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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호/신작단편/권영임/목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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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단편
권영임
목탁
달도 차암, 오살허게 밝다야. 이런 달빛이라문 바느질꺼정 허겄다…….
엄마 목소리가 들리는 듯, 고개를 돌려 아랫목 쪽을 흘낏 바라본다. 엄마는 두 다리를 구부려 가슴에 대고 모로 누워 있다. 남편 복 지지리도 없는 년이 무신 자식 복이라더냐? 잔소리라도 좋으니 입을 열었으면 싶다. 내 귀의 적막을 깨주기라도 하는 듯 딱딱딱딱딱, 목탁소리 환청이 들린다. 지금 이 나이에 내가 깨달아야 하는 것, 득도해야만 하는 게 있다면 그게 과연 무엇일까? 모든 게 너무 늦어버린 판국에 말이다.
전등을 끄고 창문을 활짝 열어젖힌다. 달빛이 창문 앞에 선 오동나무의 그림자를 끌고 방 안까지 와락 쏟아져 들어온다. 엄마를 덮고 있는 그림자는 엄마의 생에서 지워버리고 싶다던 기억을 표시해놓은 것 같다. 잠자듯이 죽어야 헐 턴디, 그래야 늬가 고생을 쪼깨라도 덜 허는디…….
돌아가실 무렵의 아버지 모습이 머리를 스친다. 아버지도 두 다리를 바짝 오그려 가슴까지 올리고 누워 계시곤 했다. 그런 아버지를 대할 때마다 이어지던 엄마의 푸념이 새삼스럽다. 아이구매, 다리가 코꺼정 닿겄다. 사람은 말이여, 쪼깨만 더 살다 가셨더라문 얼매나 좋았을까 허고 자식덜이 눈물 훔칠 때꺼정만 살아야지, 저러코롬 두 다리가 방아깨비마냥 코에 닿도록 살다 가문 되려 욕먹는 거여.
옷 사이로 드러난 엄마의 다리는 겨울 삭정이처럼 앙상하다. 말라비틀어진 대추처럼 까칠한 엄마의 손을 잡아본다. 얼굴에 내 손을 갖다 비벼도 눈조차 뜨지 않는다. 이 염주가 아니었으면 나는 펄시 죽었어야, 늘 가까이하던 염주를 손에 쥐여주어도 마냥 고개를 젓던 엄마가 이윽고 염주 대신 내 손을 잡는다. 엄마의 기억은 여섯 살 때의 내 손을 더듬고 있는지도 모른다.
엄마는 그 겨울날, 머리에 화로를 뒤집어 쓴 것처럼 불덩이가 되어 끙끙 앓았다. 찬 물수건을 머리에 얹고 누워서도 가슴이 탄다고 했다. 나는 밖으로 달려 나가 쌓인 눈 속에 두 손을 집어넣었다가 돌아와 엄마 이마를 식혀드리곤 했다. 숯불 같은 엄마 이마에 내 손을 대고 있으면 금세 손바닥 전체가 따뜻해지는 게 퍽 신기했다.
시상에나! 이 고사리 같은 손을 눈 속에 파묻었다가 내 머리에 얹기를 거듭허는디, 어린것이 어떻게 그런 생각을 다 혔을꼬. 한겨울에 잉어를 잡아다가 봉양혔다는 효자가 우리 딸 앞에 서문 눈물을 쏙 뺄 일이지야.
엄마를 담당한 의사는 더 이상 손쓸 일이 없다고 퇴원을 권했다. 하지만 엄마는 한사코 마다했다.
아무리 에미라고 헌들 눈 딱 감고 죽어불먼 한낱 송장인 벱인디, 한밤중에라도 그런 숭헌 일 당해봐라. 너 혼자 무섬타서 안 되야.
엄마가 퇴원을 거부한 이유는 그것뿐이었다. 엄마는 하나밖에 없는 사위를 이제 더 이상 안중에 두고 있지 않는 게 분명하다. 남편 역시 엄마가 죽음을 눈앞에 두고서야 퇴원한 사실을 번연히 알면서도 회사 일이 바쁘다는 전화만 했을 뿐 처가에 발을 들여놓지는 않는다. 병원에 있을 때만 잠시 들렀을 뿐이다.
나 죽거든 아뭇소리 말고 화장해부려라, 이?
엄마는 퇴원하여 자리에 눕자마자 잊어버리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내 다짐부터 받아두려고 했다. 이내 썩어 없어질 삭신을 저승까지 이고지고 가야 하느냐고 평소에도 무덤을 고집하는 사람들을 손가락질하던 엄마였다. 죽어서라도 놓아버리고 싶었던 게 그리도 많았던 걸까? 엄마는?
아버지 돌아가실 무렵에도 엄마는 화장 얘기를 자주 입에 올리곤 했다. 그때쯤 이미 반 귀신은 되셨을 아버지가 엄마 뜻을 헤아리지 못할 리 없었다.
“선산이 버젓한데, 그게 무슨 섭섭한 소린가?”
“하나뿐인 딸이 장차 고생하고 살 일은 섭섭지 않으요? 그 버젓하다는 선산 벌초는 누가 하고 있는지 알기나 허요?”
벌초는 그때까지 한때 행랑채에서 살았던 인연으로 양 서방이 도맡고 있었다. 그나마 엄마가 따로 넉넉한 사례를 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오다가다 잡풀이 무성헌 묘를 보면 사람들이 얼매나 자손들을 욕하는 줄 진정 모르시우? 화장해서 무탈허고, 화장해도 발복은 다 헌답디다.”
“끄응!”
