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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호/서평/정령/노동현장의 한 귀퉁이를 베어 문 시적 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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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호/서평/정령/노동현장의 한 귀퉁이를 베어 문 시적 발현
정령
노동현장의 한 귀퉁이를 베어 문 시적 발현
― 이강길 시집 『야생으로 돌아간 고양이』를 읽고
이강길 시인은 한 생애를 통틀어 약력에서도 보여주듯이 치열하게 노동현장에서 노동자의 삶을 걸어왔고,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없는 그늘진 곳까지 꿰뚫어 보는 시적이고 세밀한 안목으로 대상이나 사물을 깊이 있게 관찰하여 대장간의 대장장이처럼 언어를 벼리고 담금질을 해놓았다. 이강길 시인은 또 노동자의 입장에서 보는 시각과 시인의 서정적인 감각이 공존하는 특유의 관계능력으로, 사물과 사물과의 관계나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나 인간과 사물간의 연계 속에서 공존의 사실을 가지고 충만한 시적 소재들을 가져와 직설적으로 혹은 해학적으로 풀어내었다. 마치 대장간에서 연마하듯이 작업을 해 놓았는데, 시인의 언어 연마작업은 크게는 삶에 대한 총체적이고 대의적인 면을 관찰하듯이 옮겨 놓았고, 작게는 어린아이의 감각으로 보는 소견을 서정적인 측면에서 직접적인 화법을 통하여 회상하도록 하였다. 시인의 감수성 짙은 언어의 연마작업능력은 직접적인 경험을 통한 시적 발화의 작업으로 꾸밈없이 시의 민낯을 소화해내었다. 그래서 시인은 문장이 삶 속에서의 일터이고 밥이고 물인 것처럼 날 것 그대로 시 속에 담금질을 해 놓았다.
이렇듯 시인은 사람과의 관계를 저버리지 않고 수많은 사람들을 문장 속에 벼림질을 해놓았고, 시인이 바라는 인간적인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의 소중함도 담고 있다. 이것은 시인이 가진 인간미와 시인이 작업현장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관계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여겨진다. 어차피 사람은 관계 속에서 관계를 이루어가며 서로 어우러져 살아가야 하는 존재임을 시인은 시를 통해서 닦달망치로 때리고 있는 것이다. 관계의 소중함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과 자연이 언어적으로 시적으로 관계를 맺게 되면 시는 자연히 삶의 한 가운데에 자연과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어떤 신비한 힘을 발휘하게 된다. 그 이유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다 관계를 맺고 상생을 해야 하는 존재라는 의미일 것이다.
여기에 관계를 맺고 상생할 수밖에 없는 다섯 자매 이야기가 있다. 봄에 피는 꽃들을 가족으로 전환시켜 아주 신선하고 해학적이며 동화 같은 이미지가 그려지는 시가 있다.
겨울 동안의 권태와 고요가 나뭇가지 끝에서 깨어날 무렵, 바람이 섬진강 주변 마을을 한 바퀴 돌아 나옵니다, 그러면 벌들은 윙윙거리고요, 꽃들은 여기저기서 들썩거리기 시작합니다.
마을 초입에 사는 김 씨 아저씨는 딸이 다섯인데요, 그때부터 안절부절 못 합니다. 큰딸 동백은 붉은 립스틱 바르고 바닷가에서 끼를 발산하고요, 둘째 산수유는 하이힐 싣고 꽃몽오리 스친 바람처럼 읍내를 서성거리고요, 셋째 매화는 빨간 속눈썹 군데군데 붙이고 길 가는 남자들에게 윙크하고요, 기미 낀 얼굴에 잔뜩 분칠한 넷째 개나리는 끼를 못 참고 며칠 전 가출했고요, 골반바지 너머로 분홍팬티가 언뜻 보이는 막내 벚꽃은 꽃축제 가서 아직 안 돌아오고 있어요,
이장님은 이들이 걱정되는지 아침부터 방송하고 있고요, 부녀회장님은 오토바이 타고 읍내를 찾아다니고 있어요, 바람난 이 가족 좀 찾아주세요! 누가 좀 말려 주세요.
