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작품(전체)
15호/중편연재/손용상/土舞 원시의 춤 제3화/ 악몽惡夢
페이지 정보

본문
중편연재
손용상 (소설가)
土舞 원시의 춤
제3화/ 악몽惡夢
1.
사람이 죽었다.
그것도 부임 첫날, 철민이 임지인 자야뿌라 공항에서 현지 직원들의 마중을 받은 후 근 30여 분이나 차를 달려 빌라를 겸한 현지 사무실로 들어서자마자 마치 기다리고나 있었듯 통신실의 SSB(무선라디오 송수신기)가 지랄같이 울어댔다.
“여기는 뎀타 뎀타… 긴급상황 발생, 긴급상황 발생, 즉시 연락바람 오버.”
철민은 영문 모르게 관자놀이가 쭈뼛해졌다. 사무소장인 신 과장이 흘끔 철민의 눈치를 살피며 부리나케 송수화기를 빼들었다.
“여기는 자야뿌라 자야뿌라… 무슨 일이냐? 오버.”
“어이, 신 과장, 여기는 뎀타… 이사님 잘 도착했냐? 오버.”
제2캠프인 하버(선적장) 책임자인 임 과장이었다. 그는 그 와중에도 철민부터 챙기며 안부를 물어왔다. 그는 본사 산림개발부에 입사해 잠시 동안 철민의 밑에서 일했던 인연이 있는 친구였다. 철민이 입맛을 쩍 다시며 얼른 송수화기를 신 과장으로부터 건네받았다.
“임 과장, 나 김 이사요. 무슨 일이요? 오버.”
“아, 이사님 건강하십니까? 오버.”
“아 그보다 뭔 일이냐니까? 오버.”
“아 예… 큰일 났습니다. 권 대리가 물에 빠졌습니다. 오버.”
“뭐라고….”
철민은 갑자기 손끝에 힘이 쭉 빠지며 말끝을 흐렸다. 공항에 나왔던 직원들이 심각한 표정들로 숨을 죽이며 통신실로 모여 들었다. 그는 한동안을 멍하니 서 있다가 다시 송수화기를 고쳐 잡았다.
“여기는 김 이사… 무슨 얘긴지 상세히 말하라 오버.”
“아 그게… 오늘 오후 점심 식사 후 앞바다에 고기 잡는다고 나갔다가…배가 뒤집혔습니다… 오버.”
“이런 미친….”
옆에 섰던 현장 총 책임자인 정 부장이 혀를 끌끌 차며 멍하니 서있는 철민으로 부터 송수화기를 낚아채듯 빼앗아갔다.
“여기는 정 부장… 무슨 도그 스피커냐? 더 자세히 말하라. 오버.”
“그 그게 저어… 권 대리랑 쏘밀(제재소) 최 기사랑… 현지인 한 명이… 말없이 카누를 타고 나갔는데….”
얘긴즉 이러했다.
휴일인 그날 오후 직원들은 두목이 바뀐다고 아침부터 군대식으로 환경정리를 합네, 숙소를 청소 합네 부산을 떨다가 점심식사 후 잠깐 시에스타(낮잠시간)를 즐기려 각자 헤어졌다고 했다. 그 사이 권 대리와 제재소 기사 한 명이 보고도 없이 현지인 한명을 데리고 카누를 타고 앞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다가 배가 뒤집혔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다행히 두 녀석은 구명조끼를 입은 덕에 허우적거리는 중에서도 헤엄을 쳐 살았고 그중 가장 헤엄을 잘 친다고 소문난 권 대리는 자기들을 이끌고 해안까지 왔는데 순식간에 큰 파도가 덮치면서 갑자기 실종되어 버렸다는 얘기였다.
철민은 정황보고를 받으며 귓속에 이명 현상이 일어남을 느꼈다. 아울러 다시 온 몸에 힘이 빠지며 눈을 감았다.
―하필이면….
그는 실종되었다는 권 대리를 생각했다. 그가 알기로는 네모그룹에 입사 5년생. 한동안 건축기획팀에 있다가 인도네시아 현지법인의 제재공장 신축요원으로 선발되어 6개월간의 파견근무를 하던 친구였다. 그리고 이제 곧 건물 준공을 앞두고 한 달 후면 일을 마무리 하고 본사 귀임을 기다리던 공학도였다. 성격이나 대인관계가 상당히 나이스 했고 매사 긍정적이고 웃음을 잃지 않는 인상으로 남아있었다.
2.
―그런데…하필이면….
철민은 현장으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느꼈던 무언가 찜찜했던 기분이 현실로 되살아남에 기분이 영 개떡 같아졌다. 그는 문득 이곳으로 오기 얼마 전 술 한 잔을 걸친 끝에 장난삼아 들어본 어떤 점쟁이 할머니의 말을 떠올리며 온몸으로 전율이 퍼짐을 느꼈다. 그때 그 점바치는 말했다.
“어, 이 양반 보게, 기가 대단히 쎄구만. 당신… 신 같은 거 잘 안 들리지?”
“예?”
“마… 일테면 무당 푸닥거리나 또는 최면술 같은 거 있잖갔어? 기런 건데… 쉬운 예로 종교같은 데도 잘 안 꼬이디?”
“글쎄요….”
철민은 그때 그 이북출신 점쟁이가 말하는 푼수와 표정이 우스워 내가 과연 그런가 하는 생각은 하지도 않은 채 실실 웃음만 날리고 있었다. 그리곤 불쑥 그녀의 흉내를 내며 물었다.
“길쎄… 그딴건 모르갔고… 내가 말이디요. 며칠 있다가설랑 저 멀고 먼 나라로 나가는데… 내가 그곳에서 죽갔시요? 살갔시요?”
철민은 그가 생각해도 참으로 황당한 질문을 퍼부었지만 그 할머니는 아주 심각한 표정으로 그를 지켜보다간 공연히 한숨을 푹 쉬었다.
“내레 그랬지? 당신은 기가 쎄다고… 당신이 죽는거이 앙이라 엉뚱한 사람이 가갔구만. 기런데… 그곳에 물이 있는감?”
“기럼, 사방이 바다인 큰 섬인디….”
“기렇구만…암튼 당신은 안 죽어. 명도 길어 바람벽에 똥칠하도록 살갔어!”
그 할머니는 욕인지 칭찬인지 함부로 말을 뱉어내며 꼭 맡겨놓은 것처럼 돈 만원을 가로채갔다.
“어쩌죠?”
눈을 감은 철민의 주변에서 서성거리던 정 부장과 신 과장이 자기들이 무슨 죄인이나 된 것처럼 그의 눈치를 보았다. 그는 손바닥으로 얼굴을 문지르며 턱으로 앞쪽 의자를 가리켰다. 그들이 다소곳이 앉았다.
“일단 현장으로 갑시다.”
“괜찮겠어요? 피곤하실텐데….”
신 과장이 어물거렸다.
“지금… 피곤이 문제요? 그보다… 정 부장은 나랑 같이 가고… 신 과장은 제2캠프에 연락해 장비과장더러 큰 차 가지고 제1캠프로 오라세요. 그러고 이곳 병원에 연락해서… 시신 도착하면 방부처리 하도록 준비 해 놓으세요. 본사에 보고 펙시밀 기안해 놓고….”
“방부처리라니요?”
신 과장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철민이 멀거니 그를 쳐다보았다. 마치 부잣집 막내같이 뭘 모르는 듯한 그의 표정에 잠시 짜증이 일었다.
“보소! 더운 나라에서 사람이 죽으면 빨리 부패하잖소. 권 대리… 죽었다고 치고… 빨리 운구해다가 처리해서 서울로 보내야 할 거 아니요?”
“서울로 보내요?”
“그럼… 끼고 살거요?”
철민은 그에게 퇴박을 주곤 서둘러 일어났다. 그새 정 부장은 바깥에서 차에 시동을 걸어놓고 그를 기다리고 있다가 흘끔 그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저어기… 이사님, 조금 더 기다려 보는 게 어떨까요?”
“왜요?”
“아까 확인하니까… 지금 주재 경찰들과 함께 바지선 타고 수색 작업중이라던데… 혹… 시신을 건져 바로 이송을 한다면… 길에서 엇갈릴 수도 있잖겠어요? 여기서 현장까진 두 시간 반이나 걸리는데….”
“그것도 그렇네요. 그럼… 어떡한다?”
철민은 사건이 하도 창졸간에 일어난 일이라 얼른 판단이 서지 않는 자신이 짜증스러워 머리를 흔들었다. 정 부장이 담배를 한 대 꺼내 그에게 권했다. 그리곤 위로하듯 입을 열며 눈을 내리깔았다.
“오시자마자… 죄송하네요. 저희들 불찰이예요.”
아닌 게 아니라 철민은 속으로 은근히 부아가 치밀었다. 씨부럴 놈들이 얼마나 기합이 빠졌기에 저 뒈질 줄 모르고 덤벙거렸는지 우선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더군다나 하필이면 부임 첫날에 이게 무슨 날벼락이람! 철민은 그가 준 담배를 깊숙이 빨았다 뱉어내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참… 난감하네요. 근데… 이 일을 우짜믄 좋소?”
정 부장 역시 할 말이 있을 리 없었다. 그냥 입을 봉한 채 묵묵히 서있는 그의 목구멍에서 꿀꺽 침 삼키는 소리만 유난히 크게 들려왔다. 하지만 그렇게 맥 놓고 서있을 일만도 아니었다. 뭔가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철민을 짓눌러왔다. 그는 담배를 밟아 끄며 생각을 가다듬었다.
“우리… 이러고 있을 일이 아니고… 여기는 신 과장에게 맡기고 직접 병원에나 가봅시다. 우리 회사 담당의사 같은 거… 없어요?”
“아!있어요. 미스터 콤보이이라고… 말라리아 전문의인데… 도립병원에 근무해요.”
신발 끝으로 땅만 푹푹 파고 있던 정 부장이 비로소 할 일이 생겼다는 듯 얼른 고개를 들며 말을 받았다.
“거 다행이네. 근데 그 친구… 이런 일 생기면 잘 도와 줄라나?”
“그럼요. 우리 신세 좀 지고 있거덩요.”
“신세라니>”
철민은 문득 의아한 생각이 들어 고개를 갸웃했다. 신세를 진다면 우리 직원들이 질 일이지 왜 그 의사가 지는 건지 납득이 가지 않았다. 정 부장이 그의 그런 느낌을 눈치라도 챘는지 지나가는 어투로 말을 흘렸다.
