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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호/특집/오늘의 시인/유정임/봄나무에서는 비누 냄새가 난다 외 4편/신작시/사막 외 2편/나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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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1,505회 작성일 17-01-06 15:50

본문

특집




오늘의 시인

유정임




<자선 대표 시>

봄나무에서는 비누 냄새가 난다



상수리나무 곁을 지나
백양나무 곁을 지나
굴참나무 곁을 지난다
문득
풋 오이 향의 
비누 냄새가 난다
겨우내 상한 속 다 씻어내고
막 마른 수건질 끝내고 서 있는 걸까
밖으로 향한 눈들이 환하다
눈 속에 파란 길들이 있다
길 앞에 노란 꽃등을
촘촘히 걸어놓은 산수유나무, 생강나무,
그리고 팥꽃나무, 진달래
몇 천 번 물經으로 속을 닦아내면
죽었던 몸에
저리 환히 길이 나는가

되새 한 마리
그 속에서 목욕 중이다








도시적, 소통
―눈雪




달리는 내 차창으로
희끗희끗 , 그녀는 얼굴 보이며 아는 척한다
반갑다,
그녀가 내 앞에 사뿐 내려앉는다.
서로 마주보고 있지만
(그녀와 나 사이에는 琉璃벽이 있다)
그녀는 나를 보고 (아니 알 수 없다)
나는 그녀 등 넘어 달려오는 길을 보고 있다
그녀
부산하게 온몸을 부딪치면서
주루루 눈물을 보이다가
손사래를 치다가
고개를 끄덕이다가
몸부림친다
(우리 사이엔  유리벽이 있다)
나도
자리를 고쳐 앉으면서 (마음이 답답해)
 한손을 올렸다 내렸다 하면서 (여긴 노인들의 去處가 불안해지고 있어)
 몸을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기울이면서(사랑 이란 게 존재하긴 하는 거야?)
잠시 시선을 멀리 두면서 (경계 없는 이곳에서 탈출하고 싶어)
(지금 그녀는 나를 보고 있지만 우리 사이엔 유리벽이 있다)

나는 차 밖으로 나와
잠시 그녀의 손을 잡는다.
서로 다른 체온.







꿈·3
―패륜悖倫




어머니, 이곳 그냥 두면 몸 전체에 퍼져 죽게 될지도 몰라요 어머니는 말없이 날 바라만 보네요. 난 멀쩡한 어머니의 어깻죽지 살을 도려내서 어적어적 씹어 먹어요 어머니는 당신의 어깻죽지에서 나는 피는 아랑곳 하지 않고, 당신의 핏물이 툭툭 삐져나오는 내 입만 안쓰럽게 보고 있네요. 내가 이리저리 다 발라먹었는지 어머니는 겨우 팔딱거리는 심장으로 남아 있네요. 나는 그 심장조차 병이 들었다며 치료를 한다고 수돗가에 앉아서 물을 틀어놓고 씻었어요. 피 냄새를 맡은 늑대가 와서 흰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렸어요. 공포 속에서 문득 비릿한 젖 냄새를 맡았어요. 그 냄새가 어머니 심장을 붙들고 있게 했어요. 뒤돌아서니 더 흉물스럽게 생긴 늑대인간이 무섭게 달려들었어요 난 어머니의 심장을 그것들에게 던져주고 얼른 유리벽 뒤로 몸을 숨겼어요. 어머니의 심장이 흔적 없이 사라졌어요. 내 손엔 어머니가 핏물로 번져요.







