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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호/신작시/노두식/눈을 감은 채로도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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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노두식
눈을 감은 채로도
꽃봉오리를 흘깃대며
진작에 피었던 양지녘의 꽃잎이 지고 있는 저녁
떨어지는 꽃잎새마다 노을이
몰래 덫칠을 해주는 이유를 하마 너는 알겠지
등뒤로 내리는 산그늘처럼
세상에 남은 것들은
외진 일로 두어 번만 휘둘리고 나도
그리움으로 시드는 것이어서
네 곁을 스쳐간 시간들을 좇아 너 또한
어느새 먼 수평선의
물빛 같은 고요 속에 잠길 테지
사랑은 때로
아스라하니 흩어졌다가 몰려오는 잔고기 떼처럼
부산하거나
서로가 닿지 않는 거리
공중에 걸리는 목가교의 작은 삐걱임들로
어설프게 피어나기도 하거니와
사소한 아름다움에도 슬픔은 지워지는 것이고
우리는 서로 아닌 듯 이별을 할 수 있는 거지만
그래서 꽃잎에 묻은 노을빛이
땅 속에 묻히는 것을 보며
토닥임을 아는 가슴들은 맥맥히 침묵하는거구
밝음이 다하고 나도 어느 미망 속에서는
눈을 감은 채로도 무엇인가가 훤히 보이고
그런 것들이 모두
그토록 지우고 싶지 않던
속 따슨 이들의 묵묵한 뒷태라는 걸 나 알고 있지만
추운 날
누군가가 지나간 길
마음의 무게로
발자국이 발자국을 지우고
흔적 없이
단층처럼 켜가 져서 깔리는
목주름의 때 같은 시간들을 저마다
저의 길이라 하네
바람도 햇살도 고드름이 진 오후
뒤처져서 무리를 잃어버린 에이도스가
꽁꽁 언 발 하나를 들어
사방 이리저리 디밀어보고 있네
**약력:1991년 《문학세계》로 등단. 시집 『꿈의 잠』, 『마침내 그 노래』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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