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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호/단편소설/박규현/석양무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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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1,080회 작성일 17-10-27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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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박규현 (소설가)




석양무렵





서산에 걸린 해가 마루 뒤로 숨자 금세 어스름이 슬금슬금 내리기
시작한다. 비산사거리가 내려다보이는 관악산 중턱도 예외가 아니
다. 관악산 솔숲엔 벌써 어스름이 몰려와 칙칙하게 진을 치고 있다.
양쪽에 칙칙한 솔숲을 거느린 하얀 건물이 황혼 속에서 머리를 쏙 내
밀고 있다. 헐떡거리며 언덕을 올라온 검은 승용차 한 대가 하얀 건
물 지하로 모습을 감춘다. 시간이 지나면서 하얀 건물이 점차 희끄무
레해진다. 어스름은 관악산 일대를 소리 없이 점령하기 시작한다.
여기가 어디냐? 차에서 내린 최단심 할머니가 둘레둘레 사방을
살핀다. 하얀 건물 지하는 여기저기 형광등이 눈을 부릅뜨고 있다.
‘24시간 CCTV 촬영’이라는 노란색 바탕의 붉은 글씨가 유난히 선명
하다.
어머니가 앞으로 지내실 곳이어요. 며느리가 최단심 할머니의 손
을 잡고 계단을 오르며 밝게 웃는다. 다 왔어? 최단심 할머니는 굳은
표정이다. 계단만 오르면 되어요.

할머니는 사무실에서 간단한 입소 절차를 끝내고 아들, 며느리의 부축을 받으며 원장이 안내하는 곳으로 이동한다. 할머니는 생경한 눈빛으로 걸어가면서도 주위를 살핀다. 어머니, 건물이 깨끗하고 좋네요. 며느리는 할머니를 쳐다보며 만족스럽다는 듯 싱긋싱긋 웃는다. 그래? 그럼 네가 여기서 살거라. 할머니는 미간을 모으며 못마땅한 표정이다. 조금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여요. 처음이라 낯설지요. 아들도 표정이 밝기는 며느리와 마찬가지이다.
원장이 출입문을 열자 안에서 신음 소리가 들리고 역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출입문 위에는 101호, 라는 표지판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들어가세요. 여기가 거처할 곳이어요. 원장은 안으로 들어가더니 빈 침대가 있는 쪽으로 안내한다. 어머니, 피곤하시니까 침대로 올라가서 쉬세요. 며느리가 할머니의 팔을 잡고 부축한다. 할머니는 침대에 누워 깊게 한숨을 내쉰다. 어머니, 긴장을 푸세요. 여기에 계시면 밥도 해주시고, 빨래도 해주시고, 운동도 시켜 드리고, 목욕도 시켜 드리고, 손톱도 깎아 드려요. 아들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 지 할머니는 신음을 토해내는 옆 침대의 노파를 매우 침울한 표정으로 응시하며 대꾸가 없다. 또 다른 침대의 노파들은 송장처럼 누워 천장만 멀뚱히 응시할 뿐 말이 없다. 뭐 하러 왔어. 잘못 왔다고. 속으로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전혀 반기는 기색이 아니다. 애처로운 표정이 역력하다.
문이 열리더니 앞치마를 두른 통통한 사람이 한 명 들어선다. 101호 담당 요양보호사입니다. 환영합니다. 친절히 모시겠습니다. 그가 공손하게 고개 숙여 인사한다. 우리 어머니를 잘 부탁드려요. 며느리가 활짝 웃으며 대꾸한다. 그럼요. 걱정 마세요. 요양보호사의 말투에서 친절이 뚝뚝 묻어나온다. 여러 가지로 고생이 많으시네요. 아들도 한 마디 한다.
아들 내외가 간다고 하자 할머니가 따라나선다. 요양보호사가 할머니를 부축한다. 어머니, 들어가세요. 우리 갈게요. 자주 올게요.

며느리가 할머니의 손을 꼭 잡는다. 그러자 할머니가 손을 뿌리치고
며느리의 손목을 꽉 움켜잡는다. 힘이 느껴진다. 할머니는 그렇게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는 문 입구까지 따라나선다.
어머니, 그럼 잘 계세요. 요양원에서 잘 해주실 거여요. 안내 데
스크에서만 열 수 있는 자동문이 열린다. 아들 내외가 문 밖으로 나
서려 하자 순간 할머니도 따라나선다. 나도 함께 갈란다. 나는 여기
가 싫어. 우리 집으로 나를 데려다 주어. 할머니는 움켜잡고 있던 며
느리의 손목을 놓지 않는다. 어머니, 너무 걱정 마세요. 잘 해주실
거여요. 어머니, 집에 가면 기력이 쇠해 혼자 생활할 수 없어요. 어
서 모시고 가세요. 며느리가 건장한 요양보호사에게 눈짓을 한다.
멍청히 서서 지켜 보던 아들이 돌아서서 눈물을 훔친다. 할머니, 안
으로 들어가시지요. 요양보호사가 아기 다루듯 할머니를 껑충 들어
가슴에 안는다. 할머니는 발버둥만 칠뿐 꼼짝 못한다. 요양보호사
가 할머니를 안고 문 안 쪽으로 들어서자 안내 데스크에서만 열 수
있는 출입문이 덜컹 소리를 내며 닫힌다. 아들 내외는 언제 계단 아
래로 사라지고 없다. 집에 가고 싶다니까. 나는 여기가 싫어. 집으로
보내주어. 할머니, 제가 잘 보살펴 드릴게요. 요양보호사는 할머니
를 안고 101호실로 들어선다. 요양보호사는 할머니를 던지듯 침대
에 내려놓는다. 할머니, 여기는 일단 들어오면 마음대로 못 나가요.
