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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호/아라산문/남태식/죽변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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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부관리자
댓글 0건 조회 793회 작성일 19-07-04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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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호/아라산문/남태식/죽변항


죽변항
―남태식 시/ 나유성 작곡


남태식



  죽변항은 우리나라에서 바닷가에 대나무가 있는 몇 안 되는 항구다. 공식적으로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 죽변리이다. 대나무가 많은 바닷가 또는 대숲 끄트머리 마을이라 하여 죽빈이라고 하다가 죽변 또는 죽변동이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죽변은 울릉도에서 직선거리에 있어 한때는 포경선들이 줄을 섰던 곳이라 한다. 죽변초등학교의 교문이 고래의 턱뼈로 만든 것이라 하니 가히 당시의 번창이 짐작이 된다. 울진대게와 오징어, 정어리, 꽁치, 명태잡이로 이름난 항구였다. 지금은 울진대게, 가자미, 복어, 성대, 곰치가 주로 잡힌다. 죽변항의 북동쪽 나들목인 ‘대가실’초입에 자리한 죽진산은 화살촉을 만드는 ‘죽전’군락지이다. 동구여지승람에 죽전은 울진지방의 특산물로 기록되어 있으며 고려조에는 국가차원에서 관리해온 주요자원이었다. 대가실의 앞바다는 최근 SBS드라마 ‘폭풍속으로’촬영지로 주요관광코스가 되었다. 그 아래로는 ‘대나무숲오솔길’이 있어 ‘용의 꿈길’까지 대나무길로 추억을 남길 수 있다. 「포구의 인사란 우는 게 인사러냐, 죽변만 떠나가는 팔십 마일 물길에~」 이라는 노래는 남인수씨가 부른 ‘포구의 인사’로서 바로 죽변항을 대상으로 한 노래다. 죽변 동쪽 바닷가에 있는 마을이 후릿개라고 불리는 후리포이고 후릿개 서쪽에 있는 장이 죽변장이다. 매월 3일과 8일에 서는 5일장은 당연히 해산물이 주거래가 되었다. 물론 지금은 예전의 영광은 사라지고 그저 명맥을 유지하는 상태다. 여기에서 내 눈길을 끄는 것이 있었다. 울진군이 이 예전의 상인들 자취를 따라가고 그들의 장돌뱅이 문화를 함께 느낄 수 있는 “십이령 보부상 주막촌‘을 운영한다는 것이다. 나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예전의 기생문화를 현실에 반영하여 한 곳에 지역별 기생촌을 만들어 외국인에게 우리의 음주문화가 얼마나 풍류가 있었는지 보고 체험하는 그런 촌을 만들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그런 촌이 만들어 진다면 촌 입구에서부터 서울촌, 경기도촌, 강원도촌, 경상도촌, 전라도촌, 충청도촌, 제주도촌, 황해도촌, 평안도촌, 함경도촌 이렇게 방문하다 보면 얼마나 풍류의 멋을 지역별로 느낄 수 있으며 우리나라의 음주문화를 세계에 알릴 기회도 있을텐데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물론 이제는 현역을 떠났으니 부질없는 상상이 되었는데 울진군에서 내가 생각한 아이템과 비슷하게 운영된다고 하니 너무 반가운 일이다. 