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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호/신작시/이상윤/새의 목도리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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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이상윤
새의 목도리
눈보라를 피해 날아든 새들이
식어버린 굴뚝 담벼락에 장작처럼 쌓였다
목도리를 선물해주고 싶은 생각
구겨 신던 신발 옆에서 얼어 죽은 새를 주워
그에게 목도리를 만들어 주었다
새소리는 보관할 수 없으므로
봄이 오기를 기다려 지붕에 던져두었다
한동안 목도리를 두른 그의 웃음이 떠다녔다
목도리를 두르고부터
그는 귀에서 소리가 난다고 투덜거렸다
나는 이명이라고 우겼지만,
그는 새의 목이 부러질 때 나는 소리라고 했다
주삿바늘을 보면 새의 부리가 떠오른다며
그는 가루약을 편애했지만,
읍내 터미널 낮은 건물에 개원한 의사는
주사와 친해져야 한다고 타일렀다
새들이 달력의 날짜를 쪼아 먹을 때마다
그가 목도리를 벽에 걸어두는 날이 늘었다
서울 큰 병원으로 그가 실려 가던 날
집 마당에 새들이 모여들었다
새들은 모두가 그의 목도리를 닮았다
그의 목도리가 버려지던 밤
한 무리의 검은 새들이 북쪽으로 날아갔다
그 후로도 한참
목도리가 든 비닐이 푸드덕거렸다
소아과에 다녀온 아들 녀석이
목도리를 벗으며
귀에서 자꾸 새소리가 난다고 칭얼댄다
이제야 그의 말이 귀에 들어온다
귀에서 소리가 난다던
새의 목이 부러질 때 나는 소리라던
그에게 너무 미안해지는 저녁이다
그 집을 지나며
축대를 쌓아둔 그 집을 지나면
외투 속주머니가 축축해진다
오랜 시간 새어 나온
그 집의 누수된 슬픈 내력 때문일 것이다
뜯어진 철망을 타 넘어온
어두운 풀벌레 소리에 이끌려
가파른 길을 오르면
너와집처럼 바람에 수긍한 자세
이 거처는 주인의 굽은 등을 닮았다
문이 등에 맞춰 낮아진 것일까
등이 문에 맞춰 굽어진 것일까
달빛을 쬔, 거두어들이지 못한 소쿠리에
늦가을 것들이 붉다
달빛도 오래 쬐면 그슬린다는 것을
내려오는 길에 알게 되었다
주인의 부재란
절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버려진 당집에 걸어둔 빈 바랑처럼
쓸쓸하다는 것도
반쯤 땅으로 꺼진
쪽창으로 기어 나오던 차고 늙은 기침소리
간간히 정신을 추스르던,
축대 끝에 달아둔 가로등 불빛이
다 탄 연탄재들 위에서
그래도 살아있는 동안은 따뜻해야 한다고
밤새 흔들리고 있었다
**약력:2013년 《시산맥》 으로 등단. 2016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동시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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