애기처럼 그러시면 안 돼요. 그러면 제가 화낼 거여요. 알았지요? 친
절했던 아까와는 다른 모습이다. 요양보호사는 어린이에게 훈계하
듯 한다. 알았어요. 할머니가 요양보호사를 힐끗힐끗 쳐다본다. 매
우 겁먹은 음성이다. 곧 저녁 식사 해야 되니까 누워서 조금 쉬세요.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거린다. 다른 침대의 할머니들은 송장처럼 누
워 말이 없다. 요양보호사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다. 허리가 욱신
욱신 아프고 두드려 맞은 듯 몸이 무겁고 나른하다. 할머니는 무너
지듯 비그르르 침대에 눕는다. 늙으면 죽어야지 살아서 뭐 하나, 이
렇게 천대 받으면서. 할머니는 누운 채로 주머니에서 꼬깃꼬깃 접힌

종이를 꺼낸다. 사인펜으로 쓴 아들의 전화번호이다. 그녀는 그것을 머리맡에 활짝 펼쳐놓는다. 수시로 읽으며 아들의 얼굴을 떠올려볼 생각이다. 곧이어 요양보호사가 들어오더니 침대에 이름표를 붙여놓고 나간다. 나이 85세, 이름 최단심, 병명 치매, 라고 쓰여 있다. 내가 치매라고? 말짱한 내가. 나를 치매로 몰아 여기 요양원으로 데려왔겠지. 억울하고 분하다는 생각이 들어 할머니는 벌떡 일어나 침대에 걸터앉는다. 휴우, 하고 한숨을 내쉰다. 실내에서는 지린내 같기도 하고 구린내 같기도 한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나에게서도 그런 냄새가 나겠지. 동쪽으로 난 조그만한 창에 칙칙한 어둠이 도배되어 있다.
저녁 식사 시간이다. 일반 병원 병실에서처럼 침대에 설치된 판때기를 올려놓고 그 위에서 식사를 한다. 요양보호사가 여러 할머니들을 떠먹이기도 한다. 최단심 할머니는 자신이 알아서 밥을 떠먹는다. 그러다가 간장 그릇을 통째로 들고 벌컥벌컥 마신다. 할머니, 웬 간장을 그렇게 마시세요? 아니야 이것 물이라고 물이라니까. 물이 좀 짜구만. 할머니는 인상을 찌푸린다.
밤 10시가 되자 요양보호사가 외친다. 지금부터 취침 시간입니다. 형광등을 소등하고 붉은 빛 취침등을 켠다. 요양보호사가 문을 열고 밖으로 사라진다.
최단심 할머니는 눈을 감고 잠을 청한다. 옆 침대에서는 끙끙 앓는 소리가 들린다. 최 할머니는 몸을 뒤척거리며 잠을 이루지 못한다. 길바닥에 누운 듯 잠자리가 불편하고 가슴이 답답하다. 아들을 키우며 바쁘게 살았던 지난 날. 모두가 강물처럼 흘러가버렸네. 되돌릴 수만 있다면. 이제 나에게 남은 것은 불편한 육신뿐. 자식도 다 필요가 없다니까. 어머니, 우리 집으로 가시지요. 제가 모시겠습니다. 아들이 이렇게 말하지 않는다는 사실. 아들이 야속하고 밉다. 그러다가도 어느 순간 문득문득 떠오르는 그리운 얼굴. 그 속에 아들이 끼어 있으니.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라니까. 내가 미쳤지. 기대할 것을 기대해야지. 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머릿속 아들
의 영상을 지워버린다. 뜬눈으로 밤을 새우다 새벽녘 설핏 잠이 든다.
얼마나 잤을까. 눈을 뜨자 창에는 뿌연 아침빛이 머물러 있고 옆
침대에서 웅성웅성 말소리가 들린다. 앞치마를 두르고 고무장갑을
낀 채 마스크를 한 요양보호사가 할머니들의 기저귀를 갈고 있다.
아침 기저귀 케어이다. 워매 이게 무슨 일이래여? 기저귀를 갈다니.
아이구 남세스럽구만. 더럭 겁이 난다. 그녀는 벌떡 몸을 일으켜세
우려 하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잠을 설친 탓인지 몸이 물 먹은
종이처럼 축 처져내려 꼼짝할 수 없다. 시야가 가물거리고 천장의
형광등이 흐릿해 보인다. 그녀는 모든 것을 체념하고 송장처럼 누워
휴우, 하고 한숨만을 내쉰다. 이렇게 기력이 딸린 것을 보면 이제 내
가 죽을 때가 된 거야. 눈에 그렁그렁 물방울이 괸다. 누군가 허벅지
를 툭 치더니 그녀의 바지를 강제로 끌어내린다. 가만히 있어. 휴우
냄새야. 이 양반은 큰 것을 쌌구만. 요양보호사가 거칠게 그녀의 하의
를 모두 벗기고 물티슈로 쓱쓱 닦더니 기저귀를 채운다. 그리고는 새
옷으로 갈아입힌다. 고무장갑이 피부에 닿을 때마다 선득선득 기분
이 나쁘다. 요양보호사는 그녀를 징그러운 뱀 다루듯 한다. 그녀는 불
쾌하다. 노인에게는 감정도 없는 줄 아나. 노인도 사람이라고. 젊은
것들 앞에 아랫도리를 보여야 하다니.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야. 어디
얼굴 들고 다니겠나. 이건 수치야. 그녀는 눈을 질끈 감아버린다.
