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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호/아라세계/신연수/흑인시 5편을 남긴 시인 배인철裵仁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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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부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079회 작성일 19-07-04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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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호/아라세계/신연수/흑인시 5편을 남긴 시인 배인철裵仁哲


흑인시 5편을 남긴 시인 배인철裵仁哲
   ―1947년 남산에서 데이트 중 괴한에게 총 맞아 피살


신연수



  1947년 5월 10일 오후 6시 30분 서울 남산 장충단공원 산책길에서 데이터 중이던 남녀 한 쌍이 괴한의 총을 맞고 쓰러졌다. 머리를 맞은 남자는 즉사했고 여자는 옆구리를 관통했지만 목숨에는 지장이 없었다. 여자는 이화여대 2학년 영문과에 다니던 김현경이었고 남자는 인천사람으로 흑인시를 쓰는 시인 배인철이었다. 배인철은 28세의 젊은 나이로 그렇게 허무하게 세상을 떠났다.


  배인철은 1920년대 부산에서 인천으로 이사한 배명선의 4남 5녀 중 3남으로 태어났다. 어릴 때 인천공립보통학교(현 창영초등학교)를 거쳐 1934년 서울 중앙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해 1940년 3월 졸업했다. 그는 중앙고보 졸업 후 일본으로 건너가 니혼(日本)대학(1940~1942) 영문과에서 공부를 했는데 이 때 권투도 하고 또 흑인문학에 깊은 관심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유학을 중도에 접은 배인철은 귀국 후 징용을 피해 중국 상하이로 가서 무역업을 하던 큰형 인복仁福을 도와 주기도 했다.
  그는 상하이에 있는 동안 영국계 학교인 세인트 존스st. Jones대학에서 3개월 가량 다니기도 했는데 그 후 충남 서산으로 밀항해 들어와 광복이 될 때까지 숨어 있었다. 그리고 광복 직후인 1945년 10월 22일 인천에서 신예술가협회新藝術家協會를 결성, 대표로 활동하며 기관지 『신예술新藝術』 발간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신예술가협회는 지금의 인천 중구청 뒤에 있던 일본인 요정 긴스이(銀水)를 접수해 「예술가의 집」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시인, 화가, 조각가 등 20여명이 모여 공동생활을 하기도 했다. 회원은 시인 서정주, 오장환, 희곡작가 함세덕, 화가 김영건, 김만형, 최재덕, 조각가 조규봉, 그리고 월미도에 주둔하던 미군 흑인병사 레이먼 푸렌, 린우드 E 브라운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후 신예술가협회는 문학강연회와 미술전시회를 개최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했으나 그리 오래 지속하지는 못했다.


  광복 직후 그는 인천중 교장이었던 길영희의 권유에 따라 인천중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기도 했고, 또 1947년 2월 1일 인천에서 문을 연 해양대학교 영어교수도 했다. 그는 월미도에 주둔하던 미군부대에 출입하며 흑인시를 발표하기 시작했다. 먼저 1947년 1월 1일 『독립신보獨立新報』에 발표한 「노예해안奴隸海岸- SLAVE COAST」을 보자. 


아프리카 연안 SLAVE COAST 는 아직도 울고 있는가.
깊은 바다 속 물결이 일 때마다 네들의 울음 소리 내고 있는가.


네들의 발과 목 쇠사슬 느리며 햇볕조차
올 수 없는 배창(艙)에 절그럭 절그럭
억매인 쇠우름 가슴을 찌르는구나.


아! 또 발광을 하였다.
또 쓰러져 버렸다
목마른 물 대신에 산채로
동무여 아느냐 산채로 수장을 당한 것이다.


그렇다
천육백십구(1619)년 열두의 흑노黑奴가
화란선和蘭船에 이끌린 다음 첩첩히 쌓인 헤아릴 수 없는 검은 송장이
고향 잃은 몸들이 노예선의 바다길
바다 길을 지은 것이다.


이제는 람주로 바뀐 흑인의 무리
무사히도 돌아왔다 하여 감사제 올리는 교회는 없으나
보이지 않는 쇠사슬 제 몸에 감기여
소리 없는 절그럭 절그럭거리는 소리
일직이 노예장이 펼쳐졌든
뉴육 월 거리에 도살당한
시카고에 흑인의 숨 막히는 따-서는
또 다시 들리는구나.


흑인들이여
젊은 몸 붉은 피 이기지 못하여
파리로 모스크바로 달리는
동모들이여
또한 흑인부대여
이 고장 떠난 자유로운 새 땅에서도 또다시 새로운 노예상
아니 낮 설은 손님마저
SALVE COAST를 그리고 있다.