“수시로 빌라에 와서 밥도 같이 먹고 부식도 얻어가고… 그래요. 그러고 말라리아 약도 단골로 우리에게 공급해주고 있거든요. 자바출신인데… 여기 혼자 와서 살고 있는 친구죠.”
“그래요.”
철민은 무심히 고개를 끄덕이다가 얼핏 언젠가 본사 감사팀에서 현장 경비를 체크하던 중 의외로 의약품 비용이 과다하게 청구된 것을 문제 삼았던 일이 떠올랐다. 그 후 지적이 내려가자 황 이사건 모두가 욕을 바가지로 퍼부으며, 야 씨부럴 놈들아! 너들 여기 와서 근무해봐라. 한 달 거리로 염병이 걸려 턱턱 자빠지는데 병원에도 가지 말고 직원들 약도 먹이지 말란 말이냐고 하도 난리를 쳐 그만 유아무야 덮어둔 적이 있었던 일이 생각나 철민은 그냥 히쭉 웃음이 나왔다.
철민이 뚜벅 물었다.
“말라리아가 그렇게 심해요?”
“그럼요. 이건 마치 거짓말 같아요. 덩치가 이따 만한 애들이 그냥 한순간 열이 40도나 오르고 덜덜 떨어대는 데는… 대책이 없어요.”
정 부장은 때마침 잘 물었다는 듯 몸짓까지 해보이며 말라리아 ―이른바 학질 혹은 염병이라고 알려진 풍토병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을 늘어놓았다.
그의 말에 의하면 이놈의 풍토병은 약을 먹어도 내성이 없다고 했다. 결국 체력이 떨어지면 걸렸다 나았다 또 걸리고 하는 고약한 놈이었다. 그리고 한 번 걸렸다하면 몸이 오실 오실 춥다가 고열이 따르고 온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오한이 덮치며 마치 ‘영혼이 떠나가듯’ 한다고 했다. 그러다 한식경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말짱하다는 거였다.
“영혼이 떠나가요.”
철민이 이죽거리듯 물었다.
“그럼요. 제가 두어 번 당했는데… 한 번 열이 오르기 시작하면 몸이 꺼부러지며 뭔가 자꾸 헛것이 보이고…암튼 지랄 같은 놈이더라구요. 이사님도… 조심하세요.”
철민은 생각했다. 이곳에 오기 전 간단한 오리엔테이션을 받을 때 담당자는 이렇게 말했다.
“그곳엔 고약한 풍토병이 많아요. 특히 성병 조심해야하는 건 말 할 것도 없고… 잘못 걸리면 고추가 썩어요. 약도 없어요. 그리고… 말라리아는 체력 관리가 가장 중요합니다. 제 아무리 모기가 물어뜯어도 강성 체력만 유지하면 끄덕도 없어요. 그런데 한 가지 주의할 점은 이것을 예방한답시고 ‘금계랍’ 같은 약을 상용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거 조심해야 돼요. 그곳엔 리쏘친이라는 의약품이 있는데…이런 독한 약은 상용하면 신장을 다칠 우려가 있으므로 항상 의사 지시를 따라야 할 거예요….”
철민은 머리가 복잡해졌다. 그럼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말이 체력유지지 보자 하니, 그게 어디 생각대로 되는 것인가. 이곳에 근무하는 산판 기술자들도 덩치나 체력이 누구보다 못해 걸리는 것은 아닐 것이었다. 매일 산 속을 헤매며 땀 흘리다 보면 여간 잘 먹지 않고서는 어떻게 몸을 보할 것인가. 인삼 녹용을 달고 살란 말인지… 예라, 모르겠다. 깐 놈의 것 걸리면 걸리라지. 한번 부딪쳐 맞짱 한번 떠보면 뭔가 해결책이 나오겠지… 철민은 이판에 무슨 놈의 호사스런 고민인가 싶어 얼른 정신을 가다듬었다. 차가 어느새 병원 정문을 들어서고 있었다.
3.
닥터 콤보이는 아주 자그마한 체구의 전형적인 인도네시아 사람이었다. 자카르타 출신이라면 우리네로 치면 ‘서울내기’였다. 그래서인지 눈빛도 반들반들하고 영리하게 생긴 친구였다. 현지어를 구사하는 정 부장이 통역을 맡았다 철민은 손을 내밀며 정중하게 머리를 숙였다.
“말씀 많이 들었다. 그런데… 이번 우리 직원이 불의의 사고를 당했는데….”
“만나서 반갑다. 그 얘긴 미스터 신에게 들었다. 유감이다. 미스터 권… 참 좋은 사람이었는데….”
닥터 콤보이는 의례적으로 철민의 인사를 받았다. 그리곤 탐색하듯 그를 쳐다보다가 뭔가 불안정하고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정 부장에게로 눈을 돌렸다. 그의 입에서 장황한 현지어가 쏟아져 나왔다. 철민은 머쓱한 기분이 들어 멀뚱멀뚱 그들의 대화를 지켜보면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 정 부장이 잠시 후 궁얼궁얼 욕지거리를 뱉어내며 고개를 흔들었다.
“뭐래?”
“씨발놈이 돈 달래요. 병원 본부에 얘기는 했다는데… 해부해서 방부처리하려면 경비가 든다는데요.”
“그렇겠지!”
철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바라보았다. 닥터는 그런 철민의 모습이 자기에게 동조라도 하는 줄 알았는지 아주 벙긋 웃음을 보내왔다. 철민이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불쑥 물었다.
“얼마야?”
“50만 루피는 줘야 된다는데요?”
정 부장이 입맛이 쓰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면… US로 얼만데?”
“한 500 달러… 됩니다.”
“츳, 이 녀석 대목 만났는갑다.”
듣기론 이 나라 고급공무원 월봉이 200여불 내외라고 들었는데, 보자 하니 이 친구가 요구하는 액수는 대충 그들 석 달 봉급인 셈이었다. 철민은 녀석에게 똑바로 눈을 맞추며 살랑살랑 웃음을 보냈다.
“닥터 콤보이?”
“……?”
철민이 부드럽게 그를 부르자 녀석은 그와 정 부장을 번갈아 쳐다보며 뚜릿뚜릿 눈알을 굴렸다. 통역하세요! 철민이 정 부장에게 눈짓을 하며 다시 그를 향했다.
“우리 회사 도움을 많이 줬다는 데… 다시 한 번 고맙게 생각한다.”
“무얼… 내 의무를 했을 뿐이다.”
쌔애끼, 가증스럽긴… 철민은 울컥 얄미운 생각이 들었지만 그대로 웃음을 지우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닥터 콤보이?”
“?”
녀석의 눈동자엔 이 친구가 본론을 얘기 안 하고 왜 자꾸 살살 웃으며 이름만 불러대나 하는 의구심이 일고 있었다.
“내 생각엔… 당신이 꼭 사기꾼같이 보인다. 30만 루피만 받아라. 이 나쁜 자식아.”
정 부장이 갑자기 당황스럽게 눈을 굴렸다. 그대로 통역해요! 철민이 짓궂은 표정으로 그를 재촉하자 정 부장은 잠깐은 망설이다가 제풀에 풀썩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리곤 그의 어깨를 감싸듯이 하면서 무언가 몇 마디 말을 건네자 녀석은 연신 고개를 끄덕끄덕하면서 철민을 향해 미소와 함께 땡큐, 땡큐를 연발로 보내오는 것이었다.
“뭐라 했소?”
철민이 정 부장에게 물었다.
“나도 한때 의사공부를 하다가 그만뒀다. 왜냐면 오지로 발령 났기 때문이다. 너는 정말 이런 오지에서 근무하는걸 보니 인도네시아의 슈바이쳐 같이 보인다고 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30만 루피 정도로 본부에 얘기해 보라구….”
“사람도 차암… 당신이 사기꾼이네”
철민이 방긋 웃음을 풀지 않은 채 녀석의 손을 잡아 흔들자 그가 물었다.
“뭘 전공했냐?”
철민이 갑자기 말이 막혀 잠깐을 망설이자 다시 정 부장이 거들었다.
“산부인과라고 하지요.”
“그러쇼.”
철민은 이 판국에 이게 무슨 해괴한 짓거린가 싶어 입맛이 썼다. 하지만 그러한 흰 짓이 씨알이 먹혔는지 닥터 콤보이는 자기가 어떻게 30만 루피에 해결을 보겠노라고 생색을 내며 솔직히 자기는 이번 일에 그냥 자원봉사를 하는 것이라고 누차 강조함도 잊지 않았다.
갑자기 정 부장 차에서 무선 라디오가 삑삑거리며 신호를 보내왔다. 그들은 서로 눈을 마주치며 얼른 차로 달려가 송수화기를 빼들었다.
“여기는 본부, 말하라 오버.”
“아 정 부장님, 여기는 뎀타… 권 대리를 찾았습니다. 오버.”
정 부장이 고개를 흔들며 더 이상 물어볼 엄두가 안 나는지 가만히 입을 닫고 있었다. 철민이 송수화기를 뺏아 들었다.
“상황 보고하라. 오버.”
“죽… 었습니다. 오버.”
예상했던 바였다. 실종되어 한식경이 지났다면 물고기가 아닌 담에야 살아날 가망은 애초부터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혹 부근 해변에라도 떠밀려 있었다면… 했던 실 날 같은 희망도 이제는 없어져버린 셈이었다. 철민이 목에 가래가 끓어오름을 삼키며 저도 모르게 목쉰 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야아 씨부럴 양반들아. 잘했다. 잘했어. 건졌다면… 빨리 끌고 올 일이지 뭐하고 자빠졌나? 오버.”
“지금 막… 출발합니다요. 오버.”
철민은 팽개치듯 송수화기를 내던지곤 풀썩 차 옆 잔디밭에 퍼질고 앉으며 공연히 억울한 심정이 들어 울컥 눈물이 치솟았다.
생각해보면, 어디 사람 죽는 것 한두 번 보았나. 젊은 시절 몸담았던 베트남 전장에서의 기억으로 따진다면 이번 사건 같은 건 참말 아무 것도 아닐 수도 있을 터였다. 어디 그뿐이었나. 중동의 사막생활 때에는 단지 캠프장이라는 직책 때문에 안전사고 차사고 자살사고 등등으로 죽은 시신을 어느 해는 거의 한 달에 한 번꼴로 거두고 부검하고 포르말린으로 방부처리해서 서울로 이송했던 일도 적지 않았었다. 그런데…도대체 무슨 팔자인가. 한동안 뜸했던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이 또 여기서 벌어지다니… 철민은 잔디밭에 넋을 놓다시피 앉아 애꿎은 담배만 줄치기로 갈아 태우고 있었다.
