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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호/권두칼럼/백인덕/시와 정치, ‘블랙리스트’ 이후의 어두운 터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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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915회 작성일 17-10-27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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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두칼럼



백인덕




시와 정치, ‘블랙리스트’ 이후의 어두운 터널



  무능하면서도 교활한 존재가 가장 잘하는 일이 ‘편 가르기’다. 이는 역사가 증명한다. 멀리 외국이나 세계사적 인물을 거론할 필요도 없다. 임진왜란 7년, 조선시대 최악의 참화를 ‘승전’이라 자화자찬하면서 역사에 자신이 ‘성군聖君’은 아닐지언정 ‘명군明君’으로 남기를 바랐던 선조를 생각해 보면 될 것이다. 그의 가장 큰 공로는 물론 어떻게든 임진왜란을 국토의 할양 없이 수습했다는 것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가장 큰 역사적 과오는 무엇일까? 주지의 사실이지만 그는 끊임없이 연좌제를 적용해서 정치적 견해가 다른 사람들이 결국 ‘붕당朋黨’으로 똘똘 뭉치게 하는 데 촉매제 역할을 했다. 선조 이후는 정치적 견해를 같이 하느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고, 오직 누구와 친하고 어느 파벌과 더 교류가 빈번한가가 문제가 되었다.
  지난 몇 개월, 우리 사회를 뒤흔든 사건들이 하도 많아 이제는 사안 별로 별도로 떼어 논할 수 있을 만큼이 되었다. 문학이 예술인 마당에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친 것은 누가 뭐래도 ‘블랙리스트’ 사태일 것이다. 청와대로부터 문체부를 거쳐 일개 문화재단까지 일목요연하게 이른바 성향 분석과 편 가르기에 집중했다는 그 효율성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 그 정성으로 나라를 경영했다면, 오늘과 같은 정권 파탄과 국가 위기도 초래하지 않았을 것이다. 만시지탄晩時之歎이다.
그 부당성에 입에 거품을 물자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문제는 그 이후에 전개될 암울한 상황 등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뭐 광역단체장(당시에는 야당의 대선주자였던)이 블랙리스트에 등재(?)된 단체나 개인을 우선 지원하겠다고 큰소리를 쳤다가 역차별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정말, 이 한 개인에 그치고 말 것인가? 그 어떤 형태로도 일종의 ‘보상심리’가 작용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러한 질문을 갖고 올 한해와 내년을 유의 깊게 살펴보면 한국 문학, 예술 나아가 우리가 어느 정도의 시민을 갖춘 사회인가를 저절로 알게 될 것이다.
  미국 민주주의의 최대 옹호자로 칭송받는 시인 휘트먼의 한 마디로 괜한 걱정을 덮는다. “위대한 시는 아주 오래오래 공동의 것이고, 모든 계급과 얼굴색을, 모든 부문과 종파를, 남자만큼이나 여자를, 여자만큼이나 남자를 위한 것이다. 위대한 시는 남자나 여자에게 최후가 아니라 오히려 시작이다.” 어쨌든 이제 다시 시작이다.    





백인덕 1991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본지 주간. 시집 『끝을 찾아서』, 『한밤의 못질』, 『오래된 약』, 『나는 내 삶을 사랑하는가』, 『단단斷斷함에 대하여』, 저서 『사이버 시대의 시적 상상력』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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