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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호/신작시/김선환/떠날 때를 아는 것은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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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김선환
떠날 때를 아는 것은
파도가 몰려와 안부를 묻고
구름도 백록담에 걸려 나부끼고 싶은
수 백만 년 시간 속에 잠자던 신비의 섬
오랜 정적이 퇴적되어 침묵으로 굳어진 길에
소란스럽게 떠들며 몰려드는 사람들
욕망도 같이 와서 오름 속으로 숨어든다
올레길 따라 가며 거품들이 뭉쳐 구르고
애드벌룬으로 떠오른다
해안의 파도가 인사하는 것도 안중에 없다
잘린 산허리에 불쑥 뿌리박고
자라기 시작한 탐욕이
탐라왕국 천년을 바다 속으로 가라앉힌다
해안의 풍광이 가림막 처지고
속닥거리는 음모가 퍼져나간다
다가오다 멈춘 파도는 저 멀리서 서성거린다
말없이 서있는 섬이 산이고
산이 섬인 일체 하나의 땅
섬과 산이 분리되기 시작한다
지긋이 억누른 섬의 분노가
가끔은 혹독한 눈 내리고
비바람을 일으켜 범접할 수 없는 곳임을
알려 주지만 소용없는 일
흔들리는 손짓
밤나무 우듬지
돌돌말린 낙엽 하나
몸을 웅크린 채
떨고 있다
푸른 옷 입고 와서
생명을 만들어 놓고
아쉬움이 남아
바다를 향해 손짓한다
아직도 밤나무 밑에는
지난 가을의 흔적이
입을 벌린 채 오래된
속살을 드러내고 있는데,
울돌목을 돌아 온 바람이
이제 가야 한다고
나무 가지를 세차게
흔든다
옆집 한가한 소나무
봄이 무르익어 꽃필 때는
인사도 없이 사라져 버리니
아직 때가 아니라한다
김선환 2016년 《문학사랑》 신인작품상. 2016 《현대시조》 신인상. 2017년 《아동문예》 문학상. 현 한남대학교 화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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