“이사님… 심정 좀 푸시고… 뭘 좀 잡수셔야죠. 그러고, 어쩌겠어요? 기왕 저질러진 일인데….”
주변에서 서성거리고 있던 정 부장이 위로하듯 말을 건네며 슬금 철민의 눈치를 살폈다. 그리곤 그를 부축하듯 일으켜 세웠다.
4.
무릇 모든 생명체는 살아 움직이는 동안만 그 의미가 있는 법, 영혼이 떠나버린 육신을 한낱 정육점에 걸린 고기 덩어리로 비유한다면 너무 심한 생각일까.
철민은 도립병원의 시체 해부실 창밖에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죽은 권 대리의 시신이 갈라지고 분리되고 방부처리 되는 것을 참관하며 착잡한 심정이었다. 권 대리의 육신은 닥터 콤보이와 또 한명 조수의 손에서 전혀 거리낌 없이 기계적인 칼질에 난도질당하고 있었다. 그들은 마치 중학생 시절 산개구리를 해부하던 생물 선생님처럼 무표정한 얼굴로 권 대리의 배속을 갈라 포르말린 처리를 하며 슬쩍슬쩍 가끔 철민과 정 부장의 표정을 훔쳐보곤 했다. 정 부장은 시종일관 얼굴을 찌푸린 채 담배를 물었다 빼었다 하다간 종래에는 못 참겠다는 듯 복도 바깥으로 내빼고 말았다. 철민은 팔짱을 낀 채 숙연한 심정으로 복도 유리창 너머로 그 광경을 목도하면서 아주 오래전 베트남 전장에서 맞보았던 우울한 기억이 되살아남에 푸르르 몸을 떨었다.
그곳은 영현중대 소속의 6종 처리 반이었다. 6종이란, 군대용어로 사람의 시체를 뜻하는 말이었다. 말하자면 군에서 필요한 모든 장비, 재료는 종별로 나뉘어져 1종, 3종은 쌀, 기름, 병기 등을 일컫고 2종, 4종은 피복류, 부식 등 소모성 보급품을 주로 지칭하고 있었다. 따라서 군을 구성하고 있는 장병들도 국가의 재산이니만큼 넘버링이 되어있는 바, 사람 몸뚱이는 6종으로 분류되어 있는 거였다.
어쨌거나 그때 철민은 석 달 동안의 야전 생활을 거쳐 월남어 교육대에서 현지어 교육을 받은 다음 정보처 소관인 민사심리대 요원으로 차출되어 이곳저곳 현지 마을을 돌아다니고 있을 때였다. 그는 문자 그대로 민심을 파악하고 그 결과를 리포트 하는 등 나름대로 보람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아군의 한 소대가 베트콩의 소굴인 한 마을을 덮치는 와중에서 역습을 당하는 바람에 거의 일개 소대 전체가 전사하는 끔찍한 상황을 보게 되었고, 미처 본부와 연락할 틈도 없이 인근 부대로 시신을 옮긴 다음 그들을 후송하는 책임을 맡아 이른바 6종 처리반까지 수송해가는 악연(?)을 겪은 적이 있었다.
그곳에는 약 1개 분대가 상주하고 있었다. 생각이 그래서인지 그들의 영내로 들어서자 온 전신에 피 냄새, 시체 냄새가 코를 찔렀고 저절로 구토가 올라오는 경험을 했다. 그들 병사들은 하나같이 눈에 핏발이 서있었고, 판쵸 우의에 고깃덩이처럼 묶여져 던져지는 시체더미를 함부로 굴리며 바퀴달린 들것에 담아 냉동실로 가져가는 모습은 얼핏 저승세계의 야차 같은 느낌을 주었다. 그때 그 처리반의 선임하사는 이렇게 말했다.
“처음에는 띨띠름 했지비, 근디 자주 부닥치니까 그냥 좆같이 생각돼. 산놈에게나 정이 가는 거지 뒈진 놈에게 정준들 뭐 할 거시여. 기냥 아무 것이나 짝 맞춰 꿰매갖고설랑 화장터로 발랑발랑 보내버리는 게 장땡이여”
처음엔 뭐 이런 새끼가 있나? 불끈 혐오감이 치솟았지만 사실인즉 그 현장을 보고난 후에는 그 선임하사의 말에 수긍이 안 가는 바도 아니었다. 그들의 일은 우선 찢어지고 갈라진 시신을 모아 사람 형태로 재구성하고 꿰맞춘 다음, 적당히 시신에 묻은 핏덩어리를 닦아내는 것이 첫 번째 일이었다. 그런 다음 인적사항을 기록하고 대충 염을 한 후 자루에 넣어 냉동실에 보관했다가 화장터로 보내는 것으로 그들의 임무는 일단 끝나는 것이었다.
그때도 철민은 팔짱을 낀 채 묵묵히 그들을 지켜보며 참 사람 살아가는 방법도 여러 가지라는 생각에 마음이 어두웠었다. 하지만 이런 궂은일도 누군가는 해야 하는 것. 철민은 나중에는 그들이 존경스러워 자기도 졸병인 주제에 그 선임하사의 주머니에 돈 100달러를 찔러주며 공연히 눈물을 글썽이기까지 한 기억이 새삼 되살아나 가슴이 답답해왔다.
5.
“대충 끝났나 본데… 어떡헐까요?”
어느새 다시 들어왔는지 정 부장이 철민은 의식을 일깨웠다. 철민은 깜짝 제정신으로 돌아오며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수술대 위에 반듯하게 누워있는 권 대리의 창백한 모습이 눈 하나 가득 클로즈업 되어 비쳐왔다. 어느 사이 그의 시신은 말끔히 닦여져 있었고 메스로 갈랐던 아랫배 쪽은 깔끔하게 처리되어 홑이불에 덮여져있었다. 철민은 문득 코가 막히며 울컥 눈물이 치솟았다.
“아주 잘 처리되었다. 뱃속에는 포르말린에 적신 솜으로 채웠다. 이제 안치실로 옮길 텐데… 화장을 할 것인가?”
닥터 콤보이가 울먹이는 철민의 어깨를 감싸듯 하며 속삭이듯 말을 건넸다.
“화장을 할 것이면 뭐 하러 이런 일을 했겠나? 한국의 그들 부모들이 시신을 확인하기 전에는 우리 맘대로 못한다. 일단… 비행기 예약이 되면 내일이든 모래든 바로 떠날 것이다.”
철민을 대신하여 정 부장이 대답했다.
“비행기는… 어떻대요? 신 과장이 준비하고 있나요? 그리고 경찰서 확인이랑… 어찌 되었는지 알아보세요.”
비로소 철민이 눈물을 닦으며 정 부장을 향했다. 그리곤 콤보이의 손을 잡아 흔들며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달했다. 녀석은 천성이 고운 듯 철민의 눈물에 자신도 눈자위가 붉어지며 말없이 그의 손을 꼭 잡아 주었다.
바깥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병원 뜨락에는 현장의 모든 간부들이 전부 모여 웅성거리며 철민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고현장에서 올라온 임 과장이 그와 눈이 마주치자 쭈빗쭈빗 몸 둘 바를 몰라 하며 사람들 틈에서 얼굴을 숙이고 있었다. 모두들 한두 번씩은 본 얼굴들이었지만 임 과장은 그래도 철민 밑에서 몇 개월을 같이 근무한 인연이 있었는지라 그가 새 두목으로 온다니 얼마나 반가웠을까. 그런데 하필이면 그 소속의 직원이 익사하는 사고를 일으키자 그는 온몸에 힘이 빠진 듯 철민을 볼 면목이 없는 듯 보였다. 하지만 어쩌랴. 지금 이곳에서 관리 책임을 묻는 것도 우스운 일이고… 철민은 한동안 침묵으로 그들을 바라보다가 불쑥 욕지거리 섞인 말을 뱉으며 분위기를 바꿨다.
“씨팔, 어디 가서 술이나 한잔 합시다.”
6.
그들이 몰려간 곳은 트로피카나라는 술집이었다. 요즈음으로 치면 단란주점쯤이나 될까. 조각거울을 박은 원형 샹들리에가 번쩍번쩍 요란을 떨며 숨 가쁘게 돌아가고 있었고 적당히 시끄러운 음악소리가 홀 안을 가득히 메우고 있었다. 중앙 홀 양쪽으로 촘촘히 들앉은 간 막이 된 방들에는 호스티스들이 삼삼오오 둘러앉아 걸치게 담배들을 빨고 있는 모습이 마치 항구도시의 홍등가를 연상케 했다. 철민은 홀 안을 들어서며 눈살이 찌부러졌지만, 그렇다고 뭐 뾰죽스럽게 격조 있는 술집을 찾은 것도 아니기에 암말 없이 앞장선 정 부장 일행을 따라 갈 수밖에 없었다.
정 부장이나 신 과장은 아마도 단골인 듯 그들의 모습이 비치자 문 앞에서부터 온 홀 안이 들뜨며 종업원들이 무더기로 몰려나와 그들 일행을 널찍한 특실로 모시듯 안내했다. 자리에 좌정을 하자 철민은 비로소 같이 온 일행들의 면면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실무총책인 정 부장과 업무의 신과장, 장비의 구과장, 선적과 제재소 책임자인 임 과장을 빼고는 모두가 포레스터(산림기술자)들이었다. 입사해서 현지로 떠날 때 잠깐잠깐 만난 적이 있는 얼굴들이었지만 같이 술집에서 맞대면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인 사이들이었다. 그래서인지 술병이 들어와 몇 순배가 돌아가기 전까지는 모두가 머뭇머뭇 눈치만 보며 서로가 서먹한 표정들로 말들을 아끼고 있었다.
더군다나 오늘 벼락 맞듯 동료를 한 명 잃은 뒤끝이라 뭐 그리 신날 일이 있을 턱도 없었고, 거기다 며칠 전까지 그들과 동고동락했던 전임 황 이사 대신 회장의 ‘따까리’ 출신인 신임 두목이 왔으니 자연히 분위기가 경직될 수밖에 없을 터였다. 철민은 본능적으로 그들의 이심전심을 읽을 수 있었다.