아버지는 입을 다물었다. 당신이 나서서 아무리 애써봐야 자기 머리를 스스로 깎을 수는 없는 노릇이고 더구나 당신이 죽은 뒤에 화장을 하든지 묘를 쓰든지 자기 의지 밖의 일이라는 걸 인정하셨는지도 모른다. 엄마는 아버지의 한숨 섞인 신음을 묵계로 알고 아버지가 세상을 뜨자 화장을 했다. 그리고는 아버지 제사도, 당신 제사도 지내지 말라고 선포했다. 절에 맡길 테니까 제삿날이 되거든 발소리 한 번 들려주면 그걸로 족하다는 얘기였다. 아무리 출가외인이라고 해도 내가 제사 하나 지내지 못할까 봐 그러느냐고 부러 서운한 낯빛을 지었지만 엄마는 그저 고개를 흔들 뿐이었다. 나는 휴대폰을 몇 번이나 꺼내 들었다가 다시 가방에 넣곤 했다. 남편은 여전히 멀었다. 먼만큼 소용이 없는 존재였다.
우리 결혼은 시어머니나 친정엄마 모두 반대했다. 시어머니는 남편이 2대 독자로 손이 귀한 집 자식인데다가 나 역시 그렇다는 이유였고, 친정엄마는 남편의 이혼 경력을 들어 처음부터 아예 펄쩍 뛰다시피 반대했다. 하지만 남편과 내 고집을 두 분 다 꺾지는 못했다.
시쳇말로 호적에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시어머니는 손자 타령을 해대곤 했다. 죽기 전에 손자를 봐야겠다고 하도 닦달하는 바람에 전화벨 소리만 들려도 숨이 턱턱 막힐 지경이었다. 내 얘기를 전해들은 친정엄마는 차라리 우물가에서 숭늉을 찾는 게 낫겠다며 언짢은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그 모자의 불같은 성격을 그때라도 알았더라면 지금쯤 뭔가 바뀌어져 있었을까?
남편과의 잠자리는 순전히 아이를 갖기 위해 치르는 의식에 지나지 않았다. 내키지 않을 때가 많았어도 그 의식을 게을리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일 년이 다 가도록 기다리던 아이는 생기지 않았다. 내가 살던 친정집 인근의 절에서나 들려와야 마땅할 도로아미타불이었다. 병원에서는 남편이나 나에게 아무 이상이 없다고 했다.
시어머니는 임신에 특효라는 한약을 지어 와서 며칠씩 집에 머물렀다. 약 먹는 시간을 조금만 지키지 않아도 정성이 부족하여 애가 들어서지 않는 거라며 나를 타박했다. 대를 잇기 위해 며느리를 들인 것 같은 생각이 들 때면 기껏해야 씨받이에 지나지 않는가 하는 자괴심이 들기 마련이었다. 냉동실의 얼음을 입에 넣고 씹어도 가슴속의 열기는 누그러들지 않았다. 아마도 내가 여섯 살이던 시절, 엄마의 가슴앓이도 그랬을 것이다. 시어머니는 내 턱 밑에 약사발을 바싹 들이밀기 일쑤였다.
한약이 목구멍을 타고 넘을 때마다 거기 식도 어디쯤에 서 있을 내 생의 초목들이 쓰디쓰게, 그리고 아프게 쓰러져가는 느낌, 그 느낌을 결코 지울 수는 없을 것 같다.
“약이 쓴 것은 당연한 처사지, 이맛살을 그리 찌푸리고 먹는데 무슨 효험이 나겠느냐?”
시어머니는 약그릇을 내려놓기가 무섭게 쏘아붙이더니 찬바람이 일도록 현관문을 닫으며 돌아가 버렸다. 나는 남편 퇴근시간에 맞추어 외출할 준비를 끝냈다. 그대로 집 안에만 갇혀 있다가는 숨이 막힐 것만 같았다. 남편은 내 차림새를 보고도 아무런 말이 없었다.
“어머님, 방금 다녀가셨어요.”
“…….”
그저 한 마디 말이면 남편이 내 기분을 짐작하고도 남을 줄 알았다. 하지만 남편은 미운 꼬마인형처럼 이마를 잔뜩 찡그릴 뿐이었다.
“회사에서 무슨 일 있었어요?”
싸움에서 질 준비를 이미 해버린 사람처럼 내가 물었다. 목탁소리의 환청은 그때도 들렸던 것 같다. 그는 이마의 주름을 한곳으로 모으며 고개를 외면했다.
“저녁 준비할 틈이 없었어요. 나가서 삼겹살이라도 구워먹어요.”
“여자가 집에서 밥도 해놓지 않고 뭐하는 짓이야?”
“어머님이 다녀가셨다고 말했잖아요.”
“그게 이유야?”
“…….”
“애도 못 낳는 며느리에게 약을 지어다 바치는 시모가 우리 어머니 말고 어디 또 있어?”
말인즉슨 옳았다. 아마도 옳지 않을 리 없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해서 침묵했다. 그런데 남편은 한술 더 떴다.
“고맙다며 냉큼 받아먹으면 될 일이지. 애만 낳으면 만사가 다 해결될 일이고……. 한데 남들 다 낳는 애 하나 못 낳는 걸 자랑으로 여기고 시위하는 거야, 뭐야?”
나는 저녁을 지으러 부엌 쪽으로 향하다가 돌아섰다. 그리고 정말이지 남편 말마따나 시위를 하고 말았다.
“이제 약은 당신이 먹어요. 이상이 없기는 나나 당신이나 마찬가진데 왜 약을 나 혼자만 복용해요? 나는 먹을 만큼 먹었으니 이제…….”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남편의 주먹이 내 얼굴로 날아들었다. 나는 벽에 머리를 부딪치며 널브러졌다. 그는 거듭해서 내 머리를 쥐어박으며 벽 쪽으로 몰아붙였다.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봤던 권투시합도 아마 그랬을 것이다. 남자들은 한 시절 권투 선수를 꿈꾸기도 하는 걸까? 구석에 밀려 동그랗게 몸을 말고 있었더니 심하게 얻어맞은 뺨 쪽이 욱신거리며 환청이 아닌 어떤 소리가 실제로 들려왔다. 딱딱딱딱딱!
“미안해, 이러려고 한 건 아니었는데…….”
