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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호/신작시/강동수/형아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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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강동수
형아
형아야
그날은 바다가 사나웠지
남해의 일렁이는 파도는 어제의 일기예보를 지우고
새로운 블랙홀을 그리고 있었지
두 개의 형제섬으로 서있는 그곳으로
작은 배가 다녀가던
그날의 공간과 시간을 넘어
나 오늘 다시 섬으로 가본다
섬에 가까울수록 일렁이는 파도를 안고
외롭게 서있는 작은 섬 백도가
나처럼 파도에 부딪쳐 울고 있다
멀어지는 섬을 바라보며
돌아서는 뱃머리에서 꽃 한 송이 던진다
그날의 형아처럼 파도에 흔들리며
멀어지는 하얀 꽃잎 꽃잎
그 꽃잎 흘러가 어느 섬에 닿을까
어떤 색의 꽃으로 피어날까
육지와 가까울수록 멀어지는 섬
하얗게 울고 있는 눈물을 가르며
작은 배 한 척
섬을 지워버린다
케논Canon*이 관음觀音이듯
1.
내가 누르는 셔터는 몇 만분의 일초
찰나의 순간을 카메라에 저장시킨다
아무리 빠른 물체라도 혹 그것이 총알이라도
2.
처음 만졌던 싸구려 카메라도 풍경을 놓친 적이 없다
간혹 빛을 과다 복용하여 검게 뭉그러진 풍경이 시간을 건너갈 때
혹은 함량미달인 빛은 배경을 희미하게 채색시켜 놓는다
복용시간을 잊어버린 알약 같이 필름을 잊어버린 카메라는 가끔 풍경을 놓치기도 하지.
그때 심장에 담아두지 못한 풍경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지만
미련을 두지 않기로 했다
배경은 계절을 건너며 다른 색깔로 나타나기도 하지
케논Canon이 관음觀音이듯
3.
부처님 손안에서 몇 만 리를 가더라도 부처님 손안에서 놀듯이 삼장의 마법**은 지금도 유효한가
책상 위에는 방금 주문한 설경이 지구 반대편에서 날아왔다
계절을 뛰어넘은 눈 덮인 풍광과 주문하지 않은 낙엽까지 언제든지 불러올 수 있는 한 뼘 마우스가 부린 마법
룸비니 아니 그보다 더 먼 도솔촌 그 어디 쯤에서 출발하여
왕국을 버린 시타르타가 내 책상 위에 앉아있다
아직 깨우지 못한 풍경들을 파인더 안에 가두어두고 가부좌하고 있는 붓다
케논Canon이 관음觀音이듯
*일본에서 생산하는 카메라 케논의 전신은 1933년 창립된 정밀과학연구소. 창업주인 요시다 고로가 불교신자여서 관음보살의 자비를 닮고 싶다는 의미로 ‘KWANON’(칸농/관음)이라 하였다. 1935년 세계에서 통용될 카메라 브랜드명으로 Canon으로 정했다. 규범, 표준이라고 하는 의미를 가진 단어의 뜻과 KWANON(관음) 발음이 비슷한 것이 명칭의 유래가 되었다
**서유기.
강동수 2008년 계간《시와산문》으로 등단. 2014 <국민일보> 신춘문예 신앙시공모 당선. 구상솟대문학상 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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