목욕 케어를 받는 날이다. 본인의 뜻과는 관계 없이 목욕 케어를
받는다. 목욕 케어는 수요일과 금요일 일주일에 2회씩 있는데 노인
들은 냄새가 심하게 나서 의무 사항이란다. 노인들은 샤워실 앞에
한 줄로 서서 대기 중이다. 목욕을 끝낸 할머니들은 알몸에 수건 한
장을 두른 채 대기자들 앞을 지나 각자 방으로 들어간다. 저럴 수가
있나. 어린 아이들도 아닌데. 덜렁거리는 앞을 내놓고 복도를 지나
가야 하다니.

최단심 할머니 들어오세요. 겁이 난다. 할머니는 움찔 몸을 떤다. 귀에 익은 음색이다. 샤워실 안으로 들어가자 역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할머니는 손끝으로 코허리를 움켜잡는다. 샤워실 안은 뿌연 증기로 가득하다. 벽에는 낙서가 어지럽게 휘갈겨져 있고 까만 때가 덕지덕지 묻어 있다. 흉물스러운 샤워실 구석에서 금방이라도 쥐가 한 마리 불쑥 튀어나올 것 같다. 시간이 없어. 신속하게 움직이라고. 요양보호사가 할머니의 팔을 잡고 부축하며 재촉한다. 목욕대 위에 반드시 누워. 명령조다. 기분이 상한다. 그렇지만 어쩌겠는가. 공포스러운 분위기가 할머니를 압도하여 주눅들게 만든다. 고무 앞치마와 고무 장화를 신고 고무장갑을 낀 요양보호사들은 정육점에서 본 것 같은 모습들이다. 동작이 굼뜨자 요양보호사는 할머니를 아기처럼 껑충 들어 안더니 목욕대 위에 눕힌다. 아이고 나 죽네. 할머니가 비명을 지르며 고통을 호소하지만 요양보호사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 요양보호사들이 거칠게 할머니의 옷을 벗긴다. 전라가 된 할머니는 달팽이 모양 몸을 웅크린다. 똑바로 누워. 수치감 때문에 할머니가 머뭇거리자 요양보호사가 강제로 할머니를 똑바로 눕힌다. 샤워기로 미지근한 물을 할머니의 전신에 뿌린다. 아이 차가워. 할머니는 기겁을 하며 외친다. 물을 뿌리더니 전신에 비누칠을 하기 시작한다. 목욕 타월을 움켜잡고 전신을 문지른다. 할머니는 박박 문지를 때마다 신음을 토해낸다. 살살 좀 해주세요. 할머니의 말은 공손하고 간절하다. 그래도 문지르는 강도에는 큰 변화가 없다. 할머니는 이를 물고 참아낸다. 물을 뿌리고 비누칠하고 문지른 후 다시 물을 뿌리면 끝이다.
일어나, 목욕 끝! 요양보호사의 말은 에미가 아기 다루듯 명령조다. 목욕대 위에 일어나 앉자 마른 수건으로 대충 물을 닦아준 후 밖으로 나가라고 손짓한다. 옷을 주세요. 기어드는 목소리다. 옷 없어. 수건을 이렇게 두르고 밖으로 나가라고. 요양보호사가 수건으로 하체를 치마 두르듯 흉내낸다. 최단심 할머니는 시키는 대로 수건 한 장으로 몸을 가린 채 밖으로 나온다. 복도를 지나가는 직원들이 쳐
다본다. 부끄럽다. 몸을 웅크리고 걸어 방으로 들어온다. 이래 가지
고 창피해서 어디 살겠나. 늘그막에 내가 이런 대접을 받아가며 살
아야한다니. 처량한 내 신세. 요양보호사가 입혀주는 옷을 입으며
최단심 할머니는 눈가를 훔친다. 할머니, 침대에 누워. 기저귀 차야
지. 싫어. 그럼 남자 요양보호사를 부를 수밖에. 그때야 할머니는 순
순히 침대에 눕는다.
며칠 동안 침대에 누워 지내자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막힐 것 같
다. 답답해서 크게 숨을 들이쉬면 퀴퀴한 냄새만 후신경을 자극해온
다. 손바닥만 한 창밖으로 하얀 구름이 두둥실 떠간다. 얼마나 자유
롭고 좋은가. 나도 저렇게 떠다니고 싶다. 밖이 그리워 최단심 할머
니는 벽을 잡고 일어나 창밖을 응시하기 위해 까치발을 하고 쑥 고
개를 뺀다. 창에 선팅이 되어 있어 더 이상의 풍경은 확보되지 않는
다. 그리고 창틀에는 굵직한 쇠로 방범창이 설치되어 있어 더욱 답
답하게 느껴진다. 주먹으로 가슴을 탁탁 때려보지만 마찬가지이다.
