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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호/신작시/정안나/숟가락이 숟가락을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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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정안나
숟가락이 숟가락을
손가락이 숟가락을 잃어버렸는데
손가락으로 밥을 먹어야 한다니
중얼중얼 물컹물컹해
첫술은 손가락을 닦아
고수레하는 숟가락으로 시작한다니
내 의지는 잃어버리고
외면하지도 즐기지도 않는 반찬에
날아가는 밥 한 그릇에 날아드는 손이 여럿
국이 없어 다행
발이 아니라 다행
숟가락이 숟가락을 잃어버리는
중얼중얼과 밥 사이
물컹물컹과 반찬 사이
소똥을 밟으면 발랄해진다는
소가 길에 나와 쳐다봐
흙옷을 입은 아이가 웃다가 쳐다봐
요정의 그림자가 길어지는 몽족과 함께
입보다 손에 집중해
손의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겪는 여행
재래식 화장실 바닥을 기어 다니다
숟가락으로 가는 여행은
잃어버린 길을 찾아가는 것
천 년 전 발랄한 시절에는
손가락이 숟가락이었다
발가락은 젓가락이었다
모른 척 하기
스무고개에서 그는 곧바로 들킨다
주어도 목적어도 없이 동사만으로
한마디에 답이 들어 있다
오답을 부르고 오답에 열광하는 이들에게서
나는 알아맞히고 싶지 않아
어쩔 줄 모르는 나인
어디 있다 나타난 나인
이쯤 누가 정답을 불러야 하는데‘
못 맞추면 상처를 쏟아낼지 몰라
필요 이상의 이빨은
들킨 모서리에서
자꾸 걸리는 나 같은
그래서 불합리하게 말하는
그래서 튀어나온 적의는
모른 척 하고 싶은 내 뒷면
오답을 향해 또 다른 동사를 휘두른다
동사 하나 돌려 말할 줄 몰라
줄줄 흘리고 흘린 곳을 들키는
악어 속의 병아리는
정안나 2007년《 시와사상》으로 등단. 시집『 A형 기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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