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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호/특집/제1회 아라작품상/김보숙/수상시/신작시/총평/수상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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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950회 작성일 17-10-27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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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제1회 아라작품상



김보숙




수상작
그도 그녀도 아닌 외 3편




  소금 양을 줄여 달라는 엊그제의 메모 밥을 많이 먹은 강아지는 살이 쪄서 그대로 누워 있고 이름을 잘 지어야지 도그에게 피그는 도통 어색해 보통 도그는 해피라고 부르는데 피그인 그녀를 도그라고 부르는 것처럼 도그인 강아지를 피그라 부르고. 소금 양을 줄여달라는 엊그제의 메모 찾아봐도 후추통밖에 없는 찬장 밥을 많이 먹은 도그는 피그라고 부를 때만 뒤를 돌아 봐. 소금을 뿌리다가도 도그라고 부르면 뒤로 해야 해. 그때야 도그는 도그가 되고 피그는 피그가 되고
   하루에 두 번 먹던 식욕 억제제를 네 번으로 늘리고 하루에 두 번 먹던 밥이 네 번으로 늘었다. 식욕이 억제되었는지 확인하기 위하여 나는 하루 네 번 밥상 앞에 앉는다. 밥을 보아야 식욕이 억제되었는지 알 수 있고 식욕이 억제되지 않은 저녁은 식욕이 억제되는 것을 확인할 때까지 밥상을 차린다. 그만 하라며 딸은 울고.






리액션



우리는 이제 자다가 오줌을 싸지 않아요. 어머니는 기저귀가 싫다고 하셨지. 가끔 오빠가 어머니의 똥 오줌을 손으로 받아내었다. 기저귀 같은 내 아들. 마루에서 떨어지지 않는 건 가족 뿐. 기저귀는 떨어지지 않았다. 컴백은 김흥국 아저씨와 하고 싶어요. 컴백을 위하여 나는 계속 공백기였다. 로마 나이트 여성 전용 무료 쿠폰을 만드는 가내 수공업. 바쁠 때는 기저귀를 갈아달라고 울던 어머니.





해 볼만


술에 취하면 조기를 구워 발라 먹는 나의 습관은 수산시장에서 조기 한 바구니에 만 원을 외치는 남자들을 보기 위해 만든 습관인지도 몰라. 청량리 수산시장은 조기보다 고등어 파는 남자들이 많아, 강 건너 가락시장으로 가는 밤. 강을 건너 올 때는 가터밸트로 갈아입고 오렴. 성수역 화장실에서 가터밸트로 갈아입던 옳지, 그래야 안 맞지, 강남 사는 남자와 연애하면서 생긴 맷집은 맞아볼 만한 건강함을 주었고. 어때? 자기야 나 건강해지니깐 때려 볼 만하지? 먹을까 말까 할 때는 먹지 않고 버리는 거란다. 성수역 화장실 변기에 쏟아 버린 조기들. 해볼 만한 폭력.





이상한 날




아말감에 대해 듣고 있다.
꼬막 까는 알바는 어제 끝났고
입 냄새는 아직도 나는 중이다.
꼬막을 까다가 하, 했고
머리를 묶다가 하, 했다.
그 때마다 냄새가 났다.
네가 사준 실 핀이 문제였다.
실 핀으로 이를 쑤시면
이기 상한다는 것을 몰랐다.
잘 못 쑤시는 바람에 어금니가
썩었고 버릇은 하, 가 되었다.
아말감이면 버릇을 고칠 수 있다고
하는데 꼬막 까는 알바는 어제
끝났다.




신작시

나프탈렌 효과 외 1편



양치 컵에 흰 자를 담고
칫솔에 노른자를 묻히고
나는 소금을 사러 간
어머니를 기다린다
목욕 바구니 안에 가득 찬
계란
나프탈렌향이 풍기는
차분한 혼숙
옹알옹알 소리가 좋아
발명한 계란양치
가엽다고 머리를 감겨 줄때 면
삶은 계란처럼 소금이 뿌려지곤
했다





베게 밑의 ‘나 ’



