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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호/신작시/조규남/골목을 들어올리는 것들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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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조규남
골목을 들어올리는 것들
계단마다 상처투성이다 부서지고 깨어져 떨어져나간 잇바디마다 숭숭 바람이 들고 난다
이 길을 오르는 동안 꺾어진 계단 닮아가는 아낙
누군가 휘어지려는 허리 밟고 오르나
뼈마디 욱신거리는 소리 두터운 난간처럼 둘러선다
주저앉은 하늘에 이마주름 짓눌렸다 펴지던 계단이 날개 모양이다
저 아래 바닥부터 산정까지 날개와 날개를 이어놓은 것 같다
시멘트에서 떨어져 나온 모래들이 몸 비비며 우는 골목길, 구부렸다 펴는 날개의 연대기 층층이 쌓여 있다
해 떨어지면 어둠이 가장 먼저 찾아드는 마을
상처 입은 부리로 켜놓은 등불이 하늘 환하게 밝혀주는 곳
어스름 속으로 묻히는 숨소리가 둥지 야무지게 떠받치고 있다
깃털 위에 지어놓은 집 흔들리지 않도록 꺾어지고 꺾어져 계단이 된 날개들 헤져 너덜거리는 골목 들어 올리고 있다
콩고강
전시장에 오랑우탄과 나란히 피그미족이 전시되었다
뉴욕 브롱크스 동물원에서도 벵가를 원숭이 우리에
가둬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게 하였다
숲을 지붕 삼아 흐르는 콩고강이 운다
침략자들 총구는 금맥을 조준하고
피그미족은 강에서 떨어져 나온 지느러미
강을 거스를 수 없어 키가 자라지 않는다
작살로 강을 번쩍 찍어 올리고 싶어도
걸음걸이가 느려 강에 닿지 못한다
겁에 질려 경련을 일으키는 시조새 고주파에
대서양이 새파랗게 질리고
인도양이 흐느끼고
태평양 연안 참았던 서러움 뜨겁게 토해내도
떨어져나간 지느러미 찾지 못해
소금기를 받아들일 수도
하늘을 바라볼 수도 없는 콩고강
끓어오르는 울화 어쩌지 못해
숲의 등고선 붙잡고 불뚝거린다
철조망에 갇힌 어미 보노보가
새끼를 껴안은 화면 속 숲이 덮인다
4,700킬로미터 콩고강이 내 속으로 흘러든다
침략자의 피도 오랑우탄의 피도
피그미족의 피도 붉다고 노을빛으로 물든다
태초에 뒤집힌 탁한 물살 그대로
어디서나 품을 넓히고 숲을 거느리고 흐른다
조규남 2012년 〈농민신문〉 신춘문예 당선. 소설집 『핑거로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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