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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호/권두칼럼/백인덕/인간의 시는 인간의 것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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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922회 작성일 17-10-27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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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두칼럼


백인덕 (시인)




시여,





이번 호는 독자 제위諸位들과 반세기 전쯤으로 돌아간 포즈로써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시란 삶을 육성시키고, 그러고 나서 매장시키는 지상의 역설이다.”라는 칼 샌드버그의 말이 좀체 뇌리를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드디어, 바람이 차가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약간의 냉기가 도는 방과 한기가 느껴지는 몸과 그리고 서늘한 정신의 한 때를 저는 사랑합니다.
우리 거소居所, 한반도가 곧 송두리째 불타버릴 것처럼 온갖 공포와 불안으로 뜨겁지만, 세계는 곳곳에서 아직도 저마다의 비명을 질러대고 있지만, 그래도 삶은 지속되고 내일 세상이 다 타버린다 할지라도 전 오늘 좋은 시 한 편에 골몰하고자 합니다. 달리, 그것 밖에는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좋은 선배이시자 시인축구단 ‘글발’의 큰누님인 김상미 시인께서 보내준 『오늘은 바람이 좋아, 살아야겠다!』(나무발전소, 2017)라는 일종의 ‘작가노트’를 모은 책에서 이름만 알고 있었던 시인 ‘르네 샤르’를 만났습니다. 그는 초현실주의 운동에 참여했던 대표 시인 중 하나였기에 늘 ‘난해시’를 쓴다는 일종의 편견을 피할 수 없었지만, 어쨌든 2차 세계대전 이후 엘뤼아르와 함께 프랑스 시단을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존재입니다.
좀 길지만 르네 샤르의 ‘시사적인 젓은 시의 가장 나쁜 적이다’라는 명제를 쉽게 풀어 쓴 부분을 앞에 소개한 책에서 재인용할까 합니다.
“시는 인간의 끼니다. 산과 새와의 관계와 같다. 시에 독자가 없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그것은 저널리즘 탓이다. 시는 현재나 과거나 항상 같은 방향이다. 현대시도 과거의 시와 근본적으로 다를 것이 없다. 사물은 그날그날 달라지는 것 같으면서도 크게는 동질적이다. 다만 저질의 시인이 있고 양질의 시인이 있을 뿐이다. 호메로스 이래 시는 달라진 것이 없다. 가령 고대 그리스의 엠페도클레스 같은 시인의 시를 읽으면 오늘 아침에 금방 쓴 시 같다. 라스코 동굴벽화와 마찬가지다. 기원전 2천 년에 살았던 라스코 사람들의 아름다운 벽화를 보면 피카소의 그림과 아무 차이가 없다.” 
시의 본질을 ‘인간의 끼니’에 비유하면서 고대의 시와 현대시의 동질성을 주장하는 그에게서 어떤 낙관성의 힘을 느낍니다. ‘새롭다’는 건 결국 무엇일까? 다시 곰곰 생각해보게 만드는 글입니다. 그리고 폐부肺腑를 찌르는 한마디, “저질의 시인이 있고 양질의 시인이 있다”는 말을 오늘은 “성실, 충직한 시인이 있고, 나태, 무책임한 시인이 있다”로 바꿔봅니다. 이번 가을에는 정말정말 책을 많이 읽어야 할 것 같습니다.






백인덕 1991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본지 주간. 시집 『끝을 찾아서』, 『한밤의 못질』, 『오래된 약』, 『나는 내 삶을 사랑하는가』, 『단단斷斷함에 대하여』, 저서 『사이버 시대의 시적 상상력』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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