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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호/신작시/한석호/찬란의 방식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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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한석호
찬란의 방식
송이 째 목련이 몰락하듯
온 힘 다해 사랑해 본적 있는가
목숨 바쳐 동백이 피어나듯
장렬하게 나를 내려 본 적 있는가
얼음기둥에 갇힌 혀를 읽느라
눈이 햇살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어둠은 냉정하게 지져야 하는 장르
시들기 전에는 사랑도 비관적인 구조가 아니었다
방향성 좋은 낱말들을 풀어
먼지 쌓인 애인을 가동 시키려 궁리한다
천천히 오해 속을 걸어 다니며
견정혈에 깊이 박힌 불신의 뿌리를 뽑아낸다
묵언 수행에 들어간 허기와
배고픔에 밀려난 포만은 동문일까?
균형 잡힌 논객의 펜으로
흔들리지 않는 사랑의 실체를 받아쓰고 싶다
습관성 패배를 앓아온 자의 몰락을
장애와 동의어로 읽지 않기로 다짐한다
나는 따스한 날씨를 꺼내 입고
캄캄한 대지에 찬란을 맘껏 뿌리고 다닐 것이므로.
튤립나무가 보이는 병동
정형외과 병동을 열고 들어서는
저것은 시베리아 칼바람
기다리던 봄 햇살이 아니라
내 옆구리 들이 받아 공중 낙화 시켜버린
브레이크 없는 트럭
견고하면 두려움에게 걷어차이고
아치를 그리는 달의 붓끝은 글썽해진다
시간이 제 발자국 아래 엎드린
바람의 꼬리를 물어뜯고 컹컹 짖는다
한 번도 외로워보지 않은 자
오래도록 그리움에 가 닿지 못한 것
불멸의 사랑을 위해 네 눈 속에 비친
고양이의 울음을 꺼내 핥아준다.
튤립나무가 온 몸으로 종소리를 울리기 시작하면
꺼져가는 기억들 일어나 꽃을 피운다
깁스 속 굳어버린 내 사랑의 심장에도
피가 돌고, 내면의 칼바람은 무뎌지리라
미치도록 안고 싶은 삶이여
레일 위를 미끄러져야 하는 때를 말해다오
봄날이 연둣빛으로 서서히 물들어가는 그때를
**약력: 2007년 《문학사상》 으로 등단. 시집 『이슬의 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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