이를테면 “씨팔, 저 새끼 재수 없는 놈 아냐? 왜 멀쩡하니 잘 지내던 놈이 하필이면 저 새끼 오는 날 뒈졌나” 뭐 이런 느낌들이 그들 사이에 알게 모르게 이어지고 있음을 그는 육감적으로 감지하고 있었다. 철민 역시 그 문제에 대해선 이미 본인이 회의가 들 정도로 깊이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권 대리가 죽은 것이 그의 탓(?)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억울한 심정이었다.
“그나저나….”
철민은 무거운 분위기를 깨뜨리며 뚜벅 입을 열었다. 그리고 바로 직격탄을 날렸다.
“오늘 참… 뭐라 할 말이 없네요. 하필이면 내가 오는 날 이런 불상사가 생겼는지… 나도 참 곤혹스러운 심정이네요. 혹… 여러분… 날 저승사자쯤으로 생각하는 건 아니오?”
갑자기 분위기가 수런거렸다. 그들을 마주치며 암말 없이 시선을 밑으로 내려 깔았 다. 정 부장이 손을 내저으며 끼어들었다.
“무슨 말씀을… 할 말은 아니지만 권 대리 그 친구 수영 좀 한다고 많이 까불락 거렸어요. 언젠가도 혼자 뎀타 앞 바위섬까지 헤엄쳐 갔다가 한번 치도고니를 당한 적이 있었는데… 암튼 그 친구 운명이지… 무슨….”
“그래요. 이사님 오시자마자 이런 일이 있는 건 우리가 직원관리 못한 탓이예요. 마음 푸시고… 술 한 잔 하십시오.”
임 과장이 침통한 얼굴로 정 부장을 함께 거들며 앞에 놓인 양주병을 들어 철민에게 권했다. 철민은 암말 없이 술잔을 받았다. 그리곤 도로 술병을 빼앗아 일행들의 잔에 일일이 술을 따랐다.
“자, 죽은 권 대리 영혼을 위로하는 뜻에서 쭉 단숨에 비웁시다. 서울 같으면 빈소에서 밤이라도 함께 새워줘야 하는데….”
철민은 아까 병원에서 방부처리 한 그를 냉장실로 옮기며 이미 식어진 그의 몸뚱어리 위에 혼백이 떠있다면 얼마나 더 춥고 외로울까 하는 생각에 손끝이 떨렸다. 그리고 또 지금쯤 그의 서울 집에선 얼마나 황당한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물론 회사 담당부서에서 사람이 가서 위로를 하고 장례준비를 하겠지만 그 가족들은 슬픔을 어떻게 감당하고 있을지 걱정이었다. 그리고 다행히 권 대리의 가족들은 분별력 있는 사람들로 알려져 있어 턱도 아닌 생떼를 부리진 않겠지만, 철민의 해외 근무경험으로 봐서는 시신을 메고 회사 정문에 버티고 앉아 무리한 돈을 요구하는 사람들도 없잖아 있었다.
그런 경우를 당하면 회사로서는 참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중동현장의 한 기능공이 부인이 바람이 나는 바람에 자살을 한 적이 있었는데, 시신이 도착하자 오히려 그 부인이 웬 이상한 시동생이란 사람들을 데리고 와 회사 노무부를 뒤집어엎으며 억대의 보상금을 내놓으라고 억지를 부린 일이 있었다. 말리다 못해 결국에는 경찰이 동원되고 거기다 부인의 외도를 지탄하는 고인의 유서가 공개되는 등 해프닝이 벌어져 주변 사람들이 하품을 하며 인상을 찌푸린 웃지도 못할 사건이었다.
7.
“형님! 술 한 잔 받으쇼.”
갑자기 포레스터들 중의 한 친구가 철민을 형이라고 부르며 불쑥 술잔을 들이 밀었다. 그는 기술인력 중에서 리더를 하고 있는 박 기사로 불리는 친구였다.
“…….”
창졸간에 형님이 되어버린 철민은 얼핏 입이 떨어지지 않아 엉거주춤 그의 술잔을 받아들었다. 사람들의 표정이 슬그머니 굳어지고 있었다. 녀석이 힐쭉 웃으며 말을 이었다.
“권 대리 그 씨발 놈이야 죽은 놈이고… 제가 그냥… 이사님을 형님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옛날 황 이사님도 그랬으니까요. 산판 노가다도 둘째가라면 서러운 꼴통들인데… 그냥 앞으로 아우처럼 대해주시길 바랍니다. 형님!”
―이 친구 봐라. 그래서 어쩌자는 건가?
철민은 다분히 시비조로 그를 걸고 넘으려 하는 녀석의 심리가 헷갈려 얼른 대꾸를 못한 채 우선은 벙긋 웃음으로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다. 그는 박 기사가 내민 술잔을 받으며 재빠르게 머리를 굴려 보았다.
―화를 내면 우스워진다.
언젠가 중동현장 근무시절에도 이와 비슷한 일이 몇 건 있었다. 3천여 명이 들끓던 현장의 캠프장을 하던 철민의 사무실엔 항상 불만 가득한 기능직들이 들락거리며 시비 아닌 시비를 걸거나 공연한 골통을 부린 적이 적지 않았다. 주로 먹거리에 관한 불평들이 대부분이었는데, 하긴 여자가 있나, 술이 있나, 덥고 삭막한 환경에서 생활하다 보니 자연히 동료들끼리 싸움도 잦았고 그러다보면 그들을 간섭하고 징계권을 행사하는 관리직 사원들이 2차적인 시비의 대상이 될 수밖엔 없을 터였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도로 개설현장에서 중장비를 몰던 한 기능직이 들개 집을 발견하곤 들 강아지 몇 마리를 들고 와 기르다가 수시로 한 마리씩 몰래 끄슬러 먹은 사건이 생겼다. 쉽게 생각하면 그 깐 들개 몇 마리 쯤 구워 먹었기로서니 뭐 큰 잘못이냐고 할지 모르지만, 그게 그런 게 아니었다. 특히 건설 현장에선 ‘개를 잡아먹는’ 해프닝은 금기시되어 있었고, 어쩌다 그런 일이 있은 후에는 희한하게도 꼭 뭔가 사고가 터지는 터부가 있었다. 그러니 자연히 견공들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외 다른 산 짐승이라도 현장에서 도살하는 일이 적발되면 바로 조기귀국을 당하는 중벌이 매겨져 있었다.
다행히 그때 큰 사고는 없었지만 ‘개를 끄슬러 먹었다’는 소문이 금세 나돌고 그 기능공은 징계위원회에 회부되어 조기귀국을 당하게 되자, 사흘 밤낮을 행패를 부리며 철민과 그 직원들을 협박하는 바람에 아주 곤욕을 치른 적이 있었다.
그때 그 친구의 논리는 간단했다.
“씨발, 더운 나라에서 제대로 영양보충을 안 해주니 보신탕이라도 끓여먹어야 몸보신을 할 거 아니오?”였다.
그리곤 몇 밤을 철민의 숙소로 찾아와서는 갑작스레 형님이라 했다가, 아저씨라 했다가 종래는 씨발 놈아 잘 먹고 잘 살라고 욕바가지를 퍼부으며 철민이 한 주먹이라도 날려주길 은근히 유도하곤 했다. 왜냐면 ‘빽’ 좋다고 알려진 철민이 열 받은 끝에 손찌검이라도 한차례 해준다면 그냥 같이 물고 늘어져 뭔가 덕을 좀 보리라는 얄팍한 계산이 그에게 깔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한창 젊은 나이의 철민 인들 왜 불뚝하는 성질이 없었을까. 그러나 그는 그 당시 그 따위 일들 때문에 수시로 상당한 약발을 받는 일이 허다했지만, 그렇더라도 백번 웃으며 그 상황을 넘기는 슬기와 지혜를 스스로 몸에 익혔기에 지금까지 그런대로 버텨온 게 아닌가 생각하고 있는 터였다.
철민은 박 기사가 준 술잔을 원 샷으로 한입에 털어 넣고는 곧바로 그에게 잔을 돌렸다. 그리곤 벌쭉 웃어 보이며 그냥 반말을 깔아버렸다.
“형님? 조오치! 마침 난 혼자 몸이고 동생도 없는 처지니 여기 있는 식구들 모두 형, 아우 하자구. 양산박 하나 만들지 뭐… 하지만 장소를 가리고 말고 하는 건 자네들 몫이니까 그건 알아서들 할 일이고… 그나저나 박 기사?”
“예에….”
녀석이 쑥스러운 듯 눈을 내려 깔며 공손해 졌다. 철민은 탐색하듯 불쑥 물었다.
“자넨 마치… 노지심처럼 머리도 짧고 덩어리도 큰데… 산에 들어가면… 주로 뭘 먹고 지내노?”
“개는 안 잡아 묵심더.”
녀석이 희죽 웃으며 대답했다. 그는 생긴 것 답지 않게 철민의 말뜻을 영리하게 알아듣고 있었다. 왜냐하면 해외 각 현장에서 몇 차례씩 공문 아닌 공문으로 현장 살생을 금한다는 회장 지시가 내려간 일이 있기 때문에 그들은 그것을 기억하고 있는 듯 했다. 그들 그룹의 회장은 독실한 불교신자였기에 어찌 보면 쓸데없는 지시까지 하는 셈이었다.
“그럼… 영양보충은 뭘로 하노?”
“예, 뱀은 잡아 묵심더. 그러고 가끔 산속에 들어가면 굼벵이도 잠아서 데쳐 묵곤 하지요. 단백질 보충엔 끝내주거덩요.”
“굼벵이를 데쳐 먹는다고?”
“예… 맞있어요.”
“맞있다고? 에이, 설마… 그걸… 어찌 묵노?”
“아, 진짜라요. 처음엔 꼭 아구찜에 들어가는 미더덕 씹듯이 물컹 즙액이 나와 질색을 했지만, 먹어보면 그냥 먹을만합니다요. 담에 숲에 들어가면 잡아드릴께요.”
“아아, 됐네. 자네나 많이 데쳐먹게나.”
철민이 울컥 입속으로 메스꺼움을 느끼며 얼굴을 찡그리자 정부장이 웃으며 끼어들었다.
“실제로 숲속 사람들은 그걸 고급 음식으로 먹습니다. 썩은 나무 등걸이나 사구(고구마처럼 생긴 구근 식물)뿌리 밑에서 잡아 풀잎에 싸서 살짝 데쳐먹곤 하지요. 과거에….”