남편의 뜨거운 입김이 귓가에 맴돌던 목탁소리를 사라지게 만들었다. 권투 경기가 끝나자마자 승자들이 패자에게 흔히 그러하듯 그가 내 어깨를 감싸 안았다. 나는 그의 손을 밀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 기분 따위는 아랑곳하지도 않고 그가 가슴으로 손을 뻗었다.
“싫어, 이러지 마!”
그가 강제로 내 옷의 앞단추를 뜯어 내렸다. 손길이 닿는 곳마다 오소소 소름이 돋았고, 급기야 온몸이 마비되는 것 같았다. 그는 완력으로 자기 욕구를 채웠다. 그가 아니라 바로 내가, 짐승이었다. 나 자신이 그렇게 여겨졌다.
“배고파. 밥 좀 해줘.”
남편이 속삭였지만 내 귀에는 짐승이 으르렁거리는 소리처럼 들렸다. 나는 그의 말을 뒤로하고 밖으로 나왔다. 갈 곳이라고는 친정밖에 없었다. 하지만 얼결에 달려왔을 뿐 대문을 들어서지는 못했다. 엄마의 방은 내 암담한 심사처럼 깜깜했다. 흐트러진 머리칼에 슬리퍼를 신고 있는 내 몰골도 어둡고 깜깜하기만 했다. 힐끔거리며 쳐다보던 택시 운전사의 눈길이 떠올랐다. 세상 천지에 그의 눈길만 환한 듯했다. 대문 앞에 쭈그려 앉아 무릎에 얼굴을 파묻자 귀에 익숙한 소리가 또 들려왔다. 딱, 딱, 딱, 따악……. 가는 목탁소리가 회초리인 냥 아프게 다가왔다.
어린 시절, 대문 앞에 이렇게 앉아 있던 나 때문에 엄마는 아버지를 떠나지 못했다고 했다. 한 달 넘게 집을 비운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였다. 밤을 새워 엄마는 아버지를 향해 싸움을 걸었다. 하지만 아무리 표독스럽게 엄마가 악을 써도 아버지는 아예 대응을 하지 않았다. 그게 바로 아버지의 장기라고 할 수 있는 싸움 수였다. 염주는 엄마의 애완용품이었지만 정작 그 덕을 본 건 아버지였을까? 깜박 잠이 들었다가 내가 눈을 떴을 때는 이미 날은 밝아 있었다. 엄마가 보이지 않았다. 술을 마셨는지 아버지는 고주망태마냥 코를 골았다. 나는 아무것도 먹지 못해 허기진 배를 안고 대문 앞에 웅크리고 앉아 엄마를 기다렸다. 해가 지도록 엄마는 돌아오지 않았다. 지친 나는 눈물과 콧물자국이 말라서 뺨이 뻣뻣한 채로 대문 앞에서 잠이 들었다.
결혼하지 않겠다는 엄마를 기어코 시집보낸 건 외할머니였다. 외할머니는 당신이 살아생전에 엄마를 출가시켜야 마음 놓고 눈을 감는다며 기어코 아버지와 결혼을 시켰다고 했다. 비록 신랑 나이가 열두 살이 더 많았지만 재산만큼은 튼실하다니까 가난한 친정에서 배곯는 것보다는 낫지 않느냐고 엄마를 윽박질렀던 것이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아버지는 집에 있는 날보다 밖으로 떠도는 날이 많았다. 아버지의 역마살은 그렇게 엄마 가슴에 평생 지워지지 않을 짙은 그늘을 드리웠다.
“내가 죽어버렸더라문 너도 안 생겼고, 나 또한 이 고생 몰랐을 텐데……. 흐유, 너 하나 시상에 떨쳐 놓을라고 내가 죽지 못혀서 그렇게 살았는갑다.”
어미 없이 남의 집 담벼락에 코 비틀고 앉아 있을 딸 때문에 죽지도 도망치지도 않았다는 사실을 엄마는 몇 번씩 내게 일렀다. 그래서 나는 당연히 엄마의 화풀이 대상이 돼야만 했던 걸까? 엄마의 손찌검이나 매타작은 엄마 눈물에 비례해서 날로 늘어났다. 엄마는 실컷 분풀이를 하고 난 뒤에야 비로소 내 어깨를 다독이곤 했다. 너라도 있었응게 이때껏 살았지 그게 아니문 누굴 믿고 살았겠냐, 이?
처음 한 번 그렇게 우연히 시작됐던 남편의 손찌검도 날로 거침이 없었다. 나는 점점 무기력해졌다. 맞서 싸우고 싶은 의욕까지 다 사라지고, 내 몸은 그저 짐승이었다. 그럴 때면 나는 얻어맞은 애완견들이 도로 주인 곁으로 다가가 그의 손에 코를 비벼대듯 친정으로 향하곤 했다. 내가 갈 곳은 거기뿐이었다. 엄마가 나를 손찌검하던 집, 간간히 목탁소리가 매타작처럼 들려오던 집!
“남의 집 앞에 누구여? 아니?”
엄마가 내 얼굴의 상처를 보고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미안해, 엄마. 나 또 왔어.”
“이번에는 늬가 서방질이라도 한 것이더냐?”
엄마는 언제나 먼저 묻곤 했다. 얻어터지고도 남을 만큼 내 잘못이 혹시 선행됐던 것이나 아닌지…… 나는 매번 고개를 저었다.
“내 그놈을 당장 요절내고 말 것이여. 앞장서라!”
“그러지 마, 엄마.”
“아녀. 늬가 설사 동네북이라고 할망정 이럴 순 없다.”
남편은 삼겹살을 구워가며 혼자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태평스런 얼굴이었다. 늘 그랬다. 맞은 사람이 발 뻗고 잔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였다.
“서방인지 남방인지 몰라도, 자네 어디 대고 툭 하면 주먹자랑을 일삼는가?”
엄마가 주먹을 언급한 때문인지 남편은 멀뚱한 표정으로 자기 주먹을 폈다 오므렸다 할 뿐 입을 열지 않았다.
