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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호/신작시/이성필/걸렸다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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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이성필
걸렸다
친구 덕분에 물때를 배운다
내 생전에는 관심도 없이 지나갔을 일
늘그막에 친구는 어부가 되고
나는 어부의 친구가 됐다
젊어서 윗물에서만 살던 사람이
아랫물 해남까지 내려가서
낙지를 잡는단다
밤낮 없이 바다 물살은 들어오고
나가고 할 것이다
조차가 큰 사리의 삶
그럭저럭 조금의 삶
한때는 만조였던 사람
늘 그러리라 사는 나의 일상에도
물이 빠져 나간다
천천히 그러다가 순식간에
텅 비는 바다
검푸른 갯벌에 배를 걸었다
때때로 한밤의 넌픽션
뻐꾸기가 뻐꾹뻐꾹 열두 번을 울어도
주방을 내다보지 않는 아내
나는 혼자서 주섬주섬 밥을 먹는다
소주도 칵칵 마신다
지난 일요일 홈에버에서 산 젓갈세트와
저체온의 된장찌개에
아내는 잠든 딸 옆에서 스카이 영화를 볼 것이다
재탕이나 삼 탕쯤 되는 눈물 없이 순탄한 걸로
잡념 없이 풍덩 픽션에 빠진 아내의 손에
간단히 세상을 바꾸는 리모컨은 잡혔을 것
나는 닫힌 방문 하나 두고 농후하게
엎질러진 생각을 주무른다
뻐꾹 뻐꾸기가 또 나와서 운다
울곤 컴컴한 집으로 들어간다
이성필 1990년 《기호문학》 추천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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