비켜선 무덤에 오랜 “침묵을 깨듯 시린 바람이 스쳐간다.” 이름대신 “수형인처럼 숫자로 비문을 새긴” 나무 비석인 ‘목비’는 이방인의 “무릎 꿇은 발끝에 걸려 제 키를 다 높이고도 한 뼘을 넘지 못한” 아주 자그마한 것이다.  
  홀로코스트의 생존자이자 인종차별 철폐와 인권신장의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받은 엘리 비젤Elie Wiesel은 “사랑의 반대는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이다. 생명의 반대는 죽음이 아니라 생명과 죽음에 대한 무관심이다.”라고 하였다. 이런 무관심은 모든 상황과 주변을 철저히 외면하고 담을 쌓는다.


  우주만물이 서로에게 관심과 사랑을 갖고 조화를 이루고 살아간다면 자연재해나 삶의 고단함이 훨씬 줄어들 텐데 하는 안타까운 마음에 김영미시인의 『물들다』 시집 앞에서 다시금 옷깃을 여민다.





*이외현 2012년 《리토피아》로 등단. 시집 『안심하고 절망하기』. 《아라문학》 편집장. 막비시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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