미친, 미친 봄



그녀가 지독한 우울증을 호소하며 전화를 걸어올 때마다
난 창 밖에 늙은 벚나무를 보고 있었다


날마다 마음 속 들보에 줄 하나 걸어놓고 망설인다는
그녀의 전화를 받았을 때
늙은 벚나무는 잔뜩 웅크린 채 부는 바람에도
자지러져 신음소리를 냈다


두꺼운 솜버선에 케시미어 쉐타에 또 쉐터에
덧입고 덧입어도 춥기만 하다던
그녀의 전화를 받았을 때
늙은 벚나무의 표피는 추위에 쩍쩍 갈라져 있었다


수십 년 삭혀지지 않는 분憤 같은 것들이
거품으로 목젖까지 차올라 숨을 쉴 수 없다는
그녀의 전화를 받았을 때
나무는 뚝뚝 제 몸의 여기저기를 부러뜨리고 있었다


그녀에게서 한 동안 전화가 없을 때
늙은 벚나무는 입질을 기다리는 낚시꾼처럼
허공에 눈을 박고 꿈쩍을 안했다


목젖까지 차올랐다던 거품들이 그녀의 입 밖으로 꾸역꾸역 나와
늙은 벚나무 밑둥치로 스며드는 꿈을 꾼 날
벚나무는 그 거품들을 환한 꽃으로 빚어내고 있었다


뭉글뭉글 거품처럼, 구름처럼 늙은 벚나무가 꽃을 피우고 있던 날
그녀가 깔깔대며 전화를 걸어왔다.
지금
미친, 미친 봄이 제 속을 헤맨다고








별리別離





앞서가는 낯익은 남자의 한 걸음쯤
뒤에서 걷는 여자
무척 낯설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이다
사람 속에 있어도
풍경조차 담아내지 못한
청동빛 그림자


울 줄도
사랑할 줄도
미움도 없는
표정이 없는 표정으로 멈춰있는 뒷모습
영혼을 담아내지 못한 그릇 같다


낯선 저 여인.
거울을 보면서 수 없이 퍼담았던
세월이 하얗게 지워지고 있다


그녀가 가고 있다
울음도 두고
사랑도 두고
미움도 버리고
저만치 앞서 가고 있다


가슴 밑바닥에서 빠져나가는
시린 그림자 하나.








<신작시>

사막





목 부분의 경추에서 뼈가 자라기 시작한 것이
언제부터 시작된 것인지 모른다
혈기가 왕성했던 청소년 시절부터인지
가무가 잦았던 중년 시절부터인지
어쩌면 모태부터 이미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엑스레이 사진 속에서
뼈는 원한 맺힌 원귀처럼 허옇게 앞으로 튀어나와
그의 목숨 줄인 식도를 꽉 막고 있었다.
주는 물 한 모금 받아 마실 수 없고
혀를 내둘러 긁어모은 침조차 밖으로 내보내야 한다
말라붙은 입속에서 이빨은 서릿발처럼 허옇게 빛났다
겨우 경관으로 끌어들인 물은
모래 속 깊숙이 숨겨놓은 오아시스인지 밤낮으로 배속에서 출렁거렸다.
눈알은 끝도 없는 궁륭 속으로 빠져들고 있고
피부는 메말라 조그만 마찰에도 비듬이 일고 골이 생겼다
기억은 아주 오래 전이거나 방금이거나 먼 후일이거나
오락가락 한다
몸의 사막은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딸각, 티브이 스위치를 누르는 사이 몇 억 광년이 흘러갔나 보다
그 몸은 풍성한 여인의 몸이 되어 화면 속에 사하라로 누워있다

얼마나 많은 바람이 있어 그 몸을 그렇게 빚어놓았는가
얼마나 많은 우뢰가 그 몸을 품어 저리 풍성한가
얼마나 뜨거운 열기가 그 몸을 이리저리 뒤채며
저리 현란하게 황홀한 갈색으로 구워 놓았는가
얼마나 알 수 없는 많은 꽃들이 거기서 피었다 졌는가


숨이 멎을 것 같은 현혹의 화면은 그 몸의 심장부였다.
세상의 끝이라는 첩첩 바위의 아세크램은 구곡간장 그 몸의 내장이었다


시작과 끝이 공존하는
그 사막을 무사히 건너는 법은
식도를 막고 있는 거대한 뼈를 깎아 내는 아픔을 견뎌야 할 터


나 아직 건너지 못한 그 곳을
한 무리 낙타가 가고 있다.









없다



아파트 정자에 앉아있다.