―「바람난 가족」 전문
시인의 시적 호기심은 자유자재로 정을 두드려 칼과 창을 연마하는 단조보다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자유로운 시인의 상상력은 읽는 내내 꽃잎이 하롱하롱 떨어지는 걸 미소를 지으며 보게끔 잘 표현하였다. 이렇게 기쁘게 시를 읽는다면 다 좋겠다.
그러나 시인은 자연과 사람을 동일시하는 반면에 사람들의 삶 속에 파고 들어가 직접적인 노동자들의 직업군이나 종류에 상관없이 그들의 삶 속으로 오롯이 들어가 관찰하고 주워 담아 옮기고 벼르기까지 시적 연마의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사람을 좋아하는 시인은 주로 일하는 사람을 보고 일터에서 돌아오는 일꾼의 하루를 쫓아가, 그의 삶을 오로지 시 속에 담았다. 그리고 관찰자의 시선보다 자신이 직접 경험한 시선으로, 시 속에서 실제적인 인물의 사례중심으로 시적 소재를 잘 풀어놓았다. “산 입구 국수집 아궁이에서는 장작이 타닥타닥 터진다/달짝지근한 냄새가 졸음에 겨운 강아지를 깨운다/지구대에서 출동한 경찰관이 개나리를 긴급체포했다. 「장작 타는 날」”처럼 시인은 시를 통하여 노동자의 삶을 날 것 그대로 보여준다. 다음에 인용할 시를 읽어보면 시인의 사람, 노동자에 대한 깊은 정을 더 알게 된다.
어둠이 정지선에 붙잡히는 차량처럼 밀려오고
술집 네온사인들이 불을 켤 무렵
공사장에서 퇴근했다가 다시 출근한다.
실밥 풀린 야구모자, 빈둥거리던 스마트폰이
도시 뒷골목으로 파고든다.
앞바퀴에 뒷덜미를 붙잡힌 취객들을 찾아 나선다.
골목에 거품이 빠질 때면
앞 유리창에 눌렸던 숫자들이 깨어나고
적적했을 전조등이 눈을 뜬다.
술 취한 혀들을 밤새 실어 나르던 남자
발목이 시큰거리고 풀린 눈꺼풀 너머로
돌아갈 차는 보이지 않고
급브레이크 소리만 환청처럼 들린다.
―「대리운전 기사」전문
가장 낮은 곳의 소리를 듣고 가장 힘든 삶을 조명하고 직시하는 시인의 눈이 안타까움을 자아내는 장면이다. 술 취한 사람을 대리하여 차를 몰고 집 앞까지 척척 데려다주는 운전기사의 직업도 대리이고, 살짝 이야기가 비껴갔지만, 아이들을 대신한 반려견과 반려묘의 운명도 대리인 것이다. 시인이 말하는 대리의 삶을 벗어난 동물들은, “오늘은 엄마가 막내를 목욕시킨 후 팔베개까지 내주면서 낮잠을 주무십니다. ‘아이고 내 새끼 예쁘다 예뻐’ 하시면서 말입니다. 월말에 카드 명세서가 나올 때마다 엄마의 한숨이 깊어 가는데 녀석들은 여전히 볼을 비벼댑니다.”(「애가 다섯이나 되는 여자」)에서처럼 반려동물이라는 표현으로 아이를 대신하여 양육되고 아기처럼 대우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이런 사회현상은 아이가 부족한 인구부족국가를 만들었고, 그에 따라 초 고령 인구가 많은 국가이변사태를 초례하는 계기가 되었다고도 한다. 우리는 지금 그런 사회를 살고 있다. 국가가 초 고령사회가 되면서 또한 직장에서의 은퇴와 가장 가까운 직업이 대리기사가 된 것이다. 드라마 속에서도 비일비재하게 떠오르는 일등 직업인 대리기사는 어느 사이 소시민들의 밥줄이 되기도 하고 퇴직한 노년들의 제2의 인생직업이 되었다.
“술 취한 혀들을 밤새 실어 나르던 남자”는 “발목이 시큰거리고 풀린 눈꺼풀 너머로” 피곤한 노동자의 실상이 여실하다. 어쩌면 나이도 지긋할 테고 손님들은 대부분 자식뻘일 텐데도 이 생활은 날이 밝아도 반복되는 일일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이 지구상의 모루에 올려진 달군 쇠처럼 벼림질과 다듬질을 기다리는 대리인생을 사는지도 모른다. 시인은 시인이 만드는 언어의 대장간 두석장처럼 노동자의 힘겨운 삶을 쉬운 언어의 무늬로 새기고 있다는 증거이다. 시인은 잠시도 눈을 떼지 않고 노동자의 시위현장에서도 언어의 담금질을 하고 있다.
