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토피아 - (사)문화예술소통연구소
사이트 내 전체검색

수록작품(전체)

15호/특집/오늘의 시인/박일/자선대표시/신작시/시작메모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918회 작성일 17-10-27 11:38

본문

특집

오늘의 시인



박일




자선대표시

겨울이 오면, 시詩여 외 5편




1.
흘러만 가고 있는가
인사도 없이 헤어져 간 너의 등 너머
순결의 의미도 모르는 채
삶의 깃발은 나부끼고


얼은 땅 위를 구른다
풀잎 한 포기 꽃잎 하나 피우지 못한
종소리 


너를 위하여 또는 나를 위하여 침묵은 언제나
우리들 곁에 서 있고
운명은 눈물 속에서 부재의 시간 속에서
끊임없이 흐르던 것


균열을 배우며 자라나는
일상日常 위의 벽은 늘 높게 쳐져 있고
아물지 못하는 상처 간직한 우리


오늘은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가


2.
눈이 내린다
스스로 무너지는 길 걸어가는 시詩여
외로움도 은근하게 묵은 피는 자꾸만 솟아나
복종으로 길들여진 언어만 적시는가
돌멩이와 몽둥이와 꽃불이 난무하는
겨울 안개 속으로
의미를 잃어버린 자유가 걸어가고
우울만 흩날리는가
우리의 영토에는


3.
전설은 전설이어야 한다, 난세에 영웅이 난다는
영웅이 시대를 만든다는 전설은 전설이어야 한다
하늘과 땅이, 바다와 육지가 뒤바뀌는
이야기는 이야기여야 한다


사실은 사실이어야 한다


풀잎은 항상 땅 위에서 자라고 우리들은
그 위에서 서로 푸르게 되는
사랑은 사랑이어야 한다


묵은 피를 닦아내고


칼을 잡아라, 시詩여
칼을 갈아라, 시詩여


얼어붙은 우리들 언어에 반역을 품게 해다오





수석水石·4



물로 돌아가야 할 혼이 있다


손에서 손으로 돌다가
마침내 원점에 이르러
아무것도 아니듯이


마구 뒹굴어야 할 소리가 있다


한밤 강물소리 바람소리
맞부딪치며 세월을 이겨내는
가을 강가


뿌리 없이 일어서는 돌들의 함성
언제나 숨소리는
살아 있어야 한다





나무에게




1.
열 개의 손가락으로도 잡지 못해, 너의 마음은
밤의 빗장을 열고 어둠 곁을 지나면
한 움큼씩 잡풀은 뜯겨지고
뜯겨진 자리에서 잡풀은 흩날린다


시간은 더듬거리며 찾아들고
아침을 향해 오르는 빛
새들은 용감히 어둠을 쪼아댄다


2.
눈을 떠라, 나무여
겨울 숲을 떠나는 새들 소리를 들어라
뿌리에 감긴 내면의 인식을 떨치고
스스로 키를 넘는 혼들을 보아라
내부를 가득 차오르던 고요를 버리고
불멸로 치닫는 빛살의 파도
얼어붙은 하늘을 새들은 쪼아댄다


눈을 떠라, 나무여
귀를 열고 외쳐라
침묵과 마주하지 말고
심층에 굴착하는 뿌리 힘으로
바깥보다 더 굳게 서야 한다
나무여


3.
너와 함께라면
바람 앞이라도 끄덕 없다
무너질 줄 모르는 성城
둘레에 쌓고
잠을 청한다


잠시 빈 손으로
수없이 재깍거리며 시간은 흘러가고
우리는 꿈을 꾼다
가지마다 혼들이 살아 있는
꿈을





사랑에게·5



수신할 수 없는 기호 뒤집어 쓴 너
너는 바다에 표류하는 섬이다
아니 그 위를 걸어가는 마른 풀잎이다
발굴되지 않는 시간의 무덤 파헤치며
침몰을 향해 가는 울음으로
바다가 몸을 뒤척일 때
그 위로 일어서는 소리다
아니 중부시장 노점상 광주리 속 숯검정이
머리 잘린 개들이 울부짖는
소리다