이 주막촌은 옛보부상들이 흥부장, 울진장, 죽변장에서 미역과 건어물, 소금, 생선 등 해산물을 구입해 봉화, 영주, 안동 등 내륙지방으로 행상을 갈 때 넘나들던 열두 고개를 따라가는 것이다. 주막촌은 울진금강소나무 숲길(1구간)로 십이령 중 네 고개의 출발길에 위치해 충분한 휴식과 먹을거리를 두었으며 관광객들이 지역의 문화와 역사를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관광상품으로 보부촌을 조성했다고 한다. 자세한 사항은 보부상 주막촌 홈페이지(Http://bobusang.uljin.go.kr)를 방문하면 된다.
  어린 남태식은 이곳 울진에서 자랐다. 그가 자랐던 매화리는 바닷가와는 15리길이었으나 어린 남태식은 바다를 무척 좋아했다. 바다로 가는 오솔길은 꿈길이었다. 만질만질한 모래언덕을 넘기도 하고 모래언덕에 피어난 이름 모를 꽃도 반가웠고 너덜겅에 메뚜기들이 얼굴에 부딪히는 것도 좋았고 어린 소나무가 민머리로 햇빛을 받아드는 모습도 좋았다. 그러다 고개에 오르면 드디어 푸른색이 온통 펼쳐진 까마득한 땅을 보게 된다. 어린 남태식은 흥분하여 발걸음을 재촉하다 그만 넘어져서 구르고 만다. 그래도 그는 툭툭 바지를 털고 얼굴에 묻은 흙을 두 손으로 쓱 문지르고는 바다로 향해 달린다. 이젠 푸른 세상이 바로 앞이다. 바람마저 마구 달리게 만든다. 이 세상이 그저 하얀 모래와 푸른 땅으로 만들어진 것이 신기할 뿐이다. 바닷가에 다다른 어린 남태식은 바닷물로 첨벙 뛰어들면서 바다가 땅보다 더 신비한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해변을 따라 속살 같은 모래, 바위들, 그리고 갯벌에 수많은 움직이는 생물들. 어린 남태식은 밤이 되도록 신이난다. 늦었다는 것을 그제야 알고서는 무서움을 달래면서 집으로 달음질을 친다. 이제 시인은 크면서 죽변항을 찾게 된다. 시인이 머무는 곳과는 50리길이다. 이제 시인은 바다가 하나의 실체로 다가온다. 단순한 사물이 아닌 너와 나의 벗으로 다가온다. 이건 나중에 시인이 도시생활을 하면서도 자꾸만 바다를 그리워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바다가 없이 무의미한 생활이 영위된다. 결국 시인은 스스로 직장을 고향의 지역으로 희망한다. 이제야 고향에 온 시인은 물 만난 고기다. 그리고 하루하루가 축제다. 죽변항의 시는 어릴 적 고향을 떠난 마음을 삭이며 이렇게 탄생한다.
  「나 돌아가리/돌아가 포장마차에서/다정한 친구와 술 한 잔 걸치리/만성체증으로 더부룩한 속/단숨에 가라앉히는 비린 바다내음/만선이 아니어도 왁자하고 싱싱한 꿈/활어처럼 펄떡이며 파도처럼 늘 출렁이는/그대에게 나 돌아가리//몸 가는 곳에 마음절로 가지만/마음 간다고 몸 절로 가는 것은 아니리/지금은 비록 마음 따라 먼 길 떠나 돌지라도/몸 섞어 마음까지 섞은/그대에게 나 돌아가리/생각만으로도 아랫도리 촉촉 젖는/술 걸치지 않아도 알싸하게 취하는/가슴 아리는 그대에게 나, 나 돌아가리/돌아가 포장마차에서/다정한 친구와 가볍게 술 한 잔 걸치고 가듯/가벼운 걸음으로 그대 찾으리/내 욕정의 시작과 끝인/그대 죽변항 아, 그대여」