  그러나 배인철이 본격적인 작품 활동은 조선문학가동맹朝鮮文學家同盟에서 펴낸 『1946년판 연간 조선시집』(아문각, 1947.4)에 「인종선- 흑인 쫀슨에게」를 발표하면서부터 피살될 때까지 5개월 남짓이다. 그 동안 알려진 그의 시는 5편이 전부다. 그 중 4편은 그의 생존 시 발표된 것이고 1편은 인천중학교에서 교사로 함께 근무한 조병화가 그의 사후에 공개함으로써 모두 5편이 되었다. 그 중 1947년 1월 『백제百濟』에 발표한 「흑인녀黑人女」는 백인의 성적 노리개가 된 흑인 여자와 일제의 종군 위안부가 된 이 땅의 여자를 같은 시선으로 바라본 것으로, 무자비한 성폭력에 대한 현실을 꿰뚫어 본 작품이다.


그렇다
네 아름다운 고향, 산과 들
한번 백인의 노예선 찾아간 다음-
이제는
정다히 흐르는 나일강 저녁이 오면
바람 속에 노래 부르는
아아 자연 그대로의 수림樹林 같은 아가씨


뉴욕 거리에, 시카고에, 샤틀에
아니 항구마다 길이 뚫린

촌 주막 뒷거리에서도
고향 잃은 딸이여
시퍼런 눈알 무지한 사나이
술 취한 힐쓱한 허연 놈에게
값싼 알콜에 네 살결 맡기는구나.


넓은 들판에 달빛 젖은
싱싱한 나무
늬들의 노래 들리지 않느냐
네 누이와 어린 동생마저
굵다란 쇠사슬 늘이어
장날이면 암소와 함께 남긴
에이, 그 놈들 노예상까지도


아니다, 아니 그런 것이 아닐 것이다.

달 솟는 밤이면
홧김에 술이래도 퍼부어가지고
달이래도 솟는 밤이면

…내 더운 찌는 듯한 밭과 들
그러나 미칠 듯이 사모 치는
고향 아프리카야!
야자수 서 있는 냇가에는
아이들이 흐르는 별을 쫓는 구나
아아 이놈들의 원수를 언제나…

유리야!


막상 알고 보면 너도 이런 것에 하나이다.
뉴기니, 하와이, 필리핀
누구를 위하여 돌아다니며
짓밟힌 몸이냐

이 땅에서도 우리의 누이를
낯 설은 이토異土에서
원수에게 꺾인 꽃들이
해방이 되었다는 고향에
다시금 창살 없는 우리(襤)에
네 몸을 함부로 던지는구나.


아프리카 깊숙한 삼림서 풍기는
그윽한 이름
유리야여!
새로운 생활을 위하여 동무들과
함께 싸우지 않는 날
비 쏟는 밤거리 아니 눈발 치는
길거리마다
수천의 유리야, 수십만의 유리야가
온 세계 흩어져 운다.


  동생인 배경숙 인하대 명예교수는 “백인들의 흑인멸시에 대해 오빠는 유난히 분개했다. 오빠가 권투를 한 것도 일제에 대항하기 위한 측면이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배인철은 우리나라 사람이나 흑인을 괴롭히며 거들먹거리는 백인들을 뛰어난 권투실력으로 혼내주곤 했다. 그는 유명한 권투선수인 조 루이스의 권투시합을 소재로 하는 「쪼 루이스에게」라는 시를 쓰기도 했다.


쪼 루이스에게
- 세계권투선수권 쟁탈전 쪼 루이스 대對 빌이 콘: 6월22일 양키스타디움


흑인의 쫀슨이 일러주었다.
그리하여 바쁜 듯이 뛰어다니며
빌이 콘이 루이스에 도전을 하였다.
오는 초여름 6월 스무 이튿날
뉴욕 양키스타디움 특설 링에서


이렇게
흥분된 어조로 펑펑 눈 내리는 거리
만나는 친구마다 일러주었다.
 
내 흑인부대와 함께
눈바람이 씽씽 부는 밤
조그마한 온돌에 값싼 소주로
따스한 마음 나누게 되면
코리언 위스키, 브라보 코리언 위스키
떠들며 노래하던 소박한 그네들
함부로 춤추며 때로 취한 나머지
색色있는 슬픔에
울음 먹는 동무
브라운이여-
테일러
쫀슨
캠프
모리스여
이제는 고향이라 돌아간
너희들의 나라
다시금 새로운 박해나 닥쳐오지 않는가
내 여기 사는 벗들과
흑인부대 보낸 뒤
소리 없는 응원 마음껏 보낸다.