정부장의 얘기에 의하면 실제로 이런 일이 있었다고 했다.
―얘긴즉, 숲속에 거주하는 어떤 부족의 촌장 손자가 얼굴이 갑자기 창백해지고 종이리에 입은 상처가 곪아 구더기가 일 정도로 상태가 심각하자, 마침 그라운드 서베이 들어갔던 박기사 일행에게 도움을 청한 일이 있었다고 했다. 다행히 서베이 팀들은 기본적인 항생제나 구충약 같은 약품들을 상비하고 있었기에 급한 대로 항생제와 구충제를 먹이고 상처에 소독을 해주는 등 응급처치를 해주었고, 아울러 내친 김에 더운 물에 우황청심환까지 개어 먹였다고 했다. 그러자 그 이틀 후 신통하게도 아이가 아래위로 뭔가 회충인지 촌충인지를 한웅 큼이나 토해내면서 얼굴색이 돌아왔고 종아리 상처도 차도가 있었다고 했다. 모르긴 해도 처음으로 먹어본 구충제나 항생제 등에 대한 약효가 직방으로 나타나지 않았겠냐고 생각했다고 했다. 어쨌든 그러자 촌장이 너무 좋아 하면서 연회를 베풀어주었는데, 그때 특식으로 대접해 나온 게 굼벵이 요리라고 했었다. 보자 하니 아직도 굼실거리는 놈들이 약간 숨만 죽어 있어 도저히 그냥 씹지는 못하고, 입속에 바로 털어 넣고는 물 한 컵 마시고 할 수없이 우황청심환 토막으로 입가심을 했다면서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면서 정부장은 박기사의 머리에 가벼운 꿀밤을 먹이곤, 그날의 헤프닝에 한 술 더 뜨던 황당한 짓으로 부락 토인들에게 작은 감동까지 선사했다는 얘기까지 털어놓으며 다시 한 번 킥킥 웃었다.
“그게… 뭔데?”
“저 친구가요… 갑자기 배낭에서 모기향을 꺼내 아이 방 앞에 피우면서 연기가 오르자 직원들을 꼬드겨 절을 시켰다고 해요. 그러면서 불경인지 뭔지를 주문처럼 읊조렸답니다. 마치 한국 무당 푸닥거리 하듯 춤사위도 곁들이면서… 아이 방 안팎으로 들락날락거리며 청심환을 개서 아이에게 먹이곤 또 주문을 외우곤 했답니다. 처음엔 직원들도 너무 황당해서 저 친구가 갑자기 약간 돌았냐고 생각 했답니다. 근데 알고 보니 박기사가 얼마나 능청스럽게 그 사람들 구미에 맞게 토속적인 푸닥거리를 적절히 연출하였는지… 한 순간에 부족 토인들을 확 내편으로 만들었다는 얘기지요. ㅎㅎ… 더군다나 추장 손자까지 나았으니까, 그 이후로 박기사는 그들에게 사위될 뻔 했다지요. 이마….”
“거참! 그런 일이 있었군요. 근데 고추마개 조롱박은 안 달았나? 토인들 사진 보니 어른들은 죄 달고 있던네. 그나저나 후황청심환은 왜 개먹이나? 듣자니… 상처하고 구충에는 관계없는 약이잖아요?”
철민이 정부장을 보고 웃었다.
“그냥 한 번 해보는 짓이지요. 토인들 관심 끌려고… 청심환 아니면 소화제용 환약도 서베이 팀은 항상 갖고 다녀요. 스푼에 개서 먹이면 냄새가 싸아하니 토인들 보기엔 신비해 보이니까. 그러고… 고추마개 다는 부족은 와메나 족이라고 이곳하곤 큰 산 두어개는 넘어야 있어요. 요즘은 관광객들이 경비행기 빌려 가곤 한다는데… 사진은 그쪽에서 나오는 것이지요. ㅎㅎ.”
“아참, 부장님… 그 언제적 얘길 하십니까요?”
한동안 가만히 정 부장 얘길 듣던 박기사가 별 흥미 없다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입맛을 다시며 다시 철민을 돌아보았다.
근데 혹… 형님! 이번 권 대리 그 자석 죽은거… 일루다 갖다 부칠라카는 거 아임니꺼?”
철민은 풀썩 웃음이 나왔다. 정부장이 일러준 박 기사의 일화와 더불어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며 가식 없이 내뱉는 그의 말이 오히려 밉상이 아니어서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남들이 들으면 웃을 얘기지만, 미상불 이런 일이 터지면 본사 비서실이나 감사실 같은 데서 사건 개요다, 원인이 뭐냐? 관리책임자는 뭐했냐? 회장 지시사항은 엄수했느냐(살생금지)? 등등 미주알고주알 지시가 내려오고 또 보고를 해야 할 일을 생각하니 철민은 또 다른 측면에서 머리가 아파왔다.
“꼭 그런 거 아니고… 회장님 불심이 하도 유난하시니까… 또 공연히 날벼락 맞을까 걱정 돼서 물어봤네.”
“차암… 말도 안 되는 억지 아잉교? 그런 거는….”
박 기사는 제 술잔에 스스로 술 한 잔을 채우더니 굴 꺽 굴 꺽 단숨에 비워버리며 투덜거렸다. 다른 직원들도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들로 서로의 눈을 마주치면서도 모두가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나마 박 기사 정도이니까 한마디 뱉었다고 할까. 워낙 지엄(?)한 회장의 지시가 장난이 아니었고 또 거기다 철민이 그의 측근중의 측근으로 소문이 나있는 터라 함부로 더 이상 지껄일 입장들이 아닌 것을 그들은 알고 있었다. 분위기가 다시 이상해지자 정 부장이 뚜벅 가르고 나섰다.
“암튼… 회장님 말마따나 현장에서 살생은 좋지 않으니까… 앞으로 조심할 일이고… 자 모두 잔들 비우고 오늘은 일찍 들어가자구. 동료 한사람이 죽었는데 우리끼리 한없이 제낀다는 것도 좀 미안한 일이고….”
그러면서 그는 철민의 눈치를 흘끔 살폈다.
“그래요. 정 부장 아우 말이 맞네. 우리 내일 권 대리 녀석 떠나보내고 언제 날 받아 한 잔 다시 합시다. 오늘은 솔직히 생각보다 술 마실 기분이 내키지 않네요. 그러고… 빌라 들어가서 본사랑 여러 가지 협의할 것도 있고….”
철민이 결심한 듯 홀짝 잔을 비우고 일어서자 모두들 주섬주섬 옷을 챙기기 시작했다. 시간은 이미 9시를 가리키고 있었고 그들이 밖으로 나오자 바깥은 아직도 후덥지근한 열대 풍이 그대로 살아있어 철민은 전혀 기분이 상쾌해지지가 않았다.
8.
참 이파리도 무성했다.
시내 상가지역을 조금만 벗어나면 바로 밀림이 시작이라도 되는 듯 가로수들은 열대 특유의 무성함을 저마다 자랑하며 이파리를 너울대고 있었다. 철민은 빌라로 향하는 차 속에 깊숙이 몸을 묻고 꿀렁꿀렁 흘러가는 바깥풍경을 우울할 심정으로 내다보고 있었다. 누군가 읊었던가. 꽃이나 열매는 그 잎이 있으므로 돋보이고 매력이 있는 것이라고…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꽃이나 열매가 발갛게 알몸으로만 돋아나 있다면 사람들은 금방 싫증을 느낄 것이다. 모두가 더불어서 저마다의 역할을 함으로써 군생(群生)의 아름다움이 빛나고 그 향기가 누리에 퍼져가는 것이 아닐까?
사람들이 들끓는 도시의 밀림이나 억년의 전설을 간직한 자연의 밀림이나 그 철리(哲理)는 변함이 없을 터였다. 그리고 그 속에서 모든 살아있는 생물들은 명예나 권세나 부를 위해서, 때로는 종족의 번식을 위해서 서로 피 튀는 경쟁을 벌이며 적자생존의 법칙에 물들어가는 것도 또한 다를 바가 없을 것이었다.
철민은 생각을 늦추지 않았다. 그 역시 이러한 자연의 섭리를 따라 이곳저곳 흘러 다니며 부와 명예를 쫒고 그것을 거머쥐기 위해 영일 없이 뛰어왔지 않은가. 하지만 이쪽이든 저쪽이든 밀림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복판으로 들어설수록 온갖 장애물이 가로 막았고 한고비를 넘으면 또 몇 개의 건너야 할 산과 강들이 그의 힘을 빼곤 했다. 그런데 그는 또 한 번의 고비에 서 있었다. 아직 밀림의 ㅁ 자도 맛보기 전에 그는 누구에겐가 보이지 않는 손으로부터 틈입을 거부당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의 머릿속에 맴돌고 있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은 그저 철없는 학생의 캠퍼스적인 낭만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닐 것이라는 회의와 두려움이 어느 때보다 강하게 그의 뇌리를 짓눌러왔다.
회장은 철민의 출국신고 시 이렇게 말했다.
ㅡ이번 자네가 가는 곳은 모래 한 톨 보기 힘든 천연의 밀림 속인 것을 내 잘 알고 있네. 그러나 우리가 풀한 포기 보기 힘든 중동의 메마른 사막에서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했듯이 그곳도 결국에는 인간의 발자국이 찍혀져야 하고 그럼으로써 세상 밖으로 그 속옷이 드러나고야 말 것이야. 김 이사는 그 전위대로써 인생의 보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 믿네. 가서 우리 네모 그룹의 깃발이 이리안자야의 밀림 속에서 펄럭이도록 최선을 다하게.
사람이란 참 이상도한 동물이었다. 최고 지휘자의 그런 말 한마디와 어깨 두드림 한 자락에 몇 밤을 뒤척이며 불안해하던 마음이 어쩌면 그렇게 한순간에 스러지는 것인지? 한때 월남 전선에서 몇 주간을 베트콩과 싸우다가 속에 악만 남은 병사들이 막사로 돌아오면 별과 말똥 장교들이 군악대를 동원하여 팡파레를 울려주며 어깨 두드리고 손 한번 꽉 잡아주는 것으로 모든 원망이 사그라졌다는 한 초급 장교의 얘기가 빈말이 아니었다는 것을 그때 철민은 새삼 느꼈다.
철민은 문득 시간을 보며 담배를 빼물곤 차창을 조금 열었다. 늦은 저녁이었지만 아직 열대의 온기는 수그러들지 않은 채 후덥지근한 바람이 차창을 비집고 들어왔다. 정 부장이 백 밀러로 흘끔 그를 훔쳐보며 말을 걸었다.