다른 침대의 할머니들은 쥐죽은듯 잠만 잔다. 수면제를 먹은 것처
럼. 실내에는 농밀한 정적이 흐른다. 외롭고 쓸쓸하여 최단심 할머
니는 휴우, 하고 한숨을 내쉰다. 한줌 햇빛이 그립다. 최단심 할머니
는 침대에서 내려와 지팡이를 짚고 방 밖으로 나온다. 복도 끝 지점
에 뿌연 하늘이 걸려 있다. 그곳을 향하여 할머니는 휘적휘적 걸음
을 옮긴다. 그래 숨이라도 한번 시원하게 쉬어보자고. 바싹 말라버
린 할머니의 육신은 바람에 구르는 가랑잎 같다. 걸음을 옮기면서도
할머니는 주위를 심하게 기웃거린다. 할머니, 복도로 나와서 마음대
로 돌아다니면 안 돼. 알았지? 그래 그래. 할머니는 요양보호사의 말
에 고개를 연신 끄덕거리지 않았던가. 그래 요양보호사가 오기 전에
빨리 가야 한다니까. 할머니가 지팡이를 짚고 부산하게 걸어 복도
끝 지점에 도착하자 거기 창에도 반쯤 선팅이 되어 있고 창밖에는 방범창이 설치 되어 있다. 시야에 들어오는 밖의 풍경은 손바닥만 하게 펼쳐진 뿌연 하늘 뿐이다. 실망이다. 할머니는 다른 통로를 찾기 위해 고개를 기웃거린다. 그러다가 그녀는 위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발견한다. 계단을 오르면 옥상이 나올 수도 있겠지. 옥상에 오른다면 드넓은 하늘과 높은 산 그리고 주택들이 다닥다닥 머리를 맞댄 정겨운 마을을 볼 수 있겠지. 그래 오랜만에 사람 사는 세상을 한번 구경하고 싶다니까. 그녀는 끙, 하고 된힘을 한번 쏟고는 계단을 오르기 시작한다. 한 손으로는 지팡이를 짚고 다른 한 손으로는 계단 난간을 붙잡고. 조금 오르자 이마에 땀방울이 방울방울 맺힌다. 헉헉 숨을 몰아쉬며 할머니는 결사적으로 계단을 오르기 시작한다. 다리가 후들거린다. 그렇지만 옥상으로 올라가면 높은 산과 정겨운 마을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하자 고통스럽게 느껴지지 않는다. 옥상으로 올라가서 드넓게 펼쳐진 하늘을 보면 답답한 가슴이 뻥 뚫릴 것 같다.
한참을 올라가자 옥상으로 통하는 회색 철문이 우람하게 앞을 막아선다. 주변 유리는 선팅이 되어 있어 밖의 풍경이 완벽하게 차단되어 있다. 최단심 할머니는 문을 열기 위해 큰 기대를 갖고 회색 철문 손잡이를 잡고 돌린다. 손잡이가 돌아가지 않는다. 문이 잠겨 있군. 낭패로구만. 갑자기 앞이 캄캄해진다. 그녀는 무너지듯 시멘트 바닥에 주저앉는다. 큰 기대감이 순식간에 와그르르 무너져 내린다. 몸이 물 먹은 종이처럼 자꾸만 아래로 가라앉는다. 탁 맥이 풀린다. 그녀는 무릎 위에 얼굴을 묻고 눈을 감는다. 이대로 죽었으면. 더 살아서 뭐 해. 한줌 햇빛도 마음대로 만져볼 수 없으니. 비참한 내 신세. 그녀는 큭큭 흐느끼기 시작한다. 어깨가 들썩거린다.
할머니 여기 계셨네. 할머니 때문에 요양원이 발칵 뒤집혔는데. 불쑥 나타난 요양보호사가 그녀의 어깨를 잡고 흔든다. 그녀는 움찔 놀란다. 뚝 울음을 그치고 눈가를 훔친다. 언제 울었느냐는 듯이 그녀는 흐트러진 자세를 빠르게 수습한다. 내려 가자고. 직원들이 애타게 찾고 있다고. 요양보호사가 그녀의 팔을 잡고 일으켜세운다.
나 안 가. 싫어 싫다니까. 할머니가 요양보호사의 손을 뿌리친다. 왜
여기까지 온 거야. 다치면 어떻게 하려고. 요양보호사가 큰소리로
외친다. 햇빛이 그리워. 햇빛 때문이야. 그녀는 바닥에 벌렁 누워 버
린다. 이제 알았어. 햇빛을 구경하려고 그랬구만. 그렇다고 혼자 막
돌아다니면 반칙이야. 크게 다칠 수 있다니까. 벌렁 누워 버리면 안
고 가는 수밖에. 그런데 어디서 지독한 냄새가 나지. 큰 걸 실례했구
만. 요양보호사가 움켜잡았던 코를 놓더니 그녀를 들어 가슴에 안는
다. 역한 구린내가 코를 찌른다. 요양보호사는 인상을 찌푸리며 머
리를 털더니 그녀를 안고 터덜터덜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한다. 마
른 수수깡 자루를 안은 듯 가볍다. 싫어 싫다니까. 할머니가 발을 털
며 몸부림을 친다. 계단 중간쯤 내려오는데 요양원 직원들이 몰려와
일행을 막아선다. 어디서 찾은 거야? 잠겨 있는 옥상 문 앞에서 울
고 계시더라고. 찾아서 다행이구만. 그런데 어디서 이렇게 구린내가
나지? 직원들이 코를 움켜잡고 있다. 요양보호사가 눈을 깜짝거리
며 말한다. 윗집에서 똥을 푸는 모양이야. 그래서 냄새가 나는 모양
이지. 참 더러운 녀석들이군. 요것들이 나를 놀리는구만. 나 똥 싸지
않았다고. 할머니가 손을 쩔쩔 내두른다. 그래 할머니보고 똥 쌌다
고 하지 않았는데. 냄새가 난다고 했지.