  이 시에서 시인은 직장생활로 어쩔 수 없이 도시생활을 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바다로 돌아가리라는 것을 주문처럼 달고 살았다. 항상 돌아가지 못하는 현실에 가슴 한켠에는 위장병이라도 생겼는지 모르겠다. 먹어도 더부룩하고 소화가 되지 않는 그런 불편한 소화력은 마음대로 행동을 하지 못하는 어쩔 수 없는 안타까움이었으리라. 그러다가 잠시라도 한가한 기운이 들면 다시 고향을 그린다. 생각만으로도 그 흐뭇함이 어릴 적 바닷가에 뛰어들어 바지 끝으로 올라오는 바닷물을 그려보며 이미 아랫도리는 촉촉이 젖어있다. 게다가 날아오는 바닷바람은 비릿한 향을 품으며 알싸하게 몸이 취하게 만든다. 그러다 번 듯 정신이 들면 그것은 항상 허탈만이 남는 것이었다. 그래서 시인의 시어에는 안개, 무덤, 뱀, 벽이 유독이 많이 나타난다. 바닷가 마을의 뽀얀 안개, 그리고 마을에서 멀지도 않은 곳에 햇빛을 받아 단내가 나는 묘지, 거기에 마을주위나 밭으로 수시로 나타나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게 했던 뱀. 그건 아예 어린 시인에게는 동화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추억은 도시생활에 의해 그리고 사회전반에 일어나는 부조리한 기운에 차츰 시인이 가지고 있던 이미지도 바뀌어 진다. 안개는 먹장구름으로 연상되고 묘지는 무덤으로 바뀌고 자신이 뱀과도 같은 도시의 흉물이 되고 곳곳은 벽으로 둘러싸이게 된다. 더 이상 도시에 머물면 자신이 괴물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시인은 고향을 돌아가는 것을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반드시 돌아가야만 하고 돌아가 이제까지의 기억에서만 존재한 바람과 묘지, 뽀얀 안개를 만나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돌아가 예전 친구들과 술 한 잔 걸치며 그동안의 담았던 사연을 파도처럼 풀어내리라. 그것만이 시인에게 시작과 끝인 간절한 연인 죽변항이고 인생인 것이다.
  누구든지 남태식 시인처럼 동경하는 그 무엇이 있다. 그것이 고향일수도 있고 동네 소꿉친구일 수도 있고 초등학교 여선생님일 수도 있다. 고향에서도 느티나무 일 수도 있고 밤 따러 가는 순간일수도 있고 잠자리채로 고추잠자리를 잡는 순간일수도 있고 평상에 둘러앉아 늦은 저녁을 먹으며 모닥불을 피워놓고 옹기종기 하루를 얘기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 소중한 순간은 나에게는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고 잊히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치열한 현실에서 순간순간 이를 잊고 현실에만 매달려 목숨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래도 희망이 있는 것은 잠시나마의 시간에 소중한 나만의 추억을 떠올려 보는 것이다. 대부분은 이를 가슴에만 새겨두고 있으나 시인은 이를 시로서 마음을 뱉어 버렸다. 이 시를 담백하게 나유성 작곡가가 작곡을 하였다. 전체적으로 과거를 끌어오는 듯한 전반부 도입에서부터 파도냄새가 물씬 나도록 한다. 그리고 가수는 분위기에 맞게 독백을 한다. 독백은 ‘나 돌아가리’에서 ‘나 돌아가리’로 끝난다. 그런 다음 파도치는 장단과 함께 몸 가는 곳에 마음 절로 가지만 마음 간다고 몸 절로 가는 것은 아니라고 항변한다. 마음은 이미 죽변항에 있어 몸이 어디로 가든 변함없이 그 마음 절로 가지만 마음이 간다고 몸까지는 절로 가지 않는다고 자신의 신세를 냉정하게 가두어둔다. 그러면서도 지금은 비록 그렇더라도 몸 섞고 마음까지 섞은 그대에게 돌아가리라고 다짐한다. 그 다짐은 옛날로 돌아가게 하고 생각만으로도 아랫도리가 촉촉하게 젖게 하는 고향바다가 가슴 아린다. 이 노래는 그래서 바다를 바라보고 술 한 잔 걸치면 더욱 멋지게 다가오리라. 죽변항은 절절한 마음을 담담하게 바다와 대화하듯 편하게 전개해 가고 있다. 그리고 그 마음의 끝은 아~아, 하고 절규하듯 죽변항을 불러일으킨다. 이 시의 작곡가 나유성은 경희대학교 교수이며 한국의 중견 작곡가이다. 그가 시노래에 흠뻑 빠져 10여년을 함께 ‘시를 노래하는 사람들’의 법인체인 사단법인 문화예술소통연구소에 지원을 하고 있다. 대단한 열정이다. ‘시를 노래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한 분씩 한 분씩 자신의 재능을 보태어 함께 나아가고 있다. 우리의 일상이 시를 노래하듯 노래가 시가 되듯 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이다. 오늘은 여기에서 마무리하려 한다. 죽변항을 듣기 위해서는 문화예술소통연구소 사이트에 들어가 「커뮤니티>시를 노래하는 사람들>시창작 노래(전체)」로 들어가면 된다. 바로 찾으려면 게시판 상단에 검색기능이 있으니 이를 활용하면 된다. 바닷가로 휴가를 갔다 온 분이라면 창밖을 내다보며 차 한 잔 마시면서 들으면 더욱 좋을 것이다.





*남태식 2003년 《리토피아》로 등단. 시집 『속살 드러낸 것들은 모두 아름답다』, 『내 슬픈 전설의 그 뱀』, 『망상가들의 마을』. 제6회 김구용시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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