루이스여
그대의 팬이라 그런 줄 아느냐
날씬한 폼 레프트 펀치에
새로운 전법 백 스트레이트에 통쾌하여 그런 줄 아느냐


링 사이드에 펼쳐지는 백선白線
또한 그 후에 이루어지는 흑선黑線


- 없애라 니그로
- 죽여라 깜둥이
그렇다
너의 레프트
네 뒤에는 수만의 레프트 검은 주먹이
수천만의 검은 원한이
약한 여인마저 모진 마음으로
늬 펀치와 함께
빌이 콘을 때리는 것이다.
빌이 콘을 넘어뜨리는 것이다.

빌이 콘이 백선으로
아니 노예상으로 보이는 것이다.


루이스여
굳건히 살아라 늬 몸이
너 하나의 몸이 아니라
너와 함께
새로운 세계를 향하여


BLACK AMERICA는 아니
온 세계 약소민족은 싸우고 있다.


  배인철의 흑인시에는 흑인들의 이름이 자주 나온다. 위 시에서도 「쪼 루이스」를 비롯해 「빌이 콘」, 「브라운」 등이 나오는데 그가 즐겨 사용하는 이름이 「브라운」, 「존슨」, 「테일러」, 「캠프」, 「모리스」 등이다. 이들은 실재 배인철과 교류가 있던 사람으로 보인다. 「인종선」의 경우 「흑인 쫀슨에게」라는 부제가 붙어 있으며, 또 배인철이 죽은 이듬해 실제로 「브라운」이 명동에 나타났는데, 배인철이 죽었다는 말을 듣자 눈물이 핑 돌더니 “우리 고향에 같이 가자던 그 친구가….”하고 말을 잇지 못했다고 한다.


인종선人種線 
- 흑인 쫀슨에게


밖에선
세차게 씽씽 눈발이 휘모라치는 밤
조그마한 온돌에 발을 녹이며
두터운 입술에서
굵다란 눈물방울 떨치는
쫀슨 너의 이야기…


쇠사슬 느리여
흑노黑奴의 아들로써 시장에 팔려온
이제는 고히 쉬는 할아버지는


시카고에 활발한 인종선에
무지한 백인이 던지는 벽돌에
집 앞에서 쓰러졌으며
이리하여
원수를 갚겠다는 미친 아버지마저
식칼에 찔리어
길바닥에 자빠져 버렸다.
원통함이여
색色있는 슬픔이여
윗집에선 여인마저 깍귀에 찍혔다.
탄환은 사정없이 가슴팩이를 뚫는구나.
하수도에 떠가는 검은 송장들


멀리 흑노黑奴가 닦아 놓은
오클라호마에 캘리포니아 텍사스에
지주는 이들의 몸뚱이에 못을 치고 난
나무에 불을 집히는…


몇일이 지난 뒤 살육은 그쳤다.

그러나
또다시 뒤끓는 백인의 폭도들
언제나 인종선은 끝 맡는 것이냐


쫀슨이여.
홀어머니의 자식이여, 그렇다
인종선은 늬곳에만 있는 줄 아느냐
동무들이 찬미하든 이 땅에서도
나라있는 곳마다
온 세계에 전선은 펼쳐 있는 것이다.


  배인철 사후에 공개된 작품이 「흑인부대黑人部隊」다. 시인 조병화가 1963년 2월 《현대문학》 98호에 「흑인부대와 배인철」이라는 글과 함께 발표한 것으로, 그가 언제 쓴 것인지는 정확하지 않다. 


린우드 에이 뿌라운, 에리니오스 테일러
젬스 에이 쫀슨, 윌리 캠프, 모리스


오늘같이 조용히 비 내리는 밤이면
그대들의 이름이
한 절의 서글픈 서정시
한 방울 비 한 방울은
그대들의 이름을
먼 나라로 싣고 온 한절의 노래


고요히 눈을 감으매 홀로
늬들의 노래 so long
나직히 부른다.
그대들을 보낸 뒤
쓸쓸한 나에게 또 한 가지 기쁨은
밤이면 노래하고 때로 쉬던
이 방에 내 또한
노래하고 때로 자던 흑인부대며
보지 못한 그대들의 아가씨들이며
그대들의 박해사迫害史 가슴 아프며
나는 black boy를
우리말로 옮겨 놓는다.


뿌라운이여
아프리카의 역사를 알고 있는가.
테일러여
쫀슨이여
그리고 켐프는 검은 시를 쓰고 있을까.
모리스는 백인의 밭을 갈겠지.