할머니는 자신의 의사와 관계 없이 샤워실로 옮겨져 목욕대 위에
눕혀진다. 싫어, 나 목욕 안 해. 할머니는 목욕대 위에서 일어나려
한다. 안 돼. 냄새 나서 안 돼. 그러니까 왜 큰 걸 쌌냐고. 안 씻으면
냄새가 나서 방으로 들어갈 수 없어. 요양보호사는 일어나려고 힘쓰
는 할머니의 상체를 뒤로 거칠게 눕힌다. 고무 장화를 신고, 고무 앞
치마를 두르고, 고무장갑을 낀 채 마스크를 한 또 다른 요양보호사
가 강제로 그녀의 옷을 벗기고 기저귀를 뺀다. 그런 다음 그녀의 몸
에 미지근한 물을 뿌리고 몸 구석구석을 목욕 타올로 문지른다. 거
친 고무장갑이 부드러운 피부에 닿을 때마다 그녀는 움찔움찔 놀란 다. 목욕 케어를 받으면 왠지 기분이 나쁘다. 젊은 요양보호사 앞에 알몸을 보이고 있으면 여간 수치스러운 게 아니다. 몸을 돌려 옆으로 눕는다. 다리를 모으고 몸을 웅크린다. 그러자 탁, 하는 소리와 동시 허벅지에 강한 통증이 전해진다. 그녀는 비명을 지른다. 가랑이를 벌려. 냄새 나서 닦아내야 된다고. 그녀는 여자 요양보호사에게 몸을 맡겨버린다. 엎어지라면 엎어지고 누우라면 눕는다.
목욕 케어를 마친 그녀는 수건 한 장으로 몸을 가리고 복도로 나온다. 그녀는 잠시 방향 감각을 잃고 서성거린다. 어서 방으로 가라고. 침대 위에 입을 옷이 준비 되어 있다고. 반말투의 거친 요양보호사의 말이 그녀의 귓전을 때린다. 불쾌하다. 지나가는 직원들이 힐끗힐끗 그녀를 쳐다본다. 아유 창피해. 그녀는 뒤뚱뒤뚱 걸음을 옮긴다.
깊은 밤 창가에 짙은 어둠이 내려와 있다. 안으로 침입해 들어오려는 어둠을 안의 벌건 취침등 불빛이 한사코 밀어내며 힘 겨루기를 하고 있다. 최단심 할머니는 몸을 뒤척거리며 벌써 몇 시간째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옆 침대에서 통증을 호소하는 신음소리가 저녁 내내 밤의 적막을 두드려댄다.
내가 헛세상을 살았다고. 지가 나를 모른 척 해. 나를 버릴 수 있느냐고. 그런 자식을 낳아놓고 미역국을 먹은 게 잘못이지. 내 팔자가 조롱박 팔자여. 내가 어서 죽어야지. 요양보호사, 어서 빨리 나를 죽여주어. 나는 그것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고. 아이고 내가 폭폭해서 못살아. 내가 속았다고. 저기 멀리 계시는 높은 어른 말이요. 어서 나를 잡아가시오, 어서! 잠을 자지 않고 저녁 내내 이렇게 중얼거리는 노파도 있다.
또한 드르렁드르렁 코를 골며 낮이고 밤이고 잠을 자는 사람도 있다. 요양원에 오기 전 혼자 살며 편안하게 잠을 잘 수 있었던 옛날을 그리워 하며 몸을 뒤척거리다 보면 창가에 밀려온 샐녘 여명과 만난다.영감, 참 잘 갔소. 왜 나를 놓아두고 먼저 갔소. 저녁 밥 잘 먹고
잠을 자다 편안히 이 세상을 뜬 영감이 부럽소. 영감이 있는 곳으로
어서 빨리 나를 데려가시오. 요양원에서의 생활이 지긋지긋허요.
그녀는 이렇게 중얼거리면서도 기저귀 속으로 손을 넣어 엉덩이
를 박박 긁는다. 벌겋게 짓물러 있는 피부는 피가 나게 긁어야 시원
함을 느낀다. 가렵고 답답해서 기저귀를 빼내 버리면 요양보호사가
언성을 높여 화를 낸다. 기저귀를 왜 뺐어. 누구 마음대로 뺐냐고.
절대 빼내면 안 돼. 어느 때는 엉덩이를 철썩철썩 때리며 화를 내기
도 한다. 잘못 했어. 이제 안 뺄게. 그녀가 손을 싹싹 빌며 용서를 빌
면 요양보호사는 앞으로는 빼지 마, 하면서 몸을 돌이킨다.
아침 기저귀 케어가 끝나면 곧바로 식사 시간이다. 식사 시간이
그녀는 하나도 반갑지 않다. 반찬들이 부실해 통 밥을 씹어 넘길 수
가 없다.
그날 아침도 여느 때와 큰 차이가 없다. 시쿰한 단무지 4개, 구린
내가 나는 김치, 쓴 간장, 짜고 딱딱한 콩자반, 맹탕인 콩나물국이 아
침 식사 메뉴이다. 그녀는 수저를 들고 망설인다. 먹기는 해야 되는
데 반찬에 손이 가지 않는다. 입에 밥만 넣고 우물우물 씹는다. 살기
위해서 먹어야 돼. 젓가락으로 단무지를 집으려다 그만 둔다. 단무
지는 너무 시어. 이번에는 김치를 들었다가 슬그머니 놓는다. 아유,
구린내. 입에 넣지도 안 했는데 구린내가 진동한다. 욱, 구역질이 나
오려고 한다. 젓가락이 콩자반으로 향한다. 콩자반을 먹고 싶지만
이가 약해 씹을 수가 없다. 그림의 떡이다. 콩자반을 젓가락으로 집
었다가 놓는다. 숟가락으로 맹탕인 콩나물국을 떡서 먹는다. 어쩔
수 없다. 살기 위해서는. 죽는 날까지는 먹어야 하니까. 밥을 반절만
먹고 숟가락을 놓는다.