“야가 서방질을 허능가? 도둑질을 허등가?”
고기 타는 연기가 매캐했다. 그 때문인지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주먹으로 방바닥을 내리친 엄마가 어디선가 종이와 볼펜을 찾아와 남편 앞에 내밀었다.
“여그따가 각서를 쓰소. 다시는 주먹을 놀리지 않겄다고…….”
남편은 거기에 뭔가를 적고 서명까지 했다. 엄마가 입으로도 약속하라고 한 차례 더 남편을 윽박질렀다. 그가 나지막하게 웅얼거리는 소리를 나는 듣지 못했다. 남편의 주먹이 도대체 어깨 혹은 가슴, 아니면 머리 어느 부위에서 뻗어 나오는 것인가 하는 생각에 잠겼던 탓이다.
“나, 간다!”
냉랭한 바람이 일만큼 엄마가 치맛자락을 홱 잡아 여몄다. 나는 무르춤하게 서 있는 남편을 뒤로 하고 엄마를 따라나섰다.
“외할머니 산소 가기 전에 큰 방죽 하나 있는 거 너도 알쟈?”
가로등이 깜박거리는 길에 이르자 엄마가 난데없이 방죽 얘기를 꺼냈다. 오리알터라는 이름의 저수지였다. 청둥오리며 가창오리, 쇠오리 등등 하여튼 이름을 다 알 수 없는 숱한 오리가 떼로 몰려들어 알을 낳는 곳이라고 했다.
“죽을라고 맘먹고 내가 오리알터로 안 갔겄냐? 나도 미쳤제. 참말로 죽을 생각이면 양잿물을 마시든가 지둥뿌리에 목을 매던가 헐 일이지 뭔 지랄났다고 친정동네까지 갔는지 모르겄시야. 그날 밤, 참말로 달이 훠언히 떴드라. 오살허게 달도 밝았지야. 바느질꺼정 혀도 되겄더라만……. 나는 신발을 얌전히 벗어 놓고 치마를 둘러썼는디, 무섭드라. 죽을라고 왔는디 막상 물에 뛰어 들라고 허니께 겁나게 무섭더라니께. 근데 말이여, 내 귀에다 바싹대고 외할머니가 부르는 소리가 들리더란 말이여. 야야, 정순아, 정순아! 을매나 반갑던지 치마를 휙 걷어 버리고 뒤를 돌아 보았는디 아무도 없는 것이여. 오메, 머리끝이 쭈삣 서고 금방 뒤에서 누가 나를 잡아 댕기는 줄 알었다. 근디 말이다. 그때 딱 딱 딱, 따악, 허고 목탁 두드리는 소리가 안 나겄냐. 그 소리는 아메도 내가 치마를 뒤집어 쓸 때도 났을 것이지만 그때는 못 들었어야. 한 달음에 느 외갓집꺼정 달렸는디, 내 꼴을 본 외할머니의 억장이 무너질 것 같던 소리가 지금도 쟁쟁하다. 이년아, 찬 물에만 위아래가 있는 게 아니라 먹고 죽어나자빠질 양잿물에도 위아래가 있고, 오리알터에 뛰어드는 순서도 위아래가 엄연헌 벱이여. 늬가 어찌 나를 앞지를 생각을 다 품는 것이냐, 이?”
그리고 엄마는 죽을 생각을 다시는 하지 않았다고 했다. 아버지의 끝없는 방황으로 전답이 거의 다 절단 나고 말았을 무렵, 엄마는 선산마저도 팔아먹을 위인이라며 아버지를 윽박질러 몇 뙈기 남지도 않은 땅을 정리하여 고향을 떴다. 동네에 소문이 자자했던 바느질 솜씨 하나 믿고 내린 결정이었다. 서울에 맞춤한 집이 나왔다는 친척의 연락을 받고 가서 보니 집 앞은 제법 큰 규모의 사찰이 위치해 있었다. 붉게 물든 담쟁이넝쿨이 긴 담장을 덮고 있었고 빨갛게 익은 감나무 옆으로는 후박나무 넓은 잎사귀가 시나브로 떨어져 내렸다. 전에 살던 고향 집 정원 같았다. 뒤따라 올라온 복덕방 영감은 엄마가 절 쪽으로 오래도록 시선을 놓고 있자 선수를 쳤다.
“살아보면 아시겠지만 이 집 역시나 절 동네, 절집 같은 곳이라오.”
엄마가 다른 집은 둘러보지도 않고 서둘러 계약서에 도장을 찍어준 이유는 아마 절 동네라는 표현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당신 남편의 역마살을 정화시키고, 당신 역시 조금은 달라지기를 소망하는 윤회의 삶에 귀의하고, 당신 딸인 내 미래까지 빌고 기원하려는…….
몸을 동그랗게 말고 누운 엄마 머리맡의 염주가 눈에 들어온다. 본래는 갈색이었을 염주 알들은 손때가 묻어 까맣다. 까맣기는 해도 윤기가 좌르르 흐른다. 엄마가 돌아가시면 함께 쥐어드려야 하는 첫 번째 물품이기도 하리라. 아버지의 사십구재를 마친 날, 엄마의 염주는 더욱 빛났다. 이른 새벽에 목탁소리와 함께 눈이 뜨였는데 처음 내 눈에 들어왔던 게 바로 그 염주였다. 엄마는 단정하게 앉아 염주를 굴리고 있었다. 토끼눈처럼 까맣게 반짝거리던 염주 알들…… 내 인기척을 느낀 엄마가 가만가만 얘기를 시작했다.
“가만히 생각해봉께 갈라서지 않고 사는 부부한테는 바늘귀만한 정이라도 있다는 말이 틀리지는 않은갑다. 하루는 느 애비라는 작자가 어디를 떠돌다가 왔는지 근 일 년 만에 나타나 가지고, 방앗간에 있는 쌀을 다 내다 팔아먹었지 뭐냐. 그러고는 옷을 척 차려입고 안 나서겄냐. 또 어느 지집년한테 가려고 나서느냐고 느그 아부지 바지 골마리를 틀어쥐고 악을 쓰는 판인디, 외할머니가 내 뒤에 와서 야야, 정순아, 하고 부르더라.”
