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작품(전체)
25호/서평/이외현/자유로운 가벼움으로 살고 싶다
페이지 정보

본문
25호/서평/이외현/자유로운 가벼움으로 살고 싶다
이외현
자유로운 가벼움으로 살고 싶다
-오석만 시인의 시사진집 「시간 냉장고」를 읽고
인간에게 휴식이란 무엇일까? 사람들은 항상 바쁘고 힘든 가운데서도 ‘쉼’을 갈망한다. 한 주가 시작되면 월요일에서 수요일까지는 매우 더디 가는 것 같지만, 목요일이 되면 희망이 보이기 시작하고, 금요일 오후가 되면 잠시 무거운 짐을 내려놓아도 될 만큼 마음이 편안해진다. 금요일 저녁에는 지인들과 술을 한 잔 해도 이틀이나 쉴 수 있어 부담감이 없고 마음이 여유롭고 평안하다. 주말에는 집에서 낮잠을 자거나 TV를 시청하는 사람들도 있고, 등산을 하거나 여행을 하면서 도시를 벗어나 자연을 바라보며 즐기는 사람들도 있다. 각기 자기 방식대로 편히 쉬고 마음의 여유를 얻으면 그것이 휴식이라고 생각한다. 충분히 휴식을 취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금세 활력을 되찾고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한다. 하지만, 쉬는 날이 없이 일하는 자영업자나 주말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주말에 쉬는 것이 사치로 여겨질 수도 있다. 사람도 기계와 비슷해서 육체와 정신을 너무 많이 사용하면 닳고 고장이 날 수 있다. 짬짬이 자기만의 휴식 방법을 찾아 몸과 마음을 쉬게 하여 체력이나 정신이 번아웃burn out 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젊을 때는 자신의 목표를 향해,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더 큰 집을 사기 위해, 여유 있는 삶을 누리기 위해, 출세를 위해, 등 다양한 이유로 삶의 현장에서 앞만 보고 달려간다. 그렇게 열심히 달리다가 문득, 하는 일에 회의가 느껴지고, 다람쥐 쳇바퀴 도는 생활이 끝이 보이지 않는다고 느껴질 때, 모든 것을 내던지고 떠나고 싶어진다. ‘여기는 어디, 나는 누구’의 심정이 될 때가 있다. 어느 날, 하늘을 올려다보거나 계곡물을 내려다 볼 때, 길을 가다가 작고 예쁜 야생화가 눈에 보이기 시작할 때, 나의 “얼어있던 마음도/답답한 도시도/새소리마저도” 초록을 그리워하며 연둣빛 꿈을 꿀 때, 우리는 초록세상으로 돌아가고픈 마음이 든다.
추위 속 희망들이
꽁꽁
얼어 있던 마음도
답답한 도시도
새소리마저도
초록으로 변해가는
연두빛 노래 속
초록사랑
―「초록사랑」 부분
남자들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나는 자연인이다’나 ‘집시맨’ 같은 TV 프로에 빠져든다. 몸과 마음에 상처가 있는 자연인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산으로 들어가 누리는 자유와 소소한 일상이 부럽다. 또한, 집시맨이 정처 없이 집시카를 몰다가 경치 좋은 곳에 자리 잡고 자연과 더불어 숙식하는 여유가 부러운 것이다. 그들 속에 그 장소에 나의 감정을 이입시킨다. 직접 갈 수는 없지만 TV를 보면서 대리만족을 느끼며 자기를 위로한다. 그리고 나도 언젠가는 저들처럼 훌훌 털고 자유롭게 살리라 다짐도 해 본다.
오석만 시인은 오랫동안 은행에 근무하였고 퇴직한 후에는 세계 40여 개 나라와 우리나라의 곳곳을 여행하며 작은 들꽃, 새소리, 물소리에 “삶의 무게에 짓눌린 시간들을” 헹구며 자유로운 가벼움을 만끽하며 사진도 찍고 시도 지으며 살아가고 있다. 그동안 열심히 살아온 본인에게 주는 보상일지도 모른다.
그가 모로코 여행 중에 카사블랑카 골목에서 노는 아이들을 보며 시상을 떠올린 시를 읽어보자. 아이들은 유로버스에 몰래 몸을 실기도 하고 “지브롤터 해협만 건너면 꿈은 이루어지리라” 생각하고 이곳을 떠나 갈매기처럼 날기를 희망한다. “검은 구름 속에서 피어나는 햇살”이 드러나는 흑백에 가까운 칼라사진을 통해 시각적 효과를 준다. 카사블랑카 아이들을 「지브롤터 갈매기」로 표현하며 그들이 처한 현실과 꿈을 일깨워주며 독자가 쉽게 이해하고 다가갈 수 있도록 하였다.
날아오르고 싶다
카사블랑카 골목에서 노는 아이들은
밤새도록 유로버스 트렁크에 짐짝처럼 숨어들어
갈매기로 날아오르려 한다
지브롤터 해협만 건너면 꿈은 이루어지리라
검은 구름 속에서 피어나는 햇살처럼
찬란히 바다를 물들게 할 수 있으리라
달리는 차에 매달리며 얼마나 단련을 했던가
쾌속정에 탈 수만 있다면
갈매기처럼 높이 날 수 있으리라
날아오르자
가벼운 바람이 되어 날아오르자
바다를 가르며 사라지는 파도 위로
높이 날자꾸나
지브롤터 갈매기는
카사블랑카 골목 모퉁이에서
밤을 지새우고 있다.