“아까…신 과장에게 들으니…서울 사모님께 전화가 왔었다던데…알고 계세요?”
“뭐라구요…?”
철민은 담배 불을 붙이다가 깜짝 정신을 돌리며 되물었다.
“사모님 전화…서울서…”
“아, 예. 신 과장에게 들었어요. 근데…여기 전화사정이 안 좋다던데…잘 걸려요?”
“씨름 좀 해야죠. 교환 통해 하니까…그래도 그런대로 통화는 돼요”
철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깊이 들여 마신 담배연기를 천천히 내뿜었다. 차창 속으로 아내 얼굴이 떠오르며 눈살을 찌푸렸다.
ㅡ아휴 그놈의 담배…정 피고 싶으면 뻐끔 담배를 피던가…그렇게 헤비하게 안빨면 안돼요?
그녀는 철민이 뱉어낸 뭉클한 연기를 손으로 저어 날리며 제발! 하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철민은 피식 웃음이 나왔다. 한때 그녀는 참견도 많이 했다. 철민이 근무하는 해외현장으로 보내는 그녀의 편지 속엔 온통 그의 버릇에 대한 종알거림이 가득 찼고, 이럴 땐 이렇게 하고 저럴 땐 저렇게 하라는 어머니와 같은 잔소리만 정이 뚝뚝 떨어지듯 빼곡히 채워져 있곤 했다.
이를테면, 당신…샤워는 매일 하시나요? 당신은 건성피부라서 매일 샤워를 하면 안 좋아요. 꼭 해야 되면 비누 쓰지 말고 그냥 맹물로만 하셔요. 그러면 몸이 좀 덜 가려울 거예요…라든가, 또는 당신은 세수할 때 요란한 편이니까 그럴 땐 세면기 앞에 꼭 수건을 깔고 해야만 물이 덜 튄다구요. 특히 세면 시 허리를 꾸부릴 땐 꼭 기마자세로 해야만 삐끗 하지 않으니까 조심하라든가…귓전에 맴도는 아내의 속삭임들에 철민은 한결 기분이 좋아지며 얼른 빌라로 돌아가 그녀의 정감 있는 목소리가 듣고 싶어 갑자기 마음이 조급해졌다.
9
빌라 1층의 사무실엔 본사로부터 온 팩스가 수북이 쌓여있었다. 각종 장비 부품 등에 대한 가격 리스트, 제조업체들의 회사 소개와 아울러 회장의 지시와 해당 산림개발부의 공문이 부문별로 차례차례 정리되어 있었다. 부서에서 보낸 것은 예상했던 대로 모두가 “상황을 정확히 육하원칙에 의거 보고하라”는 투의 내용이었고 다만 회장의 팩스엔 “직원들의 사기가 떨어지지 않도록 사후처리를 잘하라”는 말과 이번 사태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는 위로의 내용이 함께 담겨있었다. 그리고 끝부분에는 비서실의 미스 리가 끼어 보냈음직한 영문 알파벳으로 쓴 암호 같은 문자가 찍혀있었다.
“ISANIM HIM NESEYO BOGOSIPNEYO”
철민은 문득 서울의 모두가 보고 싶어 울컥 코가 막히며 전화기를 들어 교환을 불렀다.
만리 이국 저쪽에서 들려오는 아내의 목소리는 생각보다 또렷했지만 뭔가가 안쓰러운 느낌이 바닥에 깔려있었다. 철민은 울컥 몸 속 깊은 곳으로부터 올라오는 그리움이 가슴에 하나 가득 고이며 송수화기를 고쳐 잡았다. 아내가 먼저 물었다.
“사고가 났다면서요?”
“응”
“괜찮아요? 당신?”
“좀…힘들어. 엄마랑…아이들은?”
“그냥…잘 있어요…”
아내의 대답이 시원찮았다. 철민은 다시 한 번 송수화기를 바꿔 잡으며 떠나올 때 몸이 성치 않아 있던 아들 녀석 생각에 뭔가 석연찮은 두려움 같은 것이 스물 스물 관자놀이에 올라붙음을 느꼈다.
“꼬마는…어때?”
전화기 저 쪽에서 아내의 침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잠시 말이 없었다.
“꼬마는…괜찮아? 최 박사…뭐래?”
“수…술 해야 될지도 모른대요…”
그녀의 목소리가 젖어있었다. 철민은 공연히 열이 오름을 느끼며 소리치듯 다시 물었다.
“왜? 뭣땜에?”
“자세히는 모르지만…심장에 무슨 구멍이 뚫려 문제가 있대요…”
철민은 손에 힘이 빠졌다. 호사다마라 했나. 삐죽삐죽 남의 질시까지 받아가며 나름대로 직장과 사회에서 승승장구하면서 장가가고 돈 벌고 재산 밑천이라는 첫딸 낳고 토끼 같은 둘째까지 보았다. 그리곤 5년이란 터울 끝에 겨우 얻은 아들 녀석이 뭐라고? 신체에 문제가 있다고? 그것도 심장이라니…철민은 억장이 무너지는 심정으로 억지 쓰듯 새삼 아내를 불렀다.
“여보세요, 뭐라고? 심장이 어떻다고? 최 박사 그 새끼 전화번호 좀 대봐”
“……”
“그 새끼 전화번호 달래니까!”
철민은 악을 썼다. 그는 공연히 억울하고 화가 났다. 애매한 최 박사에게 왜 욕지거리가 나가는지 그 자신도 알 수가 없었다. 아내가 달래듯 말했다.
“알았어요…그보다 어머님 바꿔 드릴께요.”
그녀는 철민은 대답도 듣지 않고 송수화기를 어머니에게 넘겼다.
“애비냐?”
“엄마?”
“오냐…”
어머니는 전화를 받자마자 잘있냐, 몸은 어떠냐, 먹는 건 챙기냐, 잠자리는 괜찮냐…등등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듬뿍 늘어놓은 다음, 애 어미가 너 떠난 후 얼마나 마음고생이 많은지도 빠뜨리지 않고 철민에게 일러주었다.
그러나 철민은 어머니의 목소리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눈앞에 꼭 애비와 빼다 박았다는 이목구비가 반듯한 아들 녀석의 앙증스러운 모습만이 어른거리며, 그가 술이라도 한잔 걸친 후 자는 놈을 억지로 깨워 일부러 울리곤 하던 정경이 떠올라 미칠 지경이었다. 녀석은 벌써 돌이 가까워오고 있었다. 백일이 지나 뽈뽈 거리며 기어 다닐 때, 그리고 옹알이를 시작했을 때 그는 얼마나 세상이 살맛이 나는지 몰랐다. 술좌석에 앉았다가도 문득 녀석이 보고 싶어지면 친구들의 욕을 등허리로 바가지를 먹어 가면서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곤 했다. 그리곤 아무 소용도 없는(아내의 말에 의하면) 장난감을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사 한 차 가득 싣곤 집으로 들이닥치면 아내는 눈살을 찌푸리며 어머니 몰래 온갖 인상을 다 쓰곤 했다.
그런데 녀석이 심상치가 않단다. 그것도 이제 호두알만이나 하려나, 조그만 녀석의 조그만 심장에 무슨 구명이 뚫렸다니…철민은 기가 막혀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그는 대충대충 어머니와 통화를 끝낸 후 송수화기를 던져버렸다. 그리곤 담배를 꺼내 물었다. 하루 종일 애꿎은 담배만 태워 죽인 탓인지 목구멍에서 가르륵 가르륵 가래가 끓었다. 그는 붙힌 담배를 두어 모금도 빨지 못하고 그냥 재떨이에 처박아 버렸다. 마음이 안정되지 않아 일어섰다 앉았다하며 사무실 안을 서성거리기 시작했다. 무엇부터 손을 대야할지…마치 신참 사원처럼 마음에 두서가 생기지 않았다.
“좀 주무셔야 되지 않아요?”
바깥 사무실에서 잔무를 보고 있던 신 과장이 빠끔하게 문을 열곤 그의 눈치를 보았다. 철민은 시간을 보았다. 밤 12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새벽에 일어나 자카르타를 떠났다. 그리곤 비행기를 세 번이나 갈아타며 현지 빌라에 도착 하자마자 곧바로 사고소식을 들었고 그 후속조치를 하느라 하루를 보낸 것이 마치 까마득한 옛날 일처럼 느껴지며, 그날 하루에 일어난 온갖 일들이 도무지 실감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몸이 축 쳐지며 눈짓으로 신 과장을 불렀다.
“술 있냐? 독주로…”
신 과장이 눈을 뒤룩뒤룩했다. 아까 함께 마실 땐 사양을 하더니 가로 늦게 뭔 일이냐는 표정이었다.
“있긴 하지만…괜찮겠어요?”
“뭐가?”
철민은 괜스레 눈을 치떴다.
“아, 아니요. 그냥…너무 피곤해 보이셔서”
“그래…아주 피곤하네. 그래서 한잔 마시고 골아 떨어졌으면 싶네…맥주잔에다 가득 한잔 부어서 일루다 좀 갖다 줄래?”
“그러죠…”
신 과장이 머리를 갸웃 흔들며 부엌으로 사라지자 그는 그제야 생각난 듯 책상머리로 다가가 백지를 펼쳐놓았다.
편지를 쓰고 싶었다. 아들에게, 그리고 아내에게 뭔가를 끼적여 보내야만 마음이 좀 가라앉을 것 같았다. 신 과장이 시킨 대로 맥주잔 하나 가득 양주를 채워 졸인 무말랭이 한 접시를 그의 책상 위에 가져다 놓고는 꾸벅 인사를 하고 나갔다.
ㅡ여보!
철민은 첫줄 한 줄을 써놓곤 또 문득 꼬마가 눈에 밟혀 가슴이 아려왔다. 언젠가 녀석은 애비가 바둑을 두는 옆에서 알찐거리다 순식간에 바둑알을 삼킨 적이 있었다. 그리곤 순간적으로 기도가 막힌 듯 울지도 못한 채 얼굴이 새파랗게 변한 적이 있었다. 얼마나 놀랐는지? 어쩔 줄 몰라 하는 그를 밀치고 같이 바둑을 두던 친구가 무지막지하게 아이를 거꾸로 들고 등을 두드리자 바둑알이 튀어나와 위기를 넘긴 적이 있었는데, 고맙고 놀라워하는 철민에게 그때 그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누구든 지새끼는 거꾸로 들 생각은 못한다. 남의 새끼니까 가능한거지…꼬마 저 녀석 때문에 오늘 십년감수했네. 술이나 한잔 사라”
ㅡ그래 이넘아. 내 서울가거덩 한잔 걸지게 사마.
