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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호/신작시/권기덕/모닝콜이 울리기 전에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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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1,468회 작성일 17-01-06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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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권기덕





모닝콜이 울리기 전에




창가에 앉아 창문에 코를 문댔어요 옆에 있던 악마는 커다란 입을 내밀어 공기를 씹었죠 쩝쩝대는 게 얄미워 커튼으로 창문을 얼른 가렸어요


등 뒤에선 몰래 집 짓는 거미가 있어요 거미집이 완성되면 작은 종이상자에 가둘 거예요 내 방은 거미 없는 거미집이 잘 어울리거든요 먹다 남은 콘푸레이크와 썩은 과일냄새가 나요 새엄마, 얼른 새를 주세요 악마에게도요


저 건물의 블록들은 누가 가지런히 쌓았을까요? 내 장난감블록은 겨우 달팽이 한 마릴 가둘 수 있거든요 창가에 앉아 풍선 부는 날이면 블록들이 풍선 아래 무너져요


창밖엔 가끔씩 나처럼 악마와 함께 있는 사람이 보여요 그의 뒤편에 자라고 있는 거미도 몰래 집을 짓겠죠 악마와 악마가 서로 울부짖어요 얼굴 없는 목에서 꽃이 피죠

눈물이 났지만 창가에 앉아 창문에 코를 문댔어요 밖은 점점 더 견고해졌고 악마는 거미집 그림자에 걸려 버둥거렸죠






간병




시리얼과 바스러진 비스킷을 먹다가 큰 구덩이를 발견했다 구덩이 속 야구경기는 7회 말부터 시작되었고 병실침대에는 산소호흡기가 천천히 흘러내렸다 나는 얼른 서랍에서 칼을 꺼내 의자를 내리찍었다 파인 곳에 돼지고기를 구겨넣었다


우리는 지금 거꾸로 그린 그림을 세고 있다


산소가 부족했던 그는 요플레를 자주 먹었다 딸기 맛이 없으면 복숭아 맛을 찾았다 숟가락에서 사슴피 냄새가 난다며 웃었다 움푹 패인 발목에서 피가 흘러넘쳤지만 아프지 않았다
 
벽에서 사슴 한 마리가 운다


나는 가끔 그를 대신해서 침대에 누웠다 성인용 기저귀에 똥을 싸거나 썩션을 했다 요플레 대신 숨겨 둔 돼지고기를 몰래 먹었다 창 밖 구름에선 죽은 새들이 뛰어내렸고 도루를 하던 선수도 죽었다


천장에 매달린 거울에서 종소리가 들린다


병실 복도 저 끝에서 그림자가 달려와요 그림자의 얼굴은 붉은 빛 노을로 가득했죠 그림자는 가까이 왔다 멀어지고 멀어졌다 다시 멀어져요 그림자가 당신을 칼로 찌를 때 피 대신 요플레가 흘러내렸죠


거울 속 창문에서 물 위를 지나가는 기차가 보인다
 
그는 죽은 뒤, <헤라-루즈 홀릭> 립스틱을 바르며 구덩이를 내 방으로 옮겼다









**약력:2009년 《서정시학》으로 등단. 시집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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