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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호/신작시/조은설/바다는 살아있다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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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조은설
바다는 살아있다
바다는 아직 살아있다 밤마다 수평선을 끌고 내 안에 들어와 흰 포말을 일으키는 바다, 들숨날숨 아가미가 힘겹게 쿨렁거린다 바다가 아직 살아있는 건 내 안의 당신이 날마다 뜨겁게 설레기 때문이다 절망의 피 속에서 산고를 견딘 소망이 산란하기 때문이다 만년이나 심장 달구어 서럽게 끓어오르는 바다여,
내 안의 바다는 하루 한 번씩 쓰러지고 일어선다 허무로 무너지고 갈망으로 일어선다 일어설 때마다 우르릉우르릉 해안으로 달려가 온몸 던져 부서진다 부서져 다시 바다로 돌아간다
달빛 풀어헤친 밤바다에 당신의 숨소리 뜨겁다 살 속 깊이 그리움이 착상되는 시간, 우린 아직도 여전히 살아있다
도돌이표
언제부턴가
내려야 할 역을 훌쩍 지나치는 버릇이 생겼다
화들짝 정신이 들면
어둠 속으로 재빨리 허물어지는 첨탑들
나비 한 마리 벗어둔 겉옷 한 벌
내 눈썹 끝에 매달려 있다
그 때, 나는 잠시 나비였을까?
우거진 사념의 풀 더미 속에서 우화하고
숨 막히는 혼돈의 굴뚝을 빠져나와
바이칼 호수의 파란 눈동자에 물들었다가
나르시시즘에 빠진 어느 젊은이의 낚싯대에 앉았다가
허락도 없이
당신의 말간 꿈속을 어지럽히다
줄줄이 지나가는 낯선 이름들의 숲에서 길을 잃고
황망히 서럽고 낯선 꿈을 접는다
아, 오늘도 늦어버린 약속시간
서둘러 도돌이표를 밟아가면서
어떤 추상에 골몰하다가…….
내려야 할 역을 곧잘 지나치는 습관
나는 세상에 닿을 수 없어
피안을 향해 흘러가는 풀뿌리인 것일까?
**약력: 2013년 《미네르바》로 등단. 《월간문학》 동화 당선. 시집 『나는 아직도 흔들린다』 외 2권. 동화집 『휘파람 부는 감나무』 외 10여 권.
창조문학 대상. 월간문학상 수상. 강남시문학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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