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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이철경

파란만장波瀾萬丈

당신이 가고 없는 세상은
하루가 멀다고 발생하는 참사와
기득권 비리로 인해,
나라는 만신창이 됐다
위정자가 말하는 국격國格은
야만의 국가로 전락하였고,
당신이 사랑한 서민의 삶은
날이 갈수록 피폐해져만 간다
나락의 아비阿鼻로 치닫는 세상에도
무심하게 꽃은 피고 진다
노란 꽃 만발한 세월호 광장에서
할 수만 있다면 당신의 영혼을 깨운다
당신이 꿈꿔온 세상에
어린 꿈들이 바다에 잠겨
헛된 꿈이 되어버린
당신이 가고 없는 세상에서,

한 조각의 빵

내일부터 최대 명절인 한가위,
공단 노동자들은
회사에서 준비한
선물을 들고 바삐 고향으로 향한다
30년 전 풍경의 공단,

하지만 가까이 소리를 들으면
익숙한 말은 들리지 않고
제각기 자기들만의 언어로
흩어졌다, 모인다
간간이 들리는 같은 종족의 말이
반가울 뿐이다

시간의 권함圈檻을 벗어날 수 없는 노동자는
알량한 설 선물 들고
방금 화덕에서 꺼낸 빵처럼 부풀어 있다
이스트로 부풀린 희망에
곰팡내가 진동한다

손에든 하찮은 선물이
멍에처럼 어깨를 짓누른다
이마 땀을 명함으로 긁으니
먼지로 범벅된 납 가루가 긁힌다

이철경 2011년 《발견》 신인상으로 등단, 《포엠포엠》 평론상, 시집 『단 한 명뿐인 세상의 모든 그녀』, 『죽은 사회의 시인들』. 목포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