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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호/신작시/권지영/산다는 건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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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권지영
산다는 건
비가 오고 가을은 저만치 비껴서고 있네.
축제 같은 하루도 일찌감치 저물고
순대국밥 집에서 계모임하는 동네사람들
시끄러운 테이블을 메운다.
네 식구 조용히 순댓국에 곱창볶음으로
허기진 주말의 저녁을 채우고 빗물 피해 걷는 길
차가운 공기가 가슴속으로 젖어든다.
일하던 대형약국에 사직서를 낸 친구의
막걸리 마신다는 문자
너도 와, 한마디
산다는 거 별 거 있나 말만 했지
비오는 저녁의 막걸리에 파전 한 장
달을 품은 동그란 사발로 들어간
그리움 한 덩이
슬슬 차오르는 취기에 눈이 젖어든다.
가벼운 눈송이*
눈송이가 무겁다면 저렇게 흩날릴 수 없지
가벼워야 무거움을 뿌리치고
무거움 속내의 설움을 훌훌 털고
저렇게 흩날릴 수 있지
지붕에 흩날리고 가로등 불빛에 흩날리고
그래도 내달릴 곳 없으면 허공에서 흩날리지
이 몸도 수만 리 마음 밖에서
터지는 불꽃 소리에 흩날렸으므로
앉아서 흩날리고 서서 흩날리고
무거운 무게만큼 쉴 수 없었던 한 생애가 아득하지
눈송이가 무겁다면 저렇게 문장이 될 수 없지
그래서 눈송이는 아득히 사무치는 시가 되지
*허형만 시인의 「가벼운 빗방울」에서 차용, 변주됨.
**약력:2015년 《리토피아》로 등단. 시집 『붉은 재즈가 퍼지는 시간』.동시집 『재주 많은 내 친구』.실용서 『꿈꾸는 독서논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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