너를 그렇게 묻고 왔다.
떠나기 얼마 전 마지막임을 예감했을까,
눈 껌뻑거리며 시위 현장에서 최루탄을 맞고
쫒기는 투사처럼 눈물을 흘렸다.
아직 체온이 남아 있음에도
포클레인으로 땅을 파고
비닐 홑이불 깔고 그곳에 누이고 왔다.
등이 반달처럼 휜 너를,
네가 쟁기질하던 자갈밭 보이는 언덕에 누이고 왔다.
네가 그렇게 떠나던 날
가지가 휘어지도록 눈을 받아낸
소나무가 조문이라도 하듯 고개를 숙인다.
―「첫눈」 전문
이강길 시인은 늘 노동자와 함께하고 있다. 노동자의 눈물을 함께 닦고 노동자의 마지막 가는 길까지 함께 했다. 노동자의 노동현장이 아닌 시위현장에서는 노동자의 삶에 대한 의지가 더욱 빛날 수밖에 없다. 처절하고 치열한 시위현장의 전투 속에서 노동자인 시인의 손은 동료의 죽음에 닿아 있고 죽음으로 인한 결심은 더욱 담금질을 더 했을 것이다. 노동쟁의, 노동쟁취, 노동단합 결의대회 등 노동집회는 역사가 그리 깊지 않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빠른 경제성장과 더불어 노동현장에 뛰어들어 보면 가혹한 갑과 처절한 을의 시위 현장은 언제나 비장함이 넘친다. 그러나 노사 간의 합의는 한 번도 단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모두들 피의 역사라 할 만큼 희생이 따르고 피눈물을 쏟아 얻어낸 소중하고 고결한 순간들을 우리는 기억할 것이다. 시인은 노동현장의 처절한 환경과 참혹한 현장을 많이 보아왔을 것이다. 노동시위 현장은 그래서 아주 치열하다. “등이 반달처럼 휜 너를/네가 쟁기질하던 자갈밭 보이는 언덕에 누이고 왔다.” 목이 따갑고 숨이 막히고 벅차다. 그런 노동시위 현장이 눈에 그려져 필자인 나도 고개를 숙이고 조문하게 만든다.
그러나 시인은 언제나 활기차고 눈빛이 초롱초롱하다. 왜냐하면 천직인 시 창작 공부시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어둠이 노을의 끝을 덥썩 물면, 전주 우석빌딩 십사층 형광등이 깜박거립니다. 그 불빛 속으로 들어서는 사람이 낡은 가방을 교탁에 누이고 수강생들을 향해 시집을 꺼내듭니다. ≪동시마중≫ 2013년 3·4월호에 게재된 시를 낭송합니다.
할아버지 참 바보 같다/불알이 다 보이는데/쭈그리고 앉아서 발톱만 깎는다/시커먼 불알*
작품을 다 읽기도 전에 까르륵 웃어대며 양볼에 살짝 패인 보조개를 시구詩句에 또르르 굴립니다. 작품토론 시간에는 빨간 펜을 사정없이 들이댑니다. 어쩌다 술판이 벌어지는 날이면, 게슴츠레한 눈가에 서린 쓸쓸함이 불빛 아래로 뚜둑 떨어지는 사람입니다. 수척해진 가로수 잎이 젖는 밤이면 창가에 혼자 남겨진 사람입니다. 은하수 뒤편에 숨겨진 동심童心을 따라 자박자박 걸어갑니다. .