철민은 혼자서 중얼거리며 술잔을 반이나 비워버렸다.
10
바닷가엔 바람이 불고 있었다. 철민은 옷자락을 여미며 바다 쪽에 얼기설기 꿰맞추듯 지어진 통나무집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주변을 돌아보니 그곳은 그들의 제2캠프인 뎀타 하버라 했다. 멀리 보이는 수평선 안쪽으로 파도가 허연 포말을 갈기처럼 흩날리며 성난 모습으로 밀려오고 있었다. 파도는 뉘엿뉘엿한 낙조를 뒤로한 채 점점 피 빛으로 채색되고 있었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갑자기 통나무 집 현관에서 아내가 꼬마를 안고 손을 흔들고 있었다.
ㅡ어? 언제 왔어?
철민은 참 이상도 하다고 고개를 갸웃하며 걸음을 빨리했지만 답답하게도 속도가 붙지 않았다.
ㅡ언제왔냐구?
철민은 아내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그녀는 말없이 웃기만 하며 꼬마의 손을 들어 함께 흔들어주었다. 꼬마가 칭얼대는 것 같았다. 머리를 제 어미의 가슴에 박았다 들었다 하며 칭얼칭얼 보채고 있었다. 철민은 어느새 꼬마 곁으로 다가가 녀석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ㅡ아, 아빠.
꼬마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ㅡ오오, 우리 새끼.
철민은 녀석의 볼을 감싸 쥐었다. 하지만 꼬마는 심하게 도리질을 치며 제 어미의 젖가슴을 더욱 세차게 파고들었다. 그러는 녀석을 아내가 매정하게 떼어내며 던지듯 철민에게 떠맡기곤 불쑥 말을 뱉었다.
ㅡ얼른 수술실에 숨기세요.
ㅡ왜?
ㅡ권 대리 오기 전에 빨리 꿰매야해요
ㅡ권 대리가? 왜?
아내가 눈을 치뜨며 한심하다는 듯 그를 쳐다보았다.
ㅡ못 들었어요? 우리 집에 우리 꼬마 보러 온다고 한거?
ㅡ무슨 개소리야?
철민은 문득 관자놀이에 쭉 소름이 돋으며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바삐 아이를 안고 돌아서다가는 갑자기 몸의 중심을 잃고 자빠지고 말았다. 저만치 튕겨져 나간 꼬마가 자지러지게 울었다.
ㅡ아가야…
사무실의 불이 휘황하니 그의 눈을 찔러왔다. 철민은 고꾸라져 자던 의자에서 튕기듯 일어나며 꿈속에서처럼 중심을 잡을 수가 없었다. 셔츠 속으로 흥건한 땀이 손바닥을 적실 정도로 흐르고 있었다. 그는 엉금엉금 기듯이 화장실로 다가가 욕조에 머리를 통째로 들이밀곤 수도꼭지를 틀었다. 뜨듯 미지근한 물이 순간적으로 그의 머리칼을 적시며 등골을 타고 옷 속까지 흘러들어왔다. 그는 가쁘게 숨을 들이쉬며 한동안을 꼼짝없이 그렇게 있었다. 머릿속에는 엉뚱하게도 자기가 지금 마치 꼬마를 대신하여 화장실일망정 권 대리를 피해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는 머리를 그대로 물속에 박은 채 어금니를 주근주근 씹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ㅡ권 대리 너…그러면 안돼! 우리 애 건드리면 안돼.
망막 속에서 권 대리의 모습이 흐릿하게 나타났다.
ㅡ야, 내가 너한테 잘못한 게 없잖냐?
철민은 힐난하듯 그에게 물었다. 녀석이 희부죽이 웃었다.
ㅡ그냥…꼬마가 예쁘다면서요? 그래…서울 가면 인사차 한번 찾아볼까 해서요.
ㅡ아냐, 아냐. 그럴 필요없다. 야, 권대리…너…서울까지 내 동행 할 테니까…우리집에 갈 것 없다. 내가…같이 가마.
철민은 마치 또 한 번의 꿈속에 빠진 듯 허황한 생각을 하다가 불쑥 욕조에서 머리를 빼들었다. 이번엔 머리가 빠개지듯 아프며 목구멍에서 가래가 끓어올랐다. 그는 바튼 기침을 하며 사무실로 돌아와 퍼지듯 소파에 몸을 던졌다.
황당한 꿈이며 망상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림처럼 선명하게 다시 그의 머릿속으로 되감겨왔다. 그는 입 속에 쓴 침이 고였지만 억지로 삼키며 담배 한대를 붙여 물었다. 그리곤 끼적이다 팽개쳐둔 편지지를 앞으로 당겨 새로이 펜을 들었다. 하지만 하고 싶은 말들은 한마디도 글로 이어지지 않았고 방금 꾸었던 꿈속의 장면들만이 백지 위에 너울대듯 오버랩 되며 알 수 없는 불안감만이 그의 가슴을 하나 가득 채워오고 있었다.
철민은 아주 옛날, 그의 형과 누이가 한꺼번에 홍역을 앓다가 형만 회복하지 못하고 죽었다는 할머니의 얘기가 떠올라 부르르 몸이 떨렸다. 그가 어릴 적 할머니가 들려준 그 괴담 같은 스토리는 이러했다.
남매가 한꺼번에 홍역을 앓았는데, 형은 어머니가, 누이는 할머니가 보살피고 있었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꿈속에서 과거 데리고 있다 죽은 노비 중의 한 여인이 문득 나타나 사랑채로 왔다고 했다. 네가 웬일이냐고 할머니가 호령을 하자 그럼 안채로 가서 도련님이나 찾아뵙고 가지요 하면서 사라졌는데, 그래서 그런지 그 며칠 후 어머니가 돌보던 형의 병세가 악화되었고 형은 그만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고 하면서 할머니는 눈물을 글썽였다.
철민은 그때 어린 소견에도 그런 말 같지도 않는 일이 어디 있냐고 할머니를 윽박지르며 병원에 갔으면 될 텐데 사람들이 무지해서 형은 죽은 것이라고 콧방귀를 뀌고 말았다. 그리고 그런 생각은 그때나 지금이나 조금도 변함이 있을 수 없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앞으로 결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오늘 같은 날, 어쩌면 옛날 할머니의 미신 같은 꿈 얘기들이 마치 생시처럼 내 꿈속에서 재현될 수 있는 건지? 철민은 다시 한 번 몸이 부르르 떨리며 손바닥에 배어 난 땀을 닦았다. 하지만…그는 벌떡 일어나 사무실을 서성거리며 결코 이대로는 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철민은 머리가 돌아버릴 것 같은 와중에도 문득 한줄기 반짝이는 지푸라기 같은 것이 떠올라 얼른 책상으로 돌아와 백지를 펼쳐 단정하게 놓았다. 그리곤 사인펜을 들어 죽은 권 대리의 영혼에게 바칠 제문을 쓰기 시작했다. 내일 아침 그는 해가 뜨는 대로 바닷가로 나가 권 대리를 위한 위령제를 지내기로 마음을 돌렸다.
11
갑자기 마른하늘에서 천둥번개가 치며 비가 억수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철민은 찦 차 앞 좌석에서 반 가수 상태로 흔들리다가 느닷없이 퍼붓는 빗소리에 깜짝 잠이 깨었다. 엊저녁 거의 눈을 붙이지도 못하고 죽은 권 대리를 위한 제문을 쓰다가 깜박 존 듯 만 듯한 것이 두어 시간이나 될까. 그는 깨어질 듯 아픈 머리를 찬물에 식히고 아침식사도 하는 둥 마는 둥 새벽같이 직원들을 일깨워 사고현장으로 차를 몰고 가던 중이었다.
차체를 두드리는 빗소리는 마치 다발총소리 같았다. 곧 차 지붕을 뚫고 총알이라도 쏟아질 것 같이 빗줄기는 거세고 요란했다.
“뭐야? 왜 이래?”
철민의 겁먹은 듯 한 목소리에 운전을 하던 정 부장이 풀썩 웃었다.
“스콜입니다. 곧 우기가 시작될 모양인데…시즌엔 하루에도 몇 차례씩 이래요. 그나저나…임도가 걱정이네요.”
정 부장이 입맛을 쩍 다시며 차를 세웠다. 도저히 차가 진행할 수 없을 정도로 유리창이 온통 물줄기로 덮이고 윈도 브러시도 소용이 없었다.
“임도…?”
“예에”
“왜?”
정 부장이 피곤하고 충혈 된 눈으로 흘깃 그를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뚜벅 입을 열었다.
“못 들으셨어요?”
“뭘?”
철민이 의아한 표정을 짓자 뒷 자석에 있던 박 기사가 불쑥 말허리를 자르며 끼어들었다.
“여긴…산이 움직여요!”
“뭐라구? 산이…움직인다고?”
“예에”
ㅡ야네들 봐라. 이거 신참 겁주려고 그러나? 산이 움직인다니?
철민은 꿀꺽 침을 삼키며 순간 마음이 꼬부랑 해졌지만 우선은 일단 그들의 얘기를 들어보자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자세히 말해 봐요. 뭔 얘기야?”
그들 네모그룹은 당초 이곳에서 산림개발사업을 시작하면서 주도(州都)인 자야뿌라 출장소를 거점으로 3개 장소의 베이스캠프 부지를 선정해 건축공사를 시작했다.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중장비 등이 들어와야 할 하버의 구축이었고 동시에 개발 임지(林地) 가까운 곳에 장비 집하 및 정비소 설치가 급선무였다. 그 다음 본 임지 내에 벌채를 위한 캠프를 개설하면 바로 벌채된 나무를 선적장까지 실어 날라야 할 코리도-즉 임도(林道) 건설이 필연적이었다.