엄마는 손을 놓고 두 다리를 죽 펴고 앉아서 통곡을 했다고 한다. 외할머니는 가만히 방으로 들어와서 어지러워진 방을 치웠다. 아버지는 금방 나가더니 외할머니가 좋아하는 홍어 한 마리하고 옷감 한 벌을 떠 왔다고 했다. 아버지는 외출복을 벗어놓고 그 겨울은 집에서 보냈다고 했다. 외할머니가 가면서 엄마의 손에 쥐어준 게 바로 염주였다. 야야, 정순아, 속상하고 안 좋은 맴이 들거들랑 이거 한 번 굴려봐라. 세상사가 이 염주맹키로 술술 넘어갈 때도 많을 것이다. 그러다보면 애가 들어설랑가도 모를 일이고…….
외할머니의 예언대로 엄마가 나를 낳은 뒤 아버지는 한동안 방랑벽을 접었다. 하지만 엄마는 가문을 이어야 한다는 집안의 바람까지 이루어주지는 못했다. 더 이상 아이를 낳지 못했던 것이다. 엄마는 당신이 아들 못 낳은 죄가 있으니까 시댁에서 씨받이 시앗이라도 들인다면 받아들이겠다고 선포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아버지의 역마살에 대해서는 끝끝내 양보하지 않고 큰소리를 쳤다. 도대체, 하늘을 봐야 별을 따든지 말든지 헐 게 아녀……?
서울로 이사하기 직전, 엄마는 정말이지 당신이 공표했던 선포가 결코 거짓이 아님을 증명해보이기도 했다. 아버지와 정분이 났다고 소문이 자자한 옆 동네 과부를 일부러 찾아갔던 것이다. 그리고 태연스레 말했다고 한다. 우리덜은 인자 서울로 이사 가요. 불광동 거그 무신무신 절이라면 모를 사람덜이 없답디다. 그리로 찾아오문 되니께 아무 때든 놀러 오소, 이?
나는 엄마 뱃속에서 나오긴 했어도 엄마 배포를 물려받지는 못했다. 우리 결혼은 엄마가 그렇게도 반대했다. 남편은 거래처 직원이었다. 업무처리를 위해 퇴근시간 이후에도 가끔 만나던 남자였다. 부인과 이혼하여 집에 돌아가면 혼자서 밥을 먹어야 한다며 함께 저녁을 먹자는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데이트가 시작됐다. 결혼하고 삼 년 만에 이혼을 했다는 것이다. 전처가 고스톱에 미쳐 헤어졌는데 호적도 깨끗이 정리되고, 아이도 없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다며 호적등본을 불쑥 내밀었다. 그가 내게 어떤 남자를 원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평소에 엄마가 하던 말을 그에게 들려주었다. 사나라고 집에서 못질을 한번 제대로 할 줄 아나, 여편네가 무거운 걸 들고 오면 한번 받아주기를 하나, 손님이 오면 닭 모가지를 비틀 줄을 아나. 지집년한테 돈 앵겨주는 재주밖에 없는 위인이여. 느 아부지라는 작자는…….
그가 내 얘기를 듣더니 큰 소리로 웃어 젖혔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 언급했다. 아버지가 살아생전에 어머니를 자주 때려서 자신은 여자에게 절대로 손대지 않을 결심을 오래전부터 해왔다고 했다. 다른 건 몰라도 여자에게만은 잘할 자신이 있다고 가슴을 내밀기까지 했다. 심지어 아버지의 행패를 문 뒤에 숨어서 고스란히 지켜보아야 했던 그 시절의 자신이 지금도 밉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내가 그와 결혼하기로 마음을 굳힌 결정적인 이유는 순전히 그날 보았던 그 눈물 몇 방울 때문이었다.
남편의 폭력 성향은 유전일까? 그래서 그토록 혐오해마지 않았던 일들이 DNA 어딘가에 꼭꼭 숨겨져 있다가 때가 되면 마치 야행성 짐승의 이빨처럼 드러나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그게 후천적 학습에 기인한 행동들이라고 설명하는 걸 들은 적이 있기는 하다. 호된 시집살이를 한 며느리가 시어미 노릇 독하게 한다는 속담도 그래서 생겨났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릴 때부터 엄마에게 적잖이 맞고 자랐던 나에게도 매타작 대상으로서의 후천적 학습이라는 게 있는 걸까? 그리고 나아가 그게 내 고유한 유전자일 수도 있을까?
아버지의 병 수발로 심신이 지쳐 있는 엄마에게 내가 사는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었다. 엄마 보란 듯이 살고 싶었다. 잦은 손찌검을 제외하면 남편은 분명 아버지보다 나았다. 그런 장점들을 애써 찾아가며 위안을 삼고자 했다. 태기는 그 무렵에 있었다. 시어머니는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를 해서 먹고 싶은 것을 물어왔지만 나는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남편은 구타 후 언제나 내 몸을 요구했다. 내 아이는 뒤틀린 욕정으로 인해 생겨났던 걸까? 그래서였을까? 그 아이는 삼 개월을 채 넘기지 못하고 유산되고 말았다.
“내가 전생에 이 씨 밥을 얼마나 먹었길래 이렇게 갚을 것이 많다더냐?”