밥을 많이 남겼네. 그러면 죽어. 죽을 거야? 요양보호사가 버럭
소리를 지른다. 잘못 했어. 많이 먹을 게. 할머니가 두 손을 모아 싹
싹 빈다. 나 집으로 보내주어. 여기 싫어. 집으로 보내달라니까. 그 렇게 말하는 할머니의 눈에는 이슬이 맺혀 있다. 우리 마음대로 보낼 수가 없어. 보호자의 동의가 필요해. 여기가 천국이라고. 나가면 죽어. 누가 밥 해주고 누가 씻겨주냐고. 요양보호사가 그릇들을 쟁반에 담아 밖으로 나간다. 나 집으로 보내달라고. 집으로 보내주어. 이윽고 할머니가 손등으로 눈가를 훔치며 징징 운다. 전에 40년 가까이 살았던 시골집이 눈에 선하다. 아담한 기와집 마당에서는 닭들이 모이를 쪼고 있다. 집 앞으로는 사계절 졸졸졸 흐르는 실개천이 누워 있다. 마루에 걸터앉아 있으면 앞산 등성이 위로 흰구름이 떠가고 장닭 울음소리가 한낮의 고요를 찢는다. 외출했다가 돌아오면 마루 밑에 웅크리고 있던 해피가 다가와 꼬리를 치며 반갑게 맞이한다. 모두가 그리운 옛날의 장면들이다. 그 시골집으로 가서 마음대로 잠을 자고 마음대로 음식도 해먹고 마을 노인들과 수다도 떨며 옛날처럼 살고 싶다. 그런 상상을 하자 시골로 가고 싶은 강한 충동에 불이 붙는다. 나를 집으로 보내 주어. 싫어, 여기는 싫어! 할머니의 도발적인 외침이 101호 공간을 흔든다. 어디 시끄러워서 살겄남. 늘 죽은 듯이 잠만 자던 옆 침대의 할머니가 불만을 표출한다. 나 아직 안 죽었어. 그런 식의 반발이다. 최단심 할머니에게는 그런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가슴이 답답하다. 누가 위에서 배를 지그시 누르는 것 같아 고통스럽다. 어떻게든 여기를 나가야 돼. 그래야 내가 제 명대로 살 수 있어. 그녀는 누웠던 몸을 일으켜 침대에서 내려온다. 일단 101호실을 벗어나 숨이라도 한번 크게 쉬어봐야 살 것 같다. 지팡이를 짚고 조심조심 101호실 밖으로 나온다. 그래 나온 김에 사무실로 가서 내보내달라고 요구하는 거야. 요양원 복도에는 양 쪽으로 긴 쇠 파이프가 허리 높이로 설치되어 있어 노인들이 그걸 잡고 용이하게 이동할 수 있다. 한 손으로는 지팡이를 짚고 다른 한 손으로는 쇠 파이프를 잡고 정문 출입구 쪽으로 이동한다. 아 저기군. 그녀는 사무실이라고 쓰인 푯말을 발견한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아가씨가 모니터 앞에서 컴퓨터 자판을 두드려대고 있다. 아가씨는 인기 척이 났는데도 쳐다보지 않는다. 아가
씨도 나를 무시하는군. 괘씸한 것 같으니라구. 목구멍 속에서 주먹
만 한 것이 욱 치밀고 올라온다. 싫어, 내보내주어! 할머니는 다짜고
짜 주먹을 들이대듯 말한다. 그때야 쳐다보는 아가씨의 표정은 각시
탈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다. 뭐라구? 아가씨는 첫마디가 반말이다.
아유 냄새! 기저귀부터 갈아야 되겠는데. 아가씨는 손으로 코를 잡
는다. 싫어, 여기가 싫어! 내보내주어. 그건 안 되지. 우리 마음대로
보내줄 수가 없다고. 보호자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할머니, 잠깐만
기다려. 원장님 부를 게. 아가씨가 송수화기를 들고 번호를 누른다.
원장님, 사무실로 잠깐만 와 보세요. 급한 일이 생겼어요. 싫어, 싫
다니까. 여기서 나를 내보내달라고. 할머니는 반복해서 이 말을 중
얼거린다. 아유 시끄러워. 아가씨는 손끝으로 귀를 막고 머리를 흔
든다.
자초지종을 듣고 난 원장이 한 마디 묻는다. 진짜 여기가 싫어?
싫어, 어서 내보내주어! 할머니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든다. 김양, 그
럼 할머니 보호자 되시는 분 오시라고 해. 원장은 아가씨에게 명령
조다. 알았어요. 그리고 냄새가 심하구만. 요양보호사 불러서 할머
니 기저귀 갈아야 되겠어.