내 눈 속으로
알락달락 미끄럼틀이 들어와 앉았고
누런 점박이 고양이 한 마리가
미끄럼틀 층계를 사뿐사뿐 내려와 눈 밖으로 사라졌다
그네 두 개가 눈 속에서 허공을 태우고 조금씩 흔들고 있고
허깨비 말 두 마리가 스프링을 타고 앉아있고
주위에 울창한 나무들이 들어와 바람을 타고 있다.
눈 밖에는 아무것도 없다


내 귀 속으로는 조금 전부터 울기 시작하는
매미들이 한두 마리씩 찾아 들고 있고
내 몸피는 모든 숨 문을 열어놓고
바람을 맞아들이느라 부산하다
몸 밖은 아무것도 없다.


내 눈은
미끄럼틀이 되고 그네가 되고
허깨비 말이 되고
울창한 나무가 되었다
내 귀는
매미들의 합창 지휘자가 되었고
몸은 바람의 길이 되었고
허공은 적막이 되었다


적막 속에
없다
내가









저녁노을




구름이 내말을 하는 건지
내가 구름의 말을 알아듣는 건지
서편 하늘을 보는 마음이 먹먹하다
동쪽에서 서쪽으로 오는 길목이
멀었던 것 같기도 하고
너무 짧았던 것 같기도 한데
오늘 서편의 하늘은 헤아릴 길 없다
나를 먼저 보낼 것인지 너를 먼저 보낼 것인지
선택되어지지도 선택할 수도 없는
기로의 영역에서
노을은 잠시 발갛게 망설인다.


환청처럼 들리는
너의 말
나의 말
차마 내뱉지 못하고
어둠 속에 돌아선다.








<나의 시>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






   1996년 9월 시인 이경림 선생님을 처음 만난 동기는 내가 무슨 글을 잘 써보자 함도 아니었고 시인이 되고자 하는 생각으로 찾은 것은 더더구나 아니었다.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와 악다구니를 치면서 2년 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와중 시어머니보다도 더 피폐해가는 나를 견딜 수가 없어 탈출구를 찾던 중 그 당시 희망 백화점이었던 백화점 문화센터의 광고지를 보게 되었다.
   이것저것 가르치는 것도 많았지만 나이 오십이 넘어 손끝으로 하는 작업은 이미 무디어진 손끝이 자신이 없었고 몸으로 하는 거나 노래 같은 것은 삼십년 가깝게 집에서만 살아온 것들에 몸이 베인 나로서는 더더욱 용기가 나지 않았다. 거기서 눈에 띈 것이 생활문학이라는 단어였다. (훗날 시창작반으로 바뀌었지만, 아마 처음부터 시창작반이라 했으면 용기가 안 나 안 갔을지도 모른다.)
   그동안 어떠한 상황에서라도 끊지 않고 했던 짓이 책을 읽는 것이었으니 혹 말귀는 알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용기를 내서 찾아 들어 간 곳이 그곳이었다, 하지만 난 그동안 시집은 별로 읽은 것이 없었다. 시인들에 대해서 깊이 알려고 해본 적도 없었고 시를 써봐야겠다 생각해 본 적도 별로 없었다.
그냥 시란 긴 말을 줄여서 쓰면 시라고 생각했고 시집들은 소설들을 읽다 짧은 틈이 나면 읽는 정도였다. 그것도 누구를 선택해서 읽는 것이 아니라 우연히 손에 들어온 것들이었으며 그렇게 오래 기억에 남아 있지도 않았다. 말하자면 시에 대해선 백지나 다름없었다. 그 당시 우연히 집이 한 방향이었던 이경림 선생님은 내 차에 동승하게 되었고 차 안에서 선생님은 끊임없이 시인들의 이야기를 했다.
‘아무개 시인 있잖아요 그 시인이 작품을 발표 했는데….’
‘○○시인을 어제 만났는데….’
   선생님은 마치 당신이 알고 있는 시인은 당연히 내가 알고 있을 거라는 투로 거침없이 시인들의 이야기를 했다. 처음에 한두 번은 잘 모른다고 대답하다가 어쩌다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모두 모르는 사람이고 보니 그 다음에는 모른다고 말해서 말머리를 자르느니 차라리 아는척해버리게 되고 말았다.
‘네, 그랬어요 그랬군요 하하 호호.’
   해놓고 뒤로는 그 사람들의 책을 구해 읽어 보느라 헉헉댔다. 대한민국에 유명한 시인이 그렇게 많은지,  선생님 주변에 시인이 그렇게 많은지, 날이 갈수록 놀랍기만 했다.
그 때부터 소설 읽기는 포기했다. 그저 선생님 입에 오르내리는 시집만 구해서 읽느라고 읽었는데 아직도 반도 못 읽은 것 같다, 그 세월이 10년이 훨씬 넘었다.