―「시창작교실」 전문
수업이 끝나고 뒤풀이할 시간만 기다리는 시인도 있고, 자기가 써 온 시를 발표할 때 다들 반응이 어떨까 설레기도 하는 시인도 있다. “작품토론 시간에는 빨간 펜을 사정없이 들이댑니다.” 이러한 시간에 아주 재미난 시를 가져온 사람은 단연 돋보인다. 시인은 시인이 재미있어 하는 시간이 시를 공부하는 시간인 것을 이 시를 통해 말해주는 것이다. 왜냐하면 시인은 시를 짓는 대장장이이고, 대장간의 언어적 모루를 껴안은 시인이기 때문이다. 거기다 시인은 창작에너지가 넘쳐 시를 즐기며 흔한 멋 부리기를 못하는 사람이다. 그건 순수한 운명을 타고난 사람이라는 증거이다. 그렇다고 아무것에나 흔뎅거리지 않고 시적 의미를 단단히 굳히고 시적인 이상도 지닌 사람이다. 시인은 시 창작교실의 분위기를 빌려서 자신의 진솔한 시적 에너지를 발산하는 것이다.
2. 미세한 언어의 시적발화
이강길 시인의 눈에 초점을 맞추고 따라가다 보면 현미경의 광학렌즈처럼 사물을 보는 시야가 대단히 미세하고 섬세한 것을 보게 된다. 시인의 이러한 바라봄은 세계와 나 사이뿐만 아니라 나를 둘러싼 외부세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시인의 시각이 따뜻하기 때문에 외부세계와의 관계단절이 아니라 외부세계를 아우르는 모든 세계와 따뜻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미세하고 따뜻한 시인의 시각이 시적 연마작업을 통하여 발화를 일으키는 것이다. 시인의 미세한 언어의 시적발화가 극대화 된 「종이컵」을 보면 시인의 시적 온기가 어떻게 생명을 불어넣었는지 보자.
고속도로 휴게소 가장자리
컴컴한 커피 자판기 안에서
갇혀 지낸 날이 많았다.
불 꺼진 사무실에서
하루를 돌아보며
무인등대처럼 서 있을 때도 있었다.
한번쯤 방파제 끝까지
종이비행기처럼 사뿐히 날아오르고 싶었을
하얀 새 한 마리.
광화문 시위 중 촛불이 돼 물결치는데
첫눈이 도로 백선점선 부분까지
내려와 문안을 한다.
―「종이컵」 전문
혼자 힘으로는 해결하지 못하는, 자신을 스스로 돌볼 수 없는 “한번쯤 방파제 끝까지/종이비행기처럼 사뿐히 날아오르고 싶었을/하얀 새 한 마리.”같은 사람들을 볼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시인은 자유를 꿈꾸던 시절에 광화문 시위 중에 촛불이 되어 동시에, 누군가의 빛이 되어 날아간 노동자의 짧은 생을 조심스럽게 그려넣었다. 굳이 학자들의 이론이나 저명한 평론가들의 말이 아니어도 미천한 사람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소중하게 알아보는 섬세한 광학렌즈를 가진 시인의 눈. 이강길 시인은 노동자의 촛불이다.
생명이 없는 사물에 이르기까지 별의별 일들을 다 겪었음을 잊지 않고 투시하여 바라보는 시인의 따뜻한 시선은 생명이 없는 사물과도 인간이 공존해야함을 아는 인간존중의 흔적이다. 흔한 자판기의 종이컵을 세상 바깥으로 끄집어내어 종이컵이 가진 무수한 의미와 말들을 시인은 놓치지 않고 읽어 내려가고 있다. 그리고는 묻는다.
늘 필요하지만 살피지 않은 당신을, 항상 있으려니 했다가 작은 꽃을 보듯 당신을 살펴본다. 시인은 작디작고 하찮은 존재에 생명의 활기를 불어넣고 노동자들의 안부까지 묻는 것이다. 노동자인 당신은 지금 편안하신가?
슬픔은 방치된 자전거 바퀴에 튀는 빗물이다.
사라져 가는 늦가을 붉은 노을이다.
이빨 빠진 공원의 벤치이다.
잎을 잃은 가로수와 그 곁을 어슬렁거리는 고양이다.
늙은 애완견의 고름 같은 눈곱이다.
노숙자가 덮는 신문지에 묻은 김치 국물이다.
폐경기 여인의 탄력 잃은 속옷이다.
요양원 옥상에 내걸린 햇볕의 가장자리다.
슬픔은 더이상 쓸쓸하지도 외롭지도 않지만,
그런 의미와 분위기인 것들 옆에 비스듬히 누워 있다.
늦가을 산비탈에 덩그러니 놓인 뱀은
세상을 잠시 떠나는 것이기에 잠들지 않는다.