기저귀 케어와 목욕 케어를 받고 동백기름을 바른 머리를 고무줄
로 묶자 기분이 개운하다. 오늘따라 요양보호사가 친절하다. 그랬어
요, 어쨌어요, 하면서 존댓말까지 쓴다. 약은 놈들 같으니라구. 아들
이 온다고 하니까 손바닥 뒤집듯 금방 다른 태도를 보여. 오늘 아침
식탁에는 오랜만에 청국장이 나와 맛있게 밥을 먹었다. 김치와 깍두
기도 신선도가 높아 젓가락으로 들었다가 놓았다가 할 필요가 없었
다. 101호실 바닥도 쓸고 닦고 부지런을 떤다. 잘 때 덮는 이불과 베
개도 새 것으로 갈자 손길이 닿으면 보송보송하고 기분이 좋다. 어
깨와 다리도 주물러 준다. 오늘 같으면 살 것 같다. 할머니, 그동안 불편한 점 많았지요? 이제부터 잘 해드릴게요. 어깨를 아주 부드럽게 주물러 주는 요양보호사의 태도가 나긋나긋하다. 어떻게 평소와 다른 이런 태도를 보일 수 있을까. 할머니는 자꾸만 고개를 갸웃거린다. 요양원 직원들이 모두 친절하게 대해주자 기분이 좋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들과 며느리를 만난다는 설렘이다. 아까부터 최단심 할머니는 문 열리는 소리만 들려도 시선을 문 쪽으로 돌린다. 그러나 그때마다 그녀의 기대는 산산이 부서졌다. 그녀는 아들과 며느리를 기다리다 지쳐 스르르 잠이 든다.
시끄러운 소리에 눈을 뜨자 아들과 며느리가 와 있다. 아들과 며느리는 그녀의 침대에 걸터앉아 있다. 너희들 왔구나. 그녀는 자리에 일어나 앉는다. 어머니, 잘 계셨지요. 어머님이 찾는다고 하기에 부리나케 왔지요. 아들과 며느리가 그녀의 손을 잡는다. 매우 보고 싶었던 아들 민수. 그녀의 가슴이 뭉클하더니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괸다. 면회실이 따로 있으니까 그리 가시지오. 여기에 누워 계신 다른 환자분들이 불편해 하시니까요. 요양보호사의 태도가 공손하다. 그럽시다. 아들이 먼저 선뜻 응한다. 요양보호사가 앞장서고 아들과 며느리가 최단심 할머니의 양 팔을 잡고 부축한 채 101호실을 빠져나온다. 아이구 허리야, 아이구 허리야! 이렇게 호소하는 다른 할머니의 고통 소리를 뒤로 한 채.
면회실 폭신한 소파에 할머니가 앉고 양 옆으로 아들과 며느리가 앉아 있다. 그럼 이야기 나누세요. 저는 나가 있을게요. 101호실 담당 요양보호사는 세 사람에게 둥굴레차를 한 잔씩 대접하고는 밖으로 나간다. 어머님, 그동안 잘 계셨지요? 며느리가 할머니의 눈을 빤히 쳐다보며 묻는다. 그건 아니어. 할머니가 머리를 젓는다. 그럼 그동안 불편했다는 이야기네요. 싫어, 여기가 싫다니까. 이 대목에서 할머니가 아들의 손을 움켜잡는다. 나를 집으로 보내주어. 시골집으로 가게 해주라고. 할머니는 또렷이 의사 표시를 한다. 그건 안 돼요. 며느리가 거부 의사를 분명히 한다. 왜 안 돼? 할머니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다. 그건 안 돼요. 나도 반대여요. 어머니 혼자 밥
해먹고, 빨래하고, 농사를 어떻게 짓냐고요. 정신도 가끔 오락가락
하잖아요. 절대 안 돼요. 아들 민수의 입장은 확고하다. 집을 나가면
잘 찾아오시지도 못하잖아요. 집을 못 찾아오면 죽을 수도 있다고
요. 걱정 말거라. 이제 괜찮아졌다. 여기가 죽어도 싫다. 나를 내보
내주렴. 어머님 생각에는 괜찮은 것 같지만 우리가 보기에는 아니어
요. 절대 안 됩니다. 큰일 날 수 있거든요. 며느리도 결사 반대다. 어
머니, 조금만 참고 견디셔요. 제가 넓은 집을 마련하면 그때 모실게
요. 아들이 할머니의 등을 토닥거리며 달랜다. 민수 씨의 말대로 조
금만 참으세요. 빨리 넓은 데로 이사 가서 어머님을 우리가 모실게
요. 할머니는 손목을 꼭 잡은 며느리의 손에서 따스한 온기를 느낀
다. 내가 내 집을 놓아두고 왜 너희들 집에 가니? 이렇게 생각을 하
면서도 넓은 집을 마련하여 자신을 모시겠다는 아들과 며느리가 기
특하게 여겨진다. 막판에 정신이 혼미하여 몸을 가누지 못할 때에는
의탁할 곳이 필요하다는 게 평소 할머니의 생각이다.
그럼 어머니, 잘 계셔요. 우리 가볼게요. 아들 민수가 자리에서
일어선다. 세 끼 식사를 잘 드셔야 해요. 입맛 없다고 안 드시면 몸
이 축난다고요. 며느리도 핸드백을 들고 몸을 일으킨다. 아니다, 나
도 너희들 따라서 가야 되겠다. 할머니도 몸을 일으킨다. 밖에서 지
켜보고 있던 요양보호사가 들어와 할머니를 부축한다. 할머니는 요
양보호사의 부축을 받으며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는 계단 입구까
지 따라나온다. 어머니, 제가 모시러올 때까지 참고 조금만 기다리
셔요. 그럼 갈 게요. 안내 데스크에서만 열 수 있는 자동문이 열리자
아들과 며느리가 성큼 밖으로 빠져나간다. 나도 따라갈 거라구. 할
머니가 밖으로 나가려는 순간 요양보호사가 잡고 있던 할머니의 팔
을 안 쪽으로 잡아당기자 자동문이 덜컹 소리를 내면서 매정하게 닫
힌다. 그러면서 유리문을 가운데 두고 아들과 어머니가 단절된 공간
에 존재한다. 아들과 며느리가 손을 흔들며 멀어져가자 할머니가 몸 부림을 치며 유리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려한다. 할머니, 이제 아드님은 갔어. 아무리 흔들어도 문은 열리지 않아. 가자고. 아들과 며느리가 떠나가자 요양보호사는 바로 반말이다. 요양보호사는 문을 두드려대는 할머니를 껑충 들어 두 손으로 받쳐 안고는 101호실로 향한다. 싫어, 싫다니까! 할머니는 몸을 꿈틀거리며 연방 소리를 지른다.