들키고 싶지 않은 비밀스러운 물건이 생기면
어디에 둘까 고민하다가 결국엔
베게 밑에 넣어두고 잠이 들곤 하였다.
자다가도 꿈을 이탈하여 베개 아래에 손을 넣고는
비밀스러움을 몇 번이나 만지작거리며 안심했다.
그해 엄마에게서 한 번 도 들어 본적 없는 ‘나’를 만났다.
‘나’라는 존재를 수 만 개로 분화하며 살아가던 엄마가
동대문구 치매 예방센터 교실에서 ‘나’에게 편지를 쓴 것이다.
엄마에게서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나’를 베개 밑에 넣어둔다.
자다가도 꿈을 이탈하여 엄마가 ‘나’ 인지 손을 넣어 만져본다.
엄마가 혼자라는 사실에 안도하며 ‘나’를 베고 잠이 든다.





총평

시적 다양성의 한 스펙트럼을 보여주다



  김보숙의 작품들을 얼핏 표면적으로만 읽으면, 시에서 정형적으로 추구하는 묘사나 시적 진술에서 어긋난 채 무의미한 반복과 시행 차원에서 거듭하는 모순적 진술의 나열로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형이상학적으로 세계를 대상화한 인간 주체라는 차원에서 시를 세계에 대한 표현 내지는 해석으로 보려는 완고한 시각에서 비롯한 편견일 뿐이다. 김보숙 시인의 작품 주체는 아마도 가야트리 스피박이 말한 ‘서발턴subaltern’의 음성에 가장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서발턴이란 국내에서는 흔히 ‘하위주체’로 번역되는데, 정치를 함의를 좀 걷어내고 페미니즘의 논구에서만 보자면 남성주체의 언어적 구조, 즉 직접적으로는 문법이고 나아가서는 발화의 중심에 대한 대응적 개념이다. 이번에 수상작으로 결정된 ‘그도 그녀도 아닌’은 성정체성의 혼란이나 젠더적 억압 등을 드러내지 않는다. 다만, 작품 전체가 화자, 도그, 피그 등 하위주체들에게 부여되는 억압적인 청취 상태에 대한 탁월한 반어라 할 수 있다. 다양하다는 것은 가급적 넓은 영역의 스펙트럼을 아우를 수 있다는 것과 같은 의미일 것이다. 따라서 김보숙 시인은 《아라문학》이 지향하는 지점을 충실하게 내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백인덕(시인)





수상소감

탈탈 털어 널고 싶다



  수건을 적셔 널어놓는 것은 내 담당이었다. 적당히 젖은 수건을 살살 털어낸 후 아버지의 머리맡과 발 밑에 널어놓고 방이 건조하지 않도록 습도를 맞추면 되었다. 사실 젖은 수건이 아버지의 치료에 어떤 도움을 주는지 모르면서도 이 일을 꼬박꼬박 했던 이유는 수건 너는 일은 병간호 같지가 않아서였기 때문이다. 시간에 맞추어 약을 챙기거나 팔 다리를 수시로 주물러야 하는 일보다는 쉽겠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나는 그만큼 아버지의 병간호를 두려워  하는 자식이었다. 그런데 일이 어렵게 되었다. 물을 말리기 위하여 수건을 짜는 것이 아닌 물을 얻기 위하여 수건을 짜야 했기에 나는 매번 헐겁게 수건을 비틀어야 했고 짠 듯 안 짠 듯 한 상태의 수건을 볼 때면 한 번 더 힘을 주어서 꽉 비틀어 짜고 싶은 마음이 좀 처 럼 가라앉지가 않던 것이다. 그럴 때는 그만하고 싶었다. 대야에 담긴 젖은 수건을 어두운 안방에 널고 나오면서 생각했다. 물 한 방울 남김없이 꽉 짜고 싶다. 탈탈 털고 싶다. 마당으로 나가 널고 싶다.

 시를 쓰면서 무엇 하나 시원스러운 결과가 없는 내가 어느새 젖은 수건이 되어버린 내가 막비 동인들이 주는 상을 받게 되었다. 누군가는 젖은 나를 꽉 짜주길 바랬던 마음을 막비 동인들이 알아차리고 힘을 쓰신 것은 아닐까하여 고마움이 크나크다.

 탈탈 털겠다. 마당으로 나가 널겠다. 곧 마르면 드리리라. 젖은 곳 어디라도 닦을 수 있는 수건을./김보숙




김보숙 2011년 《리토피아》로 등단. 막비시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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