중풍으로 쓰러진 아버지의 대소변을 받아내면서부터 엄마의 푸념은 점점 더 심해졌다. 당신이 먼저 죽어야겠다는 말이 입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엄마는 꼬박 오 년 동안 아버지 병수발을 다 해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혼자서 농사일을 다 꾸려야만 했다. 물론 아버지가 성성하실 때에도 농사일은 늘 엄마 몫이었다. 아무리 일손이 모자라도 아버지는 손에 흙을 묻히지 않는 분이었으니까 말이다. 아버지는, 당신이 지은 농사가 아니어도 가을 추수가 끝나면 곧잘 소리꾼을 불러들이기 일쑤였다. 비라도 주룩주룩 내리는 날이면 혼자 쑥대머리를 흥얼거리며 막걸리 잔을 기울이기도 했다. 쑥대머리 귀신 형용은 춘향의 모습이 아니라 바로 엄마의 심사였고 머리칼이었을 것이다. 청승이다, 청승! 하이고, 지집년이 저러고 앉아 있으면 열녀 났다고 허것다!
남편은 갈수록 자기 아버지를 닮아갔다. 패악을 일삼던 아버지를 증오했던 게 아니라 사실은 반면교사로 추종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나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시아버지가 마냥 두려웠다. 어딘가에서 아직까지도 남편을 조종하고 있는 듯했다. 내가 파출소 문을 두드렸던 건 끝을 알 수 없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이해는 합니다만, 이런 일은 저희가 관여할 일이 아닙니다. 일개 가정사의 범주에 속하는 일이라서 말입니다. 저희가 폭행 현장을 목격하는 경우라면 몰라도…….”
경찰들은 내가 피멍든 부위를 내보여도 그렇게 난색을 표했다. 파출소가 핑계를 대는 그 일개 가정사라는 게 무슨 난공불락의 성이라도 되는 것처럼 여겨졌다. 그 뒤로 나는 파출소를 내 발로 다시 찾아가지는 않았다. 그 일이 있기 전에는.
파출소를 나와 다시금 터벅터벅 찾아간 곳은 친정이었다. 기껏해야 내가 기어들어갈 만한 데가 친정뿐이라는 사실을 떠올리면 서럽기까지 했다. 내 인생이 처량한 게 마치 그것이기라도 한 것처럼.
“야야, 옷이라도 좀 벗고 자거라.”
“몸살 기운이 있는지 으슬으슬 춥네요.”
불을 끄고 누웠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잠이 올 리가 없었다. 목탁소리가 또 들려왔다. 현실인지 환청인지 모를 아득하고 먼 소리였다.
“조 서방은 요즘 어쩌냐?”
“늘 그렇지 뭐.”
“늘 그렇다는 게 머여? 머가 늘 그렇다는겨? 너 어디, 일어나보그라. 어서!”
얼떨결에 일어나 앉았더니 엄마가 내 팔을 걷어 올려 보기도 하고 낯짝을 돌려 살피기도 했다.
“시상에, 살 맞은 짐승처럼 되어가꼬 명색이 친정이라고 찾아들었는디 그것도 눈치를 못 채는 내가 늬 에미 마증가 모리겄다. 저번에도 고뿔이라고 혀서 그런 줄만 알았지, 이 지경인줄은 참말 몰랐네. 진정 몰랐어야.”
엄마의 한숨소리가 깊었다. 아버지를 바라보며 내쉬던 한숨보다 깊었으면 깊었지 결코 작지 않은 소리였다. 땅이 꺼지게 내뱉은 한숨 끝에 엄마가 마치 넋두리라도 하듯 들려준 얘기는 내 한숨도 그렇게 깊게 만들고 말았다. 남편이 나보다 앞선 전처와 살면서 저질렀다는 폭행 얘기였다. 비명이 밖으로 들리지 않게 수도꼭지까지 틀어놓고 혁대를 풀어……. 그건 이웃집 노인이 들려준 사실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댁네 딸은 어떠냐고 물어오는데 가슴이 철렁 내려앉더라는 것이다. 사람은 열 번 바뀌는 것이라고, 그 여자하고는 합이 들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었겠지만 내 딸하고는 잘 살고 있으니 걱정 말라는 말을 하는데 다리가 후들거려 집으로 어떻게 돌아왔는지 모른다고도 덧붙였다.
“밤중에 미안허게 되얐소이. 지금 아들네 집으로 쪼깨 오셔야 허겄소이.”
엄마는 내 만류에도 불구하고 기어코 시어머니에게 전화를 했다. 그리고 또 나를 앞장세웠다. 방으로 들어서자 드르렁거리며 코 고는 소리가 엄마와 나를 먼저 맞았다. 거실 바닥에 속옷 하나만 걸치고 대 자로 누워 곤한 잠에 떨어진 남편은 사람이 들어서는 소리도 듣지 못했다. 엄마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사람을 개 패듯 허고도 잠이 오능가?”
호통과 함께 엄마가 거칠게 흔들어대자 남편이 일어났다. 그는 이유를 알 수 없다는 듯 뚱한 표정을 지었다. 시어머니도 때를 맞춰 도착했다.
“내가 금쪽같은 딸을 당신 집으로 보낼 때는 허구헌 날 주먹질이나 받으라고 보낸 줄 아시요이? 눈이 있으면 좀 보씨요. 야 몸뚱아리가 어떤지 좀 보시랑게요?”
엄마는 사레가 들릴 만큼 악을 써대며 내 옷을 마구잡이로 들어올렸다. 민망한 생각에 엄마 손을 뿌리치고 일어나 이가 시릴 만큼 차가운 보리차를 따라 내밀었는데 그걸 단숨에 들이키기도 했다.
“콩나물국을 못 끓인다고 이렇게 팼는가? 자네, 우리 집에 처음 인사 왔을 때 내가 그랬제? 야는 음식도 못하고 살림하는 데는 부족한 게 많은 아이라고…… 그때 자네가 뭐라고 그랬나? 도와가면서 산다고 자네 입으로 다짐허지 않았던가? 헌데 지금 와서 콩나물국 싱겁다고, 된장국 짜다고 주먹을 뻗기로 허면 다음번엔 김치찌개 못 끓인다고 지게 작대기를 휘둘를랑가?”
“그게 아닙니다.”
남편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를 냈다. 내 기억이 틀림없다면 그는 매번 자신의 행동에 대해 후회하곤 했다. 그게 구타 뒤의 섹스를 위한 한낱 양념 같은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인지 어떤지는 내가 알 수 없지만.