그래 조금만 기다리면 민수가 나를 데리러 온다고 했지. 낮이 가고 밤이 가면 꼭 그날이 올 거야. 하루 이틀 사흘 나흘. 최단심 할머니는 손가락을 꼽아 날짜를 헤아려본다. 왜 이렇게 시간이 더디게 가는지. 가슴이 답답하다. 그렇지만 민수가 나를 데리러 온다고 했으니 한 가닥 희망이 있지 않은가. 아니야. 헛꿈일 거야. 내가 속고 있는 거라구. 꿈도 야무지지. 내 팔자에 그런 기대는 무리야. 잠이나 자자구. 창가의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방 안의 정적을 흔든다.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점점 가늘게 들리는가 싶더니 아예 자취를 감춘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 기와집 다섯 채가 조개 껍질처럼 엎드려 있다. 마을 가운데 200년 묵은 느티나무가 버티고 있는 동네. 그 느티나무 옆에 새로운 집이 신축 중이다. 톱질을 하는 사람, 대패질을 하는 사람, 못질을 하는 사람, 황토흙에 지푸라기를 썰어 넣고 물을 부어 발로 잘근잘근 밟는 사람 등 신축 현장은 활기로 가득하다. 황토흙에 물을 붓고 잘근잘근 밟는 아버지의 이마에서 땀방울이 뚝뚝 떨어진다. 아빠, 내가 도와줄까? 어린 네가 어떻게? 왜 내가 어리다고 그래. 10살이야. 다 컸다고. 그럼 해 봐. 야, 신난다. 그녀도 바지 끝을 걷어올리고 맨발로 황토흙을 잘근잘근 밟는다. 지푸라기가 섞인 진흙을 밟을 때마다 발바닥이 간지러워 절로 웃음이 나온다. 그녀는 깡총거리며 신나게 진흙을 밟는다. 아버지는 양푼에 진흙을 손으로 퍼 담는다. 그런 다음 양푼에 담긴 진흙을 들고 가서 벽에 애벌로 바른다. 손으로 흙을 움켜쥐고 벽에 꾹꾹 눌러 바른다. 그러면 흙의 일부는 바닥으로 뚝뚝 떨어지기도 한다. 그녀도 아버지 를 따라서 한다. 아버지처럼 그녀의 이마에서도 땀이 줄줄 흐른다.
손으로 흙을 움켜쥐고 벽에 탁, 때릴 때도 있다. 그러면 진흙이 얼굴
로 튀어 흙투성이가 된다. 그래도 신나고 재미있다. 손에 진흙을 움
켜잡고 벽에 박박 문지른다. 단꿈을 꾸며 안락하게 살아갈 보금자리
를 만들기 위하여.
최단심 할머니의 두 손과 두 발이 침대에 묶여 있다. 그녀는 큰대
자大로 누워 있다. 몸을 돌아누울 수도 없다.
엉덩이에 진물이 나서 가렵지만 손으로 긁을 수가 없다. 그녀는
몸을 뒤틀며 가려운 부분을 바닥에 대고 문지른다. 그렇지만 시원하
지가 않다. 사력을 다해 몸을 꿈틀거려 보지만 마찬가지이다. 짓무
른 상처에 벌레가 기어다니는 것 같기도 하고 쓰라려 고통스럽다.
아이고 나 죽네, 나 죽어! 이윽고 그녀는 소리를 지르기 시작한다.
싫어, 여기는 싫다니까! 나를 내보내 달라고, 이놈들아! 한참을 소리
지르고 발광을 하자 요양보호사가 거칠게 문을 열고 들어선다. 내가
치매에 걸렸다구? 나쁜 놈들 같으니라구! 나 말짱해! 무슨 죄가 있다
고 묶어 놓는 거야, 응? 이 놈들아 말을 해봐! 말을 해보라구! 그녀는
요양보호사를 향해 눈을 부릅뜨고 악을 바락바락 쓰며 대든다. 그렇
게 심한 행동을 해놓고 모른다고? 무슨 죄냐고? 입 닥쳐! 우리도 밥
먹고 사는 사람이라고. 참는 데도 한계가 있지. 냄새, 냄새, 지긋지
긋해! 그걸 싸서 벽에 바른 사람이 누구냐고! 입에서 침을 튀기며 그
녀를 노려본다. 헉헉 숨을 몰아쉬며.(*이 소설은 모두 허구임을 밝힌다.)





박규현 1990년 계간《 문학과비평》으로 등단. 1991년〈 경인일보〉 신춘문예 당선. 소설『 걸어
가는 달』『, 흔들리는 땅』. 장편소설『 사랑 노래 혹은 절망 노트』,『 별리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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