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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호/권두칼럼/백인덕/시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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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1,715회 작성일 17-01-06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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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두칼럼

백인덕





시인은?



   내가 직접 겪은 문단의 어른 몇 분 이야기를 해야겠다. 김남조 선생님과 홍윤숙 선생님이 그 분들이다. 두 분 중 어느 분인지는 지금 기억에 헛갈리지만, ‘시인詩人’은 어떤 ‘가家’가 아니고 유독 ‘사람人’임을 강조한다고 하셨다. 장르적으로 보면 소설가나 작가는 말 그대로 ‘권위자’이기 때문이겠지만, 시인은 권위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사람이라면 반드시 그의 걸맞는 ‘인격人格’이 있어야 하는데, 사실 작금의 불미스러운 사태들을 일별해 보면 시인이 시인답지 못해, 즉 그 인격에 비해 명성(?)이 커서 초래된 것들이 대부분이다.
    인격이란 거창한 것이 아니다. 고귀나 순결처럼 어려운 수식어를 치렁치렁 늘여달지도 않는다. 인격이란 융의 이론에 따르자면 외부, 외계의 자극에 대한 페르소나(가면, 탈)의 적절한 대응에 다름 아니다. ‘탈’을 쓴다면 다들 부정적으로 생각하겠지만, 적절한 ‘탈바꿈’이 오늘의 우리의 문명을 건설했음을 명심해야 한다. 인간의 정신구조, 그 진화적 특성에서 유추해 보면 외계의 자극에 대해 단순히 페르소나만 반응하지는 않을 것이다. 융은 이 말을 극도로 싫어했지만 라깡식의 ‘욕망’, 프로이트의 ‘성본능’도 반응의 한 양태로 외화外化 되고자 할 것이다. 여기서 인격이란 다시 우리가 진공 상태에 놓인 원자 하나가 아니라 관계의 의미망에 사로잡힌 존재라는 것을 자각하게 한다. 순수하지 않은 본능이나 욕망을 난 알지 못한다. 생존의 가파른 협곡을 지나며 우리는 누구나 다 본능적이거나 욕망에 사로잡혀 저 자신을 불사를지도 모르는 위험 앞에 놓이기 마련이다.
    바로 그때, 그 불 앞에서 이상의 금홍이거나 단테의 베아트리체가 유독 그 사람이었기 때문에 인구에 회자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시가 몸으로 가르쳐진다고 누가 알려주었는지 궁금하다. 사람이 개처럼 살긴 쉬워도, 사람처럼 살기가 너무, 너무 어려운 현실이다.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참 시인이 뭐냐고도 아니고, ‘백인덕이는 안 걸렸냐?’(물론 농담 이외에 아무 의도가 없음을 잘 안다.) 소위 잡설 홍보도 아니고, 더러운 일 생길 때만 내가 시인으로 취급 받는 것 같아 불쾌했지만 친구 이윤학 시인과 계를 붓기로 했다. 사슴피를 먹든가, 중국산 웅담을(아, 녹색당원으로서 요건 불법이구나)…, 이 문제는 본질적으로 다루기는 힘들고 현상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도 쉽지 않다. 시단이 넓다면 넓고, 좁다면 한없이 좁기 때문이다.
    한심해서 말이 안 나온다. 시인이란 무릇 제 목에 항시 목줄을 걸고, 제 가슴팍 가까이 비수를 세운 존재일진데, 사랑하라, 시인이여! 오늘 헐벗고 아파하는 모든 이들을, 폐 속 깊은 곳에서 비명을 토해내는 이 작고 파리한 우리의 행성, ‘지구’를. 사랑하라! 네가 닿지 못한 영원과 영혼의 깊은 심연들을. 바빠 죽겠는데 성추행할 시간이 남더냐? 연예계도 아닌 데 슬금슬금 이름 바꿔 다시 얼굴 들이밀 생각 안 하길 바란다.
   시집 다섯 권 출간하며 다섯 차례 이런저런 지원금 받고, 수상 경력 단 한 줄도 없지만 좋은 시인들 상 주고 있는 내 처지가 참담하다. 시인은?, 스스로 묻고 또 물어야 한다. 서슬 푸른 이 아침의 냉기처럼, 차갑게 또 차갑게.








**약력:1991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본지 주간. 시집 『끝을 찾아서』, 『한밤의 못질』, 『오래된 약』, 『나는 내 삶을 사랑하는가』, 『단단斷斷함에 대하여』, 저서 『사이버 시대의 시적 상상력』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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