“아니먼 긴 건 머시당가? 야가 쌀이라도 한 종지 친정으로 빼돌릴라고 허등가, 이? 말이라도 속 씨언허게 혀보소. 어디서 배운 짓거리인가는 몰라도, 왜 걸핏하문 주먹질인지 어디 한번 말을 히보라고, 말을!”
엄마는 금방이라도 남편의 턱주가리에 종 주먹을 들이밀 태세로 다그쳤다. 시어머니가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한 건 그때였다.
“사부인, 막말로 야가 지금 맞아서 허리가 부러졌습니까, 다리병신이 되었습니까. 부부싸움 좀 했다고 이 밤중에 사람을 오라 가라 하면 이 세상 천지에 조용할 집구석이 하나라도 남아 있겠어요?”
“한 대 맞을 수도 있소이? 야 몸뚱이를 보고도 시방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요?”
엄마가 기어코 남편의 따귀를 후려치고 말았다. 얼떨결에 당한 남편은 주먹을 꽉 쥐고 부르르 떨었다. 시어머니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엄마의 눈 쪽으로 검지 하나를 곧게 쭉 뻗으며 삿대질을 했다.
“점잖지 못하게, 체통머리도 없이, 못 배운 사람들 마냥 이게 도대체 뭔 짓이랍니까?”
“시방, 뭔 짓이냐고 혔소이? 보면 모르시오이? 사위도 자식잉게 장모한테 따귀도 한 대 맞을 수 있는 것이지라. 그런다고 설마 허리가 부러지고 다리병신이 되겄느냐는 말은 누가 헌 소리다요?”
엄마가 남편 뺨을 때릴 줄은 나도 미처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하지만 어찌됐든 그게 나한테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강 건너 불구경 같은 일로나 여겨질 따름이었다. 시어머니와 엄마의 다툼도 웬일인지 코미디 한 토막 같았다. 남편의 볼멘 표정도 현실성이 없어 보였으며 심지어는 내가 남편에게 맞았다는 사실조차도 전후 맥락이 전혀 얼토당토않은 극의 전개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아마 그 순간 잠이 쏟아졌을 것이다. 나는 눈을 감고 있다가 실제로 꾸벅꾸벅 졸았다.
“사내가 이 세상에 자네 한 사람만 남았다고 헐망정 그런 사위는 인자 싫네. 자네가 사람이 되고 사내가 되기 전까정은 내 맴 속에 자넨 사내도 앙 기고 사위도 앙 기네. 그런 줄 알게, 이?”
호통소리에 놀라 나는 눈을 부릅떴다. 엄마가 남편의 과거까지는 언급하지 않기에 우리 결혼 생활의 마지노선은 지켜주는 거라고 짐작하고 있었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우리 집 문턱을 넘는 순간 엄마는 마치 돌아가지 못할 강을 건너온 사람 같았다.
“생애 말년에 내가 야 아부지를 쪼깨 구박은 혔지만 대소변 받아내면서도 끝끝내 갈라서지 않은 이유가 뭔지 가르쳐주랴?”
“옛날 얘기가 지금 무슨 필요 있답디까? 하나뿐인 사위에게 있는 힘껏 앙갚음을 하고도 분이 아직 덜 풀어졌답니까?”
손자국이 벌겋게 나 있는 남편 뺨을 바라보던 시어머니가 엄마 말을 자르려고 나섰다. 내 방도 아닌, 바로 지금 거실에서 그대로 누워 잠들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남편에게 얻어맞은 날이면 이상스럽게도 잠이 그렇게 쏟아지곤 했었다. 남편의 뒤틀린 욕정에 내가 특별히 반항하지 못했던 이유도 어쩌면 그것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맞고 나면 몸이 아픈 증세보다 먼저 찾아오던 그 졸음기, 다량의 수면제를 삼키기라도 한 것 같던…… 나는 그런 날들마다 죽음을 떠올리고 있었던 걸까?
“야 아부지는 집에 손님이 와서 닭 한 마리를 잡을래도 사람을 불러야 하는 인물이고, 벽에다가 못질 하나 할래도 놉을 얻어야 하는 위인이었는디요. 상추밭에 똥 싸고 가는 개새끼한테도 발길질 한 번 안 허던 양반이었구만이요. 그게 먼 말인지 아시것소이?”
“…….”
남편은 여전히 자다가 깨어 웬 봉창 뜯는 소리인가 하는 멀뚱한 표정이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생각이 나기라도 한 듯 자기 뺨을 어루만졌다.
“야 살은 남의 살이라 안 아프고 자네 살은 자네 살이라고 아픈가? 더 이상 긴 사설도 필요치 않네. 야야, 가자! 예로부터 노름허고 오입질허는 서방하고는 살아도 패는 놈하고는 못 산다고 혔응게.”
엄마가 내 손을 잡아끌었다. 어릴 때에도 엄마는 그랬다. 당신이 나에게 화풀이를 하고, 내가 대문밖에 쪼그려 앉아 훌쩍거리고 있을라치면 한참 후에 돌아와 내 손을 잡아끌며 말했었다. 야야, 가자!
“아이고, 잘 되었소. 갈라서고 나면 내 아들이 새 장가는 못 들까?”
“그려요, 그려! 이력이 좋응게로 그러고도 남겄소.”
날이 훤히 밝아오고 있었다. 엄마가 다시 내 손목을 낚아챘다. 시어머니는 말할 것도 없고 남편까지도 말리려 들지 않았다.
엄마 손에 이끌려 다시 친정으로 돌아온 나는 그대로 지쳐 떨어지고 말았다. 사흘 동안을 내내 물 한 모금 넘기지 못하고 앓아누웠다. 일어나면, 자리에서 일어나기만 한다면 이대로 다시는 일어나지 못할 약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끊이지 않았다. 야야, 이년아, 생목숨 끊어지는 게 그리 쉽다면 나는 펄시 죽고도 남었어야……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엄마 목소리가 간간이 들렸다.
