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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호/신작시/이세진/사과껍질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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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이세진
사과껍질
체육공원 벤치에 앉았는데
어디서 달콤한 향기가 났다
벤치 뒤쪽
누가 깎아 먹고 버린 사과 껍질이
내뿜는 향기였다
저 버려진 껍질도
달콤한 즙은
진달래꽃 핀 골짜기
돌아 나오는 바람이 갈증을 달래고
썩으면 또한 거름 될 것 같아
말라가는 껍질 주워 보는데
몇 마리 개미들이
남은 속살 갉아 먹는 것이 아닌가
사람인 나도 하지 못한 육신 공양
마지막까지 보시 하는 것 같아
저절로 무릎 꿇어
두 손 모으게 하는
버려진 사과껍질 위로
봄 햇살 쏟아지는 오후
햇나물밥
보리누름에 찾아간 친구 집
툇마루에 앉아 받은 산나물밥
먼 날, 한 여인 생각났지요
겉보리 서 말이면
흉년을 넘기셨다던 말씀
새삼 떠오르는 깜깜 오월 그 해
새 집 짓고 고단했던 삶 이야기
사십 넘어 칠 남매의 장남이 들은 적 있지요
조석으로 팔 할 햇나물과
이 할 쌀로 지은 나물밥 두 그릇
아버지 상에 올리고 자식들 챙기시면
솥바닥 닿는 무쇠주걱 소리에도
허기를 잊으셨다던 내 어머니
청보리밭 사잇길로 아이 하나
무명 치맛자락 잡고 따라 가는 모습
붉어오는 눈시울 들키기 싫어
바라보는 산벚꽃 희끗하던 먼 산
명주바람 상머리 돌아나갈 때
자네 무슨 생각 그리 많은가 밥이나 들게…
친구 말 내 귀 팔 때까지
숟가락 들지 못하던
그 밥 한 그릇
이세진 2014년 《시와 사람》으로 등단. 시집 『저녁 무렵 구두 한 컬레』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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