슬픔도 그저 바람처럼 잠시 스쳐갈 뿐이다.
―「질긴, 그 질긴」 전문
이강길 시인의 노동자의 아픔이 고스란히 담긴 절정의 표현이다. a는 b다 하는 식의 은유나 직유의 표현이라고 하기는 약간 아쉽고, 인생을 달관한 삶의 자세가 메타포를 이루며 깃들어 있다고 하겠다. 꾸미지 않은 듯 꾸민 문장들의 표현은 시인의 시적 수준을 단단하게 받혀주고 있다. 시인이 말하는 슬픔은 “문이 닫히기 전/귓전에 비명처럼 울리는 목소리/아버지 불 들어가요, 빨리 나오세요! 빨리,”(「열반涅槃」)에서처럼 “그저 바람처럼 잠시 스쳐갈 뿐이다.”하고 말한다.
시인이 보는 슬픔은 가까운 곳에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 늘 노동자들의 옆에서 그것도 가장 낮은 곳에서만 나오는 슬픔을 보는 시인은, 늘 노동자와 함께 가까이에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시인의 마음이 흘린 눈물만큼 따뜻하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시인의 시편들에는 힘든 노동자들의 여러 형태의 직업들이 다양하게 그려지고 있다. 그래서 시인의 시를 보면 시인은 참으로 많은 사람들을 경험하고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 왔을 것으로 여겨진다.
하늘 우러르기가 부끄러운 것인지,
온통 어두워진 세상 탓인지,
북극항로 쇄빙선 항해사였다가
지금은 쓰레기 소각장에서 일하는 김장수 씨,
며칠 째 뿌옇다. 침침하다.
어두워진 하늘을 똑바로 볼 수 없다.
시내버스가 하얀 마스크 쓴 무리를 수거해
쿨럭쿨럭거리는 봄날,
몇 걸음 채 걷기도 전에 거칠어지는 호흡,
숨이 가쁘다.
살수차 급하게 다녀간 거리를 거닐며
문득 시장에서 좌판을 까시는,
호흡기 질환 앓는 김 할머니 안부가 궁금해진다.
물도 사 먹게 되더니 인자 숨도 내 맘대로 못 쉰다니.
할머니 독백이 귓가에 달라붙는 거리를
들고양이가 헐떡거리며 지나간다.
생의 변곡점에 선 자동차의 매연이
목련 꽃망울 서쪽을 스치는데,
먼 북극 쇄빙선이 서서히 멈춰 선다.
―「공존의 그늘」 전문
마음이 따뜻해지는 시편이다. 이 외에도 「원 플러스 원」, 「외로움이 외로움을 밀치다」, 「점순이 누나」들은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로 훈훈하게 잘 그려놓았다. 우리 모두는 다 같은 하늘아래 같은 지구상에서 생존하고 있다. 몇 억 년 전부터 상생하는 일임에도 인간은 인간끼리 사물은 사물끼리 나무는 나무끼리 사는 일에 익숙해졌다. 하지만 그런 상생의 과정에도 편안하게 존재할 수 없는 존재들이 있다. 그러나 이강길 시인은 빼놓지 않고 그들의 안부를 묻고 관심을 갖는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임을 여실히 드러낸다. “시내버스가 하얀 마스크 쓴 무리를 수거해/쿨럭쿨럭거리는 봄날/몇 걸음 채 걷기도 전에 거칠어지는 호흡/숨이 가쁘다/살수차 급하게 다녀간 거리를 거닐며/문득 시장에서 좌판을 까시는/호흡기 질환 앓는 김 할머니 안부가 궁금해진다.”시인은 그런 아주 낮은 곳까지 아낌없는 관심을 내보이며 시적이미지로 드러냄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상기시킨다. 우리 모두는 공존해야한다는 것을. 시인은 우리들이 잘 보지 못하는 존재들의 공존여부를 평이하게 시적 발화 작업에 투입함으로써 잊혀져가는 것들을 되새기게 하며, 개인주의로 물든 현실 사회를 따뜻한 시적 언어로 투영하여 환기시킨다.
