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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호/신작특선/하두자/간절함에 바치다 외 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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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1,227회 작성일 17-01-06 16:27

본문

신작특선

하두자




간절함에 바치다



너는 꽃 이름으로 새 이름으로 바람의 이름으로 바다를 떠돌고 있는데, 내리는 빗소리는 부풀어진 머리 결을 잠재우는데, 너를 찾아가는 길 밖으로 비가 오는데, 갯냄새는 안개 낀 바위섬을 건너가는데, 진달래 아리게 피는 산허리 벼랑길은 파도에 부딪치는데, 내가 건네는 안녕도 알아듣지 못 하는데, 또 다른 나에게 들키고 말았는데, 끌고 다닌 외투에는 빠져 나오지 못한 물비린내만 스며들고 있었는데, 진달래 붉어 달아오른 술잔은 비스듬히 기울어지는데, 휘몰아치는 바람의 넋들이 너를 마구 흔들기도 하는데, 피고 지는 봄마다 넘어지는 내 물렁뼈는 반쯤인데, 적막한 세상을 쓰다듬는 법을 가르쳐 주기도 하는데, 허기로 채워지는 저녁 한나절 바다가 보이는 그네에 앉아 있는데 ,미처 빠져 나가지 못한 수많은 짐승들이 내 속에서 이렇게 뜨겁게 울부짖는데 나도 함께 목울대가 아리도록 울었는데.






별들의 화원




어느 날 내 치마폭으로 들어 왔어요
휘파람을 불면서
말랑거리며 떠오르는 달 속으로
부푼 아기집 속으로
 
더듬이에 잠시, 빤짝 불이 켜 졌죠
수 금 지 화 목 토 천 해 명 .....
별들이 수태를 해요
 
두근두근 머리에서 발끝까지
쿡 쿡 쿡 함빡 웃음 터뜨리며
수많은 별들이
나팔관에서 나팔을 불어요
 
빛을 삼키고
몸 안으로 쏟아지던 하혈이
치맛자락 물들이네요
불쑥불쑥 사생아로 태어나도
때로는 환한 꽃밭이고 싶었다구요
 
흐드러진 여름 밤
별들은 열 개의 손가락으로 춤을 추고요
별들은 하륵하륵 비명을 질러대고
누군가 내 몸에서 꽃씨를 받아내고 있어요







악수는 착하고 즐거운 인사



우리는 날마다 착하게 인사를 하지
동글동글 사과는 저울 없이도 접시에서 제 무게를 잘 지키고 있지
입술과 입술사이에 웃음도 걸어 놓아도 당신의 손은 언제나 불안해
뜨거운 찌개같이 끓고 있거든


살아온 세상은 같으면서도 서로가 달라서 
가끔은 푸른 다알리아 꽃을 손에 들고 나를 사랑하기도 하지
문장은 거품을 물고 당신은 이런 나를 물어뜯고 
나는 두통이 멈추길 기다리지 소용돌이에 갇혀서
하는 말과 하지 않은 말들이, 나쁘거나 나쁘지 않는 말들이
귓구멍을 파고 들어올 때
주어가 되는 사과는 어색한 목적어로 변할 수도 있다는 걸
키보드나 핸드폰을 두드린 손가락이 허공에다 스프레이를 뿌려대는 것처럼
 
한 사람은 말의 사실만 기억하고
말의 느낌만 기억하는 한 사람
당신이 있어 가능한 일이었어
내가 한 일은 당신이 알고 있고 당신이 한 일은 내가 알고 있어서
우린 자유롭지 못한 거지
그래서 우리는 주먹을 쥔 채 악수를 하고 있는 거야
어색한 사과를 받아먹어야 된다는 거지

남아 있는 내 사과는 접시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는데
남아 있는 당신의 사과는 수북하게 쌓여만 있네







프리미엄 가득한 아침 아파트




쿵쾅거리는 반음 낮은 지대
어두컴컴하고 우울한 아파트 위층과 아래층의
단말마 외침소리에
벽마다 붙은 개인사의 구직광고는 더덕더덕
높은음자리표를 달고 노래하지


어디 기댈 언덕이 있을까
특별한 대우를 꿈 꾸어보네
전원을 올리면 벌집처럼 달콤한 꿀물이 흘러내릴 것이라고


음표와 마침표로 이루어진 게 행복한 하루의 시작이라고?
 
주변 실정도 모르는 벚꽃들은 입을 열어 봄을 부르고
마이크에 울려 퍼지는 프리미엄이 가득 실려 있는 아침,
아니 플레카드에 가득 실려 있는 아침


아파트 전단지엔 부푼 봄이 만발하는데
누가 내 희망을 끝 장 내려고 하는 걸까


뉴타운 재개발지구에서
공중점프를 하는 저토록 완전무결한 난개발 수표가
프리미엄을 가득 싣고 내게로 달려오는데









장미




가슴 팍 위로 불이 지나갔다


상처와 상처 사이를 덧대다


어깨가 흐느꼈다


마음을 조여 매느라 부딪친 균열


균열이 번져 금이 되는 시간


아픈 것은 고픈 것이다


몸 속 깊은 곳으로 폭풍을 등에 지고 들어갔다


처참히 녹아내리려고


아니 넘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으로 버티다가,


가시에


마음을 베였다


붉어진 눈이 피를 뿌린다







**약력:1998년 《심상》으로 등단. 시집  『물수제비 뜨는 호수』, 『물의 집에 들다』, 『불안에게 들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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