산 넘어 산의 지형에 빽빽한 밀림을 뚫고 폭 5m 이상의 임도를 거의 80여km 남짓을 닦는다는 것은 말이 쉽지 장난이 아니었다. 물론 군데군데 지방도가 끼어있어 연결 연결을 한다 하더라도 도로 개설은 본업인 산림개발을 위해 기본적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될 또 한 개의 토목 프로젝트라 할 수 있었다. 때문에 산림기술자 외에도 토목 전문기사와 수십 명의 중장비 기사가 밤낮으로 붙어서 산허리를 자르고 돌과 흙을 메우고 다지고 하면서 2년여의 세월 동안 길을 닦고 있지만 아직까지 공정의 70%도 못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연유가 그러하니 당연히 본 임지 속의 질 좋은 나무는 아직도 한그루도 베어내지 못하고 길을 닦는 도로 양옆에 널린 나무들만 마치 도둑질하듯 잘라내어 그것을 팔아 경비 일부를 충당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었다.
그런데 이 도로개설에 문제가 있다는 얘기였다. 그들의 말에 의하면 건기동안 열나게 길을 닦아놓으면 그런대로 버티다가도 우기에 접어들어 비가 쏟아지면 도로 자체가 하룻밤 새 끊어지거나 아니면 위쪽 산이 ‘통째로 움직여’ 도로가 아예 없어져버린다는 얘기였다. 원인은 토질 탓이라고 했다. 그것 외에는 특별히 꼬집어 ‘이것 때문이다’ 라고 할 것이 없다고 하면서 정 부장은 푹 한숨을 내쉬었다.
“토질이 왜? 어떤데?”
철민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아 고개를 갸웃했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어떤 곳엔 산 전체가 진흙인지 찰흙인지로 형성되어있어 물만 먹으면 그냥 무너져버려요.”
“작업 전에 지질조사를 안 해요?”
철민은 힐난하듯 다시 묻자 정 부장이 그냥 씨익 웃었다.
“물론 하지요. 그런데…그런 곳을 피해가려면 연장되는 만큼 길 닦는 추가 경비가 곱빼기로 들지요. 그러니까…가능하면 물이 흐르던 하상(河床)을 치든가 산 아래 쪽으로 길을 돌리든가…머리를 싸매고 연구는 합니다만…”
그러면서 그는 정색을 하고는 오히려 철민이 답답한 듯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이런 거 다…벌써 본사에 보고됐을 텐데요…”
철민은 입을 다물고 비로소 고개를 끄덕였다. 언젠가 이러한 현지보고가 올라온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당시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새끼들 일하기 싫으니까 흰소리 하는 것’이라고 회의석상에서 그냥 일축함으로써 윗선에 제대로 보고도 하지 않았던 일이 생각나 가슴이 뜨끔했다. 그런데 현지에 와서, 이제 확인을 하면 금방 알 수 있겠지만, 지금 정 부장이나 박 기사의 표정으로 봐서는 그 말이 공정 늦은 것에 대한 변명이나 거짓은 아닌 것 같아 철민은 또다시 가슴이 답답해왔다.
철민은 정 부장의 흉내라도 내듯 똑같이 한숨과 더불어 입맛을 다시며 무심코 담배를 빼어 물다간 다시 넣어버렸다. 바깥 빗줄기는 다소 잦아들었지만 담배연기를 빼기 위해 창문을 내리기엔 아직 일렀다.
철민은 시계를 보았다. 아직 아침 9시가 채 안되어 있었다. 자야푸라 사무실에서 출발한 것이 7시 반 정도였으니 반쯤이나 왔을까? 현장에서 10시에 지내기로 한 위령제가 한 시간 이상 지연될 것 같아 그는 마음이 조급해졌다. 왜냐하면 오후 2시까진 다시 돌아와 병원을 거쳐 비행장으로 나가 권 대리의 시신을 우선 떠나보내야만 우선 한시름 놓을 것 같았기에 그는 정 부장을 재촉했다.
“그 얘긴…다시 검토하기로 하고…슬슬 출발해봅시다. 현장 식구들 기다릴 텐데…그리고 박 기사?”
“예에”
“현장에 제사 준비는 다 됐겠지요?”
“예, 신 과장더러 SSB 치라고 했는데…아마 잘 됐을 겁니다. 술이나 오징어 같은 건 제가 갖고 가니까…과일이야 그곳에 있을 거고…”
박 기사는 공연히 말을 더듬거렸다. 그리고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말끝에 갑자기 목소리가 젖으며 “권 대리 그 씨발놈”하고 중얼거렸다.
12
하오의 태양이 작열하는 비행장 활주로 아스팔트 위에서 그들은 2열로 도열해 있었다. 타향에서 비명횡사로 원귀가 되어 떠돌지도 모를 권 대리의 육신을 떠나보내기 위해 그들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넥타이 차림으로 예의를 갖추고 공항에서 병원 앰뷸런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아침부터 서둘러 현장으로 내려가 위령제를 지내고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양지 바른 언덕에 권 대리의 이름을 새긴 십자 팻말까지 하나 꽂았다. 그리고 그들은 곧바로 다시 비행장으로 차를 몰아 이제 마지막으로 그를 떠나보내기 위해 자리를 함께 한 것이었다.
철민은 모여 있는 사람들의 면면을 하나하나 챙겨보았다. 한국인 직원이 18명, 현지 채용 로칼까지 합치면 약 서른 명이 되었다. 적은 숫자가 아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침통한 표정으로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저만치서 정 부장이 캠프 경비 책임자인 아탱 영감과 무언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바(MR) 아탱는 흰색의 마도로스 모자를 트레이드마크처럼 쓰고 다니는 현지인 마을의 지킴이였다. 그는 왕년에 배를 타고 인도네시아 전역을 다녔다는 전력을 푯말처럼 내세우며 동네에서 말발께나 날리는 50대 중반의 사내였다. 듣기로는 그들 네모그룹 멤버들이 이 지역에 둥지를 틀 때부터 터 닦기, 집 짓기 등의 작업 시 로칼 인부들을 동원해주거나 부식을 조달하는 등 이른바 ‘한 구찌’잡은 사람이었다.
그러다보니 안 그래도 동네 건달 노릇을 하며 현지 주민들의 골목대장 노릇을 하던 그는 어깨에 힘이 더 들어가게 되고 그 덕분에 이제는 자기 동네는 물론 인근 타 지역 주민들도 괄시 못하는 인물로 성장해있었다. 그런가하면 머리가 잘 돌아가고 잔꾀가 많아 가끔 그들 네모그룹 사람들이 풀지 못하는 관공서 일까지도 그를 내세우면 잘 해결을 해오곤 했기 때문에 한국인 직원들도 그를 대접해주고 있다고 했다.
“물론 잔돈푼깨나 들어가지요. 영감이 노회해서 무슨 일이든 맨 입에 하려하지 않아요. 가끔 골치 깨나 썩히곤 하지요…”
위령제를 지낼 때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일을 거드는 그를 보고 철민이 물었을 때 정 부장이 귀띔해 준 말이었다.
생각해보면 어딜 가나 그런 부류의 감초는 있기 마련이었다. 다만 나설 때 안 나설 때를 잘 판단하며 적당히 뒷배만 챙기는 부류가 있나하면, 그야말로 천방지축 아무 곳에서 입질을 하여 주변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어이없는 사람들도 살펴보면 적지 않은 것이 현실이었다. 그러나 어쩌랴, 크든 작든 조직이 움직이는 곳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인걸…철민은 이것저것 생각에 머리를 흔들며 시간을 보았다. 2시 반이 조금 넘어있었다. 그는 아탱과 얘기하고 있는 정 부장을 손으로 불렀다. 그가 아탱과 함께 철민에게로 다가왔다. 아탱이 건달 특유의 삐딱한 거수경례를 올려붙이며 손을 내밀었다.
“정식으로 인사드리겠답니다. 말씀 들었다고…아깐 행사 때문에 인사 못드렸다고…”
정 부장이 아탱을 소개하며 빙그레 웃었다.
“반갑소. 우리 회사 많이 도와준다고…고맙습니다”
“별 말씀을…이번 미스터 권 일은 정말 가슴 아픈 일입니다.”
정 부장의 통역으로 잠깐 서로 얘기를 나누다 철민은 얼핏 이 영감이 아주 날탕은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오히려 경계심이 일었다. 그는 잠시 말을 끊고는 정 부장을 향했다.
“왜 안 오죠? 신 과장…?”
“별…문제없는 것으로 압니다만…곧 오겠지요. 비행기 시간이 3시 반이니까…아마 곧 도착할겁니다. 아, 저어기…”
정 부장이 갑자기 말끝을 바꾸며 손가락으로 활주로 한편을 가리켰다. 마침 기다렸던 앰뷸런스가 천천히 비행기 뒤쪽 화물칸 쪽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그들은 우르르 그쪽으로 자리를 옮기기 시작했다. 신 과장과 닥터 콤보이, 두어 명의 병원 관계자가 흰 가운을 입은 채 앰뷸런스에서 영구를 내리는 모습이 비쳤다.
철민이 맨 앞줄에 서고 이어서 그들은 다시 정렬해 섰다.
“일동 차려~”
정부장이 군대식으로 구령을 외쳤다.
“묵념!...”
철민은 눈을 감았다. 악몽 같은 만 이틀이었지만, 그는 얼굴도 못 본 채 어이없이 떠나보낸 권 대리를 향해 마음으로 깊이 조문하며 잠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ㅡ잘 가요! 당신과 내가 악연인지 뭔지 분간이 안 됩니다만, 어쨌건 우리가 서로 인연이 있었던 거는 사실인 것 같소. 회자정리(會者定離)라고 하지만, 그래도 가기엔 너무 일러 아쉽네요. 저승에서 극락에 머물기를 진심으로 바라오! 편히 가시오!
손용상 손남우孫南牛 경남 밀양 출생. 1973년 〈조선일보〉신춘문예 소설 당선. 소설집 『베니스 갈매기』, 『똥 묻은 개 되기』. 장편소설 『그대속의 타인』, 『꿈꾸는 목련』. 전작장편掌篇 『코메리칸의 뒤안길』. 중편소설 『꼬레비안 순애보』, 『이브의 능금은 임자가 없다』. 콩트·수필집 『다시 일어나겠습니다, 어머니!』. 에세이집 『우리가 사는 이유』. 에세이·칼럼집 『인생역전, 그 한 방을 꿈꾼다』. 시·시조집 『꿈을 담은 사진첩』. 경희해외동포문학상, 미주문학상, 고원문학상 수상. 한국, 미주문인(소설가)협회, 달라스 문학회원.
- 이전글15호/단편소설/유시연/낮고 쓸쓸하고 음울한 17.10.27
- 다음글15호/신작특선/천선자/파놉티콘·21 외 4편/시작메모 17.10.27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