3. 일상에서 퍼 올린 시적언어의 이미지
시인이 시인인 자신을 탐구하려면 타인을 공부해야 한다고 한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이강길 시인은 그 방법을 옳게 잘 활용하고 있다. 하여 관습적인 사고와 상상을 거부하고 시적인 의미의 현실적 이미지와 일상적인 소재들로 시인의 따뜻한 마음의 진정성이 시 속에 잘 연마되어 나타난다.
설 연휴 햇살이
스레트 지붕을 비낄 무렵이면
국민학교를 겨우 졸업하고
서울 변두리 양장점에서 일하는
누나의 손은 바빠진다.
어머니는 모처럼 참기름 냄새 흐르는
광을 부지런히 오가고,
아버지는 밤새 윗목을 지킨
화롯불만 뒤적거린다.
강아지는 마당을 서성대는
나를 졸졸 따라다니고,
골목 끝 황소는 열차 타러 가는
누나를 건성건성 바라본다.
마을 어귀에 잠시 정적이 흐르고
나는 점점 멀어지는 궤적을 쫒는데,
모퉁이를 돈 용산행 완행열차가
시야에 막 들어오기 시작한다.
―「귀경歸京」 전문
고향과 떨어져 살았던 시인의 가정사가 훤히 보이는 추억의 귀경길이 시각적인 이미지로 포착되는 시다. 도시로 이사 온 필자의 어린 시절에도 귀경열차는 우리 언니 오빠들과 누나와 여동생들의 발끝에 눈물이 나게 했었다. 한 달 전부터 예매해야 하는데 예매하려면 하루 전부터 밤을 새워 줄을 서야 했다. 열차를 타려는 귀성객들의 열기는 명절을 앞두고 일상의 풍경이 되어왔다. 그러나 스마트한 요즘에는 앱 하나로 예매하고 결재하여 역전까지 달려갈 필요도 없고 줄을 설 필요도 없게 되었다. 하지만 귀경할 때에는 그 풍경이 다르다. “어머니는 모처럼 참기름 냄새 흐르는/광을 부지런히 오가고,”눈물을 훔치시며 과일이며 밑반찬을 보따리보따리 이고 지고 챙겨 역전대합실로 따라 나선다. 발끝은 느려지고 소리 없는 눈물바다로 꽉 찬 역전대합실의 명절 풍경은 어머니들의 배웅으로 가득했었다. 그러고는 “모퉁이를 돈 용산행 완행열차가/시야에 막 들어오기 시작한다.” 할 적에 차마 떨어지지 않는 손끝을 흔들고, 발끝을 무겁게 돌려야 했다.
요즈음의 귀경풍경은 예전의 정서와는 사뭇 다른 풍경으로 이어져 역전대합실의 “모퉁이를 돈 용산행 완행열차가/시야에 막 들어오기 시작한다.”는 먼 이야기로 되어가고 “골목 끝 황소는 열차 타러가는/누나를 건성건성 바라본다/마을 어귀에 잠시 정적이 흐르고”처럼 휘잉 지나가 버린 자동차의 뒤를 그저 바라보는 지경이 된 것이다.
이러한 귀경풍경은 참으로 오랜만에 대한 것이라 아련하다. 오래되었다. 약속한 시간 안에 가족과 명절을 보내는 이런 풍경은 시인이 가진 따뜻한 인간미와, 두루두루 폭넓게 바라보는 사랑의 시선과도 직결된다. 시인의 사랑의 눈으로 본 공단의 모습은 어떠할지 함께 가보자.
붉은 수수밭 사이를 기어
허기질 대로 허기진 강을 건넜다.
물뱀 몇 마리가 지나가고
저체온증에 시달려야 했다.
브로커들이 득실거리는 먼 땅을
아슬아슬하게 넘어 밟은 남녘,
딱딱한 의자에서의 공포감이 흐른 후,
임대아파트, 정착금 수천만 원 남짓,
꾼들에게 그 돈 일부는 떼이고,
일부는 노모 생활비로 북에 보냈다.
강을 넘어온 사람에겐 빈 그림자만 따른다.
큰애는 몇 년째 직업훈련원 계단에서 논다,
둘째는 대학교 내 패여진 벤치가 친구,
아내는 가끔 순대국집 접시하고 대화한다.
주유소에서 일하는 나는 손님이 내던지듯 주고 간 잔액 없는 체크카드의 의미를 아직도 모른다.