  배인철의 죽음은 당시 많은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다. 배인철이 자주 드나들던 에덴다방이나 동해루 등 당시 명동에 자주 만나던 사람들도 갖가지 억측과 함께 말이 많았지만 범인은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당시 경찰은 배인철과 함께 총을 맞은 김현경과 얽혀 있던 박인환과 김수영 등 여러 문인들에 대해서도 수사를 했지만 사흘 만에 ‘치정에 얽힌 살인’으로 결론짓고 미결인 상태로 수사를 종결했다. 김현경은 후에 시인 김수영의 부인이 됐다.


  배인철의 주검은 수도극장 앞 누이 집에 잠시 옮겨 놓았다가 그의 집이 있는 인천으로 옮겨 주안 신기촌 공동묘지에 묻혔다. 장례날은 서울에서도 많은 문인들이 참석, 직접 상여를 매고 공동묘지까지 갔다. 무덤 앞에는 ‘인민의 시인 배인철의 묘’라는 비석도 세웠다. 하지만 그 후 중앙도자기 공장 등 묘지 주변지역을 개발할 때 묘지의 이장과 함께 비석은 땅에 묻히고 말았다. 그리고 장례를 지내고 얼마 되지 않아 배인철과 가까웠던 시인 김광균이 조시를 발표했다. 생전에 배인철은 선배인 김광균을 좋아해 따라 다녔는데 어느 때는 밤중이고 새벽이고 김광균의 집을 찾아가 문을 흔들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시인 임호권林虎權도 추모시 「검은 슬픔」을 발표했다.


“주안朱安묘지 산비탈에도 밤벌레가 우느냐/너는 죽어서 그 곳에 육신肉身이 살고/나는 살아서 달을 쳐다보고 있다/가뭄에 들 끊는 서울거리에/정다운 벗들이 떠드는 술자리에/애 다, 네 의자가 하나 비어 있구나/월미도月尾島 가까운 선술집이나/미국가면 하숙한다던 <뉴욕 할렘>에 가면 너를 만날까/이따라도 “김형 있소”하고 마구 열고 들어서지 않을까/네가 놀러와 자던 계동 집 처마 끝에/여름달이 자위를 넘고/밤바람이 찬 툇마루에서 부질없는 생각에/ 담배를 피우고 있다/번역한다던/<리초드 라잇>과 원고지 옆에 끼고/덜렁대는 걸음으로 어딜 갔느냐/철쭉꽃 피면/강화섬 가자던 약속도 잊어버리고/ 좋아하던 <존슨> <브라운> <테일러>와 맥주를 마시며/저 세상에서도 흑인시黑人詩를 쓰고 있느냐/해방 후/수 없는 사람이 죽어간/인천 땅 진흙 밭에 너를 묻고 온 지 스무날/시를 쓴다는 것이 이미 부질없고나“ 


─김광균의 「시를 쓴다는 것이 이미 부질없고나」 전문


“그 모습 별처럼 꺼졌는가 ? 니그로의 시인아/빛깔을 통해/약소민족의 슬픈 노래하던/그대 육체란/흑인부대 실은 열차이던가/남기고 간 많지 않은 시편들은/목메어 외치던/서글픈 기적 소리//…//색色 있는 비애/테프는 끊기지 않았는데”  


─임호권의 「검은 슬픔」일부


  지금까지 알려진 배인철의 시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노예해안奴隸海岸 (독립신보, 1947.1.1)
2. 「흑인녀黑人女」 (백제 제3호, 1947.2)
3. 「쪼 루이스에게」(문화창조 제2호, 1947.3/신천지 제4권 제1호, 1949.1)
4. 「인종선人種線」 (연간 조선시집, 조선문학가동맹, 1947.4)
5. 「흑인부대黑人部隊」(조병화, 「흑인부대와 배인철」, 현대문학 98호, 1963.2)


  그러나 배인철의 작품은 이 밖에도 「어린 쿠리」 등 몇 편이 더 있는 것으로 알려져 앞으로 흑인시가 더 나타날 가능성은 있다.

 

  [참고문헌]
『明洞- 歲月따라 바람따라』 이봉구, 삼중당 1967.8.5
『인천인물 100人』 경인일보특별취재팀, 다인아트 2009.2
  책 읽는 인천, 문학속 인천을 찾다,  경인일보 취재팀,  2014.6





*신연수 시인. 인천문협 회원, 근대서지학회 회원. 법률신문사 이사 겸 총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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