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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호/신작시/안혜경/여름날 사무실의 오후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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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안혜경
여름날 사무실의 오후
사무실 벽의 얼룩이 서걱거린다
누군가의 추억인지
몇 개의 잎으로 떨어져
햇빛 속에 흩날린다
아득한 날들이
먼지 속에 묻힌 채 잠자고 있는데
햇빛에 이끌려
마른 잎이
나풀나풀 일어난다
푸른 잎이었던 날들을 기억하고
조용한 오후를 가로지른다
서류더미를 헤치고 창문을 연다
산들바람에 잎들은 스스럼없이
어두운 사무실 안에서 춤을 춘다
징징대는 복사기의 넋두리는
바닥에 떨어져 구석에서 으르렁댄다
으르렁거림은 이제 파도처럼 밀려온다
책상을 비추는 햇빛 뒤편에
어둠이 커다란 머플러로 펼쳐져 있다
눈을 감으면
바람도 움직임을 멈추고
돌아오는 길을 알 수 없는
지하실로 떨어지는 것이다
의자의 스프링이 삐걱거린다
오래 묵은 먼지의 냄새가
사무실 천장에서 흘러나온다
꿈
꿈을 만지니
연기처럼 사라진다
꿈을 뒤쫓으니
손에서 기억이 흘러내린다
정거장이 되어
가는 곳마다 기다리고 있다
꿈은 서두르지 않고
나는 혼자 달려간다
견디어내면
어디든지 길은 만들어지리라
**약력:1982년 《시문학》 천료. 시집 『강물과 섞여 꿈꿀 수 있다면』 외 5권. 산문집 『새벽 다섯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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