찬 서리 내리던 날 또다시 강을 건넌다.
한참을 걷다가 숨을 고르며
철새 뒤편의 강둑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 대한민국으로 넘어왔던 탈북자가 다시 북한으로 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언론보도에 의하면 이들은 자본주의체제에 대한 부적응과 북한당국이 북한에 남겨진 가족들을 협박하고 회유하는 과정에서 이를 못 견디고 돌아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개성공단·5―또다시 강을 건너다」전문
앞서 시인의 약력에서 보다시피 시인은 인천남동공단, 개성공단, 동탄신도시조성 등 주요 국책 사업현장에서 일했다는 사실만 봐도 대단하다. 그런 시인의 일에 대한 열정과 인간존중의 마음이 이 시 속에 자연그대로 생생하게 녹아들어 있다. 시인의 시적연마의 발화능력으로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꽃피우는 관계의 꽃을 초연超然하게 날 것 그대로 드러내어 마치 우리가 그 일을 해 보기라도 한 것처럼 잘 풀어 놓았다. 철저히 소외되었다고 믿어온 북한의 실상을 시 속에 생생하게 담은 이강길시인의 개성공단의 연작시만 봐도 충분이 고려하고 남을만한 일이다. 인용문의 각주에 담은 내용만 하더라도 북한의 실상이 가슴 아프게 저려온다. “찬 서리 내리던 날 또다시 강을 건넌다/한참을 걷다가 숨을 고르며/철새 뒤편의 강둑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소름이 돋는다. 부적응자의 아픔이 고된 삶의 뒷덜미를 후려치는 듯이 아프다.
DMZ 비무장 지대 넘나들며 드는 의문 한 가지,
한 해 대한민국 음식물 쓰레기 처리 비용 8천억 원,
이로 인한 경제적 손실 약 20조 원,
이 돈이면 북한 주민들 식량 문제는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개성공단·7―어떤 의문」 전문
시인의 마음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포용적으로 여기는 마음 그대로 진중하고 속이 깊게 나타난다.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일들을 탈북자들은 겪으며 넘어오지만 실상은 부적응과 북한의 회유로 다시 넘어온 땅을 역으로 넘어가는 일이 종종 생겨난다고 한다. 시인은 특이한 상황에서 겪은 일련의 사건들로 사실에 입각하여 시의 소재를 주워와 연마하고 담금질을 하였다. 시인의 특이하고 신기하리만큼 생소한 경험들은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새로운 북한의 실상에 눈을 뜨게 할 것이다. 시적 언어로 매끄럽고 순탄하게 짠 구성안에 북한의 이질적인 요소들을 시각 이미지화하여 마치 현장에 있었던 것처럼 느끼게 해준다.
시인의 시적인 언어들과 현장의 실존적인 부분이 맞닿아 사상의 차이에서 오는 국가적인 이질감을 해소하도록 드라마틱한 여러 장면들을 시 속에 고스란히 담아 시를 읽는 이로 하여금 새롭고 신기한 경험을 하도록 하였다. 시인의 말이 곧 실현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게 생겨나는 시이다. 시인의 독특하고 남다른 시선은 사람과 사람의 사이뿐 아니라 국가적인 시각의 차이와 사상의 차이조차도 가깝게 만드는 중재자의 초월한 인간미마저 갖게 하는 굳은 의지가 잘 나타나 있다.
4. 시적언어로 만선의 깃발을 달다
시인의 직업에 대한 열정은 이제껏 보아온 시를 통해서 유독 독특하고 남다르다는 것을 익히 알 것이다. 시인의 발상은 여러 가지의 형태로 이루어진다. 여기에 있는듯하다가 거기로 옮겨가서는 전혀 생각지 않은 곳에 나타나 머문다. 신선하고 재미난 발상이다. 그래서 침묵할 수 없다.
북항北港 갈매기가 한 번씩 솟구쳐오를 때마다
유달산 돌 틈에서는 나비 한 마리 날아오르고,
등대에선 별빛이 내려와 번지 점프 한다.
보조개만큼이나 깊은 여인의 목소리가
유성횟집 식탁에 내려앉을 때마다
갈매기가 다가와 깃을 친다.
구례, 하동의 매화와 산수유 사이,
닿을락 말락한 남녀의 어깨 위로
아련한 느낌이 흐른다.