오륙 년 전 다리를 다쳐 누워있는 나를 위로코자 시인 이향지 님이 고 박완서 선생의 소설집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라는 소설 세 권을 사서 보내 주셨다.
   그 소설을 다 읽고 나서 그 동안 내가 책들을 어떻게 읽었나 생각하게 되었다. 한글을 깨우치면서부터 어머니 주변에 있던 소설책들을 무슨 뜻인지도 잘 모르는 체 읽기 시작했던 내 책 읽는 버릇은 그동안 꽤 많은 책들을 읽어온 것 같다, 한국 문학전집, 세계문학전집, 추리 문학전집, 노벨문학상을 탄 작품들, 그리고 고등학교 시절 잠시 도서관 사서를 보면서 잘 이해도 못하면서 아무도 빌려가지 않는 새 책을 제일 먼저 읽겠다는 욕심으로 두서없이 읽어댔던 철학서적들, 기타 세간의 입에 오르내리던 순수문학 쪽은 손에 잡히는 대로 읽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많은 소설들을 읽으면서 내가 찾아 헤맨 것은 좋은 문장들도 구성도 아니었다, 그 책 속에 나오는 주인공들, 조연들, 그들의 내면들을 내 안에서 찾아내는 것이었다. 그래서 난 수없이 쪼개져 나갔고 그런 작업을 통해서 얻어낸 것은 남들 속에 존재하는 또 다른 주인공들을 찾아내서 용납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얻은 것은 울지도 못하고 소리 지르지도 못하고 오로지 내 안의 그 수많은 주인공들 속에서 하나를 내세워 방패막이로 삼고 참고 견디는 것이었다.
 운동권에서 일하던 자식을 잃은 여자가 자신의 아랫동서한테 자식을 잃고 난 뒤 모든 사람 앞에서 당당해 보이려고 노력했던 자신의 치기 섞인 오만과 방종을 말하면서 교통사고로 온몸을  못 쓰고 치매까지 온 자식을 건사하는 친구를 보면서 비로소 울음을 터트렸다는 이야기를 한다. 이제는 울고 싶을 때 울면서 살겠다고 말한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언제나 냉정하여 벽같이 느끼게 했던 맏동서의 울음소리를 들으면서 아랫동서가 한 말,
    ‘형님 지금 울고 계신 거 아뉴? 형님, 절더러는 어찌 살라고 세상에, 형님이 누신대요? 형님은 어디까지나 절벽 같아야 해요, 형님은 언제나 저에게 통곡의 벽이었으니까요, 울음을 참고 살 때도 통곡의 벽은 있어야만 했어요. 통곡의 벽이 우는 법이 세상에 어디 있데요.’
고 박완서님의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이라는 소설 속의 얘기다.  내가 어째서 이렇게 문학에 무지 몽매한가? 이렇게 문장에 어두운가? 그 해답을 이제야 찾은 것이다. 여전히 난 박완서 님의 책을 읽으면서 그 안에서 날 찾고 있는 나를 발견했던 것이다. 그 분의 문장력도 은유도 구성도 아닌 바로 나를. 그 소설 속의 나는 통곡의 벽인 맏동서였다,