―「지브롤터 갈매기」 전문
오석만 시인의 시사진집에는 유독 새, 바다, 구름, 하늘과 같은 단어와 이에 해당하는 사진이 많이 등장한다. 새가 되어 바다를 도움닫기로 날아올라서 구름을 헤치고 하늘 높이 자유롭게 날고 싶다는 시인의 마음이 무의식 중에 반영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오 시인의 『시간냉장고』 시사진집을 살펴보면 사진은 왼편, 시는 오른편에 배치되어 시와 사진을 함께 감상할 수가 있다. 왼편 사진이 오른편에 있는 시에 대한 이해를 도와 독자들이 여타 시집보다 훨씬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다, 한두 편만 감상해도 마음이 차분해지고 사진의 잔상이 남아 깊은 여운이 남는다. 최근에는 사진과 함께 5행 이내의 짧은 시를 써서 표현하는 ‘디카시’라는 문학 장르가 새롭게 생겨났다. 디카시의 경우 디지털 기기에 익숙한 현대인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짧은 시에 이해를 돕는 사진을 실어 영상에 익숙한 독자의 눈길을 사로잡고 창작의욕도 북돋을 수 있어 새롭게 시도되는 시 분야 중의 하나이다. 오 시인의 시는 디카시보다는 길고 일반시보다는 짧은 편이라 둘의 중간쯤에 속한다고 할 수 있겠다. 일반적인 시의 무거움에 비해 시각적 효과를 주어 무게를 덜어낸 가벼움이 느껴진다. 여기서 가벼움이란 시적 내용의 가벼움이 아니라 수식어가 붙지 않아도 될 만큼 시와 사진이 담백하고 진솔하게 다가와서 누구나 이해하기 쉽다는 의미로 한 표현이다.
요 놈이 살아 있을까
엊그제 넣어 두었던 몇 마리
시간들이 궁금하여
살짝 냉장고 문을 열어 본다
꽁꽁 얼어버린 추억
기억하고 싶은 얼굴
고이 간직하고픈 시간
그리고
멍하니 바라보았던 하늘
그냥 흘러 보냈던 강물
이런 것들이
두 눈을 부릅뜨고
나를 보며
꽁꽁 얼어 있구나
살아 돌아올 수 있을까
흐물흐물
녹아가는 기억들을
냉장고에 넣어두고
시간을 해동하며
냉장고 문을 열어 본다.
―「시간 냉장고」 전문
시집 제목으로 정할 만큼 의미가 있는 「시간 냉장고」라는 작품은 읽는 이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한다. 나의 “꽁꽁 얼어버린 추억/기억하고 싶은 얼굴/고이 간직하고픈 시간”은 지금 기억 냉장고 어디쯤에 처박혀 있을까 생각해본다, 한 번도 해동한 적 없이 만년설이 되어가는 시간도 있을 것이고, 어쩌다 한 번 해동하여 꺼내보고는 다시 냉장고로 돌아간 녀석도 있을 것이다. 이 시사진집에서 ‘시간 냉장고’는 우리의 오래된 기억일 수도 있고 누구나 하나쯤은 가지고 있었던 낡은 카메라일 수도 있다. 휴대폰 카메라에 밀려 어딘가에 처박혀 있을 우리의 추억들, 언젠가 아름다운 풍경과 순간들을 찍었던 사진들이 그 안에 저장되어 잊혀진 채 세월이 흘러가고 있지는 않은지 새삼 되돌아본다.
그동안 “멍하니 바라보았던 하늘/그냥 흘러 보냈던 강물”은 나의 기억냉장고에서 쉽사리 잊혀졌고 “이런 것들이 두 눈을 부릅뜨고 나를 보며” 꺼내주기를 바라는 건 아닐까. 그래서 우리는 중년이 되면 어릴 적 얼려두었던 이런 기억들을 해동하여, 각박한 현실을 벗어나 철없던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지도 모른다. TV 예능 프로에 <냉장고를 부탁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출연자의 집에 있는 냉장고를 가져와서 그 냉장고 안에 들어있는 음식 재료들로 출연자가 원하는 요리를 15분 만에 뚝딱 만들어 내는 요리예능 프로그램이다. 오늘 나의 실제 냉장고 속에는 무엇이 저장되어 있는지 들여다본다. 또한, 나의 ‘시간 냉장고’에는 어떤 시간들이 채워져 있는지 궁금하다. 그 냉장고 속의 재료들을 사용하여 누구나 좋아할만한 맛있는 시를 짓고 싶다. 오석만 시인의 『시간냉장고』 시 사진집을 보면서 사진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시가 어렵고 난해하여 시를 읽는 독자가 많이 줄었다고 한다.이처럼 시와 사진이 어우러진 시집은 일상에 지친 독자들에게 시각적 위안과 마음의 안정을 줄 수 있어 시를 알리기 위한 좋은 대안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9월, 창밖에 뛰노는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나뭇가지에 걸리고, 간혹 한두 잎 떨어지는 낙엽이 부지런히 가을을 실어 나르고 있다. 오늘 하루 이 아이들의 시간냉장고에는 무엇이 채워졌을까.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려야 켜켜이 쌓인 시간을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소환할 수 있을까.
*이외현 2012년 《리토피아》로 등단. 시집 『안심하고 절망하기』. 전국계간문예지 작품상 수상. 아라문학 편집장..
- 이전글25호/서평/정령/노동현장의 한 귀퉁이를 베어 문 시적 발현 20.01.29
- 다음글25호/서평/정치산/남해, 푸른 언어를 낚아 시로 밥을 짓다 20.01.29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