사랑에게·6



한반도는 하나였다네
충적세沖積世로 돌아가 보면
지금은 흩어진 산맥들이 방목된
자유와 함께 힘차게 달렸다네
물론 은유로 치장된 왕조 더구나 없었고


법이 없는 법을 지키며
풀잎에서 태어나 풀잎을 먹고 살다
풀잎처럼 풀 풀 날리는 세월 속으로
사라져 갔다네


자네 같이 떠나고 싶은 생각 없는가
풀잎 되어 살고 싶잖은가






인천비 · 3
― 오, 인천



사람들은 사람들끼리
어둠을 젖히며 제 갈 곳으로
가는데


아스팔트 위로 버려진
아침이 태양을 한 입 물고
길게 누워 있다


빗물만 남은 인천


칼들은 칼들이라고 번쩍거리며
들녘에선 바람이 우는데


햇볕이 사라진 들녘
뿌리가 없어진 풀들이 운다
누렇게 흔들리는


풀들이 운다, 인천의 들녘


섬이 사라져 들녘이 되고
들녘이 쓰러져 빌딩들이
들어선 사이로

빗물에 어려 떠 있는 인천


뿌리에 고인 시간들이
역사를 내뱉고 허물어져 가도


풀들은 누렇게 떠 죽어가도
공장의 시커먼 연기 번쩍이며
번쩍이며 늘어선 바닷가


수식어도 없이 빛나는 인천


별만큼이나 많은 공약들이 여기저기 산재해 있는데


지느러미가 비뚤어진
망둥이가 가끔씩
저녁 밥상에 오른다


빗물 속에서 흔들리는 인천





신작시

송림동 골목길 외 2편



꼭 한 사람만이 지나갈 수 있어
그 길을 걸어 봐
그 길로 들어서면
침묵을 닮은 그림자가 늘 따라오며
말을 걸어
어둠 몰래 유리문을 열며 속삭이지
어깨를 쭉 펴고 걸어 봐
외면하며 돌아가는 사람에게 절대로
매달리지 말고
흘러가는 시간에 발이 걸려
넘어지지 말고
이 골목을 지나가
그림자를 부축해 주는 연습을 하며
빨리 지나가
골목길 끝에는 무의식의 내면으로 들어가는
또 다른 길이 보여
그 길로 꼭 가 봐
눈물이 빗물이 되어 흐르더라도
돌아보지 말고 똑바로 걸어가
한 사람만을 위하여 걸어 봐
그 사람이 보일 때까지





귀이개꽃



마냥 서 있겠다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그대의 귀를 간지럽히며
소리가 사라지는 날까지
남아 있겠다
누구나 볼 수 있도록
비바람 속에서도 꼿꼿하게
서있겠다
그대의 눈동자를 들여다보며
보고 싶은 눈물로만
남아 있겠다





바다를 보며·1
―안목항 ‘카페 산토리니’에서



커피를 마신다
차가우면서도 뜨거운
어둠의 그림자 같은 향기를
마신다

내면의 바다 속 깊이
가라앉아
씁쓸하고도 시큼한
시간을 마신다

상징을 모르는 바람 소리를 따라
검푸르게 우는 바다의  
맵고도 시린
소리를 마신다






나의 시

이런저런 생각



1. 인식認識
  사물은 늘 말이 없다. 내가 마음을 열어주지 않으면 한낱 관계가 상실된 사이일 뿐이다. 냉담한 사물일지라도 내가 다가서야 한다. 내가 주지 않은 의미는 의미로 돌아오지 않는다. 혼자의 생각은 늘 상대적이다. 피아의 식별이 없는 언어는 없다. 지극히 현실적이다. 멀리서도 감지되는 초감각적 기능을 서로는 가지고 있다. 사물은 사물대로, 자아는 자아대로 서로를 탐색하고 관계를 유지한다. 사람들끼리 사회성을 갖는 것처럼 사물들과 다양한 관계성을 지닌다. 물론 이런 생각은 지극히 주관적이다. 모든 생각은 자아의 성향에 따라 움직인다.


  자아와 사물은 늘 서로를 응시한다. 물론 자아의 생각 속에 움직이는 것이지만 각자는 개별적 존재이다. 내가 그를 생각한 것처럼 그도 나를 생각한다. 그러면서 서로 인식한다. 삶이란 사회 속에 개인이 있고 개인 속에 사회가 있는 관계다. 명명된 사물과 의미의 관계도 그렇다. 그러면서 시인의 눈으로만 보는 의미가 파생한다. 그 속에서 원초적인 의식과 무의식이 움직인다. 순간적으로 두 개의 의식이 혼융되고 인식되며 각인된다. 단, 의미가 무의미이면 존재하지 않는다. 즉 마음이 동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도 없고 존재도 없다. 마음이 있는 곳에 의미가 있고, 의미가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


  사물이 있는 곳에 상황에 따른 현상이 따라 다닌다. 그 현상을 보고 인식하며 시인은 언어로 표현해낸다. 시인이 사용하는 언어는 마음이고 자아의 생각이다. 의미가 존재하는 한 그 의미대로의 움직임이어서 대화하고 이해하면 표현하면 된다. 언제나 시는 시이고, 언어일 뿐이다. 그러나 마음은 들어 있어야 한다. 다양한 과정의 설명은 필요 없다. 철학적인 설명도 다 필요 없다. 언어를 통해 마음이 움직여야 한다. 시인이 그렇게 썼다면 독자는 당연히 그 마음을 읽는다. 그게 소통이고 공유다. 그러면서 공감이 형성된다. 마땅히 시는 마음의 그림이다. 공감을 전제로 한 객관의 주관화 속에 다시 객관화로 돌아서는 그림이 바로 시가 된다. 그림은 추상화가 되든 구상화가 되든 상관이 없다. 마음속의 풍경으로 남으면 된다. 그러나 마음의 움직임을 이끌어낼 수 없는 공감은 넋두리에 불과하다. 죽은 그림자를 박제해 놓은 자기만족의 장식품일 뿐이다.