   시를 공부하면서 그 동안 잊고 있었던 아주 오래 전부터 막연히 품고 있던 나의 세가지 꿈이 되살아났다. 그 하나는 삼면이 책으로 둘러싸인 나만의 공간을 갖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내 이야기가 담긴 책을 갖는 거였다, 아니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쓴 마가렛 미첼처럼 평생 한 권의 책을 썼어도 그렇게 오래 사람들에게 읽힐 수 있는 책을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처녀시절 소설책들을 읽으면서 막연히 꿈꿨던 것 같다. 그리고 세 번째는 엉뚱하게도 누우면 맏 바로 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방이었다. 머릿속의 그 방의 그림은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에 피아노 한 대와 지붕이 유리로 되어 있었다. 왜 그런 꿈을 꾸게 되었는 진 모르지만 지금도 맑은 하늘에 쏟아져 내릴 듯한 별과 달을 보는 것은 여전히 남아있는 동경의 대상이다. 그런데 그 세 가지 꿈 중에 두 가지 꿈을 그 십여 년 세월 동안에 이루었다. 첫 번째 꿈은 작지만 지금 그런 공간에서 이 글을 쓰고 있고, 두 번째 꿈도 2005년도에 보잘 것 없지만 『봄나무에서는 비누 냄새가 난다』라는 표지를 박은 내 시집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내 스스로 나를 시인이라 인정하지 않는다. 그것은 시를 가까이 하면 할수록 시가 어럽게 느껴졌고 내 시의 정체성이 모호해졌다 무엇보다도 시를 가까이 한 세월이 10년이 넘었어도 그 시에게 내 생활에 일 순위를 넘겨줘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고작 내 일상의 시간표에 들어 있는 게 다였다.
 니코스 카잔차키스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조르바는 주인공 나가 그의 악기 산투르가 그의 삶에 위로를 주는 가벼운 것인 양,
‘산루트 덕분에 근심 걱정을 잊으셨던 게로군요?’라고 말하자,
   ‘여보시오, 댁은 연주할 수 있는 악기도 없어 보이는데 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거요? 집구석에 들어가면 온통 근심거리요, 마누라도 자식도 뭘 먹지? 뭘 입어야 하나? 앞으론 어떻게 될까? 제기랄, 그래서야 산투르를 켤 수가 없소, 악기를 연주하기 위해선 환경이 좋아야 한다오, 마음이 깨끗해야 산투르를 켜지, 마누라가 한 마디로 족할걸 열 마디로 잔소리를 늘어놓는데 어떻게 산투르를 켠단 말이오? 자식들이 배고프다고 빽빽대는데 악기를 켤 수나 있겠소? 산투르를 켜려면 온갖 정성을 거기에만 쏟아야하는 거요, 아시겠소?’라는 대목이 있다.
    그처럼 예술은 다 버리고 미칠 수 있어야 그 경지가 보이는 것 같다. 그리기에 미치고 쓰기에 미치고 읽기에 미치고, 무용 사진 음악 등등, 그 어떤 것에든 다 미쳐 봐야만 감히 그 뒤에 사람인人자를 붙일 수 있다는 생각이다. 아니 최소한 자신의 삶에 일 순위여만 한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난 미칠 줄 모른다. 미치기엔 너무 많은 잡것들을 외면하지 못한다, 미칠 줄 모르니 그 경지엔 언감생심이다. 시라고 써놓고 보면 언제나 부족해 보여 만족할 수 없었고 그래서 늘 시인이라는 말에 주눅 들고 미쳐있는 시인들에게 미안한 마음이라 가까이 하기를 꺼렸다.
‘할머니도 시인이잖아.’ 어느 날 손주가 제 엄마가 저한테 글 쓰는 재주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면서 한 말이다.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내가 그 아이의 미래에 관여할 수 있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석의 그 말이 무서워서 거의 포기하려던 시를 다시 나의 시간표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그 시란 놈이 내 안에서 어쩌다 떠끔 떠끔 하는 말을 지금도 받아 적고 있다.
누군가의 가슴에 오래 남을 수 있는 시를 단 한 편이라도 쓸 수 있었으면, 최소한 손주 놈에게 부끄럽지 않은 그런 시를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꿈을 꾸면서 말이다.
 가장 나종 지니인 것, 나의 시.


*박완서님의 소설 제목을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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