그 해 여름이 가기 전부터
흩어진 여인의 머리카락이 보이질 않는데
정지된 시간 속으로 한 남자가 걸어 들어간다.
―「침묵」 전문
이강길 시인은 모음과 자음의 조화를 요모조모 가꾸며 사용할 줄 아는 멋진 언어의 연금술사이다. 시인이 바라본 세상을 시인의 온기가 들어있는 시선으로 유달산 꼭대기에서 먼 “유성횟집 식탁에 내려앉을 때마다” 갈매기가 깃을 터는 세심하고도 미세한 몸짓도 놓치지 않는다. 이강길 시인의 특유하고도 세밀한 관찰력은 정감이 가득한 눈으로 세상을 보는 마음이 관건이다. “구례, 하동의 매화와 산수유 사이/닿을락 말락한 남녀의 어깨 위로/아련한 느낌이 흐른다”고 보아왔던 그들이 시인의 세밀한 시야에 “그 해 여름이 가기 전부터/흩어진 여인의 머리카락이 보이질 않는데”처럼 변해가는 시간상의 차이까지 시인은 조용히 목도하면서 참견하지 않고 침묵하고 있다. 그러고는 “정지된 시간 속으로 한 남자가 걸어 들어간다.”처럼 그 시간에 머물고 싶어 하는 순정적인 애정관을 보이고 있다. 남녀 간의 사랑에 있어서 제삼자는 가타부타 미주알고주알 할 수 없는 것처럼 시인도 멀리서나마 떠나가는 여인을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 그에게는 지난 추억으로 남는 일만 남았으니까.
우리가 지켜본 시인 이강길은 적어도 순정파임이 틀림없는 것이리라.
밤새 추위를 견딘 하현달이 깨어날 무렵
낡은 솜바지와 몸뻬를 주섬주섬 꿴다.
기력이 쇠한 토방에서 낡은 장화 신고
기울어가는 대문을 밀친다.
가래를 몇 차례 길섶에 누이는 할아버지와
고목처럼 허리가 휜 할머니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물때를 맞춰보려 하지만 거리가 좀체 좁혀지지 않는다.
삐뚤빼뚤한 글씨로 출항신고하고 선착장 돌아 나오면,
패여진 손끝을 떠난 낚싯줄이 바다를 유영遊泳한다.
마음만 바쁜 그물 끝에는
다녀간 지 오래인 아들 얼굴만 올라온다.
―「동행同行」 전문
아마도 시인은 첫 시집 『야생으로 돌아간 고양이』를 내면서 수많은 고뇌와 가족과 부모님을 생각했을 것이다. 시인의 시선은 가만히 있지 못하고 늘 부모님이 계신 바닷가와 직장동료들이 있는 공사 현장을 다니며 바쁘게 사람과의 관계를 돈독히 쌓는다. “가래를 몇 차례 길섶에 누이는 할아버지와/고목처럼 허리가 휜 할머니가 앞서거니 뒤서거니,”처럼 어디서건 시인의 정감 어린 시선이 머무는 곳마다 앵글을 당겨 시를 만들어 내어놓는다. 마치 노부부가 느릿느릿 그물을 던지고 세월을 낚듯이 손발을 맞추어 해거름이 다 되도록 바다에서 보고 싶은 자식들을 떠올리는 것처럼.
이강길 시인도 노부부처럼 느릿느릿 걷는다. 왜냐하면 나 외에 주변의 사람과 사물, 자연과 이 우주만물의 관계를 속속들이 세밀하게 관찰하며 살피는 포용적이고 온화한 마음의 소유자이기 때문이다. 면밀하게 들여다보아야하는 천성적인 시인의 시적 관찰력은 앞으로도 계속 우리들의 마음에 위안을 주는 따뜻한 언어의 집을 지을 것이다. “마음만 바쁜 그물 끝에”독특한 이강길 시인만의 따뜻한 시선이 담긴 언어로 끌어올린 시어들이 줄줄이 만선의 깃발을 달고 바닷길을 달려오고 있을 것이다.
*정 령 2014년 《리토피아》로 등단. 시집 『연꽃홍수』, 『크크라는 갑』. 전국계간문예지 작품상 수상. 막비시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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