자리에 누워 있는 동안 엄마도 나와 함께 굶었다는 사실을 안 건 명태처럼 말라 있는 주방 행주를 봤을 때였다. 엄마가 거울 앞에 나를 앉히고 염색약을 챙겨왔다. 엄마가 머리라도 빗겨주던 어린 날들처럼 나는 고분고분 잠자코 있었다.
“마흔 고개를 넘기도 전인디 너조차 머리에 웬 억새꽃이 피었다냐? 이런 게 뭣이 좋은 거라고 나를 닮아, 닮기는?”
문득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니 달빛이 환했다. 노느니 염불한다고, 스님들도 달빛이 밝아서 목탁을 치고 있을까? 딱, 딱, 딱, 따악…… 목탁 치는 소리가 달빛 사이로 섞였다. 엄마는 매실장아찌 하나만을 앞에 두고 소주잔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전생의 웬수끼리 만나서 부부의 연을 맺는다던디, 다음 생에 또 느그 아부지를 만나야 헐랑가도 모르겄다. 퍼뜩 그런 생각이 들었어야. 너도 소주나 한잔 마셔볼래?”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엄마는 그런 무서운 저주를 누구한테 들었던 걸까? 세상의 부부들은 전생에 원수로 지내던 사람들이었다고? 어쩌면 당신 자신이 했던 그 무서운 말 때문에 엄마는 나를 붙들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샤워를 하고 난 뒤 얼굴을 토닥이고 입술에 립스틱을 바르고 있는 동작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그랬다. 술에 취해 가는지 넋두리처럼 내뱉는 말들이 들렸을 뿐이다. 그려, 팔짜다! 팔짜여! 그걸 인간이 어치케 고친다더냐?
그날 밤,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아니, 정확하게는 집으로 돌아오지도 못했다. 집 앞 어린이 놀이터 그네에 앉아 흔들거리던 남편이 내 머리채를 휘어잡았던 것이다. 남편은 나를 끌고 집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고 나는 죽기 살기로 그네에 매달리며 버텼다. 새로 바른 립스틱은 남편의 우악스런 손등 어딘가에 금세 지워졌으리라.
나를 구해준 건 때마침 순찰을 돌던 방범대원들이었다. 아니면 주민들 가운데 누군가가 파출소에 신고를 했을 수도 있다. 남편은 그 일로 이틀 동안 구류를 살았다. 그리고 나를 때릴 때마다 구류 날짜는 조금씩 더 연장되었다. 법원으로부터 내게서 오 미터 이내 접근금지 명령이 내려진 건 엄마가 쓰러지기 직전이었다. 아니, 엄마가 쓰러진 건 그런 명령이 내려진 직후의 일이었다.
무릎이 머리에 닿도록 잔뜩 웅크린 엄마는 이제 작은 애벌레처럼 보인다. 당신 자신의 삶으로 인해 날로 쭈그러진데 이어 내가 더욱 한없이 위축시킨 결과가 아닌가 싶어 섬뜩한 기분이 든다. 그렇다면 아버지는 무슨 이유로 돌아가시기 직전에 이런 모습이어야 했을까?
생전에 아버지가 없앤 재산 중에는 당신 처가로 보내진 것도 상당했다는 사실을 엄마는 나중에 알았다고 했다. 자신의 삶이 한스럽다고 반추하면서도, 그래서 엄마가 스스로 목숨을 끊고자 했으면서도 끝내 결행하지 못한 이유는 그 때문이기도 했으리라.
그만하면 아버지도 괜찮은 분이었어요. 안 그래요 엄마?
나는 가만히 혼자 읊조린다.
늬 말도 맞다. 근디 말이다. 지금 와서 가만히 생각을 허먼 느그 아부지도 아부지지만 뭣이냐, 나는 말이다. 너를 의지헐 수 있어서 평생을 동무험서나 살은 것만 같다. 너 같은 딸이 있어서 가슴속에 불은 얹고 살았지만 그 불에 타 죽지는 않았다. 늬가 있어서…… 헌디 너는 어쩐다냐, 너 같은 딸도 없으니.
엄마의 눈물 젖은 말이 들려오는 것만 같다. 나는 실제인가 싶어서 귀를 가까이 대본다. 그때 엄마가 거짓말처럼 입을 연다.
“늬 서방은 오고 있냐?”
엄마는 내 남편을 기다리고 있다. 그가 와야 비로소 눈을 감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남편은 오지 않는다. 올 수도 없는 형편임을 나는 잘 알고 있다. 딱, 딱, 딱, 따악! 목탁소리가 다시 들려오기 시작한다. 내가 도대체 무엇을, 얼마나 더 깨달아야 하는가 하는 심사로 버럭 부아가 치밀어 오른다.
건너편 절을 향해 사죄라도 하듯, 나는 생각을 고쳐 엄마가 손에 쥐기를 거부하는 염주를 굴려본다. 그러자 불현듯 내 생의 목탁은 엄마였다는, 뭔가 깨달음 같은 게 내 머리를 스친다. 남편을 기다리지 않아도 좋을 것이란 생각이 든 건 그때다. 나는 염주를 손안에 쥐고 아주 빨리 반질반질하게 손때 묻은 나무 구슬들을 굴리기 시작한다. 지금 반드시 무엇이든 깨달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도 맞은 것처럼…… 그 순간 엄마의 생애를 그대로 답습하며 뒤따라가는 내 모습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 마냥 두 눈 가득 펼쳐지는 걸 본다.
**약력: 2009년 《한국평화문학》에 「침묵」으로 신인상 수상. 사무직 여사원의 성차별을 고발한 에세이 『미스 김, 시집이나 가지!?』. 장편소설 『파가니니의 푸른 일기』, 창작집 『키스하러 가자』, 세월호 참사를 다룬 『우리는 행복할 수 있을까』(공저)가 있다. 2013년 서울문화재단 예술창작지원 문학 지원 사업에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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