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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호/근작읽기/양진기/나가리다 외 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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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1,315회 작성일 17-01-06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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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작읽기

양진기





<근작시>

나가리다




정선에서 빈털터리가 되면 가리왕산으로 가지 가리왕산 계곡에는 점 백 고스톱에서도 나가리를 외치던 가리봉동 살던 친구, 돈 다 잃었다고 마지막엔 언제나 가리로 하자던 가리왕 친구가 있지 그 친구와 천렵을 간 가리왕산 계곡 돌 틈마다 숨어 있는 쏘가리 날카로운 가시를 숨기고 있어 왜, 왜 의문부호로 서 있는 왜가리들 쏘가리 자시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지 계곡 옆 술자리 깔고 노가리 씹으며 노가리 풀던 친구 술기운이 오르니 가리발디 장군 같이 근엄한 표정으로 윗대가리들을 닭대가리니 새대가리니 발기발기 찢고 있어 겁대가리 상실한 이 친구야 조심하라고, 하늘에서 말똥가리가 눈을 말똥이고 있잖아 말똥가리가 의심을 거둘 때까지 우린 말대가리 가수의 노래나 부르자고 삐릿삐릿 파랑새는 푸른 기와집에서 날아가 버렸어 파랑새가 언제는 있었나 제길, 이제 가리는 그만하게 친구 내일은 어찌어찌 살림살이 좋아지지 않겠나 서로의 낟가리를 쌓아주는 시절이 곧 올 거야 자, 자 한 잔 털어 넣게 얼마 잃었나 개평이나 받으시게







이발사 김씨



빙글거리는 삼색등을 따라 지하 계단을 내려간다. 작은 새시문을 열면 17인치 브라운관 텔레비전이 왕왕거린다. 두 사람 앉을 수 있는 소파 옆 책꽂이에는 너덜거리는 만화책들이 비스듬히 쓰러져 있다. 까치와 엄지는 아직도 지하 이발관에서 이루지 못한 사랑으로 비통해 하고 강토는 카멜레온처럼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이발의자 서너 개 손님을 기다리고 있고 거울 위 낡은 벽시계 초침이 멈칫거리며 지체된 시공간을 돈다. 텔레비전에는 종북주의자들을 몰아내자는 종편방송이 번성한다. 귀밑머리를 다듬는 동안 시사토크 진행자와 정치평론가는 무상보육과 무상급식의 부조리함을 무한 재생한다. 공짜를 바라면 나라가 망한다고 애국심에 가득 찬 이발사 김씨는 눈 감은 나에게 동의를 구한다. 지하 이발소 구석에는 일 나간 딸이 맡긴 손녀가 혼자 놀고 있다. 가끔씩 가위질을 멈추고 손녀의 투정을 들어주며 과자를 챙겨주는 자상한 할아버지 이발사 김 씨는 아침에 무상으로 전철을 타고 이발소로 출근한다. 이발을 마치고 만원 한 장을 내밀자 돈통에서 꼬깃거리는 천원 세 장을 거슬러주며 선하게 웃는다.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김 씨는 머리칼과 비듬먼지가 쌓인 탁자를 후후 불고는 신문지를 깐다. 흰 커튼 뒤 냉장고를 열고 노인복지관에서 가져다 준 김치며 반찬을 꺼내 식은 밥과 함께 입 안으로 꾸역꾸역 밀어 넣는다. 천장에는 낮달 같은 형광등이 파리하게 떠서 흰 가운 걸친 김 씨의 얼굴이 푸르스름하다.






신의 손 성형외과



운명을 바꿔드립니다    


 성수聖手역 4번 출구를 나와 왼쪽을 바라보면 신의손 성형외과가 있지 4층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 커다란 황동 손바닥이 손님을 맞이하고 있어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말을 걸고 있어 손바닥에는 운명의 길이 다 적혀 있어 아무리 달아나봐야 부처님 손바닥 안이야 벗어나려면 손바닥에 있는 길을 바꿔야 해 좁고 부실한 길은 넓고 탄탄한 대로로, 끊어진 길은 다시 이어주고 자잘한 골목은 메워버리든가 수상학手相學에 정통한 상담실장이 손님의 손바닥을 들여다보며 손바닥에 금을 긋고 있다


 세로선이 중요해 삼지창 손금은 갑부들만 가지는 손금이야 운명선, 재물선, 사업선 다 흐릿하잖아 백 억 재산의 할머니 손금을 보라구 세로선들이 얼마나 선명한지 세로 손금 세 개에 백오십이야 아주 싼 거지 다른 손금도 손대고 싶어? 좋아, 특별 서비스로 생명선은 무료로 해줄게 재물도 좋지만 오래 살아야하지 않겠어 우리 원장님은 미세 절제술의 대가이시지 울트라 펄스 레이저 시술로 운명을 바꾸시는 분, 신의 손이시지


 압구정동에 성형외과를 개업했다 쫄딱 망한 원장은 수상가手相家 상담실장이 차린 신의손 성형외과에서 월급을 받으며 고객의 손바닥을 찢고 있다









냉장고와 어머니



냉장고가 운다
어둠 속에서 낮게 흐느끼다가
인기척을 느끼면 울음을 뚝 그친다
한밤중에만 캄캄하게 우는 냉장고


어머니가 우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자식들 앞에선 언제나 강했던 어머니
어두운 골방에서 저리도 낮게 흐느끼셨다


슬픔을 동결시킨다
터지는 울음을 가슴속에 우겨 넣는다    
얼어붙은 눈물들이 냉동실에 빽빽하다
 
밤마다 슬픔을 조금씩 해동시킨다
동결된 울음들이 녹아내린다
막힌 가슴에 숨길 하나 열린다
날이 밝으면 냉장고는 고요하고
아침을 준비하는 어머니
도마를 두드리는 칼 소리 경쾌하다








한남동 산15번지




꼭대기의 교회 첨탑이 하늘의 말씀을 수신한다
북적대던 도깨비시장은 인적이 끊겼다
버려진 좌판은 먼지가 더께를 이루고
파라솔에 덧댄 비닐들이 펄럭인다


계단 아래 골목 그 아래 계단
쪼그려 앉아 별높 별낮
둥근 딱지를 뒤집으며 세던
별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다방구를 외치며 술래를 피해 달음질치던
꼬마들 발자국이 어지럽게 찍혀 있다


어른들 한숨이 자욱하게 깔려 있는
골목을 이으면 등고선이 되는
개발을 멈춘 재개발구역
발굴하지 않아도 폐허로 남은 유적


갈고리달 끝에 십자가가 걸려
천천히 끌려갔다 아침이면 돌아오는
한남동 산15번지









<시작노트>

포충망에 들어온 나의 언어들




계절의 줄기 끝에 앉은 잠자리가 두리번거리고 있다. 풍자와 서정의 경계를 날아다니다가 잠시 숨을 고른다. 곧 찬바람이 불어올 것이다. 우물쭈물할 시간이 없다. 움켜쥔 손을 놓고 바람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날아갈 방향을 정해야 한다. 허공에 날아다니는 언어를 포획하려면 직관의 발톱을 예리하게 다듬어야 한다. 낚아챈 언어를 입안에 넣고 혀로 맛본다. 이빨로 잘근잘근 씹는다. 겨울이 오기 전까지 부지런히 먹을 것이다. 포충망에 들어온 언어들은 나의 살과 뼈가 될 것이다.









**약력:2015년 《리토피아》로 등단.  막비시 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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