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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호/신작시/김숙경/섬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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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김숙경
섬
비와 바람이 쉬 멈추지 않는 날이면
뭍의 숨이 가쁘게 죄어오고
바다는 검은 빛이 된다
원래부터 어둠이었던 바다는
어둠과 밝음의 구분을 생명으로 하고
밤과 낮의 경계는 드러나지 않는 물거품으로 한다
날렵하고 매끈하게 유영하는 몸짓의 비밀은 숨겨주고
바람의 그림을 그대로 내려 앉혀 탁본을 뜬다
깊이와 넓이의 어울림을 힘주지 않고 보듬는 섬
어둠으로 포위된 검은 비가 내리는
섬의 출렁대는 뿌리에서
홀연히 솟구친 희멀건 아가리
높은 산을 탐하듯
숨을 멈춘 채 잠시 포효한다
어둠이 밝다
불나방
유리창에 쿵하는 소리에 순간 놀란다
비가 오는가
온몸이 부딪힌 나방
불을 쫓는 간절한 사랑이 죽음이다
길 따라 가는 운전
길잡이가 되어주는 앞차의 후미등
몸과 맘은 뒤로 뒤로만 가고
밟고 있는 악셀레이터
앞으로 가는 자동차
나는 길들여진 사냥꾼이다
터널 속 먹먹한 진공 속에서 영원한 순간을 기다린다
긴 한숨과 더불어 오는 현란한 기억
끝이 없는 것
기다려주지 않는 것
기다리는 것
그들이 쫓은 건 불빛이었을까
불타오르는 욕망이었을까
지울 수 없는 유리창의 실존
김숙경 2016년 《리토피아》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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