2. 시인詩人
  시는 곧 시인의 마음이다. 시인은 언어로 표현된 마음을 보여준다. 마음을 볼 수 있는 것이 시이다.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한다. 많이 보고 베껴 쓰다 보면 시가 된다고. 그래서 창작수업이 그 옛날 필사본 만들 듯이 만들다가, 약간 고치고 그러다가 자기화가 되어서 자기의 시가 된다고 한다. 모방이 최고의 작품을 만들 수 있다나 어쩐다나. 창작을 가르치기 위해 고안해 낸 방법론 치고는 궁색해 보인다. 남이 쓴 시행을 가져다가 윤필을 하며 조립식으로 글을 만드는 사람이 시인이라면 시인은 존재하지 말아야 한다.


  시다운 시를 쓰는 시인이 잘 보이지 않는 시대의 한 모퉁이에 와 있다. 진정한 스승으로부터의 배움이 없는, 일정한 자격(?)으로 면허증을 따는 시인의 시대에 와 있다. 도시 인구 당 몇 퍼센트의 시인을 유지해야 하는 그런 시대. 언어를 사용할 때의 미세한 감정의 차이를 모르는 시인의 시대. 몇 번씩 신인상을 받았다며, 문운이 왕성한 훌륭한 시인임을 보여주는 시대. 등단제도의 다변화는 좋은 것이다. 그러나 정신이 사라진, ‘물신物神 숭배로 만들어진 시인’이 많은 세상이 된다면 시인詩人은 스스로 소멸해야 한다.


2. 시작詩作
언어의 피가 흐르지 않은 시는 시가 아니다. 죽은 언어의 나열이다. 쉽지만 쉽지 않은 것이 시의 세계이며 시의 정신이다. 남과의 소통 속에 배려와 질서의 법칙을 찾을 수 없다면 과감히 시를 버려야 한다. 그리고 시인이라는 명칭도 쓰지 말아야 한다.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고 하나 시는 시로 존재할 뿐이다. 시가 달라진 게 아니라 풍속도가 달라진 것뿐이다. 시의 내면에는 정열, 그리고 지성과 감성이 늘 넘쳐흘러야 한다. 혀만 익은 언어로 가장한 시는 시가 아니다. 본인 자신이 진솔성이 없다면 쓰지 말아야 한다. 저절로 마음속에서 우러나오지 않은 언어로 구성된 시는 허위의 나열일 뿐이니까.


  시는 스스로 의미를 던져 준다. 말 그대로 언어의 절집이다. 절에 가면 조심성 있게 행동해야 하듯 시는 꼭 그만큼의 자리에 있다. 내가 관심 있게 보면 꼭 그만큼의 자리에서 시어를 내어준다. 간결함과 명징함을 지닌 언어의 율동을 불꽃처럼 던져 준다. 스스로를 찾아보는 내면의 행동화. 상상 속의 세계에 나름대로의 건축을 한다. 나무를 심고, 사람을 불러들이고, 책 속에 다져진 길도 둘러보며 정원을 꾸민다. 벽에 추상화도 걸고 구상화도 걸어보며 사는 것만큼의 의미를 찾아본다. 지나온 길, 지나갈 길의 언저리에서 보이는 모든 이미지가 말하는 말씀을 되새겨 듣는다.  


  꽃을 본다. 사람을 쳐다보는 듯 길가에 피어 있는 꽃. 사람인 것처럼 말끄러미 바라보는 그 눈동자를 보고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휴대폰 메모장에 꽃이 말하는 의미를 기록한다. 서로의 공감과 소통을 배려를 하며 쓰면 한 편의 시가 된다. 그게 시 아닌가. 넘칠 듯 넘치지 않게 그렇다고 모자라지 않게 언어의 법도를 절집에서 하듯, 예의를 갖추며 쓰는 것이 시 아닌가 싶다.

















추천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사)대한노래지도자협회
정종권의마이한반도
시낭송영상
리토피아창작시노래영상
기타영상
영코코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정기구독
리토피아후원회안내
신인상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