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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호/신작시/윤종희/지금도 꺾이지 않는 갈대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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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윤종희
지금도 꺾이지 않는 갈대
어둠이 지나고 나면
허기를 채우기 위해 흔들림 속으로 들어간다
물속에서, 물 밖에서 어디서나
버려야할 기억이 계속 흔들리고 있다
저수지 바닥을 드러낸 곳에
작은 물 흐름을 거스른 채
부레 견주기에 지쳐버린 큰 잉어가
진흙탕에서 하늘을 바라보고 뻐끔거린다
푸르게 앙감질하는 둑의 잔디
순리를 거스른 끈은
사막의 모래가루를 만들며
마두금 음률에 맞춰 눈물 짖는다
숨겨진 진실은 저수지 둑 너머에 잠기고
잊혀버리기 쉬운 것들이 잊어버려지지 않고
그 해 만들어 놓았던 사막의 기류가
자리를 차지하며 아직도 하얗게 빛난다
가로수
둥근 네 발이 스스럼없이 굴러 찢긴 나무의 그림자를 밟고 가는 사이
바튼 기침을 뱉어내며 견디고 있다
지켜보기에도 두려울 만큼 서늘한 형벌을 온몸으로 받아가며
거침없이 자란 잔가지도 바튼 기침을 뱉어내며 오늘을 견딘다
무수한 발자국들이 나무의 그림자를 밟고 가는 사이
귀를 찢는 날카로운 소리를 거두기 위해
떨리는 가지를 길 쪽으로 더욱더 기울인다.
검은 거리에서 손과 손 마주잡고 거침없이 도로를 향하여 뻗어간다
뻗은 만큼 잘려버릴 거추장스러운 날갯짓이라도 거침없이 나아간다
잘려버려질 헛된 날갯짓이라도 거침없이 나이테 키워간다
속으로 키운 나이테는 푸른 꿈을 지켜낸 가로수 공간의 자서전이다
윤종희 2008년 《조선문학》으로 등단. 원주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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